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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으로 하루를 즐긴 갈론구곡(葛論九谷)

2010년 7월18일 오전 8시50분.
충북 괴산군 칠성면 소재 속리산국립공원쌍곡분소 앞에서
군자산 산행을 하게 될 일행들은 동행한 차량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예로부터 충북의 소금강이라 불렸을 정도로 산세가 빼어난
해발 948m의 군자산 산행에 대한 욕심이 없는 바도 아니지만
어제까지 내린 장마비로 인해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을 접하리라 기대되는
갈론구곡 계곡 트래킹을 하기로 마음 먹고 그에 걸맞는 복장은 물론
무거운 카메라 삼각대까지 휴대한 입장인지라
오후에 갈론구곡에서 재회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오전 9시18분.
멀리 눈 앞으로 칠성댐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부터 갈론구곡 입구까지의 약 4km구간은 차량 1대만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외길 도로이다. 타고 있는 대형 버스가 어떻게 그 길을
지나갈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노련한 운전기사의 운전 솜씨를 믿어 보기로 한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댐 수위가 오른 탓인지 수문 2개를 개방한 칠성댐.
우리나라 기술진이 지난 1957년에 최초로 만든 기념비적인 수력발전소가 저곳에 있다.
저곳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필적으로 만든 단기 4290년 1월로 표기한 현판이 있으며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으나
1,300kw발전기 2기로 발전하는 2,600kw의 발전용량이므로
요즈음으로 보면 초미니 발전소인 셈이다.
참고로 청평수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은 현재 79,600kw이다.

오전 9시38분.
오지 마을인 괴산군 칠성면 갈은리의 지금은 폐교가 된
칠성초등학교 갈은분교 앞에 도착했다.
아침까지 찌푸리던 하늘은 이제 절반 이상 파란색으로 변해간다.

분교 바로 앞 갈론구곡 입구에는 이와같은 돌로 만든 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 지명인 "갈은(葛隱)리"는 칡(葛)이 많이 우거져
은(隱)거하기 좋은곳이란 뜻의 갈은(葛隱)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갈론(葛論)으로 바뀌었다 한다.

또한 이곳 "갈론구곡(또는 갈은구곡)"은 괴산의 유림 전덕호(1844-1923) 선생이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마다 시를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암각해 놓았다고 한다.

오전 9시44분.
갈론구곡 입구의 '갈론교"를 지나 갈론구곡 답사에 나선다.
이곳은 다른 지방에 비해 어제까지 비록 비는 내렸지만
적은 양이 내린듯하다.
계곡 하류에 만들어진 작은 수중보를 넘쳐 흐르는 계곡 물이 무척 깨끗하다.

오전 9시54분.
이곳이 아직은 일반에게 덜 알려진데다
교통이 불편한 때문인지 인적없는 한산한 길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동무 삼아 걷다보니 갈론구곡의 제1곡인
"갈은동문"앞을 지난다.

거대한 자연 암반 위에 놓인 4각형 큰 바위에
"갈은동문"이라는 글씨가 한자로 음각되어 있다.
옛날 양반들은 심산유곡 유람시에 식량과 의복을 나르는
하인들 외에도 다수의 석공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바위에 글씨를 새겨 넣게 했다 한다.
이런 행위는 "자연훼손"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바위를 자세히 살펴 보면 '갈은동문'이라는 글씨 밑에
희미하게 다른 글씨가 보인다.

洪承穆(홍승목), 그리고 李源棘(이원극).
홍승목은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조부이며
이원극은 구한말 국어학자였던 이능화의 부친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좌측편으로 제2곡인
갈천정이 눈에 들어온다.
갈천정을 오후에 돌아오면서 살피기로 하고
더위가 심해지기 전에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부지런히
계곡을 따라 올라 간다.

제3곡인 강선대를 향해 개울을 건너는 중 개울가에서
한창 제철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리는 우리나라 원산의
야생화인 까치수염을 만난다.
꽃 속에는 작은 여치 한 마리가 숨어 있다.

물가에 예쁜 검은색 나비가 앉아 있다.
날개 뒷부분이 길게 꼬처럼 나온 것을 보니
제비나비인듯하여 한참을 지켜 보지만
접은 날개를 쉬이 펴지 않는다.

운 종게도 오래지 않아 날개를 순간적으로 편다.
비록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잠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애벌레로 월동한 후 1년에 두세번 나비로 변하는 종인데,
크기가 큰 것을 보니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비로 변한 것 아닌가 싶다.
제비나비는 늦여름에 나비로 변하는 경우는 그 크기가 작아진다.

오전 10시20분.
제3곡인 "강선대(降僊臺) 앞에 당도했다.
말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앉았음직한 멋진 바위의 형상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룬 넓은 바위 마당 앞으로 흐르는 물은
신선이 목욕을해도 좋을만큼 깨끗해 보인다.
나무 그늘에 앉아 조용히 휴식을 취해 본다.

갈론교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보니
나 자신 신선놀음을 하는 것 같아 더욱 상쾌한 기분이 든다.

간혹 참고자료를 볼라치면 이곳을 降仙臺로 표기하는데 분명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僊(선)이라는 글자는 신선이 춤추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니
얼마나 경치가 좋은지 알 수 있으리라.
이곳 바위에는 음각해 놓은 싯귀가 비교적 선명하다.
짧은 지식으로 몇 음절을 읽어 본 후 귀가 후 숙제로 남겨 준다.

오전 10시26분.
오늘은 첫 방문이니 두번,세번 째 방문 때
오늘 남겨둔 미련을 거둬갈 요량으로
다음 4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강선대를 뒤돌아 본다.
아직은 뭍사람들의 때가 묻지 않은 곳.
칠성댐부터 이어지는 4km의 좁은 길이 넓혀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오전 10시33분.
다시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
한동안 숲길이 이어진다.
도라지 꽃이 만발한 도라지 밭에는 철조망을 두른 후
곳곳에 경고판이 붙어 있다.
"고압전류. 감전 주의" . 멧돼지 등 야생동물보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인간 동물이 더 무서운 적일 것 같다.

또다시 개울을 건너 간다.
물이 너무 맑고 투명해 보여 불현듯 한모금 마시고 싶어진다.
그대로 게곡에 엎드려 흐르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산행시마다 구입해 배낭에 넣고 다니는 생수보다
몇배는 더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다.

숲이 점점 깊어지면서 각종 새소리는 물론
온갖 곤충들이 눈에 띈다.
탈바꿈한지 그리 오래지 않을 것 같은 여치도
사람 인기척에 놀라 재빨리 풀잎 사이로 몸을 숨긴다.

우리나라 원산의 여름 야생화 짚신나물에도
잠자리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잠자리는 옅은 갈색 상태에서
여름이 깊어져 번식기를 맞으면 수컷과 암컷의 성징으로 구분된다.
그 중 우리가 늦여름에 흔히 보는 빨간색의 고추잠자리는
수컷의 성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고추잠자리는 항상 늦여름에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잠자리는 조금 붉은색을 띄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수컷 성징을 나타내는 과정인듯하다.

오전 10시56분.
갈론구곡의 제4곡인 옥류벽(玉溜壁) 입구에 당도했다.
마치 시루떡을 층층이 쌓아 놓은듯한 암반을 타고
구슬같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곳.
푸른끼마저 감도는 물 색깔이 마음에 든다.

울창한 나무숲과 켜켜이 쌓인 암반으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옥류벽 한 구석을 맑은 계류가 흐른다.
13초간의 카메라 셧터 개방으로 찍힌 물 흐름이 비단결 같이 곱다.

오전 11시4분.
너무나 한적하고 마음에 드는 곳이다.
계곡 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더위를 식히며
쉴새없이 들려오는 물소리와 새소리에 젖어든다.
신선 놀음을 끝내고 옥류벽을 벗어나며 다시 한번
멋진 풍광을 8초 동안 감상하고 자리를 뜬다.

오전 11시13분.
제5곡인 금병으로 가는 길은 아예 계곡물에
허리까지 몸을 담근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같은 자그마하고 멋진 폭포를 만나면
온 몸에 물을 뒤집어 쓰며 나아간다.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이 사진은 셧터 속도 1초로 찍은 사진이다.

오전 11시25분.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중 멀리 눈 앞에
갈론구곡 제5곡인 금병(錦屛)이 눈에 들어온다.
금병 앞을 구비쳐 흐르는 계류의 흐름이
금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비단결같이 느껴진다.

금병은 암벽이 병풍처럼 계곡을 감싸고 있는 곳이다.
황갈색 바위벽에 물빛에 반사된 햇볕이 닿으면 비단으로 만든
병풍과 흡사하다하여
비단 금(錦) 에 병풍 병(屛)을 써서 지은 이름이다.

병풍같은 암반에 음각된 금병(錦屛)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그 좌측으로 싯귀 또한 음각되어 있다.
아마 예전에도 사진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저처럼 암반에 글을 새겨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으리라.

오전 11시42분.
5곡인 금병을 따라 계곡을 오르면
제6곡인 거북이 모양의 바위인 "구암(龜岩)"
제7곡인 오래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제8곡인 일곱마리 학이 살았다는 "칠학동천(七鶴洞天)" 이 있는 것으로
괴산군청 홈페이에서 보았으나,
아랫쪽 갈론구곡 입구에서 초복 전날임을 감안하여
닭죽을 끓여 놓고 기다릴 일행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허기가 느껴져 6,7,8곡을 살피는 것은
다음기회로 미룬채 숲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물길 건너편에 자리잡은 "선국암"이 눈에 들어 온다.

갈론구곡 중 마지막 제9국인 선국암(仙局岩)은
오래 전 신선들이 둘러 앉아 바둑을 두며 즐겼다는 곳이다.
녹색 이끼가 잔뜩 낀 바위 옆면에 선국암이라 음각된
글씨가 희미하게보인다.

仙局岩이라 음각된 부분 아래쪽에는
싯귀가 적혀 있다.

비교적 쉬운 한자로 음각된 싯귀의 문구는 아래와 같다.
玉女峰頭日欲斜(옥녀봉두일욕사)
我棋未了各歸家(아기미료각귀가)
明朝有意重來見(명조유의중래견)
黑白都爲石上花(흑백도위석상화)

뜻을 풀이하면 대충 아래와 같다.

옥녀봉 산마루에 해가 저물어
바둑을 다 끝내지 못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네
다음날 아침에 뜻이 있어 다시 찾으니
바둑알 알알이 바위 위에 꽃이되어 피어 있네.

선국암 위 평평한 바위면 중앙에는
이처럼 바둑판이 새개져 있으며
정남,북 방면의 두 귀퉁이에는
바둑알을 담을 수 있게 깊게 홈이 파여 있다.
또한 네 귀퉁이에 한 글자씩
四老同庚(사노동경)이라는 네 글자도 보인다.
四老同庚의 뜻은 동갑내기 노인 네명이라는 뜻이다.

선국암 바로 옆 계곡의 물은 이처럼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작은 폭포를 이룬다.
가히 동갑내기 노인 넷이 앉아 바둑을 즐기며
신선놀음을 할만한 곳이다.

오전 11시56분.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또 그 물소리를 들으며 두시간이 넘게
인적을 찾지 못한 곳에서 홀로 신선놀음을 하는 중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십수명의 산행객들이 왁자지껄하며
선국암으로 들이닥친다.
옥녀봉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산꾼들이다.

오전 11시58분.
신선들이 내려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도끼자루 썩혀가며 바둑을 둘듯한 비경속의 선국암에서
이처럼 맑게 흐르는 물 속에 지친 몸을 담그고
홀로 오랫동안 쉬며 명상에 잠기고자 했으나
훼방꾼들로 인해 쫓기다시피 자리를 뜬다.

낮 12시6분.
돌아가는 길은 9곡까지 올라올 때와는 달리
숲길을 택해 걸음을 옮긴다.
여름 야생화인 패랭이 꽃을 금년 여름 들어 처음으로 만난다.
우리나라 원산인 패랭이꽃은
옛날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가 쓰던 '패랭이'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꽃말이 '사랑'인 패랭이꽃은 이뇨제,통경제 등 약으로도 효능이 많은 꽃이다.

초복 전날답게 무더운 날씨이지만
파란 하늘에 점점이 흩어진 흰구름을 바라보는
마음만은 상쾌하다.
숲길에 지천으로 깔린 개망초꽃도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니
무척 예쁘게 느껴진다.

낮 12시27분.
오전에 멀리서 그냥 지나쳤던
이곳 갈론구곡의 제2곡인 갈천정(葛天亭)을 살펴 본다.
옛날 '갈천’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은거했던 장소로
갈은(葛隱) 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곳이라 한다.

이곳 갈천정의 바위에도 예외없이
葛天亭이라는 글씨가 음각됨은 물론
그 아래에는 사람 이름 등이 음각되어 있다.
다른 바위들과 달리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허옇게 풍화된 모습이 조금은 생뚱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낮12시40분.
3시간 동안의 갈론구곡 계곡 트래킹을 끝내고
제1곡인 갈은동문 앞으로 돌아왔다.
군자산 산행을 하고 있을 일행들과
나처럼 나홀로 계곡 트래킹을 즐긴 사람등등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래 마을에서 닭과
돼지 수육울 삶아 이곳까지 날라 온 몇몇 고마운분들 덕분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인 후 허기를 달랜다.

이곳 갈론 구곡은 물 맑은 골짜기에서 주로 사는 무당개구리가
눈에 많이 띌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다만 이 무당개구리는피부에서 흰색의 독액이 분비되는데
인체의 점막에 강한 자극을 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7~8월에 꽃을 피우는 참나리가 맑은 물가의 운치를 더해준다.
참나리꽃의 꽃말은 "순결,준엄'이다.
이 꽃말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옛날 한 마을에 한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다.
망나니 원님 아들이 이 처녀를 보자 마음에 들어 강제로 희롱하려 했다.
그러다 처녀는 원님 아들의 강제추행에 대항해 자결로 순결을 지켰다.
그후 원님 아들이 이를 깊이 반성하고 처녀를 양지에 묻어 주었다.
훗날 무덤 위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원님 아들은 이 꽃을 가져와 고이 키웠다고 한다.

봄,여름,가을,겨울 거의 매주 주말이면 산행과 여행을 다니는 처지에
정말 오랫만에 이처럼 맑고 깨끗한 계곡물에 뛰어들어
4~5시간을 동심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던 하루였다.
가끔씩은 산행이나 여행 중에도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후 6시57분.
갈론구곡을 떠나 귀가하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 부근의 드넓은 벌을 끼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서쪽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는 아마 더위를 식혀 줄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리고 있으리라.
짙은 구름 사이로 잠깐씩 내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며
행복하고 여유로웠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