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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원시림을 자랑하는 방태산(芳台山;해발 1,444m)산행기

2010년 6월20일 일요일 오전 10시34분.
점봉산과 더불어 남한 최고의 원시림과 깊은 골짜기를 자랑하는
방태산 산행을 위해 대전을 출발해 3시간 이상 달린 차량이
인제군이 자랑하는 내린천변을 지난다.

차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내린천에서는 래프팅이 한창이다.
2008년 8월 경남 함양군 휴천면 엄천강변에서의 래프팅이 떠오르며
나도 저 무리에 합류하고픈 생각마저 든다.

오전 11시34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2리 "국립 방태산 자연휴양림'내의
제1야영장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아직은 등산로가 아닌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비포장 도로이지만
남한 최고의 원시림을 가졌다는 명성에 걸맞게
하늘을 뒤덮는 울창한 원시림이 이어진다.

오전 11시49분.
1km 이상의 완만한 경사길이 이어지던 도로가 끝나고
제2야영장 부근에서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 들었다.
적가리골 옆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는
초입부터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흐르는 맑은 물이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오전 11시56분.
이제 해발고도가 600m를 넘어 섰다.
정상인 주억봉까지 거리는 4km정도.
무척 더운 날씨지만 녹음 우거진 활엽수림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받아서인지 목덜미를 스치는 공기가 상쾌하다.
울창한 원시림으로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아서인지
등산로의 작은 돌들이 한결같이 녹색 이끼로 뒤덮여 있다.

맑은 물이 계속흘러 내리는 적가리골 계곡의 돌들도
온통 녹색 이끼로 장관을 이룬다.

낮12시3분.
해발 700m를 넘어서며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계곡 옆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이와같은 나무 다리를
여러번씩 건너가며 계곡의 좌우를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하늘을 뒤덮듯 울창한 숲길도 간혹 이처럼 키 큰
전나무숲이나 낙엽송 군락 등을 지날때면 잠깐씩
햇빛이 들기는 하지만 햇살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낮12시25분.
해발 800m를 훌쩍 넘어 해발900m에 육박하는 지점임에도
등산로 바닥까지 물이 질척거릴 정도로 물이 많은 산이다.
그래서인지 이처럼 아래로 들어 누운 나무가지가
등산로를 가로지른 후 다시 하늘을 향해 힘차게 가지를 뻗는다.

낮12시38분.
산행 시작부터 1시간 이상 완만한 산길을 오르며 이어지던
비교적 편안한 산행길은 해발 900m를 넘어서면서
가파른 급경사길로 이어진다.
간혹 눈에 띄는 산행객들 중 몇몇이 진땀을 흘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낮12시50분.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
그런 와중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야구 배트를 만들 정도로
단단한 나무인 가느다란 물푸레나무가 많은 덕분에..
가지를 잘라 물에 넣으면 푸른 빛을 띈다하여 물푸레라는 이름을 얻은
고마운 물푸레나무를 손잡이 삼아 의지하며 다리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킨다.

오후1시45분.
급경사 오르막이 끝나고 완만한 산길이 시작되는 곳
해발 1,300m를 넘은 지점에서 뻥 뚫린 나무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급경사 오르막을 1시간 이상 걸려 올랐다.
중간에 산행 초보자인 50대초반 남성이 무척 힘겨워하기에
잠깐 말동무가 되어주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비교적 편안한 완만한 길이 이어지자 비로소 야생화를 살펴볼
여유가 생긴다.
이 보라색의 예쁜 야생화는 "벌깨덩굴"이다.
꽃잎 안쪽의 아래부분에 앙증맞은 보라색점과 길게 나있는 털이
마치 토끼의 주둥이를 연상시키는 작고 예쁜 꽃이다.

일명 '눈산승마'라고도 불리며 높은 산에서 자라는
눈개승마도 흰빛을 뽐낸다.
이 야생화는 최근 강원도농업기술원이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재배 기술 보급확대에 나섰다고 한다.
고사리보다 맛이 뛰어난 '쇠고기 맛 산나물'이라 부르는
고급 산나물이다.

그런가하면 목련과의 "함박꽃나무"도 눈에 많이 띈다.
이 꽃은 꽃의 지름이 일반적인 목련 종류에 비해 작고 꽃이 수그린 채 피는게 특징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일본, 중국 등지에도 분포하는데,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하여 나라꽃으로 여긴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오후 2시13분.
방태산 정상인 주억봉과 그 동쪽의 구룡덕봉(해발 1,388m)이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고 이제 주억봉까지는 불과 300~400m를 남겨 놓은 지점을 지난다.
키 작은 나무들로 터널을 이룬 곳.
보통 평지에서는 5월에 꽃이 피었다가 이맘 때면 꽃이 지는
노린재나무가 흰색 꽃을 활찍 피웠다.

식물에 피해를 주는 곤충인 노린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일설에는 노린재나무의 잎과 줄기를 태우면 노란재가 남는다하여
노린재라는 이름을 얻었다하나,
노린재나무의 가지나 단풍든 잎을 태우고 남은 재로 낸 잿물을 황회(黃灰)라 하는데,
천연 염료로 옷감을 노랗게 물들일 때 황회를 매염제로 썼기 때문에
노린재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오후 2시20분.
구름 많은 날씨 때문에 시계가 불량한
방태산 최고봉인 해발 1,444m 주억봉에 도착했다.
전국의 웬만한 산에는 거창하게 생긴 정상석이 버티고 있는데 비해
나무로 만든 정상 표지목이 어찌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나마 지난해 여름까지는 바로 옆 돌무더기 위에
퇴색한 안내판이 놓여 있어 등산객들이
그 안내판을 손에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었다.
주억봉을 일명 '주걱봉'이라고도 일컫는데, 주걱을 닮아서였다 한다.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멀리 해발 1,388m 구룡덕봉이 보인다.
구룡덕봉 남동쪽으로 고개를 넘던 아홉 마리 용이
양양군 서면 갈천리 마을에서 쉬어 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해발 1,013m인 구룡령[九龍領-]의 이름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초 계획은 구룡덕봉을 거쳐 매봉령을 지나 출발 지점인
방태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지체되어
망원렌즈로 정상부를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구룡덕봉 정상부는 지난 1986년까지 군부대가 20여년간 주둔하던곳으로
그간 정상부까지 4륜구동차량이 출입하는 등 훼손이 심했으나
최근 인제군 국유림관리사무소에서 차량 출입을 차단하는 등
복원 사업을 펼쳤으며 현재는 전망대 등의 시설을 갖춘 곳이다.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해발 1,436m인 깃대봉이 솟아 있다.
오래 전 방태산으로 불리던 곳이 바로 저 곳이다.
방태산은 한국판 노아의 방주(芳舟)라고 할 수 있는 곳
과거 방대산(芳臺山)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방태산(芳台山)으로 바뀌었다.

방태산 정상에는 약 2톤 가량의 암석이 있었고
여기에는 수작업으로 정을 꽂아 뚫은 구멍이 있었는데
옛날 대홍수때 이곳에다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게 밧줄을 매었다고 하여
그 돌을 가르켜 배달은 돌(배달은 石)이라고 불렀다 한다.
현재 지도상에는 깃대봉 바로 못미쳐 해발 1,415.6m의 바위봉우리를
'배달은석'이라고 표기한다.

오후 4시10분.
주억봉을 떠나 구룡덕봉과 갈라지는 삼거리 쉼터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지당골을 거쳐 적가리골로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해발 800m 부근 계곡에 발을 담근다.
얼음물처럼 차다.
이곳 방태산을 얘기할 때 흔히들 "3둔4가리"라 부른다.
3둔은 방태산 남쪽의 살둔, 월둔, 달둔을 말하고
4가리는 방태산 북쪽의 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를 말한다.
여기서 둔(屯)은 평평한 산기슭, 가리는 사람이 살 만한 계곡을 일컫는다.

오후4시18분.
얼음같이 찬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발까지 씻으니 온몸이 시원해진다.
한동안 이와같은 짙은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 냄새,풀냄새를 온몸으로 받으며 걷는 호젓한 산길.
마음이 편안해 진다.

오후 4시36분.
등산로가 거의 끝나고 자연휴양림 제2야영장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지점.
5시간 전 산행 시작 때 옆으로 보기만하고 지났던 계곡 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여름에만 사용하는 계곡 산행용 '아쿠아 트래킹화'를 신고 온 덕분에
마음대로 물 속에도 들어간다.
'3둔 4가리'는 저마다 수려한 계곡을 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빼어난 곳이 이곳 적가리골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것 같다.

오후 4시46분.
등산로를 벗어나 자연휴양림 내의 비포장도로를 지나며
나무 그늘 밑에 수줍게 피어 난 초롱꽃을 만난다.
여름철 산에서 가장 흔히 만나는 우리나라 원산인 야생화이다.
꽃말이 충의,성실,감사 등인 이 초롱꽃은
요즈음은 화원에서 재배하는 개량종도 많이 나온다.

초롱꽃 옆에서 이처럼 예쁜 야생화를 만난다.
이름을 모르겠다.
'진범'을 닮았으나 잔털이 없으니 진범은 아닌듯 하고,
나비나물을 닮기도 했으나...
어쨌든 누군가는 방태산(芳台山)이라는 이름이
향기가 많이 나는 산이기 때문이라고도 했었다.
"꽃다울 방(芳)" 이라는 한자로 썼으니
향기와 좋은 냄새가 많은 산인 것은 분명하다.

오후 5시3분.
5시간 반 동안의 방태산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이 바라 보이는 곳에 자리한
2단 폭포에서 잠시 머문다.
2단폭포란 이름은 "이폭포 저폭"’라 불리우는 2개의 계단폭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높이 15m의 ‘이폭포’에서 떨어진 물길은 잠시 널찍한 소(沼)에 머물다가
다시 ‘저폭포’라는 이름의 짤막한 폭포로 떨어지며 적가리골 최고의 절경을 이룬다.
이 절경을 셧터 속도 6초의 장노출로 잡으니
폭포의 물 흐름이 마치 비단결 같다.
삼각대를 휴대하지 못했음이 아쉬울 뿐이다.

삼각대가 없어 주변의 돌멩이와 배낭으로 카메라를 지탱하고
폭포를 장노출로 찍느라 애쓰는 나를 위해
잠시 카메라 앵글을 벗어나 기다려 준
저 젊은 커플이 오래오래 행복한 사랑을 이어가기를 빌며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행복한 마음으로 휴일 하루를 마감하고
발걸음도 가벼이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