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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할미통시바위`가 있는 둔덕산 산행기

2010년 6월6일 일요일 오전 9시45분.
둔덕산[屯德山] 산행을 위해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대야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3km남짓 떨어진
둔덕산을 오르기 위해 산행을 시작한다.

높이 969m인 둔덕산은 백두대간의 대야산(931m)과 조항산(951m) 사이에
동쪽으로 솟아 있는 암벽 능선이 아름답고 수림이 울창한 산이다.
부근의 대야산과 희양산의 명성에 눌려 찾는 이가 드물다.

오전 10시5분.
주차장에서부터 임도를 따라 오르던 길은 둔덕산 정상을 2.7km앞둔 지점에서
우측으로 향하는 대야산 산행길이 아닌 좌측 길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 약 20여분을 땀 흘리며 오른 후 임도는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 든다.
산행 들머리부터 울창한 산죽 군락을 뚫고 지나간다.

오전 10시13분.
산죽 군락이 끝나면서 활엽수가 울창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덩달아 조금씩 흘러 내리던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한다.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이다.

오전 10시 24분.
정상까지 1.5km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부터 이와 같은
자그마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낙엽 뒤덮인 너덜길이 산행을 더디고 힘들게 한다.
작은 돌에 이끼가 낀 것으로 보아 여름철 폭우가 내리면 이곳에 큰 물줄기가
형성될듯하다.

오전 11시25분.
울창한 숲을 헤치고 오르는 산행길이 무척 고통스러운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해발 400m정도에서 출발해서 생수 1통을 다 비우며 흘린 땀을 보충하며 오르기를
1시간 40분 남짓.
정상까지 500m가 남았음을 알리는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정상을 향한지 5분여가 지나자
비로소 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해발 931m인 대야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1시42분.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만에 해발 969m 둔덕산 정상석 앞에 섰다.
지름 5m정도의 아담한 평지로 된 정상은 온통 이와같은 키 높이의 나무로
둘러 있어 북쪽을 제외하고는 조망이 막힌 상태이다.
북쪽으로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희양산이 눈에 들어 오고,
우측으로는 주흘산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 11시55분.
둔덕산 정상을 떠나 다시 정상까지 500m떨어진 삼거리를 향해 되돌아 간다.
정말 오랫만에 이처럼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는 둔덕산이
너무 좋다.
우리나라 산행객들의 폐단으로 누누히 지적되어 오는
지나친 엘리트주의로 인해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백두대간,
국립공원 등 명소만 찾는 나쁜 습관이 오늘처럼 나에게
도움을 주다니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낮 12시11분.
산행객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하고 사람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깨끗한 산이어서인지 이처럼 갓 변태(탈바꿈)를 끝낸 작은 곤충을 자세히 살펴 볼
여유도 생긴다.
눈으로 일별하기에도 부드러워 보인 겉껍질을 통해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연약한 어린 생명이 경이롭다. 여치가 아닌가 싶다.

여치는 매미,잠자리,사마귀,하루살이 등과 같은 불완전변태를 한다.
불완전변태란 번데기 상태를 거치지 않고
애벌레에서 바로 성충으로 변하는 변태를 말한다.

참고로 파리,모기,나비,벌 등은 번데기 과정을 거치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들이다.

낮12시12분.
삼거리까지 되돌아온 후 그동안 2시간여 동안 남쪽을 향하던 산길은
방향을 바꾸어 해발 고도 800~900m정도의 능선길을 따라 서쪽을 향하게 된다.
957m 봉에 마련된 헬기장에서 잠시 뒤를 돌아다 본다.
잠시 전 지나온 둔덕산 정상부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희양산의 자태가 무척 아름답다.

고개를 돌려 멀리 서쪽을 바라 본다.
우측으로 바위 능선으로 이루어진 대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앞 좌측의 아름다운 바위 능선이 오늘 산행 경로인
이른바 '마귀할미통시바위' 능선이다.
저 멀리까지 이 더위에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

오후 1시10분.
해발 800~900m고도를 유지하면서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는
힘든 능선길을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걷는다는 일이 무척 힘들다.
산행 시작한지 3시간 반이 지났다.
무릎도 발도 모두 조금씩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다.
아직도 마귀할미통시바위 능선은 멀어만 보인다.

능선을 300m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마귀할미통시바위 주위의 바위 능선들이 너무 아름답다.
누군가 저 능선을 만물상 능선이라고 불렀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정당하지 못한 가욋 돈을 마치 탈취당하듯 마지 못해 내 놓고 찜찜한 기분으로
멀리 찾아가 봐야 하는 금강산 만물상보다
더 멋있는 경관이 아닌가 싶다.

오후 1시44분.
이제 둔덕산 정상에서부터 하산길로 연결되는
통시바위 능선이 끝나는 삼거리까지 기나긴 능선길의
2/3 정도는 온 것 같다.
눈 앞으로 펼쳐지는 조항산-대야산을 잇는 백두대간 능선의
울창한 초여름 녹음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오후 1시45분.
이른바 '손녀마귀통시바위'로 불리는 자그마한 바위가 눈 앞에 나타난다.
'통시'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변소" 즉 화장실을 뜻함이다.
우리나라 전래 설화에 의하면 거인이 용변을 보면 그 물은 홍수를 일으키고
또한 강을 만든다.
마귀할미의 2세대 후손인 손녀는 그렇다면 이곳에서 북으로 흘러
용추골과 만나는 가마소의 깊고 푸른 물에 일조한 대골 계곡을 만든 것일게다.

손녀마귀통시바위를 배경으로 추억남기기에 여념들이 없다.
그런데, 오가는 대화를 들어 보니 저 바위를 여러 산에서 볼 수 있는
남근석 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름이야 어떠하리!
문경시 관광과에서도 또한 그 지역 민속사학자도 이름의 유래를 모르는 판국이니..

오후 1시54분.
손녀마귀통시바위에서부터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마귀할미통시바위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거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위험 구간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북향한 사면을 따르는 길인지라
눈 내린 겨울 산행시에는 극도의 주의가 요구될듯 하다.

오후 2시1분.
험난한 암릉의 북쪽 사면을 곡예하듯 지나는 산행길.
이와같은 로프를 잡고 올라야하는 위험 구간을 만난다.
물찬 제비처럼 가볍게 걷던 비교적 젊은 여인네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구간이다.
아마도 히프의 S라인을 살린 몸매와 가냘퍼야 아름답다고 치부되는
연약한 팔 근육 때문이리라.
이런 구간은 마귀할미통시바위까지 가는 동안 한 번 더 만난다.
제일 먼저 로프 구간의 중간부에 올라선 남정네는 뭍 여인들의 손을 모두 잡아보는
행운을 누리고 그를 보는 대다수 남정네들로부터 심한 질시를 받기도 한다.

오후 2시10분.
오랫만에 북쪽으로 멀리 시원하게 조망이 트인다.
멋진 암반으로 이루어진 희양산 아래 가까운 산 등성이가
마치 심한 탈모증에 걸린 병자같은 모습이다.
주위에 유난히 많이 산재한 석재광산들이 빚어 놓은 자연 훼손 현장이다.
환경 당국자의 모가지를 비틀어 이곳으로 끌고 와서
저 흉악한 몰골을 그의 각막에 각인시키고 싶어진다.

전진 방향인 서쪽 눈 앞으로 통시바위 능선의
칼날 같은 바위들이 보인다.
너무 멀리 있어 다가 갈 수 없을 것만 같던 곳이지만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나니
온 몸에 기운이 솟는다. 발걸음이 빨라 진다.

오후 2시45분.
손에 잡힐듯하던 마귀할미통시바위에 30분 이상 지나도 도착하지 못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만큼 바위 능선길이 험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잦아서일게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 할미통시바위 바로 앞 길가에서 이런 기묘한 형상의 바위 옆을 지난다.
만약 저 바위의 이름이 없다면 "어처구니바위"라고 짓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처구니'란 바로 '맷돌'의 손잡이를 이르기 때문이다.

오후 2시47분.
기묘하게 생긴 '마귀할미통시바위' 앞에 섰다.
이름의 유래를 알기 위해 문경시청 관광과에 전화했으나 그들은 모른다.
그들이 알려 준 향토사학자에게도 전화를 했으나 알려진 유래가 없다고 한다.
다만 대야산에서 용추계곡으로 하산하는 길목에 자리한 '떡바위'에 대한 전설에서
조금 나오는 얘기가 있다.
그 떡바위는 다름 아닌 이곳 통시바위에서 떨어져 나간 똥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 한다.

이 마귀할미통시바위 위에 마치 손바닥이 얹힌듯한 형상이 눈에 띈다.
혹시 마귀할미가 이곳에서 용변을 본 후 휴지가 없어 머리에 둘러쓴
보자기로 뒷처리를 하는 모습은 아닐까?

통시바위와 그 앞의 큰 바위 사이로 남쪽 계곡을 내려다 본 후 본격적인 하산길에 오른다.
경상남도 밀양 어느 마을에도 통시바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 온다.
내용인즉슨 산을 지고다니는 마귀할멈이 통시바위에 걸터 앉아 오줌을 누니
산이 무너져 동네가 생겼다는 얘기다.
더구나 똥이 떨어져 나간 데는 궂다하여 궂질이라는 동네가 생겼다 한다.

오후 2시53분.
해발 900m가 조금 못되는 곳.
둔덕산까지 1시간30분, 조항산까지 1시간20분이 소요된다는
안내 표지가 있는 곳에서 시작된 본격적인 하산길.
월영대까지 1시간10분이 소요된다는 글도 보인다.
용추골 주차장까지는 2시간이 더 걸릴듯하다.
가파른 경사길에 지난 겨울동안 흰 눈에 묻혀 있던 낙엽들.
늦추위 이후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른 더위로 인해
울창한 숲에 영양분을 공급해야할 낙엽 본연의 임무를 잊은건 아니리라 믿어 본다.

오후 3시39분.
해발 700m 이하로 내려가면서부터 물 소리가 들리는 하산길.
다래골이라는 이름답게 물소리가 지친 몸의 피로를 덜어준다.
준비해 간 생수가 떨어진지 오래다.
흐르는 계곡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니 온몸이 시원해진다.
여름철 계곡 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오후 4시
시원한 계곡물로 갈증을 풀고 이어지는 하산길.
이번에는 산죽군락을 지난다.6시간 전 산행 들머리에서 지난
그 산죽군락보다 월등히 키가 크다.
온몸을 휘감고 도는 울창한 산죽군락을 지나며
지난해 6월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백송사 부근에서 만난 '산죽비트'가 생각난다.


6.25동란 당시 빨치산들은 토벌대의 추적을 피하면서
주로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한
비트를 만들어 숨어서 토벌대의 추적을 따돌리곤 했는데
당시 빨치산들은 바위,낙엽,굴 등을 이용한 비트 외에도
지리산 곳곳에 분포된 울창한 산죽 사이에 몸을 은신하여 추적을 피하는
산죽 비트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오후 4시20분.
해발 400m지점에 위치한 월영대에 도착했다.
하산시 안내표지판에는 1시간10분 소요라고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아마도 꾸준히 산행을 하는 사람 기준으로 소요시간을 표기한듯하다.
산행에 서툰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산을 잘 타는 사람만 배려하는 XXX세상!"이라고..

'월영대(月迎臺)'라는 이름은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조금 전 하산한 길인 다래골과 서쪽 대야산에서 내려오는 피아골의 합수지점이다.
이 월영대를 지나면서 합수된 물이 흐르는 계곡 이름은 용추골로 바뀐다.

마치 어제 다녀온바 있는 전북 부안 채석강의 암반처럼 책을 쌓아놓은듯한
층층 모양의 바위를 타고 흘러 내리는 맑은 물줄기를 바라보니
온몸이 시원해지는듯하다.

오후 4시28분.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곳에서
얼굴과 손을 씯고 다시 하산길을 이어간다.
급작스레 찾아온 이른 더위로 기온은 높지만
높은산 깊은 계곡을 흐르는 물은 아직 차다.
철 이른 물놀이에 나섰던 아이 둘이
온몸을 큰 타월로 감싸고도 파람 입술을 연신 오무리며 추위에 떨고 있다.

오후 4시32분.
바닥까지 훤히 비치는 쪽빛 맑은 물이 가득 고인
'소(沼)'를 지난다. '소(沼)'란 물이 깊게 괸 곳을 이름이다.
몸에 지닌 등산지도에는 부근에 '무당소' , '가마소' 등의
소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저 '소(沼)'의 이름은 모르겠다.

이 부근에 문경8경의 하나인 하트모양의 '용추폭포'가 있고
부근의 '윗 용소' 양쪽 화강암반 위에는 용비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아랫용소 인근 타원형으로 살짝 팬 곳은 용이 승천하기 전 사랑을 나눈 다음
암용이 알을 품었던 자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귀가 시간이 임박한 관계로 그에 대한 확인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오후 5시8분.
장장 7시간반에 걸친 산행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밤꽃이 피기 직전의 밤나무를 만난다.
금년에는 늦추위로 인해 밤꽃의 개화시기도 늦어지는듯하다.

밤꽃은 한 그루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데 이 중 수꽃에서 짙은 향내가 난다.
게다가 밤꽃 향이 남자의 정액 냄새와 비슷해 “남성”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예로부터 부녀자들은 밤꽃 필 때 외출을 삼가고 과부는 더욱 근신하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문득 세계적인 거장 ‘고흐’의 작품인
“개화한 밤나무가지(Blossoming Chestnut Branches : 1980)" 가
지난 2008년 2월일 스위스의 ‘에밀 뷔릴르’ 박물관에서 무장강도들에게
탈취 당했다가 9일 후 인근주차장에서 발견되었던 사건이 머리에 떠오른다.

내가 평소 즐겨 듣는 'Don Mclean(돈 맥클린)'의 "Vincent(빈센트)"를
흥얼거리며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