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30일 일요일 오전 10시48분.
이른 아침 대전을 출발하여 4시간 이상 숨가쁜 질주를 이어온 끝에
내가 탄 차는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진도대교를 지난다.
이 진도대교는 지난 1984년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에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사장교이다.
길이는 485m. 강철교탑 형태는 A자, 높이 69m이다.
명량해협은 유속이 11.5노트(24km)의 거센 조류가 흐르기 때문에
물속에 교각을 세우기 힘들어서 양쪽 해안에 높이 69 m강철교탑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의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지금 지나는 다리는 쌍둥이 중 동생인 2005년생 다리이다.
오전 11시58분.
진도군 조도면 면소재지인 하조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해
진도군 서남단 팽목항에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하조도행 페리가 선착장으로 들어 온다.
북쪽으로는 자그마한 팽목항을 품에 안은듯한
동석산의 암릉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낮12시40분.
낮 12시가 조금 넘어 팽목항을 떠난 배가 도착한 하조도 어류포항.
휴일을 맞아 섬 여행을 떠난 관광객들로 혼잡하다.
포구의 이름은 '어류포'이지만 행정구역상 '창유리'인 관계로
여객선 시간표에는 '창유'라고 나온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다.
조도면 소재지인 '창유리'는 창리마을과 유토마을의
두 마을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낮12시58분.
조도저수지 옆 산행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산행길은
한동안 이와같은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해안선 길이 38km에 인구가 2,000명이 안되는 작은 섬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울창한 숲이다.
오후 1시7분.
북쪽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
산행마을 너머로 창유리 벌판을 지나 멀리 상조도가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지난 1997년 준공된
이곳 하조도와 상조도를 잇는 길이 510m의 조도대교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철판으로 박스를 제작 연결하고 그위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는 교량가설공법인
스틸박스(Steel Box) 공법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조그마한 섬의 낮은 산이지만
이처럼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산행길이 이어진다.
오후 1시19분.
이곳 하조도 최고봉인 돈대봉을 400m남겨둔 지점에서
손가락 바위를 만난다.
켜켜이 쌓인 층암으로 이뤄져 있는 저 손가락바위 검지 중간쯤
바위동굴은 동굴 끝이 바다를 향해 터져 있다.
오후 1시25분.
손가락바위를 지나 돈대봉으로 향하는 암릉길을 이어가며 뒤돌아 본다.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손가락바위 너머의 바다와 섬들이 보인다.
이곳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구역임을 실감한다.
나배도,모도,관사도 등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앞쪽으로 멀리 돈대봉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여름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선 5월 마지막 휴일 한낮의 태양이
뜨겁게 피부에 와 닿는다.
오후 1시41분.
손에 잡힐듯하던 돈대봉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또 하나의 암릉을 넘어야 한다.
잠시 숨을 돌리며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걸음을 이어 간다.
오후 1시52분.
마침내 이곳 하조도 최고봉인 해발 330.8m의 돈대봉에 도착했다.
남쪽으로 약7km 떨어진 곳에 관매8경으로 알려진
관매도가 길게 누워 있다.
그 앞의 작은 섬은 이름하여 각흘도이다.
꼭 40년 전인 1970년 여름 대학시절 2주간의
농어촌 봉사활동을 위해 처음 찾았던 관매도.
서울에서 밤 열차를 타고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을
목포항에서 맞은 후 또 다시 목포에서 배를 타고 9시간을 걸려 갔던 곳.
감회가 새롭다.
관매도 선착장 주변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40년 전 당시 쌀밥을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빈곤하던 곳.
고구마를 주식으로 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우리 삼아
돼지를 키우는 때문에 화장실 이용시 돼지에게
벌거벗은 엉덩이를 떼밀려 고꾸라졌던 추억을 간직한 곳.
지금은 남해안 어느 섬이나 다를바 없어 보인다.
다시 눈을 돌려 선착장 동쪽의 해변가를 살펴본다.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저곳.
저 뒤편 초등학교 교실을 여름철 숙소로 사용하며
밤새 모기에 뜯긴 지친 몸을 잠시 짬내어 바닷물에 담그곤 했던 그곳.
40년 전 당시 어려움없이 서울에서만 성장하던 나에게
저 작은 섬마을의 가난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이제는 그들도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리라 믿는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환상적인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35개의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를 합쳐 총 154개의 작은 섬들이
새떼처럼 산재해 있다해서 조도군도(鳥島群島)라고도 부르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풍광이다.
깎아지른듯한, 뾰족한 바위 위에 올라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을 즐기는 저 사람들을 바라보니
불현듯 마음이 조급해 진다.
빨리 저곳으로 달려 가고픈 마음 뿐이다.
오후 2시26분.
돈대봉에서 바라 보았던 멋진 암벽 위에서 북쪽으로 눈을 돌린다.
하얀 이팝꽃 너머로 산행을 시작한 산행마을과 창유리의 논밭이 보이고,
그 너머 멀리 상조도까지 눈에 들어 온다.
상조도 북쪽 너머로 내병도,성남도도 어렴풋이나마 보인다.
남북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한 바위 능선에서
때 늦은 점심 식사 겸 휴식을 취한 후 하산을 한다.
북동쪽 아래로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파출소,초등학교,천주교회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옆의 쪽빛으로 빛나는 조도저수지의 맑은 물은
대부분 간척지인 그 너머 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보리·고구마 등의 수확에 큰 도움을 준다.
상조도 뒤 멀리 진도 본섬의 일부도 보인다.
오후 2시51분.
산행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무숲이 사라지며
마치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가다 긴 터널을 지나듯
뻥 뚫린 공간에 눈 앞으로 다가온다.
마음속이 뻥 뚫리듯 시원해진다.
산행이 끝나면서 맨 처음 만나는 대상이
아담한 초원에서 풀을 뜯는 암소와 송아지다.
요즘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더구나 간혹 농촌에서 접하는 소 잔등에는 쇠파리가
들끓기 마련인데 마치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새색씨마냥
너무나 깨끗한 외양의 소잔등이 정겹다.
오후 3시22분.
뭍으로 돌아갈 배 시간에 맞추느라 산행 후 하산한
어유포항 반대쪽인 남쪽 바닷가 유토리 읍구마을에서부터
이곳 하조도 북동쪽 끝부분에 자리한 하조도등대까지는
버스편을 이용해 도착했다.
공식 명칭이 '목포지방해양항만청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인
하조도 등대 주위도 관광객 및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이곳 하조도등대는 1909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처음 건립했다.
지난 100여년동안 여러 시설들이 보완되었지만
이 등탑은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라 한다.
과거 안개 등으로 인하여 시계가 불량할 때 소리로 신호를
보내던 유물들을 몇몇 방문객들이 관심 어린 눈으로 살핀다.
사람이 손으로 치던 '무종(霧鐘)' , '에어싸이렌 나팔' 등이
전시되어 있다.
등대 뒷편 깎아지른듯한 바위 절벽 위에는
전망을 즐기기 위한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팔각정'이라고 말하던 이들이 위에 올라간 후에는
'육각정'임을 알게되는 육각 모임지붕 구조이다.
이름하여 '운림정(雲林亭)'이다.
오후 3시39분.
운림정 뒤 산길의 가장 높은곳에 오르니
정자는 물론 그 아래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바다 위에 보이는 섬들은 이곳 조도군의
6개 군도 중 하나인 독거군도(獨巨群島)'에 속한 섬들이다.
운림정에서 등대쪽을 내려다 본다.
저 바다는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뱃길이다.
등대 아래 우측의 바닷물 물살이 심상치 않다.
썰물과 밀물이 만나면서 해류가 뒤틀려 성나게 일렁이는 물길로 유명한
‘장죽수도’이다.
최근 세계 최대의 조류발전단지 건설계획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등대 앞을 가로막은 구조물은 지난 2006년 세워진
VTS(Vessel Traffic Service:선박통항관제서비스)의
레이다 기지국이다.
오후 3시46분.
운림정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긴 마누계단을 내려온 것을
끝으로 하조도 등대 관람을 마치고 돌아갈 배를 타기 위해
어류표로 발길을 돌린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인천 앞바다 팔미도 등대를 비롯하여
소매물도 등대섬, 울산 울기 등대,울릉도 등대 등 수십곳의 등대를
다녀온바 있지만 각각의 등대는 제 각각의 멋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다.
오후 4시30분.
4시간 여 전에 떠났던 어류포항에 다시 돌아왔다.
파란 하늘 아래 쪽빛 다도해 바다물이 빛난다.
멀리 하조도 등대가 하얀 점으로 밝게 빛난다.
오후 5시6분.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배가 히조도를 떠난다.
배를 타고 떠날 때는 항상 그렇지만
괜시리 서글픈 생각이 든다.
첫사랑 연인을 홀로 두고 떠나는 것도 아닐진대..
언제 또 다시 찾아올지 기약 없는 하조도를 다시 뒤돌아 본다.
동쪽 절반부는 서쪽에서 비치는 햇빗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일요일 오후 마지막 배가 떠난 때문인지
등대 주변 전망대와 그 뒤 운림정에는
인적이 끊어졌다.
6월 한달간 거두어 전 물량을 수출하므로 이곳 하조도 주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는
돌톳 양식장의 부표만이 잔잔한 바다 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서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하조도와 그 북쪽의 상조도가 길이 510m의 조도대교로 이어져 있다.
늦은 오후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햇살에 바다는 은색으로 반짝인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조도대교 부근 바다도 돌톳양식장으로 이용된다.
돌톳을 마산·진해·창원·거제에서는 ‘톳나물’이라 하며,
고창에서는 ‘따시래기’,'뚥배기’등으로 부른다.
또한 제주지역에서는 ‘톨’이라 하며 보릿고개가 존재했을 당시
톳밥 등을 지어 구황식품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사슴꼬리와 유사하다고 하여 '녹미채(鹿尾菜)'라 부르기도 한다.
오후 6시45분.
진도 팽목항에 도착 후 귀가길에 잠시 머문 진도읍사무소 옆
진도수산시장에서 휴일 하루 하조도 상행을 마무리한다.
서쪽으로 기우는 석양빛을 듬뿍 받으며
행복했던 휴일 하루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내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한 주일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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