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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제18호 소백산 산행기

2010년 5월29일 토요일 오전 9시58분.
국립공원 제18호인 소백산 산행을 위해 도착한 죽령 주차장.
해발 697m인 이곳의 모습은 수십년 째 변함이 없다.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군사적 목적에 의해 처음 열린 길.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하여
죽령(竹嶺)으로 불린다고 전해 지는 곳.

2년 전 영남 3대 관문 중 하나인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으며
귀동냥했던 우스개 소리 한 마디가 생각난다.

서울로 과거 길을 떠나는 선비들은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해서,
그리고, 죽령을 넘어가면 "죽죽" 미끄러질까 해서'
안전한 문경새재를 넘어간다 했다던가?

오전 10시37분.
죽령에서 시작된 산행길은 제2연화봉까지 북향해 뻗은
콘크리트 포장된 임도를 따라 완만한 경사길을 오른다.

오늘 목표 지점인 국망봉까지 거리가 무려 14.4km.
이제 죽령에서 겨우 2.5km 정도 왔건만 온몸에 땀이 흐르고
다리가 뻐근해 진다.
북쪽 하늘을 덮은 새털구름이 그나마 피로를 덜어 준다.

뒤돌아서 지나온 남쪽을 바라 본다.
마치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듯한 맑고 쾌청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다닌다.
해발 950m가 넘은 지점인지라 공기도 상쾌하다.
멀리 구름 아래로 이곳 소백산과 연결된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인
도솔봉(1,314m), 흰봉산(1,261m)등이 솟아 있다.

오전 11시3분.
해발 1,150m지점에서 북동쪽으로
연화봉 바래 아래 자리한 천문대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1시간 이상 걸려 이제 3.3km를 왔으니
저곳까지 3.7km거리는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리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지난 1978년 준공된 천체관측소 및
1999년 준공된 연구동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저 소백산천문대 건립 계획이 수립되었던 지난 1972년
그해 10월8일 당시 천문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신분이던 나는
지난 3월 타계하신 아폴로박사로 널리 알려진 조경철 교수님을 따라
저곳 연화봉에서 "자코비니유성우" 관측을 위해
새벽까지 추위에 떨며 카메라로 유성을 찍기 위해 고생했었다.

오전 11시5분.
해발 1,200m부근에서 한동안 철쭉꽃 군락이 이어진다.
금년 5월 철쭉산행을 다녀왔던 일림산,황매산의 철쭉에 비해
이곳 소백산 철쭉은 그 색깔이 분홍에 가깝다.
멀리서 보면 마치 진달래처럼 여겨진다.

오전 11시27분.
제2연화봉에 도착하여 표지석 앞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린다.
뒷편 언덕에 KT연화봉중계소가 자리한 이곳의 해발고도는 1,357m이다.
KT중계소 옆 공터에서는 지난해 9월 시작된
소백산 강우레이더 돔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3월 공사 완료시까지는 어수선한 주변 풍경을 참을 수밖에 없겠다.

오전 11시34분.
제2연화봉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의 2.7km구간은
그동안 북쪽을 향하던 길이 동쪽을 향하게 된다.
진행 방향 왼쪽인 북서쪽으로는 노동리를 지나 단양읍 방향이다.
공원수, 기념수, 크리스마스트리용 등 으로 매우 인기있는 수종인
구상나무가 멋들어진 자태를 뽐낸다.

학명이 "Korean Fir"인 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구상나무는 한라산 중턱 이상의 고지대와
무등산,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이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오늘 지나야 할 이곳 소백산의
백두대간을 잇는 능선 봉우리들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우측으로 천문대와 그 바로 뒤의 연화봉이 눈에 들어오고,
좌측에는 제1연화봉이 진녹색 빛을 뿜어 낸다.
제1연화봉 뒤에는 이곳 소백산 최고봉인 해발 1,439m의 비로봉이 서 있다.

연화봉 주위를 가까이 살펴 본다.
산행객들로 꽉 들어찬 연화봉 정상부 아래에 자리한 천문대의 모습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초원의 집처럼 정겹게 여겨진다.

다시금 지난 1972년 10월8일 밤이 생각난다.
1933년 유럽에서 분당 1,000개 이상의 유성우가 관측되었다는
그 자코비니유성우의 장관을 보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중학 시절부터 다루어 오던 카메라를 정성을 다해 조작하며
밤 새 추위에 떨었건만..기대했던 유성우는 보지 못했던 허탈감...

북향한 낭떠러지변에 만들어 놓은 잔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는다.

오전 11시55분.
제2연화봉을 떠나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으로 향하는 길.
해발 고도는 다시 1,200m까지 떨어졌다.

뒤돌아보니 KT중계소 옆 공터 강우레이더 돔 공사장의 대형 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인다.
한강 유역의 홍수 예방을 위해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에서
발주한 강우레이더 돔은 지하 1층,지상 8층 규모이며
7층에는 탐방객을 위한 전시실 및 전망대도 만들어 진다.

낮 12시9분.
소백산 천문대 앞을 지난다.
천문대장을 포함 10여명이 근무하는 이곳 소백산 천문대에서는
24인치 반사망원경,150mm 굴절망원경,자동기상관측시스템 등 장비를 갖추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수십건의 학위논문과 수백건에 달하는 국제학술지 발표 논문 등 연구 실적을
쌓아 가는 곳이다.

낮 12시22분.
연화봉 정상에 오르는 중 취재 나온 방송국 헬기를 향해
수많은 산행객들이 손을 흔든다.
잘 하면 매스콤을 탈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이제 산행 시작 시점부터 7.2km를 걸어 왔다.

헬기 문에 몸을 내밀고 카메라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니
잔등에 식은 땀이 솟는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천문대 바로 위편 해발 1,394m연화봉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멀리 남쪽으로 경북 영주시 풍기읍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낮12시27분.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연화봉을 떠나 제1연화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뒤돌아보니 천문대의 모습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움을 준다.
제1연화봉을 향하는 길은 다시 북향하는 길이다.

낮12시53분.
죽령을 출발하여 연화봉까지 2시간 반 가량의 산행길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었던데 비해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이와같은 무성한 숲길이다.

아직 철쭉조차 만개하지 못하고 봉오리가 맺힌 상태일 정도로
봄이 늦게 찾아 오는 소백산이지만 는쟁이냉이,큰앵초,모데미풀 등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기 시작한다.

이 보라색의 예쁜 야생화는 "벌깨덩굴"이다.
꽃잎 안쪽의 아래부분에 앙증맞은 보라색점과 길게 나있는 털이
마치 토끼의 주둥이를 연상시키는 작고 예쁜 꽃이다.

각종 야생화와 산죽 군락이 이어지는 숲길.
지난 가을 내려 앉은 낙엽이 겨울내내 분속에 파묻힌채
원형을 유지하고 소백산의 늦은 봄을 맞는다.

오후 1시7분.
연화봉을 출발한지 40여분이 지났건만 이제 겨우 1.6km를 왔다.
울창한 나무 숲과 산길을 이어가다보니 걸음이 늦어진다.
철쭉군락을 지나면서도 활짝 핀 철쭉꽃을 보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철쭉이 아직은 봉오리만 맺힌 상태이다.

오후 1시9분.
연화봉을 떠나 다시 해발고도 1,200m 대로 내려왔던 산행길이
제1연화봉에 가까워지면서 오르막 경사길로 이어진다.
급경사길인지라 목재 데크로 된 계단을 올라야한다.

오후 1시14분.
목재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 남동쪽으로 눈을 돌린다.
멀리 아래로 이곳 소백산을 오르는 여러 산행로 중 하나인
삼가리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삼가리 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욱금리의 높은 산에 둘러 싸인 금계호 저수지의 물빛이 무척 푸르다.
저수지를 가득 채운 맑은 물을 보아하니 금년 농사에 지장은 없을듯 하다.

오후 1시24분.
해발 1,394m 인 제1연화봉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멀리 비로봉이 우뚝 솟아 있다.
이제 비로봉까지는 2.5km, 국망봉까지는 5.6km가 남았다.
비로봉 앞에 버티고 선 이곳 제1연화봉과 높이가 같은
1,394봉을 하나 더 넘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다리가
더 피곤한듯도 하다.

2.5km떨어진 비로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수많은 산행객들의 모습이 마치 먹이를 찾아 몰려든 개미떼와 흡사하다.

오후 1시33분.
제1연화봉을 내려와 다시 1,394봉으로 오르는 계단을 힘겹게 올라 간다.
남쪽 사면으로는 제법 키가 큰 주목이 몇그루 멋진 자태를 뽐낸다.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부는 구간이다.

오후 1시41분.
목재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잠시 이와같은 암릉 능선 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에 군락을 이룬 철쭉이 아직 봉오리만 맺힌 것이 조금 아쉽다.

오후 2시18분.
암릉 능선길은 해발 1,385m인 천동리갈림길에서 끝나고,
비로봉 정상을 500m 남겨 둔 지점에서 다시 목재 계단길이 이어진다.
오르막 경사의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들이 무척 더디다.
나 또한 4시간을 넘는 산행길로 다리에 피로를 심하게 느낀다.

비로봉을 오르면서 좌측인 북서쪽 사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주목 군락지이다.
이곳 주목의 평균 수령은 350년 정도이며
개체 수는 천연기념물 제244호 1,999그루를 포함하여
모두 3,800여 그루에 달한다 한다.

오후 2시26분.
드디어 소백산 최고봉인 해발 1,439m 비로봉에 도착했다.
충청북도에서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정상석 앞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비로봉 정상임을 알려 주는 이정표 앞도 예외는 없다.
"비로봉[毘盧峰]" 이라는 이름은 '비로자나불'의 비로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로자나불이란 석가의 진신을 높여 부르는 말로 즉 부처를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제일 높은 불상이며, 고로 제일 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금강산, 팔공산, 치악산, 오대산 등에도 비로봉이 있다.

경북 영주시에서 만들어 놓은 키 큰
정상석 앞도 예외 없이 입추의 여지가 없다.
흔히들 소백산(小白山)을 작은 산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름에 붙은 소(小)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밝음(白)'을 숭상했기에
신령스러운 명산에 백(白)자를 넣었다.
백두대간은 시발 점인 백두산을 필두로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으로 이어 진다.
여기서 백(白)은 희고 밝음의 뜻만이 아니라 거룩하다,높다 등의 의미이다.

비로봉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눈을 돌린다.
4시간 반에 걸쳐 지나온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 온다.
좌측에 천문대가 자리 한 연화봉,
멀리 가운데 제2연화봉이, 그리고 우측에 제1연화봉이 보인다.

오후 2시28분.
비로봉 정상을 떠나 국망봉을 향해 산행 길을 이어 간다.
앞으로 1년 후,2년 후.. 저 돌탑이 얼마나 더 커질지 지켜 볼 일이다.

오후 2시32분.
국망봉을 2km남겨둔 지점.
어의곡과 국망봉으로 가는 갈림 길 부근에서 잠시 멈춰 시계를 본다.
비로봉 정상을 향해 개미떼처럼 줄지어 오르는 인간 군상들을 뒤돌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국망봉까지 들러 하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침에 출발시 차량에 동승했던 일행들과 약속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국망봉으로 예정했던 산행 계획을 바꾸어 어의곡을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이곳 위치가 해발 1,390m이니 어의곡 주차장까지는
해발고도로 1,000m이상을 내려가야 한다.

오후 2시40분.
어의곡 주차장으로 향하는 하산 길은 초입부터
비교적 경사가 급한 내리막 길이다.
지난 겨울 게방산 산행시 많이 보이던 껍질에 희 반점이 있는
물푸레나무가 이곳에서도 곧잘 눈에 띈다.

오후 2시51분.
해발 1,200m이하로 내려오면서는 한동안
산죽 군락이 이어진다.
옷 깃을 스치는 대나무 잎이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오후 2시58분.
해발 1,100m 이하로 내려오면서 한동안
이처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울창한 나무들이
좌측 계곡가를 따라 줄지어 서있고,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 오기 시작한다.
해발 1,100m고지대에서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듣는다는 것
소백산과 같은 높은 산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오후 3시4분.
해발 1,100m 부근에서 해발 900m지점까지는
급경사길이다.
아마도 안전을 위해 이와같은 안전 시설을 해 둔듯하다.
그러나 5시간 이상 거의 쉬지 않고 이어 온 산행으로
피로해진 다리에 이와같은 계단 길은 더욱 괴롭다.

오후 3시33분.
해발 700m이하로 내려온 지점.
출발 시 가져 온 생수가 바닥이 났다.
심한 갈증을 풀기 위해 흐르는 계곡 물을 받아 마신다.
온 몸을 시원하게 해 주는 물맛이 너무 좋다.

햇빛을 거의 받지 않아 녹색 이끼로 덮인 계곡을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며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호흡을 멈춘 채 1/8초의 장노출로 물줄기를 담아본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여겨지는 물줄기를 보며
지난 해 여름 삼척 무건리 이끼폭포에서 느꼈던 감동을
떠 올리며 다시 기운을 회복한다.

오후 3시55분.
이제 해발고도 500m이하로 내려 왔다.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어의곡 주차장까지는 이제 1km가 조금 더 남았다.
곅독을 흐르는 물줄기는 더욱 굵고 세차다.
다시 한 번 깨끗한 계곡 물로 목을 축인다.

오후 4시3분.
어의곡 탐방지원센터 앞이다.
이제 주차장까지는 약 300m 남짓 남았다.
오전에 산행을 시작한 죽령에서 이곳까지 16.6km의
산행을 한 것이다.
비로봉 부근에서 탈진하여 헬기로 긴급 후송된 산행객이
있었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펑소 운동을 잘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6시간이 넘는
이 산행길은 절대 무리일 것이다.

오후 5시14분.
주차장 옆 개울가에서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행 중 많은 땀을 흘릴 정도로 더위를 느낀
5월 하순 날씨이지만 저 물에 손을 담그는 순간 뼛속까지
서늘해질 정도로 물이 차다.
이곳 소백산이 깊고 높은 산임을 실감한다.

오후 5시17분.
바위를 미끄러지며 흘러 내리는 윤기 나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6시간이 넘는 긴 산행의 피로를 풀어 본다.
내일 새벽 집을 나서 전라남도 진도의 하조도로 섬산행을 떠나야하는지라
오늘의 산행으로 인한 피로함이 조금 걱정은 되지만
셧터 속도 1초라는 장노출로 담은 저 맑은 물줄기를 바라 보니 피로함이 씻은듯 가신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於依谷里)를 떠나며 주말 하루 일정을 마친다.
큰 골짜기이므로 엉어실 또는 어의곡(於依谷)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어의곡리의 중심 마을 이름은
'한드미' 또는 '한디미'라고 부른다.
한가하고 조용한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