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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황포돛대와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아 경기도 양평으로


2010년 7월10일 토요일 오전 10시31분.
당초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높은 산을 골라 산행을 할 예정이었으나
일기가 고르지 않은 장마 기간임을 감안하여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물 맑고 기름진 경기도 양평으로 떠난 주말 오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兩水里)의
두물머리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강변에 서서
시원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두물머리 나루터로 향하는 산책길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구름이 엷게 끼었음에도 오전부터 무척 더운 날씨지만
강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촉감은 상쾌한 편이다.

오전 10시41분.
오른쪽으로는 자그마한 식물원들과 마침 제 철을 맞아
피어나기 시작하는 연꽃으로 뒤덮인 연못을 끼고 걷는 산책길.
멀리 눈 앞에 두물머리 나루터 입구의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 온다.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우산형의 수관(樹冠)을 형성하고 있는 두물머리마을의 정자목인
저 느티나무의 수령은 대략 4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원래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로 부르는 두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으나
1972년 팔당댐 완공 이후 도당할머니 나무는 수몰되었다고 한다.

오전 10시47분.
두물머리 나루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강심을 바라보며 땀을 식힌다.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과거에는 한자어인 양수리(兩水里)로 불러 왔으나 요즈음은 순 우리말인 두물머리로 주로 불린다.

예전에는 이곳의 나루터가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하였다.
그러다가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쇠퇴하기 시작하여,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되자
어로행위 및 선박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정지되었다.

영화나 사진 등을 통해 두물머리를 처음 접한 이들은
사진에서 보았던 황포돛대를 찾으려 애쓰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철거된 황포돛대를 볼 수 없다.

위 사진은 내가 지난 2008년 5월17일 오후 4시53분
이곳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다.

오전 10시57분.
두물머리 나루터 주위의 연못에 피기 시작하는 연꽃을 뒤로하고
나루터를 떠나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드넓은 연못을 가득 채운 넓은 연잎과 그 틈새로 비집고 올라
피어나는 흰 연꽃의 어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전 11시13분.
거울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과 녹음 우거진 풀과 나무들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강변 풍경.
그리고, 그 강가에 홀로 묶여 있는 작은 쪽배를 뒤로 하고
두물머리를 떠나 다음 행선지인 '세미원식물원'으로 향한다.

오전 11시48분.
두물머리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물과 꽃의 정원이라 일컫는
"세미원(洗美苑)" 내부는 가족 나들이에는 최적인듯하다.
비록 인공적이긴 하지만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 발을 담그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절로 마음이 흐뭇해 진다.

수십여종의 수생식물이 주류를 이루는 세미원에서 만나는
원추리꽃의 화려한 색깔이 돋보인다.
"세미원(洗美苑)"이라는 이름은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觀水洗心 觀花美心) 옛말에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세미원은 자연정화공원으로서, 경기도로부터 약 100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조성하였다.
면적 18만㎡ 규모에 연못 6개를 설치하여 연꽃과 수련·창포를 심어놓고
6개의 연못을 거쳐간 한강물은 중금속과 부유물질이 거의 제거된 뒤
팔당댐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구성하였다.

작은 연못에 핀 수련의 모습이 청초해 보인다.
일반적인 연꽃과 같은 수련과이지만 수련은
연꽃과 달리 이처럼 수면 바로 위에서 꽃을 피운다.
또한 잎 표면에 잔털이 많아 물이 묻지 않고 물방으로 맺히는 연꽃과 달리
잎 표면에 광택이 나는 수련 잎은 물에 젖는다.

수련은 특히 밤이 되면 꽃잎이 오므라들어
마치 수면을 취하는 것 같아 수련(睡蓮)이라고 한다.
특별히 오시(낮 11-12시)에 피면 자오련,
미시(낮1-3시)에 피면 미초라는 이름도 있다.

수십개의 항아리를 이용하여 만든 분수 주위에서는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이마의 땀을 식히는 관람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부분 키 작은 나무와 수생식물들인 세미원에서
특이한 모습을 한 고사목 줄기를 따라 빨간색 능소화가
한 두송이씩 피어나기 시작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 꽃은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 왔다.

그러나, 이 능소화 꽃의 경우 꽃가루의 미세 구조가
갈퀴와 낚시 바늘을 합쳐 놓은 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일단 피부에 닿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염증을 일으키기 쉬운데,
특히 눈은 점액이 있고 습기가 있어서 일단 부착이 되게 되면
비비는 행동에 의해 자꾸 점막 안으로 침투하여 심한 염증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백내장 등 합병증에 이르기도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곳 세미원의 백미는 드넓은 연못을 가득 메운 연꽃의 향연이다.
세미원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꽃을 관람하는데 할애했다.

연꽃은 10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열가지 특징을 닮게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제1 특징.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이처럼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이제염오(離諸染汚)의 특성이다.

제2특징.
연 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 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뿐이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악과 거리가 먼 사람,
악이 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불여악구(不與惡俱)의 특성이다.

제3특징.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 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을 품어서 사회를 정화한다.
한 자락 촛불이 방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 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연꽃의 계향충만(戒香充滿)의 특성이다.

제4특징.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본체청정(本體淸淨)의 특성이다.

제5특징.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얼굴이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머금었으며 말은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은
옆에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이 화평해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면상희이(面相喜怡)의 특성이다.

연꽃은 세계적으로는 2아과(亞科) 8속에 약 100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5속 7종이 있다고 한다.

제6특징.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생활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유연불삽(柔軟不澁)의 특성이다.

정철의 '성산별곡'에도 연꽃에 대한 이런 귀절이 나온다.
"하룻밤 내린 비의 기운에 홍 백련이 섞여 피니,
바람기 없어도 만산에 향기로다."

제7특징.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
하물며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은 일이 아니 생기겠는가?
많은 사람에게 길한 일을 주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견자개길(見者皆吉)의 특성이다.

제8특징.
연꽃은 꽃이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
연꽃 열매처럼 좋은 씨앗을 맺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개부구족(開敷具足)의 특성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자 주돈이 [周敦頤, 1017~1073]는
그의 고아한 인품이 표현된 것으로 유명한 수필
《애련설(愛蓮說)》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予獨愛蓮之出於, 여독애연지출어 泥而不染, 이이불염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탁청련이불요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中通外直, 중통외직 不蔓不枝, 불만부지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淸, 향원익청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亭亭淨植, 정정정식 可遠觀, 가원관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而不可褻玩焉, 이불가설완언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제9특징.
연꽃은 만개했을 때의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활짝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 핀 듯한 성숙감을 느낄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
이런 분들과 대하면 은연중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성숙청정(成熟淸淨)의 특성이다.

제10특징.
사람 중에는 어느 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있는 사람이 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있어도 그의 인격은 남루한 옷을 통해 보여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의 생이유상(生已有想)의 특성이다 .

낮12시16분.
연꽃의 10가지 특징을 마음 속에 되새기며
세미원에서 주말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믐 흡족함을 가득 안고 세미원을 떠난다.

오후 1시43분.
서울 근교인 경기도 양평 일대는 주말 오후를 맞아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듯하다.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20여분이면 도착할 양평 읍내 장터에 1시간 반가까이 걸려 도착했다.
싱싱한 산나물 등이 펼쳐진 장터를 구경하고
얼큰한 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떼웠다.

오후 3시37분.
양평 읍내의 재래시장 구경을 끝낸 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龍門面) 신점리(新店里)에 위치한
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인 용문사(龍門寺) 입구에 도착했다.
휴일 오후를 맞아 비교적 많은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용문사 입구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몇백미터의 도로는 우람한 은행나무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아스팔트 도로위이지만 마치 울창한 밀림을 걷는듯한 느낌이다.

오후 3시41분.
매표소를 지나면 용문사 박물관 뒤로 높이 1,157m인 용문산이
멋진 자태를 드러낸다.
산체(山體)가 웅대하여 동서 8km, 남북 5km에 걸치고
남쪽 산록 계곡에는 지금 방문하는 용문사(龍門寺)를 비롯하여
상원사(上院寺)·윤필사(潤筆寺)·사나사(舍那寺) 등 고찰이 즐비하다.

오후 3시46분.
용문사 일주문을 지난다.
조금 전보다 관람객들이 부쩍 늘어난듯하다.

일주문 [一柱門]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門)이다.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사찰의 입구에 일주문을 세운 것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이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용문사의 주불전인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1km남짓한 길은 울창한 나무숲으로 하늘을 뒤덮은 길이다.
마치 일몰 시간이 지난듯한 옅은 어둠속을 따라 오르는 길.
길 옆 도랑을 흐르는 맑은 물이 경쾌한 물소리로 끊임없이 귓전을 때린다.

길 옆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의 소리는 우렁차다.
이끼 낀 바위틈을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청량감을 더해준다.
간혹 너른 바위 위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피서객들이
여름날 오후의 더위를 씻는다.

오후 4시4분.
전면,측면 각 3칸으로된
팔작지붕형태의 용문사 주불전인 대웅전에는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奉先寺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소재)에 속해 있다.

649년(진덕여왕 3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하였고,
892년(진성여왕 6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하는 등 중 ·개수를 거듭하였다.
1447년(세종 29년)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었다고 한다.

대웅전 앞마당 석축 아래 좌측에 자리한 유명한 은행나무의 모습이다.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든 사진으로 점해 본 1,100년 이상되었다는
은행나무. 아무래도 가을에 다시 찾아와 멋지게 찍어야할듯 하다.

지난 1962년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추정수령 1,100년 정도이며 나무높이는 6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14m에 달한다고 한다.
이 나무는 암나무이다.

오후 4시10분.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하는
한국의 나무 중 가장 키가 크고 우람하다는 은행나무를 뒤로하고
용문사를 떠나며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