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24일 토요일 오전 9시50분.
최근 들어 관매8경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행 소형 페리호가 떠나기 직전
진도군 팽목항 배 위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짙은 안개에 휩싸인채 갈매기의 한가로운 비행만이 눈길을 끈다.
오전 10시10분.
출항한지 10여분이 지나 팽목항 초입의 작은 등대를 지나자
진도군 남서쪽 자그마한 어항인 팽목항도 안개와 구름 속으로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오전 10시34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을 헤치며
조심스레 내달려온 관매도행 페리호가 첫 번째 기착지인
조도면 소재지 하조도 선착장으로 방향을 돌릴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멀리 하조도와 상조도를 잇는 조도대교의 모습이
안개속으로 어렴풋이 보인다.
지난 5월30일 하조도 산행을 위해 방문했을 때는
팽목항을 떠나 40분이 채 못되어 이곳 하조도 선착장인
어류포항에서 배를 내렸건만 안개가 심한 오늘은
같은 배이지만 속도를 줄여 조심스레 운항한다.
오전 10시49분.
하조도에서 비교적 많은 승객과 차량을 내려준 배는
조도대교 밑을 통과하면서 남쪽으로 뱃길을 이어간다.
지난 1997년 준공된 하조도와 상조도를 잇는 길이 510m의
이 조도대교는 철판으로 박스를 제작 연결하고
그위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는 교량가설공법인
스틸박스(Steel Box) 공법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조도대교 아래를 지난 배는 관매도에 도착하기까지
나배도,관사도,모도,대마도 등 여러 작은 섬들에 기착하여
승객과 차량들을 내려주며 뱃길을 헤쳐간다.
날씨가 맑고 쾌청했더라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구역인
이 부근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진 장관을 볼 수 있었으련만
이처럼 안개 속을 뚫고 지나간 두시간 여가 조금은 아쉽다.
낮12시1분.
짙은 안개 때문에 평소의 뱃길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2시간10분이 지나자 짙은 안개가 걷힌 가운데
눈 앞에 관매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좌에서 우측까지 실제 길이가 대략 3km 남짓한 작은 섬 관매도이다.
관매마을과 관호마을로 구분되며
총 126가구 212명이 주로 농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좌측으로 길이 2km 정도의 긴 백사장을 가진
관매8경 중의 하나인 관매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40년 전인 1970년 여름. 서울에서 밤 10시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대전발 0시50분' 이라는 노래를 떠올리며 대전역을 0시50분에 지나고
여름 철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목포역에 내려 100톤 남짓한
작은 배를 타고 또 9시간을 멀미에 시달리며 도착했던 관매도.
감회가 새롭다.
오른쪽으로는 멋진 암벽으로 이루어진 뒷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자그마한 마을인 관호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암벽의 이름은 부채바위이다.
1970년 겨울 5차에 걸친 관매도 봉사활동의 마지막 봉사활동기간.
관호마을의 숙소 화장실은 돼지를 화장실에 같이 키우던 곳.
용변시마다 돼지를 피해가며 일을 보다
동료 중 누군가는 돼지에 떠받혀 용변보던 자세로 고꾸라지기도 했었다.
나 혼자 실없이 웃어본다.
오전 12시6분.
선착장에 내려 섰다.
좌측인 동쪽 방향은 관매해수욕장과 관매마을 쪽이도,
우측인 서쪽은 관호마을 쪽이다.
오후 3시40분인 돌아갈 뱃시간을 계산해보니
시간 여유가 꽤 있기에 먼저 우측 관호마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관호마을로 향하는 해안가 좌측은 암벽으로 되어 있다.
지난 2002년 7월 준공된 활성슬러지 공법의 하수처리장 펌프실 부근
암벽에는 노란 원추리 꽃이 군락을 이루며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큼직한 자귀나무에도 꽃이 만개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원산인 이 자귀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특이한 모습이다.
더구나 자귀나무는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로 합환수(合歡樹)·
합혼수·야합수·유정수라고도 한다.
이런 연유로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를 마당에 정원수로 많이 심었다.
40년 전인 1970년 여름에는 깎아지른 절벽으로만 된 해변가인지라
관매마을에서 이곳 관호마을로 가려면 공동묘지가 있던 절벽 위로 지나는
산길을 따라가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넓은 해안도로가 포장되어 자동차가 지나 다닌다.
넓은 도로 한 편으로는 조도면 특산물인 '톳'을 말리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김에 비해 톳은 무기질과 철분이 비교적 많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해산물이다.
톳 말리는 작업을 하는 마을 아주머니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40년 전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서로 너무나 반갑고 행복한 미소를 나누었다.
40년 전 대학 1학년 시절 연세대학교 적십자 봉사단의 일원으로
2주일간 머물렀던 나의 얼굴은 기억 못하지만..
그리고, 당시 4H반에서 2주간 서울에서 찾아온 대학생
언니,오빠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어느 아주머니는
자신을 당시 또래 중 제일 꼬맹이였었다며 활짝 웃는다.
당시 쌀밥 구경을 못하고 주식이 고구마일 정도로 빈곤했던
서해 낙도에서 행복하고 밝은 웃음을 맞으니 내 마음이 너무 행복해 진다.
낮12시22분.
남쪽 바닷가의 관매8경 중 3경인 '꽁돌과 돌묘'를 향해
마을 길을 지나간다.
바람 많은 섬마을의 공통점인 돌담 옆을 지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40년 전 이곳 섬마을의 모습에
당시 부모 밑에서 편안하게 대학생활을 즐기던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험한 일 하지 않던 손 바닥이 터지도록 돌을 나르고
삽질을 했었다.
아마 이 돌담을 이룬 돌 몇개 정도는 당시의 내 손길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관호마을 뒤쪽의 야트막한 재를 넘으며 뒤돌아보는 관호마을.
형형색색의 봉숭아와 달맞이꽃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풍족해 보인다.
내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 진다.
낮 12시28분.
관호마을 뒷편의 야트막한 재를 넘어서자 해안가에
관매8경 중 제 3경인 '돌묘와 꽁돌"이 눈 앞에 펼쳐 진다.
전설에 의하면 직경 5m 정도인 이 돌은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돌이라 한다.
이 꽁돌을 가지러 온 하늘장사가 실수로 돌을 떨어뜨리고,
그 하늘장사를 데리러 온 2명의 사자도 실수를 하자
꽁돌 옆에 돌무덤을 만들어 묻히게 했다 한다.
꽁돌 바로 앞에 직경 1m정도의 돌무덤이 보인다.
꽁돌 바로 앞의 돌무덤 모습이다.
마치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놓은 듯 길이 1m정도의
왕의 묘와 같이 생긴 돌묘의 모습이다.
상단에는 금관모양으로 돌묘를 덮어 씌우고
묘 주위에는 개울처럼 고랑이 패어 있다.
하늘장사가 손에 움켜 쥐었을 때 자국이라는 거대한 손자국도 보이는 돌이다.
옆의 사람과 크기가 비교된다.
그러나, 이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균질성 응회암이 암석의 절리(갈라진 금)를 따라 풍화해서
풍화토에 묻혀 있던 핵석이 굴러 떨어져서
파식대(파도에 깎인 평탄면) 위에 서 있는 바위다.
이 바위의 측면은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타포니(크고 작은 구멍)가 잘 발달해 있다.
낮 12시39분.
관매8경 중 제5경인 '하늘다리'로 향하는 절벽 능선길을 올라 선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제3경인 꽁돌에서
5경인 하늘다리로 이어지는 육로가 없었다한다.
지난 겨울 하늘다리로 향하는 등상로를 만든 탓에
그동안 배를 타고 나가 해상에서만 볼 수 있던 하늘다리를 보러 발품을 파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돈대산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해안가 암벽을 떠받친
바닷물 색이 쪽빛이다.
조금 전까지 쾌청하던 하늘에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하늘다리로 향하는 숲길에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8~9월에 덕유산과 오대산 이북에 주로 핌다고 알려진
새며느리밥풀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밥을 훔쳐먹는다며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다 맞아 죽은 며느리가
묻힌 무덤에서 처음 피어 났다는 이 꽃은
빨간 입술 속에 하얀 밥풀을 두개 물고 있다.
제4경인 할미중드랭이굴 부근 해안가를 먼발치에서라도 살펴 보려했으나,
때마침 몰려 드는 짙은 구름탓에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지난다.
낮12시48분.
하늘다리로 향하는 산행길은 좌측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이다.
새로 만들어진 로프를 의지하며 지난다.
쓰러진 나뭇가지 아래로 허리를 절반쯤 꺾고 지나가는 길도 여러 곳이다.
쓰러진 나뭇가지에서 이름 모른 난이 싱싱하게 자란다.
낮 12시53분.
관광객들을 위해 최근 만들어 놓은 다리가 있는
관매8경 중 제5경인 하늘다리 앞에 도착했지만
짙은 안개가 온몸을 휘감아 돈다.
아마 멀리서 보면 구름으로 보일게다.
안개의 작은 수증기 입자가 마치 손에 잡힐듯 여겨질 정도이다.
양쪽 절벽을 따라 노란 원추리꽃이 만발한
이 하늘다리는 바위산을 칼로 중앙부를 자른 듯이 똑바르게 갈라져
그 폭이 3~4m로 밑으로 돌을 던지면 한참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아찔한 곳이다.
그 옛날 이곳 관매도 북쪽 끝 방아섬에서 방아 찧던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던 곳이라는 전설을 안고 있다.
하늘 다리를 떠나 되돌아 오며 길 옆에서 닭의장풀을 만난다.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유역·사할린·북아메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1년생 풀인 이 야생화는
봄에 어린 잎을 식용함은 물론 한방에서는 잎을 압척초(鴨衫草)라는 약재로 쓴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고 이뇨 작용을 하며 당뇨병에도 쓴다.
생잎의 즙을 화상에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닭장 옆에서까지 볼 수 있다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한다.
오후 1시35분.
하늘다리를 떠나 꽁돌 부근 바닷가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등
휴식을 취한 후 관호마을로 향하는 재를 넘으며 바라보는 남쪽 바닷물이 너무 맑아
물 속의 작은 돌이 비칠 정도이다.
오후 1시51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 이제는 동쪽인 관매마을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관매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오래 전부터 새가 입에 먹이를 물고 잠깐 쉬어간다는 뜻으로 볼매라고 불리다가
1914년 일제 강점기 때 지명을 한자식으로 고칠 때
볼을 관(觀)자로 표기하여 관매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1700년경 조씨 성을 가진 선비가 제주도로 귀양가던 중
약 2㎞에 달하는 해변에 매화가 무성하게 핀 것을 보고 관매도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선착장에 몇걸음 발길을 옮기자
눈 앞으로 길이 2km에 달하는 기다란 백사장을 가진
관매8경 중 제1경인 관매도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 온다.
관매마을은 저 해수욕장을 둘러 싼 곰솔숲 뒤로 자리 잡고 있다.
오후 1시56분.
썰물 때인지라 물이 한창 빠지기 시작하는 백사장으로 내려서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백사장을 걷는다.
하늘다리까지 다녀 오느라 흘린 땀이 일시에 씻어 내릴 정도로
시원함을 느낀다.
안개 속을 헤치며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간간이
바람결에 스피커로 안내 방송 소리를 퍼뜨리며 지나 간다.
아직 장마철인데다 철 이른 피서철이어서인지 배에 탄 사람이 몇 안되어 보인다.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도 그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인파로 붐비는 모습보다 여유로워서 좋다.
"솔바람 산책로"라 이름 붙여 놓은 솔숲으로 들어서 솔향기를 맡아 본다.
길이 2km의 백사장을 끼고 펼쳐진 솔숲은 무척 시원하고 향기로운 곳이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대부분 수령이 400년 이상된 멋진 자태를 뽐낸다.
오후 2시9분.
관매마을 중심부의 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후박나무 앞을 지난다.
지난 1968년 천연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 이 후박나무의
높이는 18m 정도이다.
오후 2시14분.
관매초등학교 구내를 찬찬히 훑어 본다.
지난 1943년에 개교했으니 이제 7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학교이다.
1970년 당시에는 초등학교만 있었으나
1983년에 조도중학교 관매분교장이 설치되었고, 다음 해에는 병설유치원도 설치되었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 농어촌 고령화 등으로 인해
병설유치원은 지난 2004년 폐원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교실마다 에어콘이 시원하게 해 주지만
40년 전 우리는 교실의 책걸상을 치우고 2주일간 숙소로 쓰며
봉사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의대생들은 찜통같은 교실에 진료실을 차리고
의료봉사를 했었다.
40년 전 당시의 값진 경험이 나의 인생에서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후 2시25분.
관매마을을 벗어나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당초 예정은 북동쪽 장산편 마을 너머에 있는
관매8경 중 제 2경인 방아섬의 남근바위를 둘러볼까 했으나
진도로 돌아갈 뱃시간이 빠듯하여 방아섬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관매도의 냄새를 더 많이 느끼고자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동쪽 해안을 향해 인적없는 들길을 따라 산책길에 나선 것이다.
*참고로 제2경인 남근석을 보는 시각에 대해 한 마디.
1816년에 이곳을 항해한 영국의 모험가이자 해군장교인 ‘바실 홀’은
“10일간의 조선항해기”라는 책을 통해
이 방아섬의 남근 모양 바위를 4각 탑의 교회와 닮았다고 해서
`헌틀리 로지(Huntley Lodge)`라고 이름 붙였다.
동서양의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니
문명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게다.
오후 2시31분.
이곳 관매도의 동쪽 끝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 잔잔하다.
특히나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인지 마치 무인도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이곳 동쪽 끝 해안의 이름은 지도상에는 장산둠벙으로 표기되어 있다.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은 "목섬(項島)"이다.
이 "목섬(項島)"이라는 이름은 다른 섬에도 있는 이름이다.
뭍과 잘록하게 이어진 모래섬을 흔히 '목섬(項島)'이라 칭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45분.
동쪽 해안 끝부분인 장산둠벙을 떠나 다시 관매마을의
후박나무 앞을 지나 관매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천영기념물인 후박나무보다도 그 주변의
수백년 이상 되었음직한 소나무들이 훨씬 품위있고
멋들어져 보임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오후 3시1분.
관매해수욕장에서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걷는 중 불현듯 뒤돌아 본 남쪽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갑자기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픈 충동을 느낀다.
오후 3시2분.
바닷물이 뛰어들고픈 충동에 못 이겨
백사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작스레 짙은 안개가
해스면을 따라 밀려 들며 파랗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인다.
불과 1분 사이에 급변하는 날씨가 경이롭다.
오후 3시5분.
해수욕장 중앙부에 자리한 감시소에서는 쉴새없이 방송을 한다.
짙은 안개로 인해 위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해수욕객들은 물에서 나오라라는 방송이다.
안개는 점점 짙어진다.
오후 3시15분.
짙은 안개와 먹구름에 이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선착장 대합실에 도착한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세찬 빗줄기가 오랫동안 이어진다.
관매도 관광을 마칠 무렵 폭우가 시작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후 4시29분.
짙은 안개와 세찬 비로 인해 진도로 돌아가는 배도 늦게 도착해
4시20분에 관매도를 떠난 배가 아직도 내리는 빗속을 뚫고 10여분을
헤쳐나가자 관매도 전체 모습이 카메라 뷰 파인더에 잡힌다.
옛시조에서는 '산천은 의구하다'했지만..
40년만에 다시 찾은 관매도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오후 4시37분.
관매도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망원렌즈를 300mm까지 당겨서 바라보니
관매도 최고봉인 해발 219m 돈대봉 주위와
관호마을 뒷편 멋진 형상의 암반인 부채바위 주변에 흰 구름이 떠 다닌다.
이제 관매도는 밝은 햇살이 비칠듯하다.
밝은 햇살을 닮은 밝은 행복이 그곳 120여 가구
200여 주민 모두에게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오후 4시51분.
오전에 팽목항에서 관매도로 향할 때는
하조도,나배도,관사도,모도,대마도 등 5개의 섬에 기착하며
2시간10분만에 도착했던 관매도이지만
돌아가는 배는 중간 기착지 없이 팽목항까지 직행한다.
관매도를 떠난지 30분만에 조도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안개 자욱하던 오전과 달리 아름다운 조도대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오후 5시9분.
하조도 북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하조도 등대를 멀리 바라 보며 지난다.
오전에 관매도로 향할 때는 짙은 안개로 모습을 감추었던 아름다운 등대이다.
지난 5월30일 하조도 돈대봉 산행시 저 등대옆에 섰던 기억이 새롭다.
1909년에 세워진 저 등대 바로 앞 바다는
썰물과 밀물이 만나면서 해류가 뒤틀려 성나게 일렁이는 물길로 유명한
‘장죽수도’이다.
최근 세계 최대의 조류발전단지 건설계획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오후 6시28분.
귀가길 저녁식사를 위해 진도대교 아래 진도각 주차장에서 잠시 머문다.
오전 관매도로 향할 때 2시간10분이 걸렸던 뱃길이 오후에
진도 팽목항으로 돌아올 때는 1시간20분이 걸린 덕택에 시간을 많이 벌었다.
길이는 485m. 강철교탑 형높이 69m인 진도대교는 쌍둥이 다리이다.
앞의 다리가 지난 1984년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에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사장교이다.
그리고 뒤의 다리는 쌍둥이 중 동생인 2005년생 다리이다.
이곳 명량해협(울돌목)은 유속이 11.5노트(24km)의 거센 조류가 흐르기 때문에
물속에 교각을 세우기 힘들어서 양쪽 해안에 높이 69 m강철교탑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의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울돌목은 갑자기 좁아지는 지형 때문에 급류가 발생하여 유속이 초당 5~6m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고 동양 에서는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의 빠른 유속이라 한다.
울돌목이라는 이름은 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사람이 우는 소리와 비슷해서.
바다가 운다하여 한자어로 명량(鳴梁)이라고 한 것이다.
옛 문헌에 의하면 한밤중이면 바다가 우는 소리가 20리밖까지 들렸다 한다.
진도대교 아래의 유속의 빠름을 사진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진도대교를 관망하기 좋은 녹진전망대 아래 해변에는 이순신장군 동상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정유재란 때 불과 13척의 전함을 이끌고 4백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세계 해군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의 그날.
영국,스페인 등 해양강국의 해군장교들이 필수적으로 배우는 그 명량대첩이 있었던 그날인
1597년(선조 30년) 9월의 일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40년만에 다시 찾았던 관매도에서 주민들의 행복을 눈으로 느낀 행복했던
주말 하루..
우리의 바다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 주시는 충무공의 늠름함을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했던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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