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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칠선계곡을 찾아 물레방아골 함양으로

2010년 7월25일 일요일 오전 9시6분.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한국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안재 전망대에서 잠시 머물렀다.
물론 앞에 언급한 아름다운 길은
이곳 지안재의 야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 낮에 보아도 눈을 즐겁게 한다.

몇 차례 방문한적이 있는 곳이지만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다만 뱀처럼 휘어지는 저 고개를 운전해 오르는 운전자에게는
힘든일이지만...
오늘 밤에도 사진이 취미인 동호인 몇몇이 이곳을 찾아와
한 사람은 헤드 라이트를 밝힌채 직접 운전을 해 고개를 오르고
나머지 일행들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1분,2분이라는 장시간 노출로 멋진 야경을 담으려 할것이다.

오전 9시25분.
지안재를 떠나 더 올라가면 '지리산제1문'이라는 한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는 성문이 자리 한 전망공원에 당도한다.
바로 해발 773m인 오도재 정상이다.
悟道嶺守護神位(오도령수호신위)라는 안내석도 보인다.
오도(悟道)란 뜻을 깨우친다 쯤으로 해석이 가능하리라.
예전에 보조국사 지눌과 청매선사가 오도령(悟道嶺)을 넘다가
도를 깨달았다해서 이 고개 이름이 오도령,
또는 오도재로 불린다는 얘기도 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쪽으로는 흰 구름이 두터운 장막을 치고 있다.

오전 10시 2분.
오도재를 떠나 지리산 칠선계곡 산행로가 시작되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 2005년말 4천만원을 들여 만든
추성마을 정자 앞을 지나는 산행객들의 행렬이
마치 시골 장터의 장꾼들의 모습 마냥 부산스럽다.
너무 많은 인파에 조금은 질린다.

오전 10시12분.
오늘 산행로 중 게곡을 건너는 첫 번째 다리인 칠선교를 지난 후
길가 조그만 고구마 밭에서 비록 덩굴을 걷어낸 때문인지
조금은 시들은 고구마꽃을 발견했다.
중남미가 원산인 고구마가 온대지방인 우리나라에서 피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지나는 산행객들마다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최근들어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올들어 전국 각지에서 고구마꽃이 핀 사례가 무수히 전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고구마꽃이 피면 나라가 망한다는데.."하는 말을 한다.
이는 무지의 소치이다. 나라가 망한다는 꽃은 개망초이다.
과거 한일합방 무렵 외래종인 개망초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피기 시작한 때문이다.
오히려 고구마꽃은 춘원 이광수가 '백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꽃'
이라 칭했을 정도로 옛부터 길조로 여겨왔었다.

오전 10시16분.
도로 표면을 작은 돌로 포장한 임도를 따라 오르는
비교적 가파른 길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고개마루까지 이어진다.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20여분간을 오르는 가파른 이 길에서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무척 고통스러워 한다.

오전 10시26분.
20여분간의 힘든 급경사를 오른 후
고개마루에서 한 숨을 돌리며 바라다보이는
저 울창한 숲이 칠선계곡으로 이어진다.
사진 중앙부의 나무숲으로 어둡게 골이 형성된 곳을 따라
맑은 계곡물이 흘러 내린다.

오전 10시35분.
이끼 낀 돌틈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을 건너는
목재 다리인 정상교를 지나 발길을 조금 더 옮기자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등을 파는 작은 매점이 두어곳 있는
두지동터에 도착한다.
이곳 두지터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이웃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사용했다는 설과
지형 자체가 쌀 뒤주를 닮았다는 설이 내려온다.

이제 출발지점에서 1.5km를 왔다.
따라서 오늘 산행 회귀점으로 예정한 비선담까지는 2.3km가 남았다.

두지동터를 지나는 길섶에서는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원추리가 눈길을 끈다.
아마도 지금이 봄철이라면
여인네들은 넘나물을 해먹기 위해
원추리의 새순을 따기에 분주했으리라.

오전 10시47분.
두지교를 지나면 잠시 울창한 대나무숲을 지난 후
첫번 째 출렁다리를 지나게된다.
맑게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느라
또 출렁다리에서 몸의 균형을 잡느라 걸음이 느려지며
이마의 땀을 조금 식혀 본다.

오전 11시21분.
출렁다리를 지나며 이어지는 비교적 가파른 오름길을 한동안 오른 후
'칠시'라고 불렸던 옛 칠선동 마을터 부근의 평지에서 한숨을 돌린다.
오래된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이는 칠선동 마을터를 지나자
이끼낀 아담한 계곡을 지난다.
흐르는 물이 적어서인지 주위의 돌들은 온통 초록색 이끼로 단장한 곳.
시원한 이곳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며 돌틈을 흐르는 물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
이제 비선담까지는 대략 1.5km 정도 남았다.

오전 11시39분.
우측으로 이어지는 울창한 숲 너머로 계곡을 흐르는 물 소리가 무척 크게 들리는 곳.
보기 드물게 큰 암반을 좌로 끼고 오르는 오르막.
지난 가을 내려 앉은 낙엽들이 마치 오래 된 화석인양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
붉은색 상의를 입은 아주머니는 힘들어 하면서도 꾸준히 걸음을 옮긴다.

오전 11시43분.
급경사 오르막길이 끝나자 이제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활엽수들 사이로 산죽이 군락을 이루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
경사길을 조심스레 내려 간다.
우측 나무숲 너머에서 들리는 물 소리는 이제 굉음으로 들릴 정도로 크다.
물 소리가 주변을 온통 잠재우는듯도 여겨진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조금씩 비칠 정도로 한낮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운 곳.
산행로 주위의 작은 돌들은 물론 고사목 껍질에도
녹색 이끼가 두껍게 피어난다.

오전 11시56분.
짙은 그늘로 이어지던 산행로 저 앞으로 밝은 빛이 느껴진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올 그 때 마냥.
물길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다리가 보인다.
선녀탕에 도착한 것이다.

해발 620m 에 자리한 선녀탕 아래로 맑은 물들이
바위 틈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흘러 내린다.
그늘지고 시원한 곳에는 예외없이 산행객들이 둘러 앉아 있다.

이곳 선녀탕에는 일곱 선녀와 곰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던 일곱 선녀의 옷을 훔친 곰은
옷을 바위 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을 잘못해서 사향노루의 뿔에 걸쳐 놓아 버렸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 주었다.
이에 선녀들은 옷을 입고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낮 12시22분.
선녀탕 주위의 맑은 계곡물에 온 몸을 담그고 한동안 휴식을 취해 본다.
내가 나뭇꾼이 되어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훔치는 상상도 해 본다.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물을 한동안 바라보니 문득 공익광고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물이 부족하면 물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물밖에 없다.'

낮 12시31분.
선녀탕 위쪽 해발 650m에 자리한 옥녀창에 당도했다.
얼핏 물색깔만 보아도 조금 전 한참을 쉬다 온 선녀탕보다
깊이가 더 깊고 크기도 큰듯 하다.
아마도 이곳에서 홀로 목욕을 했다는 '옥녀'라는 선녀는
선녀탕에서 목욕한 일곱 선녀보다
더 키도 크고 예쁜 8등신 미녀였을게다.

옥녀탕으로 흘러 내리는 물줄기 또한 선녀탕의 그것보다
더 높고 세차게 흐른다.
폭포라고 불리울만 하다.
저 폭포를 정면에서 사진으로 담고 싶었으나
옥녀탕 주변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 때문에 포기하고 비선담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낮12시52분.
무척 심하게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 비선담 옆 물가에 도착했다.
해발고도는 710m이다.
당초 일기예보로는 지리산 일대에 오후에 심한 소나기가 예상되므로
계곡으로 여행을 할 경우 조심하라했지만.
아직은 날씨가 너무나 쾌청하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땀을 식힌다.
머릿속으로 오래전 자주 읊던 옛시조 한 귀절이 생각난다.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절로 수(水)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조선시대의 문인 우암 송시열 시이다.

송시열 그는 좌의정이란 벼슬도 하였지만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 냈다.
자연 속에서 절로 늙으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노래한 것 같다.
이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의 근본인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통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한다.
항상 최선을 다하되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쉬운 일이 아닐게다.

이곳에서 지리산 최고봉인 해발 1,915m 천왕봉까지는 5.8km 거리이다.
그러나,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더 이상은 오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곳 비선담 주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점심식사를 하는 산행객들이 유난히 많다.
나 또한 그들과 어울려 점심을 떼운다.

이곳 비선담(飛仙潭)은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하늘로 날아갔다는 곳이다.
원시림에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沼)를 가진 칠선 계곡에서도
가장 크고 깊은 곳이 이 비선담(飛仙潭)이라고들 한다.

그래서일까? 다른 곳은 탕(湯)이라는 한자어를 쓰는데 비해
비선담의 경우 담(潭 :깊을 담)을 쓴다.

오후 2시31분.
비선담에서 오랜 휴식을 취한 후 추성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두지동터 근처에서 추성리쪽으로 바라다보이는 하늘이 무척 높고 푸르다.
아름다운 계곡에서 편히 쉬다 온 때문인지
마치 가을 하늘 아래 서 있는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오후 2시44분.
오전 10시반 경 지나왔던 목재 다리인 정상교 아래 이끼 낀
돌 틈 사이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도 오전과 다름없이
꾸준히 흘러 내린다.
다만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날뿐이다.

오후 3시8분.
칠선계곡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 아래 계곡가 공터에서 땀을 식힌다.

추성리 주차장 아래쪽 계곡인데도 마치 심산유곡에
들어 앉은듯한 느낌이다.
과연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의 위용을 실감케 한다.

땀 흘린 산행을 끝낸 일행들의 기력 보충을 위해
몇몇 사람들이 닭죽을 끓이느라 애쓰는 동안
다시 흐르는 계곡 물가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불리게 된 이곳.
과연 나도 언제쯤이나 지혜로운 사람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려나?

지리산은 과거에는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오랫동안 불리었었다.

아침에 들렀던 오도재 전망공원의 돌비들에 새겨져 있던
시귀 중 조선시대 무오사화로 인해 생을 마친
탁영 김일손 [金馹孫, 1464~1498]이 지리산을 대상으로 읊은 시
"두류시" 를 떠 올려 본다.

'푸른물결 넘실넘실 노 젓는소리 부드러워
소매 가득찬 맑음 바람 가을인양 서늘하다.
머리 돌려 다시보니 정말 그 모습 아름다워
한가한 구름은 자취없이 두류산 넘어가네.'

오도재 돌비에는 조선 전기 서예가였던
금재 강한(琴齋 姜漢 : 1454~?)이 쓴 '두류산책'이라는 싯귀도 있었다.

'두류산 고운 경치 창가에서 읊조리니
명옥탄 여울 물소리 흥미롭게 젖어드네
임고의 세월을 이렇듯 즐기고 있으니
다시는 꿈속 에라도 세속으로 나갈소냐.'

오후 5시6분.
귀가길에 함양 읍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 154호인 상림공원을 찾았다.
총 면적이 약 21Ha로써 숲의 길이는 1.6Km에 달하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인공림이라 한다.

이곳은 신라 진성여왕 때, 《계원필경(桂苑筆耕)》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졌으며,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고, 18세(874년)에 과거에 급제한바 있는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시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 (857~?) 이
함양 태수시절에 만든 것이라한다.

매년 7월이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삼축제가 열리는 이곳 상림공원에는
연꽃 또한 전국 어느 곳 못지않게 대규모이면서 다양한 종류를 갖춘 곳이다.
이 날도 산삼축제 기간 중이어서인지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 일찍 꽃을 활짝 피웠다가
오후가 되면 활짝 핀 꽃잎을 오무리는 연꽃의 특성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연꽃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

작은 연못에 핀 수련의 모습은 여러가지 볼 수 있었다.
수련 또한 일반적인 연꽃과 같은 수련과이지만 수련은
연꽃과 달리 이처럼 수면 바로 위에서 꽃을 피운다.

수련은 특히 밤이 되면 꽃잎이 오므라들어
마치 수면을 취하는 것 같아 수련(睡蓮)이라고도 한다.
특별히 오시(낮 11-12시)에 피면 자오련,
미시(낮1-3시)에 피면 미초라는 이름도 있다.


고운 선생이 이곳 상림공원을 만들던 당시 현재 상림공원 옆을 흐르는 위천수가
함양읍 중앙을 흘러 여름이면 홍수 피해가 심한 지경이었다한다.
이에 고운 선생은 위천수 중간에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 위치로 돌리고
강변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었다.
당시에는 이 숲을 대관림(大館林)이라고 이름 지어 잘 보호하였으므로
홍수의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한다.

오후 7시13분.
함양 상림공원을 하루 여정의 끝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는 중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며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소나기가 퍼붓더니
대전 톨게이트를 몇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비가 그치고 맑게 갠 동쪽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정말 얼마만에 보는 무지개인가?

비록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급히 찍은 사진이라
선명치 못하지만 "꿈, 희망, 야망 "의 뜻을 가진 무지개인 것은 분명하다.

무지개를 보면 사람의 심리가 평온해져 싸움의 기가 없어지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일수 있으며 심리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평온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휴일 하루를 마감하게 해 준
고마운 무지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