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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체취가 느껴지는 지리산 구룡계곡을 찾아서

2010년 7월31일 토요일 오전 10시11분.
지리산 서북능선의 왼쪽 자락인 정령치(해발 1,172m)를 넘는
지리산 고갯길의 입구 격인 구룡계곡을 찾아
전북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의 지리산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 앞
구룡계곡 표지석 옆 계단으로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 서니 육각 지붕으로 된 자그만 정자가 있고
잘 다듬어진 산책로 옆으로 계곡이 펼쳐 진다.
구룡구곡 중 제3곡인 학서암이 지도상으로는 분명 이 부근인데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탐방지원센터 근무자에게 문의해 보니 그들도 정확한 실체는 모른다는 답변이다.
조대암이라는 암벽 밑에 조그마한 소(沼)가 있고
학들이 이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해서 학서암이라 불렸다는 설명으로
미루어 보건대 오랜 시간을 지나며 폭우 등으로 인해
지형이 변해 버린듯하다.

길섶의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잎들 사이로 비교적 흔한 여름 야생화인
닭의장풀이 외로이 피어 있다.
오로지 한 송이만 피어 있는 이 작은 꽃은 희소가치를 뽐내는듯 하다.

오전 10시16분.
좌측 숲길로 이어지는 자연관찰로와의 갈림길을 지난 곳
짙은 나무숲으로 그늘진 곳.
이끼 낀 바위 틈 사이로 끊임없이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숲길을 가로 질러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흘러 내린다.
이처럼 작은 물줄기들이 모이고 또 모여 큰 계곡을 이루어 낸다.

우측 계곡의 물소리가 귓청을 울린다.
맑은 물줄기가 급류를 이루며 바위를 어루만져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다.

水滴穿石(수적천석/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이어가야만 성공할 수 있음을
3.2초의 카메라 셔터 노출로 찍은
저 비단결처럼 곱게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배운다.

오전 10시34분.
'구시소'라는 안내간판이 붙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떨어지는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하여 이 지방 사투리인 '구시'를 써서 '구시소'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한다. 아마 이곳도 폭우로 인한 홍수 등으로
과거의 모습은 크게 변했으리라.

구시소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땀에 젖은 몸을 식혀 본다.
입은 옷 그대로 계곡 물에 뛰어드니
시원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시원한 계곡물을 거슬러 위쪽으로 올라간다.
물살이 상당히 거세게 흐른다.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해 디디며
삼각대를 부착한 카메라와 배낭을 어깨 위로 치켜 올리고
힘들게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챙이소(서암)'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바로 이곳이 구룡계곡의 제4곡인 '서암'이다.
빠른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챙이'처럼 생겨서이고
또한,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바위라해서
'서암'이라고도 불리운다 하지만
안목 낮은 내 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 여기서 "챙이"란 '키의' 이 지방 사투리인데,
'키'는 수확한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말함이다.

챙이소 앞의 너른 바위에 걸터 앉아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다.
이곳 여행을 떠나기 전 유명한 여행전문가가 쓴 글을 읽었는데,
"김xx의 여행편지"라는 글을 쓰는 사람의 이곳
지리산 구룡계곡에 대한 소개에서 그는 이곳을 별 볼것 없는 곳으로
폄하하여 표현했다.

소위 상업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의 무성의함을 다시 한 번
질타하고 싶다.
지난주에도 마치 시장바닥처럼 붐비는 유명한 지리산 칠선계곡을
다녀온 나로서 인파에 짜증이나고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던 그곳보다
이곳 구룡계곡이 몇 배는 더 운치가 있어 보인다.
더구나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오래 눌러 있고 싶다.

오전 10시48분.
서암을 떠나 다시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햇빛을 받지 못하는 큰 암반에 온통 녹색 이끼가 창궐한다.
암반 옆을 지나치니 시원한 공기가 더운 몸을 식혀 준다.

암반의 갈라진 틈 사이로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그 흐름이 마치 비단결같이 곱다.
한 모금 마셔보니 물맛마저 상쾌하다.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간다.

워낙 울창한 나무숲으로 그늘진 곳이어서인지
다른 나무가지에 걸친 고목 등걸에도
진녹색 이끼가 잔뜩 덮여 있다.
바로 옆으로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인지라
시원한 물소리는 쉴새없이 귓전을 때린다.

오전 10시58분.
계곡과 바싹 붙어 이어지는 산행길인지라
이처럼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사다리 혹은
출렁다리를 여러번 건너는 아기자기한 산행길이다.

출발 지점에서 700~800m쯤 온 지점.
이곳 구룡계곡의 제9곡인 구룡폭포까지 1.95km거리인
이 지점에 놓인 저 다리의 이름은 '사랑의다리'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좀 생뚱맞은 느낌이다.

오전 11시10분.
제5곡인 유선대(遊仙臺)앞 물가에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신선놀음을 해 본다.
마음 속으로는 몇 번씩이고 신선이 되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반복을 홀로 이어본다.

길 옆으로 큰 암반이 수직으로 서 있고 바닥에 평평하고 넒은 바위가 있는 이곳.
넓은 바위에 금이 많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때 신선들이 속세의 인간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병풍을 치고 놀았다 하여 은선병이라고도 한다는 것이 안내 간판의 내용인데
그 내용보다는 상류쪽으로 바라다 보는 경치만은
신선들조차 머물며 쉬어갈만한 아름답고 편안한 곳임은 분명하다.

오전 11시22분.
이곳 구룡계곡의 제6곡인 지주대 바로 앞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 간다.
안내간판에는 '6곡 둘레의 기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구름다리 앞에 자그마한 봉우리가 솟아 있어 지주대라 불리고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실감은 못하겠다.

나무 숲이 울창하여 잘 보이지는 않으나 다리를 건너며 좌측으로 보이는
이 암벽을 얘기하는듯 하다.
어느 글에선가 저곳 아래 암반에 '地柱臺(지주대)'라는 글씨가
한자로 음각되었다는 내용을 읽은바는 있으나
울창한 나무 숲으로 인해 확인은 하지 못했다.

오전 11시28분.
지주대를 지나며 한동안 이와같은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산죽군락이 옷깃을 스치며 사각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느껴지는 길.
나 자신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길 중 하나이다.

비록 재목감으로는 쓸모 없겠지만
호젓한 산길에서 이처럼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만큼
운치 있는 대상도 없는듯 하다.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각자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내어
특성화 시킨다면 아마도 더 조화롭고 풍요한 세상이 되리라.

오전 11시49분.
이곳 구룡계곡의 제7곡인 '비폭동(飛瀑洞)'에 도착했다.
반월봉에서 흘러 내린 계곡 물이 이곳 폭포에서 떨어지며
아름다운 물보라(泡沫:포말)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듯 하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바위를 타고 흘러 내리는 가느다란 물줄기로 이루어진
포말과 상류로부터 세차게 흐르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한데 모여 합쳐지는 이곳 비폭동의 경치는 오랫 동안 인상에 남는 모습이다.

낮 12시9분.
비폭동을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른 후
또 칼날같은 능선을 철책을 의지해 10여분 오른 후 암봉 정상에 오르면
이처럼 멋진 소나무와 바위의 어울림을 만난다.

남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2시간여동안 지나쳐온
구룡계곡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인다.
이런 풍경을 대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심산유곡'이다.

멀리서 보아서인지 지나온 계곡이 너무 메마른듯하여
300mm 망원렌즈로 계곡을 자세히 살펴 본다.
각양각색의 바위틈을 휘감아 돌며 흐르는 물줄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눈을 돌려 북서쪽을 바라보니
비폭등 아래 물가에서는 울창한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윗쪽의 바위 계곡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줄기도 눈에 들어 온다.
아마 지금 문에 보이는 것보다 더 높은 곳에서부터 흘러 내리는
물줄기일듯하다.

아마도 울창한 나무숲이 없다면 지난 여름 지나쳐왔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에 있는 높이 50여m의 미인폭포보다
더 멋진 장광이 연출될지도 모르겠다.

멋진 장관에 취해 그늘진 바위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이마의 땀을 씻는다.
큰 바위 위에 조금은 작아 보이는 또다른 바위가
위태롭게 올라 앉아 있는 곳.
누군가 소원을 빌며 쌓았음직한 올망졸망한 돌탑도 여럿 있는 이곳.
마음이 편해진다.

그 주위에는 또한 이처럼 멋들어진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
지도상으로는 주위에 '장군바위'라고 표기해 두었는데,
어쩌면 이곳의 어느 바위를 지칭함이 아닐지 모르겠다.

오후 1시8분.
비폭동 위의 멋진 암봉에서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던 중
이곳 구룡계곡의 제9곡인 구룡폭포까지 갔다가 되돌아는
같은 차량으로 이곳까지 온 일행 몇몇을 만나
그들과 합류하여 다시 비폭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폭동 아래 물가에서 점심을 먹은 후
한동안 물놀이를 즐기는 여유를 가졌다.

오후 1시10분.
비폭동의 물줄기는 변함없이 포말을 이루며 떨어진다.
구룡폭포까지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모든일이 나 혼자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부지런히 먼곳까지 다녀온 그들과 달리
나는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물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삼각대를 펼쳐 놓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위해
장시간 노력한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못 가본 곳은 다음 번에 또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이니까.

오후 1시18분.
비폭동을 떠나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길.
매년 여름 여러곳으로 야생화 산행을 다니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던
천남성 열매가 풀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 낸다.

여인의 복수, 장대한 아름다움 등의 꽃말을 지닌 여름 야생화인
천남성은 특이하게도 비록 여러해살이이긴 하지만 풀이면서도
암,수 딴그루의 식물이다.
이 사진의 천남성은 암포기이며 가을이 되면 열매가 붉은색으로 익는다.
천남성의 수포기의 경우는 보라색의 꽃밥만 달릴 뿐이다.

오후 1시31분.
중복을 지난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삼복더위는
몇걸음만 걸어도 온몸으로 비오듯 땀을 쏟아낸다.
이처럼 맑은 물을 보면 물속으로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여러번 입은채로 물에 뛰어들었건만
뜨거운 여름 햇살에 마른옷은 다시 땀으로 젖었다.

배낭에 여벌 옷을 준비해 다니기에 서슴없이
시원한 물속으로 뛰어든다.

온몸이 시원해지며 마음속까지 상쾌해진다.
덩달아 마음도 편해진다.
어릴 때 느꼈던 어머니 품속이 이랬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후 2시6분.
계곡 산행을 끝내고 당초 출발했던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주차장쪽으로 내려가다 '용호서원'앞에서 잠시
음료수 한잔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이 용호서원(龍湖書院)은 1927년에 설립된
남원 주천면 일대의 유림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400여년 전부터 이어 온 남원 원동향약계라는
선비들의 모임이 근원이 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조 명종 10년 광주의 선비 박광옥(朴光玉)이 서장관 신분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중국의 주자와 여대균의 영정을 들여 와서 남원부 풍천 노씨의 집에 봉안해 오던 것을
부근 고종 23년 용호사에 보관케 되었고,
이후 몇 차례 떠돌던 주자영정이 이곳 용호서원에도 머문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주천면 호경리에 어진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얘기는 들은바 있다.

오후 2시16분.
춘향묘와 도로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육모정 부근 도로는 금년 하기 휴가의
절정기를 맞은 토요일 오후이어서인지 극심한 차량 정체 현상을 보인다.
아마도 귀가할 차랑도 주차할 장소를 찾아 어지간히 멀리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 육묘정 바로 아래 계곡의 물 깊은 곳을 용소라 부르며
그곳이 이곳 구룡계곡의 제2곡이라는 애기는 들었지만 담사 및 촬영은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한 혼잡함을 피해 다음 기회로 미룬다.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육모정(六茅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정자는
1572년(선조 5)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원동향약(源洞鄕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46호) 관련 유적으로,
향약계원들이 모임을 하던 곳이다.
1961년 수재 때무에 유실되었다가 1997년 복원되었다 한다.

육모정 맞은 편에 자리한 춘향묘 입구이다.
이 춘향묘 [春香墓]는 1962년 현 위치에서
'성옥녀지묘'라 새겨진 지석(誌石)이 발견되어 묘역을 단장하였다고 전해지며,
1995년 정비작업을 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춘향이 실존인물이 아닌 만큼 이 무덤은 시신이 있는 진짜 무덤은 아니다.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20여분간 육모정에 씌여있는
춘향찬가를 읊조려 본다

춘향찬가(春香讚歌)

南原(남원) 골 늘 푸르른
貞烈(정렬)이 여기 있네
萬人(만인)들 가슴마다
사랑을 새겨두고
그 날의 그리던 情(정)을
靑山(청산)속에 엮는가

六芽亭(육모정) 맑은 여울
龍湖洞(용호동) 홀로 누워
桂觀(계관)의 廣寒戀情(광한연정)
아련히 되새길 때
이 밤도 달과 별들은
御史出頭(어사출두) 알리리

東軒(동헌)의 十杖守節(십장수절)
그 丹心(단심) 다진 婦道(부도)
두고 온 李花春風(이화춘풍)
千世(천세)의 香薰(향훈)으로
오늘도 임의 모습이
烏鵲橋(오작교)에 이르네

오후 2시43분.
귀가할 차량이 주차한 도로변 공터.
이끼가 잔뜩 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주황빛 능소화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능소화의 웃는듯한 모습을 보며 행복했던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 꽃은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 왔다.

그러나, 이 능소화 꽃의 경우 꽃가루의 미세 구조가
갈퀴와 낚시 바늘을 합쳐 놓은 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일단 피부에 닿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염증을 일으키기 쉬운데,
특히 눈은 점액이 있고 습기가 있어서 일단 부착이 되게 되면
비비는 행동에 의해 자꾸 점막 안으로 침투하여 심한 염증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백내장 등 합병증에 이르기도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