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8일 일요일 오전 11시40분.
입추를 하루 지난 말복. 더위를 잊기 위해 찾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 유적지 입구.
막바지 피서 인파와 차량들로 붐비는 곳이긴 하지만
대도시 주변의 혼잡과는 거리가 멀게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다.
오전 11시43분.
김삿갓 유적지로 들어선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 다니는 뭉게구름을 보니
가을도 머지 않아 우리 곁에 다가올듯하다.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자 피신 후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 병하와 함께 편모 슬하에서
숨어 지내던 곳. 바로 그곳이다.
김삿갓 유적비 앞을 지난다.
자연석으로 만든 비석의 글귀는
"시선 김삿갓 난고(蘭皐)선생 유적비"이다.
난고(蘭皐)는 삿갓이 사용했던 여러개의 호 중 하나이다.
20세에〈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으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인해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이곳 김삿갓 유적지에서는 삿갓의 수많은 싯귀 중 일부를 읽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邑號開城何閉門; 읍호개성하폐문
山名松嶽豈無薪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황혼축객비인사
禮義東方子獨秦 예의동방자독진
개성에서의 어느 집 대문 앞에서 하룻밤 묵기를 청했으나,
주인이 땔감이 없어 재워 줄 수 없다고 하며 쫓아내므로 지은 詩(시)이다.
"고을 이름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산 이름 송악인데 어찌 나무 없다는고.
황혼에 손 쫓는 것은 사람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너 홀로 진시황이냐."
오전 11시45분.
1.8km떨어진 삿갓의 생가터를 향해
묘소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왼쪽 임도를 따라 오른다.
해발 1,052m인 마대산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어둔이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이다.
'어둔이'란 이름은 좁은 골짜기로 인해
해가 일찍 지고 어두운 곳이어서 얻은 이름이라 한다.
산행로 입구의 '이응수선생공적비'앞을 지난다.
이응수 선생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전국을 돌며 모으고 정리한 김삿갓의 시 177편을 모아
김립시집(金笠 詩集)을 발간한바 있다.
김립(金笠)은 삿갓의 별호 중 하나이다.
낮 12시
냉방이 잘 된 차에서 내린지 불과 20분 남짓 지났지만
삼복더위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더운 날씨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비록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맑은 물이 계속 흐르는 어둔이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 본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닭장 옆에서까지 볼 수 있다하여
그 이름을 얻은 '닭의장풀'이지만 온통 개망초로 뒤덮인 숲길에서
어찌 보면 청초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방에서 해열,이뇨제로는 물론 당뇨병과 화상 치료에까지 쓰는
쓰임새가 많은 야생화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낮 12시14분.
온 몸이 땀으로 젖을 즈음해서 감삿갓 생가터에 도작해 한 숨을 돌린다.
삿갓은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채로 방랑의 길에 올라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집에 머물며 둘째아들 익균(翼均)을 낳고
또다시 고향을 떠나서 1863년 만56세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객사할 때까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낮 12시26분.
김삿갓생가터에서 약수물로 목을 축이고 흐르는 계곡물로 땀을 씻으며 휴식을 취한다.
현재는 이곳 김삿갓계곡의 문화해설가 최상락씨가 이 집에 살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삿갓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날도 예외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그와 얘기를 나누는가하면
그를 옆에 세운 채 사진으로 추억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낮 12시33분.
해발 1,052m인 마대산 정상까지 오르려했으나 지난해 7월5일
정상에 오른바 있는 나로서는 너무 더운 날씨에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건강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시원한 물가를 찾아 다시 출발지로 발걸음을 돌린다.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삿갓의 생가터를 떠나며 그의 시 한 수를 떠올려 본다.
賞景(상경) : 경치를 즐기다
一步二步三步立(일보이보삼보립) :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山靑石白間間花(산청석백간간화) :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히 꽃이 피었네.
若使畵工模此景(약사화공모차경) :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기어림하조성하) :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참고로 위 사진은 지난해 7월5일 오후 2시12분
마대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후 1시25분.
생가터를 떠나 출발지로 내려오던 중
나무 그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산길을 내려오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삭여뀌'를 만난다.
포기 전체에 진통·지혈 등의 효능이 있어 관절통·위통 등에 사용하는
여름 야생화인 이삭여뀌를 바라보며 삿갓도 전국을 유랑하며
저 이삭여뀌의 도움을 받은적이 있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오후 1시45분.
김삿갓유적지와 개울을 마주하고 자리 잡은
김삿갓묘지에서 그의 명복을 빌며
전남 화순땅에서 객사한 부친의 유해를 고향땅으로 모시고온
그의 아들 익균의 심정으로 잠시 되돌아가 본다.
일제 강점기. 앞에서 언급한 김삿갓을 추앙했던 이응수라는 분이
그의 시집을 정리해 펴내고 그의 무덤을 찾아낸 적이 있으나
잊혀진지 오랜 후인 지난 1980년대 초반
김삿갓은 ‘양백(兩白) 사이에 묻혀 있다’라는 문헌을 토대로
이곳을 다시 찾았던 것이다.
여기서 양백은 태백산과 소백산을 말한다.
이 묘자리는 마대산 줄기가 버드나무 가지처럼 흘러내리는
유지앵소형(柳枝鶯巢形:버드나무가지에 있는 꾀꼬리집 형국)의 명당이라고들 한다.
오후 1시47분.
김삿갓묘지의 비석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선 김삿갓 난고(蘭皐)선생 유적비" 앞을
죽장에 삿갓 쓰고 김삿갓이 지나간다.
조금 전 생가터에서 만난 문화해설가 최상락씨가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는 중
본인도 모르게 나를 위해 사진 모델이 되어준 셈이다.
오후 1시54분.
2시간여에 걸친 유적지,생가터,묘지 방문을 마치고
말복을 맞아 삼계탕을 해 놓고 기다릴 일행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며 유적지쪽을 뒤돌아 본다.
지난해에는 '하동면'으로 표기되었던 안내판의 바뀐 글씨가 좀 더 희게 보인다.
지난해 10월부터 '하동면'이라는 행정구역 명칭이 '김삿갓면'으로 바뀐 탓이다.
감삿갓문학관 앞 주차장 옆을 휘돌아 흐르는
개울 물이 너무 깨끗하고 맑아 보인다.
잠시 후면 나 또한 삼계탕으로 허기진 뱃속을 달랜 후
저 맑은 물에서 말복 더위를 날려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인다.
오후 2시30분.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입은 옷 그대로 맑은 개울물에 몸을 담그고
느긋한 휴식을 취한다.
이곳 김삿갓 계곡은 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불렀을 만큼
경치가 빼어나며 오염이 안된 청정지역이다
강원 영월군과 경북 봉화군·영주시 경계에 있는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지나
이곳 김삿갓면 와석리로 흘러 계류를 이루며 옥동천을 지나 단양-충주-
경기도 여주로 흘러 간다.
맑은 물속에 드러 누워 하늘을 보며 삿갓의 시 한 수를 떠올린다.
夏雲多奇峰(하운다기봉) -삿갓이 금강산의 경치에 취해 읊은 시이다.
一峰二峰三四峰 일봉이봉삼사봉
五峰六峰七八峰 오봉육봉칠팔봉
須更作千萬峰 수수갱작천만봉
九萬長天都是峰 구만장천도시봉
한봉우리 두봉우리 세네 봉우리
다섯봉우리 여섯봉우리 일여덟봉우리
잠깐동안에 다시금 천만 봉우리 이루니
구만장천이 모두다 봉우리로다.
오후 3시56분.
지난 2003년 10월 개관한 "난고 김삿갓 문학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김삿갓계곡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이곳에는 삿갓의 생애와 발자취를 쫓아 일생을 바친
정암 박영국선생의 김삿갓 연구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김삿갓 관련 자료를 상영하고 있다.
오후 5시55분.
귀가길 영월군을 벗어나기 전 동강휴게소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며
하늘을 바라 본다.
햇빛은 뜨겁고 날씨는 덥지만 습도는 며칠 전보다 훨씬 낮아진듯하다.
뭉게구름이 크게 피어 오르는 것을 보니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릴 태세다.
오후 7시4분.
일요일 늦은 오후인지라 도로가 가끔씩 많은 정체를 빚는다.
영월을 출발한 차량이 제천을 거쳐 충주를 지날 무렵
해는 이미 서쪽으로 거의 기울어가며 붉은 노을을 만든다.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즐겁고 행복했던 김삿갓계곡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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