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29일. 낮12시9분.
100년전인 1910년 치욕적인 한일합방이 이루어졌던 날.
국치일(國恥日)을 맞아 과거 일본군의 요새였던
동백섬 지심도를 찾아 경남 거제시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아침 8시 대전을 떠나 4시간 남짓 달려온 길.
토요일인 어제는 파도가 심하여 배가 출항을 못했다한다.
오늘은 다행히 배는 출항할 수 있다지만
하늘의 먹구름과 비교적 거친 바다에 조금은 긴장이 된다.
낮12시18분.
100여명 남짓 타는 작은 유람선이 파도를 헤치며
지심도를 향해 출발한지 3분여.
뒤로 보이는 장승포항 하늘이 점점 맑아진다.
날씨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기로 한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제문화예술회관 지붕 위로 햇빛이
이따금 반짝인다.
낮 12시28분.
비교적 높은 파도와 뱃전을 때린 후 작은 배의
후미까지 날아 오는 바닷물 때문에
뱃전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지 못한 채
객실을 가득 채운 승객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뱃전을 때린 바닷물이 마치 빗물처럼
유리창을 적시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장승포항에서 채 10km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섬 지심도.
선창 밖으로 섬이 눈에 들어 온다.
낮12시33분.
선착장에 도착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몸놀림이 조심스럽다.
이제 보니 배의 최대 탑승인원이 96명이라고 적혀있다.
실제 탑승인원을 조금 초과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낮12시38분.
해안선 길이 3.7km에 불과한 작은 섬 지심도 관광을 위해
선착장 바로 위의 언덕을 오르며 선착장을 내려다 본다.
어제 배가 다니지 못한 탓인지 장승포로 돌아가는 승객이
많지 않은듯 하다.
이곳 지심도가 섬 크기에 비해 유난히 큰 규모의 선착장을 가진 이유는
아마도 이곳에 지난 1938년 일본군의 포진지가 구축되고
1개중대 100여명의 일본군이 주둔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교적 높은 파도로 인해 해안가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마치 동해안에 와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남해안에서 보기가 쉽지 않은 높은 파도의 느낌이 색다르다.
낮12시29분.
작은 섬 전체 나무 중 60% 이상이 동백나무인지라
동백섬 지심도라 불리는 지심도의 진면목인 울창한
동백숲을 지나며 본격적인 지심도 관광이 시작된다.
더운 날씨이지만 동백숲에 들어서며 시원한 냉기를 느낀다.
*참고로 이 사진은 금년 2월6일 오전 10시59분
이곳을 지나며 찍은 사진이다.
매년 2월 동백꽃을 보기 위해 찾는 이곳 지심도
처음으로 여름철에 찾아서인지 느낌이 새롭다.
낮12시46분.
지심도 남쪽 끝부분의 이른바 "마끝'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무척 세찬 바람이 쉴새없이 몰아친다.
이곳까지 오느라 10여분동안 흘린 땀이 일시에 씻겨 나간다.
깎아지른듯한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곳.
풍광이 일품이다보니 모 방송국에서도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1박2일이라는 프로를 녹화한 모양이다.
절벽 아래 갯바위는
전문 낚시꾼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낚시터이기도 하다.
오늘은 파도가 심해서인지 낚시꾼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원스런 해안 절경과
이마의 땀을 씻어주는 상쾌한 바람을 맞는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손에손에 든 디카 셧터를 누르며 추억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낮 12시56분.
"마끝"을 떠나 섬 일주 관광을 위한 발걸음들이
바삐 이어진다.
작은 섬이지만 과거 일본군들이 주둔했던 흔적들은
비교적 고스란히 남아 있다.
70여년 전 그들이 주둔하던 시절 이미 주요도로는
배수 시설까지 완비했을 정도로 치밀했다고 한다.
오후 1시1분.
과거 일본군들의 관사로 쓰던 건물이 지금은
민박업자가 민박업을 위해 건물을 고쳐 사용중이다.
이 건물의 경우도 기와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나라 기와가 아닌 일본 기와이다.
7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상없이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들의 기술력이 놀랍다.
오후 1시4분.
지금은 폐고가 된 과거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터 입구에는
이처럼 "只心(지심)"이라 새긴 표지석이 서 있다.
지심도라는 이름은 이 섬의 모양이 위에서 바라보면
마음 심(心)이란 글자를 닮아서라 한다.
이곳 지심도를 동백꽃 피는 봄철이 아닌
여름에 찾아도 좋은 이유는 이처럼 울창한 동백나무 터널이
연이어 이어지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오후 1시14분.
동백 터널을 지나 과거 탄약고와 포진지 자리로 향하던 중
우리나라 원산의 여름 야생화인 "하늘타리"를 만난다.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인 이 하늘타리는
은행나무처럼 암수 딴그루이다.
또한 땅속에 고구마같이 굵은 덩이뿌리가 있는 식물이다.
오후 1시17분.
과거 일본군이 만든 탄약고 앞에 도착했다.
지난 1936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약 15가구의 우리나라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 내고 1개 중대 병력이 해방 때까지 주둔했던 이곳 지심도.
당시 구축한 해안포 발사대가 여러 곳 남아 있고
그를 위한 포탄을 저장했던 탄약고는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으로 이용된다.
탄약고 바로 앞에 자리한 과거 일본군 포진지이다.
1936년 7월10일 착공하여 1938년 1월27일 완공한 4개의 포진지 중 하나이다.
바깥쪽 지름이 8.6m, 안쪽 지름이 4m인 이러한 포진지를
그들은 이곳 지심도에 4개를 만들고
1912년 제작된 150mm 캐논포를 설치했다.
포차의 중량이 20여톤에 이르며 포의 사정거리는 약 20여 km에 달했다 한다.
그들의 지심도 군사시설 계획은 1935년11월30일자
일본군의 '군사기밀제4호'
"진해만요새지심도포대건설요령서'에 의해 확인되었다.
포진지 주위를 에워싼 수많은 동백나무들.
지난 2월의 붉은 선혈을 연상시키던
동백꽃 대신 동백나무의 열매가 익어가기 시작한다.
오후 1시32분.
탄약고터를 지나 10여분 남짓 걸으면
섬의 중심부 이 섬에서 가장 넓은 평지를 만난다.
안내 표지판에는 "활주로"라 씌어 있다.
그러나 일반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폭이 불과 20~30m, 길이는 채 100m 도 안된다.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보인다.
동서로 바다가 보이는 이 풀밭에서,
그리고 동쪽 해안가에 마련된
아담한 벤치에서 짧은 휴식을 즐긴다
동쪽으로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시원하다.
바람은 비교적 거세게 불지만 물결은 한두시간 전보다 많이
잔잔해진듯 하다.
이곳 지심도는 넓은 바다를 감시하기에도 최적의 위치인듯 하다.
당시 지심도포대는 대마도 북단의 포대와함께 대한해협 항행의
함선 엄호업무를 맡은 중요한 요충지였다 한다.
넓은 초원과 푸른바다.
0.356평방키로. 즉,11만평 남짓한 작은 섬에서 느끼는 풍광이
마치도 대관령 자락의 드넓은 양떼목장에서 느끼던
그런 느낌으로 다가올 정도로 마음이 편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70여년 전 그 당시에도 이와같은 장소를 찾아내어
그들의 침략전쟁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던
일본인들의 혜안이 두렵게 느껴진다.
그들을 뛰어넘기 위한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 절실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후 1시35분.
북쪽으로 계속 걸음을 옮겨 해안가를 따르는 중
금년 여름 들어 처음으로 "며느리밑씻개"를 발견한다.
들에서 흔히 자라며 7~8월에 꽃이 피는 한해살이 풀인
이 꽃의 이름은 듣기 거북하게도 붙여져 있다.
치질 예방에 쓰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화장지가 귀하던 시절에
시어머니(혹은 시아버지라고도함)가 며느리를 미워하여
부드러운 풀잎 대신 가시가 있는 이 풀로
뒤를 닦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일명 가시덩굴여뀌라고도 부른다.
오후 1시41분.
활주로를 지나 북으로 향하는 길은
한동안 이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동백숲길이 이어진다.
너무 조용하고 시원해서 좋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월6일 이 부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붉은 선혈을 연상시키는 동백 꽃.
봄철에 피는 매화나 벚꽃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피었다가
짧은 시간에 떨어지는데 비해 동백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불전에 바치거나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오후 1시45분.
과거 일본군들이 주둔시 만들어 놓았던
방향지시석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
좌로주터 우로 4개의 방향지시석이 흙에 꽂혀 있다.
좌로부터 첫째 등대방항(부산 가덕도 외양포대), 둘째 부산 영도방향,
넷째 대마도방향이라는 글씨가 식별되나
세번째는 마모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 중 두번째 표지석을 가까이서 살펴 보니
"絶影島東端方(절영도동단방)"이라는 글씨가 명확히 보인다.
여기서 '절영도'라 함은 부산의 '영도'를 말함이다.
과거에는 절영도라 불렀으며 지난 겨울 그곳 영도 해안산책로 트래킹시에도
안내판에는 '절영해안산책로"라고 적혀 있었다.
오후 1시48분.
이마의 땀을 식히기 위해 동쪽 해안 절벽 위에 만들어 놓은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해안 절경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행복감이 넘친다.
바닷가는 아름다운 해식애(海蝕崖)의 진수를 보여준다.
해식애란 파도,조류 등의 침식으로 깎여 형성된 바위들로
다른 말로는 해식절벽이라고도 부른다.
오후 1시50분.
지심도의 북쪽 끝 전망대에서 멀리 바라보는 북쪽은 하늘과 바다 모두
맑고 푸르다.
아직 햇빛을 받는 피부는 따갑지만 공기는 서늘하다.
아마도 이쯤에서 여름의 끝자락을 놓아주어도 될듯 싶다.
이곳 역시 아름다운 해식절벽의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규모의 해식애는 동해안에서 주로 볼 수 있지만
이곳 남해안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남해안 대표적 절경으로 꼽히는 거제 해금강이나
소매물도 등대섬 모두를 수차례씩 다녀온 나도 그러고보면
수만가지 행복 중 몇개는 얻은듯도 하다.
북쪽 멀리 장승포항이 바라다보이는
해안가 바위절벽 위 짙푸른 소나무그늘아래서
늦은 점심을 즐기는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무척 행복해 보이는 오후 시간이다.
오후 2시5분.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어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울창한 대나무숲을 지난다.
지금은 10여가구 주민이 모두 관광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예전에는 마늘,고구마,유자,밀감 등의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외에
홍합 부스러기 따위의 밑밥을 넣은 '반대'라고도 하는 대나무 뜰채를 사용해
학꽁치,놀래미,우럭 등을 잡았었다.
오후 2시6분.
대나무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와같은 낡은 건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과거 일본군 1개중대가 주둔하던 시절.
그들이 만든 전등소(발전소) 직원의 관사로 쓰던 건물이다.
아마도 지붕은 물론 벽체까지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건물이 아닐까 한다.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도 분명 보존할 가치가 있을진대
저토록 방치하는 관계당국의 처사가 못내 아쉬울 뿐이다.
오후 2시14분.
서쪽 바닷가에 자리한 지심도 유일의 해수욕장인
몽돌해수욕장에서 잠시 바닷물에 몸을 담그려던 계획은
몽돌까지 온통 물속에 잠긴 밀물 때인지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갈아 입을 여벌옷을 배낭에 넣어갔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으니
내년 여름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오후 2시24분.
높이가 10여m는 족히 됨직한 동백나무의 뿌리가
거의 대부분 드러난채 쓰러진 고목이 산책로를 가로질러 누운채
줄기에서는 싱싱한 잎들을 키워낸다.
자연보호는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듯 하다.
쓰러진 동백나무 아래로 지나며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 앞서 가는 관광객의 모습이 마치 어두운 동굴을 지나
밝은 빛이 비치는 광명속으로 나가는듯 보인다.
걸음걸이에도 편안함과 만족감이 엿보인다.
이곳 지심도의 동백나무는 이처럼 오래된 고목들이다.
아마도 오랜 기간 거주하는 주민들이 땅과 건물을 모두 임대해
살아오는 관계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때문이 아닌가 한다.
머잖아 거제시에서 이 섬을 사들여 대규모 관광단지로 개발하게되면
이와같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을 모두 훼손시킬까 심히 걱정된다.
오후 2시39분.
선착장까지 불과 몇백미터 남지 않은 지점
서쪽 해안가 절벽 위에 만들어진 목재 테라스에서 잠시
음료수 한 잔을 곁들인 휴식을 취한다.
민박을 겸해 간단한 음료수를 판매하는 이곳
눈 앞에 보이는 건물은 1938년 포진지와 함께 지어졌던 건물이다.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서쪽 해안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
당시 1개중대 100여명의 일본군을 지휘하던 중대장 관사로 쓰였던 곳이다.
지붕의 기와와 주 기둥은 그대로 살리고 나머지는 개축한 건물인데
더 이상 훼손되지 않은채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으면 싶다.
오후 2시58분.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비탈길 바위틈에서는
온갖 식물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존방식을 뽐내듯 왕성하게 자란다.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작은 꽃을 발견했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덩굴식물인 계뇨(鷄尿)이다.
고약한 닭오줌 냄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약한 냄새를 내는 이 꽃은 일명
계뇨등(鷄尿藤)으로도 불리는데,
한방에서 열매와 뿌리를 채취하여 말린 것을 각각 계뇨등과(鷄尿藤果),
계뇨등근(鷄尿藤根)이라 하며 신경통 ·류머티즘 ·관절염 ·소화불량 ·
위통 ·간염 ·비장종대(脾臟腫大) ·기관지염 ·해수 ·골수염 ·타박상 ·
림프선염 ·화농성질환 등에 처방해 온 때문이다.
오후 3시.
장승포로 돌아갈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북쪽으로 멀리 장승포항이 바라다보이는 서쪽 해안가의 파도는
2시간 반 전 도착했을 때보다 한결 약해진 것이 한 눈에 느껴진다.
파도가 부딪치는 해안가 바위를 자세 살펴본다.
1/5초의 장노출로 찍은 사진에 파도의 흐름이 비단결처럼 표현된다.
水滴穿石(수적천석/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비단결처럼 느껴지는 저 파도가 끊임없이 단단한 바위를 때려
둥글게 만들 수 있다니..
아직은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는
동백섬 지심도 선착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망막에 깊이 각인시킨다.
내년 봄 동백꽃이 붉은 선혈같은 애절함으로 내 눈앞에 다가올 그 때도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빌어 본다.
오후 3시10분.
선착장에서 멀리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잠시 후 돌아 갈 장승포항을
300mm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북쪽으로 높은산들이 둘러쳐 있어 찬 북풍을 막아주고
남쪽은 깊숙한 만이 형성된 작은 어항이지만 아늑한 느낌이 마음속으로 전해진다.
오후 3시31분.
장승포항으로 되돌아가는 정원 100여명 안팎의 작은 배가
출항한지 10분도 채 못되어 지심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섬이다.
길이가 1.5km,폭이 500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지심도(只心島)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통상 얘기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보리알과 비슷하다 하여 ‘보리섬’으로도 불려왔었다는
애기가 더 가슴에 와 닿는 풍경이다.
오후 3시58분.
3시40분경 장승포항에 도착하자 마자 세찬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여
선착장 주변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방파제 보호해 주는 항구 안의 바다는 잔잔하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 이후
일본 어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장승포항.
일본의 침략잔재가 강하게 남은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오랫동안 세계 제1의 조선대국이던 일본을 뛰어넘는
조선대국이 된 우리나라 조선업의 중심이 된 거제시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장승포이다.
오후 5시32분.
귀가 길 신거제대교를 건너 다리가 바라보이는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통영에서 거제도를 가다보면 비슷하게 생긴 다리가 두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1971년에 준공된 거제대교(길이 740m, 폭 10m)이고,
지금 이 다리는 조금 북쪽에 1999년 세워진 길이 940m,
폭 20m의 왕복 4차선 교량인 '신거제대교'이다.
다리 아래를 지나는 저 작은 어선이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의미 있었던 국치일(國恥日)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붉은 꽃무릇 피어나는 가을비 속 불갑사 (1) | 2010.09.13 |
---|---|
메밀꽃 필 무렵에 찾은 효석문화제 (1) | 2010.09.06 |
임진왜란 때 9만명이 피신했다는 구만산(九萬山)계곡 (0) | 2010.08.23 |
김삿갓 계곡에서 말복 더위를 날려 버린 하루 (0) | 2010.08.09 |
춘향의 체취가 느껴지는 지리산 구룡계곡을 찾아서 (0) | 2010.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