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22일 일요일 오전 11시21분.
해발 785m로 비교적 낮은 산인 구만산 산행을 위해
경남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의 구만산 주차장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서쪽 하늘의 모습은 내일이 처서라는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날씨는 아직 오전 시간임에도 옴몸에서 땀이 흘러 내릴 정도로
무더운 날씨이다.
마치 키 큰 가로수마냥 도로변을 뒤덮은 흔히들 '달개비'라 부르는
닭의 장풀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한방에서 해열,이뇨제로는 물론 당뇨병과 화상 치료에까지 쓰는
쓰임새가 많은 야생화임에도 불구하고 닭장 부근에서까지 필 정도로 흔하다하여
그 이름을 얻은 달의장풀이 이처럼 많이 핀 곳도 처음이다.
오전 11시36분.
구만폭포를 거쳐 구만산 정상으로 이르는 3.8km거리의 좌측 길이 아닌
4.1km거리의 우측 능선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지 10여분.
해발 200m를 훌쩍 넘긴 지점에서 이와같은 야트막한 돌담들을 여러곳에서 만난다.
누군가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기거했음직도 하고..
임진왜란 때 수많은 사람들이 피신했던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연대가 그리 오래지는 않은듯도 하다.
오전 11시51분.
급경사 등산로는 비교적 키 작은 나무들이 밀생한 지역이라서인지
뜨거운 햇빛이 그대로 내리 쪼이고 지나치게 더위를 느끼게한다.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진 마당인지라 능선길을 포기하고 구만폭포로 이어지는
계곡길을 따르기로 마음을 바꾸어 다시 구만산장 삼거리쪽으로 하산을 한다.
낮 12시4분.
삼거리 부근 구만암을 지나 구만폭포를 거쳐 구만산으로 이르는 산행로로 들어선다.
좌측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나무숲길의 느낌이 너무 좋다.
지난 주말 해발 1,400m가 넘는 산을 8시간 반에 걸쳐 종주를 했으니
오늘은 좀 여유로운 산행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리니
발걸음조차 가벼워지는듯하여 쉬엄쉬엄 여유로운 걸음을 옮긴다.
낮 12시12분.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큰 암벽 아래에서 한숨 돌린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암벽에서 전해지는 서늘한 냉기가
온몸을 식혀 준다.
암반 이곳 저곳을 살펴 보니
햇빛이 전혀 들지 않고 습기만 잔뜩 머금은
암반 사이로 힘겹게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각종 식물들이
의외로 많이 눈에 띈다.
그냥 보기에는 틈이 전혀 없을듯한 저 암반 사이로 연약한 뿌리를 내리는
식물들을 보자니 문득 어린 시절 우리 집 거실 벽에 부모님께서
걸어 두셨던 액자의 글귀가 생각난다.
"柔能制剛(유능제강)" ,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에서 처음 언급되었던 글귀이다.
낮 12시18분.
구만폭포까지 이어지는 약 2.6km의 길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
등산로는 이처럼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위들과 진한 피톤치드를 내뿜는 숲길이 연이어 반복된다.
낮 12시27분.
햇빛을 받지 못해 녹색 이끼로 뒤덮인 암반 사이로
눈에 보일듯말듯 물줄기가 흐른다.
그 실낱같은 물줄기들이 수없이 모여 큰 물줄기를 이루게된다.
이끼 잔뜩 낀 바위 틈을 흐르는 물줄기를 37초의 노출로 카메라에 담아 본다.
어찌 보면 수증기나 연기가 피어오르는듯 여겨지는 가녀린 물줄기다.
낮 12시38분.
어두운 나무 그늘로 이어지던 등산로가 한동안 이어지던 중
갑자기 눈 앞이 환해지며 물소리 또한 크게 들린다.
북쪽으로 압벽이 병풍을 치듯 둘러친 아늑한 물놀이 장소가 나타난다.
구만약물탕,또는 구만약수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신경통,피부병 등이 낫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배낭과 카메라를 안전한 바위 위에 올려 두고 입은 옷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더위를 식혀 본다.
여름철 계곡 산행의 참맛을 느낀다.
비록 비가 내린지 한참되어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온몸에 흐른 땀을 식히기에는 충분하다.
비단결처럼 흘러 내리는 자그마한 폭포 아래에서 머리까지 물속에 담그며
떨어지는 폭포수를 뒤집어 쓰니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암벽을 올라 이어지는 산행로에는
최근에 새로 설치한듯한 목재계단이 한동안 이어져
산행객들을 안전하게 인도한다.
수십미터 높이의 암벽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이 끊임없이
조금 전 내가 들어갔던 약물탕으로 흘러 내린다.
낮 12시51분.
목재 계단이 끝나고 다시 완만한 계곡이 펼쳐진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등산로를 따라 걷던 방법이 아닌
계곡을 따라 오르는 식으로 산행길을 이어간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골라 걸어가다보니
더위는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오후 1시9분.
허리까지 잠기는 물속을 한참 따르다보면
몸에 한기를 느낀다.
그럴 때면 이와같은 나무숲길로 들어서면 된다.
이곳 '통수골계곡'산행의 큰 장점 중 하나가 등산로와
계곡이 나란히 이어진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오후 1시15분.
구만폭포를 800m정도 남겨둔 지점에서부터 다시 계곡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이곳에서부터는 좌우로 보이는 바위들이 한 마디로 절경이라 이를만한다.
이곳 계곡 이름은 "통수골"이다.
동쪽과 서쪽에 수직 암벽이 솟아 있고 좁은 협곡이 남북으로 뚫려 있어
마치 깊은통 속과 같다 하여 통수골이라 불리운다고도 하고,
또 다른 얘기도 있다.
옛날 통 짐을 메고 가던 장수가 대나무 통이 암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통수골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그런가하면 과거에는 임진왜란 때 밀양 인근의 주민 9만 명이 피난을 와서
지냈던 곳이라하여 '구만동천'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오후 1시27분.
다시 산행로로 접어들어 채 몇걸음 옮기지 않아
한동안 너덜지대가 이어지더니 거대한 돌탑이 그 위용을 드러 낸다.
돌탑 중앙부에는 '산내면 농업경영인회'라고 음각된
표지석이 묻혀있다. 그들의 기원인 풍년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멀리 눈 앞으로는 구만폭포를 이루는 거대한 암벽이 눈에 들어 온다.
오후 1시34분.
구만폭포로 내려가는 너덜길 입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온통 기암괴석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영남 지방 지질의 특성이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백악기 유천층군의 중성 내지 산성 화산암류인바
이곳 또한 그와같은 지질인듯 하다.
오후 1시38분.
너덜지대를 내려서며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구만폭포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폭포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인파에 놀란다.
내 발 두쪽을 디디고 설 자리나 있으런지?
주위를 둘러싼 100여m에 이르는 암벽 협곡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40여m 높이의 구만폭포 주위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비가 내린지가 어려날 지나다보니 떨어져 내리는 물의 양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동서로 벌린 수직 암벽 사이로 좁은 협곡이 남북으로 뻗은
이곳 구만폭포의 형상을 어느 누군가는
마치 퉁소 속과 같은 형상이라 일컫었었다.
그리고, 저 좁은 골을 타고 강한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마치 퉁소 소리와 흡사항ㄴ 굉음이 들린다하여
일명 '퉁소폭포'라 부르기도 했었다는 얘기도 들은바 있다.
비록 떨어져 내리는 물의 양이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40여m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맑은 물은 화강암
수직 암벽을 따라 큰 물소리를 내며 귀임 없이 떨어져 내린다.
3.1초간 흐르는 폭포의 물은 비단결처럼 곱게 느껴진다.
이 사진 속 저 여인의 환희에 찬 표정이
폭포 아래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는 수많은 산행객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 준다.
나 또한 시원한 물 속에 온몸을 담그고 더위를 날려 버린다.
오후 2시6분.
시원한 물 속에 발을 담근채 점심 식사와 휴식을 끝내고
구만폭포를 떠나 하산을 시작한다.
이곳 구만폭포에서 구만산 정상까지는 대략 11.4km정도의 거리이지만
너무나 더운 날씨인데다 이곳 구만폭포까지 이르는 동안
긴 시간을 허비했기에 구만산 정상 등정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2시17분.
하산하며 구만폭포쪽을 뒤돌아본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어울릴듯한 모습이다.
가히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9만여명의 우리 난민들이
몸을 숨기고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듯 하다.
다만 6년간의 왜란 기간중 우리나라의 민간인을 포함한
총 사망자 숫자가 최소 18만명에서 최대 백만명으로 추정함을 감안할 때
9만이라는 숫자는 조금 과장된 측면은 있을듯 하다.
부끄러운 그러한 참화가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오후 2시24분.
하산길 너덜지대를 지나며 발 밑에 밟히는 날카롭게 각이진
돌무리들이 햇빛에 달귀어져 더위를 더 느끼게 한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 물이 흐르는 채 입고 있던 옷이 어느새
거의 다말랐다.
오후 2시28분.
너덜지대가 끝나고 다시 계곡변을 따르는 산행로에서
더위도 식힐겸 다시 계곡물로 뛰어들어 하산길을 이어 간다.
몸 만이 시원한게 아니라 눈 또한 즐겁다.
이처럼 자연이 빚어 놓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하며 지난다.
아름다운 비경이 숨겨진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하산 길.
아마도 금년 여름 마지막 계곡 산행이 될지도 모를
오늘 산행을 맘껏 즐기는 모습들이 주위를 스치는 산행객들의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도 완연히 느껴지는 즐겁고 행복한 하산길이다.
오후 3시27분.
계곡으로 이어진 하산길이 끝나고
산행로 입구의 구만사 앞길로 올라서는 지점에서
아쉬운 마음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다시 한 번 눈길을 돌린다.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물가에는
막바지 피서를 즐기는 피서객들로 북적인다.
산행로 입구에 자리한 자그마한 암자인 구만암에서는
오전에 듣던 녹음기에서 흘러 나오는 염불소리가 변함없이 들린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내 귀에는 소음으로 들린다.
과연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저렇게 큰 소음을 하루 종일
녹음기로 틀어대는 것을 부처님이 아신다면 좋아하실지 의문이다.
구만암 앞 계곡가에 줄지어 늘어선 밤나무 가지에는
밤송이가 탐스럽게 영글어 간다.
꽃 향기가 남자의 정액 냄새와 흡사하다하여
늦은 봄 밤꽃이 필 무렵이면 부녀자들이 외출을 삼가했다는
탐스러운 밤꽃을 바라보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러 가을로 성큼 접어드는듯 하다.
오후 4시25분.
산행이 끝난 후 주차장 옆 시원한 나무숲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오늘 동행한 산악회에사 마련해 준 시원한 묵 무침에 곁들인
막걸리 한 사발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
오후 4시49분.
녹음 우거진 구만산 남동쪽 능선의 부드러운 곡선을 바라본다.
이 뜨거운 여름철에 저 능선을 따라 구만산 정상까지 올랐다면
아마 지금쯤은 나 자신 녹초가 되어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올 가을 시간을 내어 저 능선을 따라 구만산 정상을 오른 후
다시 동쪽으로 이어지는 해발 944m인 억산을 지나
영남알프스를 따라 청도군 매전면의 1,500년된 고찰 운문사로 하산할
기회를 가져보리라 마음 먹으며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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