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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에 찾은 지리산 칠암자(七菴子) 순례길



2012년 5월28일. 부처님오신날 오전 9시6분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 입구에서 차를 내려 발걸음을 옮긴지 5분 여
해탈교를 건너 몇 걸음 옮기자 아담한 연못 너머로 오늘 순례 예정 칠암자 중 첫번 째인 실상사가 눈에 들어온다.
한달 후쯤 예쁜 연꽃을 피우기 위해 뜨거운 햇빛 아래 연잎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무척이나 분주해 보이는 실상사 경내를 바라 보며 천왕문으로 들어선다.
전통 사찰의 경우 가람 배치상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총 4개이다.
그 첫째문이 '일주문' , 둘째가 '금강문' , 셋째가 천왕문' , 네번 째 마지막 문은 '불이문'이다.
다른 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천왕문이 남아 있음을 보아서는 과거에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한다.





천왕문으로 들어서자 우측에 옛기와탑(古瓦塔)이 자리하고 있다.
주위를 한 바퀴 돌며 1,200여년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한바 있는데,
이때 땅속에서 수많은 옛 기와가 출토되었다.
비록 깨진 기왓장들이지만 통일신라 구산선문 시절부터 1,200여 년에 걸친 역사의 흔적을 소중히 보관하는 의미가 있음이다.





보광전 앞 뜰에는 좌우측인 동쪽과 서쪽에 석탑이 하나씩 서 있다.
보물 제 37호인 이 쌍둥이 3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년)
이곳에 실상사를 세우면서 함께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팔작지붕 구조의 보광전 처마는 단층이 다 벗겨진 자연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친근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처마 끝에 달린 자그마한 풍경도 소박함을 듬뿍 전해 준다.
아마 부처님도 이런 자연스럽고 소박함을 보시면 흡족해 하시리라.





물가를 따라 작은 패랭이꽃이 예쁘게 피어나는 경내의 작은 연못을 한참 바라본 후
실상사를 떠나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그리 넓지 않은 경내에는 잠시 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치르게 될 행사를 위한 준비로 부산하다.
준비로 바쁜 행사 관계자들에게는 나처럼 빨리 경내를 떠나주는 이들을 보면
"가는 손님 뒷꼭지가 예쁘다."라는 말이 생각날게다.





오전 9시13분
실상사를 떠나 산길로 들어서기 전 꽤 넓은 공터에 온통 보라색 야생화가 뒤덮여 있다.
이 야생화의 이름은 녹두루미라고도 불리우는 '갈퀴나물'이다.
어린 순은 4월경에 채취해 나물로 만들어 먹고 가축의 사료로도 쓰이며,
한방에서 류머티즘 동통·관절통·근육마비·종기의 독기·음낭습진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사할린·시베리아의 온대에서 난대에 걸쳐 분포하는 식물이다.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서며 초입에서 작은 부도탑 몇개가 나무숲에 수줍게 모여 있음이 보인다.
해발고도 320m 정도인 실상사를 벗어나며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이 이어진다.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평소 인적이 거의 없어 흔적조차 희미한 숲길을 지난다.
일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인 오늘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숲길.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자연상태의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오전 9시26분
인적이 거의 없는 숲길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우리 일행과는 반대쪽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일게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소리는 오로지 이름 모를 새소리와 옷깃을 스치는 풀잎소리 뿐이다.





오전 9시32분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던 중 잠시 진행방향 우측인 북쪽으로 하늘이 보인다.
옅은 안개가 시야를 흐려 놓는다.
이런 날씨가 오후까지 이어진다면 산행중 계속 이어질 장쾌한 지리산 주능선 조망은 기대하기 어려울듯 싶다.





인적없는 숲길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작은 암자와 암자 사이를 오갔던 수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지난 흔적은 이런 소박한 오솔길로 남아 있다.
작은 돌마다 이끼가 잔뜩 끼어 있는 상태로..
부처님오신날인 오늘은 이 소박한 오솔길도 몸살을 앓는다.





오전 9시44분
실상사를 떠난 후부터 30여분간 이어지는 오르막 숲길.
온몸에 땀이 흐름은 물론 발과 다리 근육도 조금씩 고통을 호소한다.
이 시점만 잘 견디면 비로소 다리 근육도 풀리고, 점차 몸이 가벼워짐을 산행 경험이 많은 이들은 잘 알고 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 기운을 북돋운다.





오전 9시45분
평소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사립문이 부처님오신날인 오늘은 활짝 열려 있다.
해발고도 570m 지점인 약수암에 도착했다.
오늘 순례할 암자 중 두번째 장소이다.





사립문을 들어서자 '수국'을 닮은 '불두화'가 더위에 지친 나를 반가이 맞아 준다.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佛頭花)라고 부르며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 이꽃은
무성화(無性花)로 5~6월에 피며, 꽃줄기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처음 꽃이 필 때에는 연초록색이나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누런빛으로 변한다.
이 꽃은 활짝 핀 상태이다.





비교적 근래에 지은듯한 목조 맞배지붕 건물에 '약수암'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의 용도는 요사채인듯하다.
경내에 항상 맑은 약수가 솟는 샘이 있어 약수암(藥水庵)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는 이 암자는
실상사 부속 암자이다.





요사채 우측 언덕에 서 있는 이 팔작지붕 구조의 건물은 '보광전'이다.
1724년(경종 4년) 천은스님이 처음 창건한 이 약수암은 그 후 수차례 중수한 바 있으므로
이 건물은 언제 지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보광전이라는 편액 우측에 걸린 편액의 한자로 된 글씨를 살펴보니
이곳 약수암 재건기록이 적혀 있다. 그리고 "世尊應化(세존응화)二九四八年四一月五日"로 되어있음으로 보아
1921년에 다시 지은 일이 있음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한 산행객이 굳게 닫힌 보광전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 본다.
1782년(정조 6년) 이곳 약수암에서 조성했다는 보물 제421호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화'를 찾기 위함일까?
그러나 그 목각탱화는 현재 실상사를 말사로 거느린 본 사찰인 김제 모악산 금산사의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오전 9시48분
약수암 뜰 윗쪽에 버려진듯 허물어져가는 건물 방향으로 향하며 다음 행선지인 삼불사를 향해 이동한다.
이제부터 오를 산길은 지금까지 올라온 길보다 더욱 힘이 들게다.





지난 5월초 경남 남해 설흘산 산행시 싱싱하게 피어나는 각시붓꽃을 만났었는데,
때 이른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철이 지난 때문인지 이곳의 각시붓꽃은 생기를 잃고 시들어간다.





약수암을 마지막으로 한번 뒤돌아본 후 숲길로 들어선다.
이곳 칠암자순례길을 잇는 산행의 가장 큰 장점은 식수 걱정이 없음이다.
암자를 순례하는 길이다보니 어느 암자를 가든 식수는 있게 마련이다.
이 한가지 만으로도 더운 여름날씨에서의 산행길에서는 엄청난 행운이다.





오전 10시12분
약수암을 지난 후의 산길은 울창한 숲길이다.
나무 그늘 아래서 금년 들어 처음으로 멋진 자태의 야생화를 만난다.
"천남성"이다.
땅속에 있는 알줄기가 호랑이의 발바닥을 닮아서 호장초라고도 하고,
뿌리의 모양이 둥글고 흰색이라 노인성이라고도 한다.
열매가 마치 붉은색의 옥수수처럼 보이는
이 천남성과의 식물은 예로부터 사약의 재료로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또 다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우산나물도 만난다.
새순이 올라와 잎이 채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 마치 우산을 펼친 것처럼 보여 우산나물이라 불리며,
지역에 따라서는 삿갓나물이라고도 한다.
어린 순은 나물로 많이 먹는데, 향기와 맛이 참나물과 비슷하다.
독이 없고 연해서 날로 먹을 수도 있으며, 튀김이나 무침·볶음 등에 이용한다.





오전 10시26분
약수암을 떠나면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숲길.
이제 해발고도가 700m를 훌쩍 넘어섰다.
나무숲은 점점 더 울창해진다. 온갖 풀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기 시작한다.





오전 10시56분
약수암을 떠난지 1시간 이상 경과했건만 이제 겨우 1.5km거리를 왔다.
잠시 진행 방향 좌측인 남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그러나 옅은 안개는 1시간 여 전보다 더욱 심해졌다. 산 아래 마을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이니
지리산 주능선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오전 11시35분
해발고도 570m 지점인 약수암을 떠난 후 2시간 동안 이어지던 길고 긴 오르막 숲길이 끝나며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리는 연초록 빛 불두화 무리를 만난다. 불두화가 있음은 사찰 부근임을 뜻한다.
해발고도는 990m이다.
불두화는 세가지 색을 가진다.
처음 꽃이 필 때에는 연초록색이나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누런빛으로 변한다.





오색 연등이 키 낮은 돌담 주위를 치장한 사찰 경내로 들어선다.
오늘의 세번 째 암자인 삼불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선홍빛으로 물든 모란꽃을 만난다.
꽃말이 ‘부귀’인 모란은 "목단(牡丹)"이라고도 불리는데 뿌리껍질은 소염·두통·요통·건위·지혈 등에 쓴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싯귀가 떠오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이곳 삼불사는 특이하게도 일반 사찰에 속하지 않은 조계종 직할 사찰이다.
또한 비구니 사찰로 평소에는 사립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이지만
부처님오신날인 오늘은 수많은 순례객들을 위한 점심 공양 준비로 좁은 경내가 무척 혼잡스럽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이곳에서 소박한 사찰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평소 뱃속을 비운 채 산행을 하는 나는 시원한 약수 한 사발을 얻어 마신 후
빈 물병에 약수를 가득 채운 것으로 만족한다.





지리산 주능선을 보기 위해 남쪽으로 눈을 돌려 보지만 짙은 안개가 시계를 방해한다.
하늘 높이 나르며 춤추는 꿀벌만이 눈에 들어 온다.





해발고도 990m까지 오르느라 피로에 지친 산행객들은 뱃속에 음식이 들어간 후에도 자리를 쉬이 뜨지 못한다.
포만감으로 인한 노곤함을 잠시의 휴식으로 풀어보고자 애쓴다.
시원한 산바람으로 이마의 땀을 씻어낸다.





작은 사찰 주위에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예쁜 금낭화 또한 볼거리 중 하나이다.
옛날 여자들이 지니고 다니던 주머니와 모양이 닮은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곳 금낭화는 유난히 색깔이 옅은 편이다.
연분홍 치마를 입은 새색씨의 모습으로 보인다.





비좁은 삼불사 경내 뒷편 언덕에 서 있는 이 건물에는 '산신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사찰에 따라서는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르는 '산신각(山神閣)'은
본래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많이 믿던 토착신이다.
특히 산지가 70%나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오전 11시53분
줄줄이 늘어선 금낭화의 배웅을 받으며 삼불사를 떠나 네번 째 암자를 향해 산행길을 이어간다.
다 익은 열매를 손으로 건드리면 ‘탁’ 하는 소리와 동시에 열매 껍질이 두 장으로
갈라지면서 작은 씨들이 튕겨져 나오는 금낭화는
흔히 양귀비나 현호색 등 예쁜 꽃들이 그러하듯 독성물질을 갖고 있어 날것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물에 우려낸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며,
땅속줄기에 프로토핀 성분이 들어 있어 피의 순환을 돕고 종기를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





삼불사를 떠나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은 온통 산죽군락이 터널을 이룬다.
울창한 숲속인지라 귀에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옷깃을 스치는 댓잎의 사그락 거리는 소리 뿐이다.
그 사그락 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낮 12시4분
이제 해발고도는 1,000m를 훌쩍 넘겼다.
숲이 깊어질수록 고사리,관중,고비 등 양치식물이 끝없이 이어진다.
요즈음 우리가 볼 수 있는 양치식물은 대부분 작은 것이나 화석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마하게 큰 것이 있다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석탄의 대부분은 양치식물(특히 석탄기의)이 오랜 기간 동안 탄화된 것이라고 보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양치식물이 과거에 존재했다고 한다.





간혹 이처럼 예쁜 흰 꽃도 만난다.
일명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우리나라 원산의 '함박꽃나무'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골짜기 숲속에서 잘 자라는 이 나무를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하여 나라꽃으로 여긴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낮 12시20분
해발고도 1,060m 에 위치한 '문수암(文殊庵)'에 도착했다. 오늘 네번 째 만난 암자이다.
오늘 순례길에 들리게 될 '영원사'소속(혹자는 서학원 등록 개인 사찰이라고도 한다)
암자인 이곳의 이름인 '문수암'과 같은 이름의 암자는 우리나라 전역에 수 십개소는 족히 된다.
아마도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보현보살(普賢菩薩)과 더불어 삼존불(三尊佛)의 일원이 되어 있으며,
대승(大乘)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기 때문일게다.





이곳 문수암 주변에도 수많은 금낭화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곳의 금낭화는 삼불사의 그것에 비해 유난히 색깔이 붉고 선명하다.





문수암 뒷편에는 엄청난 크기의 암반이 자리하고 있으며,
암반 아래로는 큰 동굴이 만들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이 이곳이 아닌가 짐작만 해 본다.





매주 어김없이 산행을 하는 나에게도 많은 땀을 흘리며 3시간 반 가까이 이어진 산행길은 피로를 느낀다.
"반야경(般若經"》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경권(經卷)을 손에 쥔 모습으로 조각되고 묘사되는 일이 많은 문수보살을 생각하며
해발고도 1,060m 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잠시 피로를 풀어 본다.





낮 12시28분
좁은 절벽 위 작은 터에 자리한 문수암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또 다시 오르막 산길을 오른다.
채 몇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울창한 낙엽관목들로 인해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산길은 여전히 양치식물들로 군락을 이룬다.
전세계적으로 열대와 아열대지방을 중심으로 약 2만 종 정도가 분포한다는 양치식물은
꽃이 피지 않으므로 씨가 없다. 따라서 포자로 번식한다.





낮 12시58분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이 경과된 시점에 이르러 큼지막한 돌무더기를 모아 축대를 만든 상무주암에 도착한다.
해발고도 1,150m 지점에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오늘 순례길에 다섯번 째로 만난 암자이다.





평소 사립문이 굳게 닫혀 있음은 물론 사진 촬영조차 금기시하는 이곳에도 오늘은
수많은 산행객들로 야단법석이다. 산행객들을 위한 공양에 여념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할 때 쓰는 "야단법석(野壇法席)" 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인데,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불교가 우리 생활 깊숙히 스며든 좋은 본보기이다.





인절미 몇조각에 참외와 수박 한 두 조각을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점심 끼니를 해결한다.
물론 배낭 속에는 점심으로 준비해 온 김밥이 있으나 오늘은 웬지 부처님의 고행길을
가슴만이 아닌 몸으로도 새기고 싶다.
비록 나 자신 믿는 종교는 없으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던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준
베로니카라는 여인의 손놀림도 이 순간 머릿속에 떠 오른다.





해발고도가 1,150m 에 달하는 이 첩첩산중의 작은 암자에 그리 많은 음식물을 운반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인절미 한 조각,수박 한 조각이 너무 소중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박세민 스님이 낭송하는 2분 52초 길이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통상 '반야심경'이라 칭하는 불경을 이어폰을 꽂고 한 차례 듣는다.
몸과 마음이 한창 가벼워진다.

--관자재보살행심 반야바라밀다 시조견 오온개공도......---청아한 박세민 스님의 목소리가 귓청을 울린다.





좁은 상무주암 뜰에도 모란은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다.
영원사 소속 암자인 이곳 상무주암은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약간의 수행승들과 함께 창건하고 일체의 바깥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에만 힘썼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상무주(上無住)"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란 뜻이라고 들은 바는 있으나
그 깊은 뜻은 나 자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오후 1시13분
다섯번 째로 만났던 상무주암을 떠나 서쪽으로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삼정산 정상 방향과 영원사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처럼 무더운 날씨에서는 많은 산행객들이 암자 순례길에서 벗어나 해발고도 100m 남짓을 올랐다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삼정산 정상 등정을 포기한다.
나무 숲 속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소나무를 바라 본 후 삼정산 정상을 향해 북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오르막을 오른다.





오후 1시22분
급경사 오르막을 비지 땀을 흘리며 오르자 널따란 공터에 헬기장이 마련되어 있다.
해발고도 1,210m 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서 있다.
휴대한 고도계와 비교하여 고도를 재차 확인하며 한숨 돌린다.





헬기장에서 삼정산 정상으로 가는 산행로에서 이처럼 멋진 바위를 만난다.
토질 좋은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이기에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 숲이 울창한
오늘 순례길 탐방구간에서 이와 같은 바위를 만나는 것이 드물기에 잘 생긴 바위 얼굴을 한참 바라다 본다.





오후 1시28분
삼정산 정상에 도착해서 걸음을 멈춘다.
산 아래 마을인 하정·음정·양정을 합쳐 삼정(三丁)이라고 부르는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지도엔 삼정산(三政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름 5m 정도의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부 한켠에 놓인 정상석의 고도 표기는 해발 1,182m로 되어 있다.
이 해발 고도에 대한 표기는 여러 등산지도마다 표기가 조금씩 다른데 1,261m, 1,225m 등 제각각이다.
그러나 오늘 산행을 시작하며 중요 지점마다 고도계를 확인한바 있고,
조금 전 이곳보다 10 여m 고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 헬기장의 고도가 1,210m 로 표기되었음을 감안하면
이곳의 해발고도는 1,225m 가 맞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후 1시48분
삼정산 정상을 벗어나 다음 순례 예정인 영원사로 향하는 길에서
남쪽으로 조망이 트이는 바위 절벽 위 공터가 나타난다.
길게 드러누운 고사목이 자리한 이곳에서 잠시 흐르는 땀을 닦는다.
등산지도상에는 이곳의 명칭을 표기해 놓았다. "고사목바위"라고.





천왕봉을 멀리서나마 바라 보기 위해 지리산 주능선 쪽을 응시해 보지만 안개와 구름이 그를 허락치 않는다.
다만 특이한 형태의 형제봉과 반야봉만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할 뿐이다.





오후 2시1분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이 경과되었다. 무릎과 다리에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다.
다음 순례 예정 암자인 영원사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2km정도.
해발고도는 아직 1,100m를 넘는 지점이다. 나뭇잎,풀잎의 향기가 무척 진하게 풍기는 지점이다.





오후 2시37분
끝없이 이어질듯 하던 울창한 숲길은 해발고도 1,000m 이하로 떨어지며 울창한 산죽 길이 다시 이어진다.
이제 영원사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200m. 지친 다리에 힘을 모아 걸음을 옮긴다.





오후 2시43분
반쯤 허물어진 사립문을 들어서면 영원사 경내이다.
오랜 기간 일반인들의 발길이 뜸하던 이 깊은 산골의 작은 사찰에도
근래 들어 사람의 왕래가 빈번해짐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과연 일반인의 왕래가 많아지는 현상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영원사 뜰 한켠에서 자라는 큰 나무 밑에서는 몇몇 순례객들이 지친 몸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다.
힘차게 뻗은 나뭇가지마다 무성하게 자라난 나뭇잎들이 큰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
우리 중생들의 삶을 바로 이끌어 주기 위해 노력한 석가모니의 행적을 닮은듯 싶다.





오후 2시45분
해발고도 920m 에 자리한 영원사 앞 뜰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린다.
유명한 사찰인 합천 해인사의 말사인 이곳 영원사(靈源寺)는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45)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수행처로 이름나 고승 109명이 안거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기록으로 남은 고승들의 면면을 보면 인오(印悟:1548∼1623)·유정(惟政:1544∼1610)·상언(尙彦:1707∼1791) 등의 큰스님도 열거되어 있다.

이 사진의 건물이 현존하는 인법당(因法堂)인 "두류선림(頭流禪林)"이다.
'두류(頭流)'라 함은 이곳 지리산의 옛 이름으로 백두산이 흘러내려 왔다는 의미이며,
요즈음 이름인 지리산(智異山)은 어리석은 사람도 지리산에 들어왔다 가면
지혜로운(智:지혜 지) 사람으로 변한다(異:다를 이)는 의미이다.





두류선림 앞 뜰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이름 붙인 활짝 핀 흰 불두화 무리 너머로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인다. 다만 안개와 구름이 내 손을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두류선림 건물 뒤편 경사진 언덕에서는 이처럼 예쁜 야생화가 보호 울타리 안에서 군락을 이루며 예쁘게 피어 있다.
이 꽃은 산림청에서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인 "복주머니란"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인 이 꽃은
예전에는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자생지 근처에 가면 마치 소변냄새와 같은 것이 진동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최근에는 공식 명칭을 복주머니란으로 고쳤다.





오후 3시34분
오늘 6번째로 방문했던 암자인 영원사를 떠나 한동안 이어지는 하산길은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계곡가를 따르는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 끝에
해발고도 600m 정도 지점에서 이와같은 너덜지대를 지난다.
육산인 지리산 자락에서 접하기 힘든 규모가 비교적 큰 너덜지대이다.
오래 전 윗쪽의 바위가 지형적 원인 등으로 인해 부서져 산사태를 일으킨 현장이다.





오후 3시45분
해발고도 540m 정도인 양정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는 이곳 양정마을과 아랫쪽 음정마을, 그리고 북동쪽의 하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양지말'이라고 부르는 이곳 양정(陽丁)마을은 양지정장(陽地停莊)이라고도 부른다.
장(莊)은 고려시대의 특수한 행정구역인데,
고려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농토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승려가 아닌 주민들이 전답을 소작으로 경작하여 세미를 바쳤고 어렵게 생활해 왔다 .
삼정리는 영원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어 서산(西山), 사명(四溟), 등의 대사들이 수도하였던 큰 절이었다.
따라서 부자절이었기에 절의 혜택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집단촌을 '양지정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높은 산지에서는 볼 수 없던 예쁜 찔레꽃이 해발고도 700m 이하로 내려오면서
산행로 주변을 뒤덮다시피 피어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분포하는 이 꽃은 전국의 산골짜기 냇가에서 잘 자란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약용으로 많이 쓰지만,
유행가 가사에서도 곧잘 등장하는걸 보면 예전부터 우리네 서민들과 친숙한 꽃이 아닌가 싶다.





오후 3시48분
1,4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영원사 경내를 벗어난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며 7시간 여동안 흘린 땀과 먼지를 씻어주려 한다.
준비해 간 우의를 꺼내 입고 배낭에도 우의를 씌워야 할 정도의 세친 소나기가 잠시 퍼붓다 그친다.
깊은 산골의 날씨는 언제 급변할지 모르기에 항상 대비해야함을 절감한다.





오후 4시5분
벽소령으로 향하는 도로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 귀가 차량이 기다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정남쪽에 자리한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약 45㎞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등산코스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고개로 높이 1,350m이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7시간 여에 걸쳐 6개의 암자를 순례했지만 이곳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2km남짓 떨어진
7번째 암자 도솔암을 다녀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나선 암자 순례길인고로 여유롭게 이루어진 산행길이므로
도솔암까지 다녀 오려면 2시간이 더 걸리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해발고도 1,160m에 자리한 도솔암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의미 있고 행복했던 부처님오신날의 지리산 암자순례를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위 지도상에 붉은 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암자 순례를 위한 7시간의 산행 구간이며 총 거리는 대략 15~6km 정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