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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잎을 닮은 12봉우리를 가진 청량산 산행기



2012년 6월10일 오전 11시 53분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에 자리 한 청량산 도립공원 내 선학정(仙鶴亭)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유난히 학(鶴)을 좋아했던 우리 조상들은 전국의 명소에다 이름을 빌려다 썼다.
선학정 바로 아래 계곡에 시원한 물이 흘러 넘칠 때는 아마도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신선이
그 수염을 닮은 색의 목과 다리가 길다란 학과 선문답을 주고 받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렸던 이곳 청량산은
옛 문헌에 의하면 고대 이래로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금탑봉에 자리 잡은 상청량암(上淸凉庵)과 하청량암(下淸凉庵)이 널리 알려지면서 청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청량산 중턱에 자리 한 절 이름도 청량사이다.
멀리 눈 앞으로 청량사 일주문이 보인다.





청량사(淸凉寺)는 663년(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 진다.
단청을 하지 않아 자연미가 돋보이는 청량사 일주문 위로 청량산의 36개 봉우리 중 한 자락이 눈에 들어 온다.
옛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으로
전남 영암의 월출산,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얘기가
허언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는 풍경이다.





오전 11시59분
산행 들머리인 선학정에서부터 청량사 경내까지의 길은 급경사 오르막 도로를 따르는 콘크리트 포장 길이다.
30도에 가까운 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으니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주위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온통 가쁜 숨소리들 뿐이다.





옅은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인데도 울창한 나뭇잎을 뚫고 피부에 닿는 느낌이 무척 따갑다.
부처님이 계신 사찰로 가는 길인지라 편한 마음으로 청량사를 찾은 이들은
이 더운 날씨에 청량사까지 이르는 이 급경사 오르막에서 온 몸의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덥고 힘들고 짜증나는 오르막 길이지만
눈 앞으로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홍단풍을 비롯한 화려하고 울창한 유월 한낮의 우거진 녹음이
마음 속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 준다.





낮 12시14분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시작된 급경사 오르막 길을 20여분 오르느라 온 몸은 땀으로 젖어 들었다.
다리 근육이 뻐근해지기 시작하고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눈 앞에 멋진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 일컬어지는 안심당(安心堂)이다.
안심당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으로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숨을 돌리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넉넉한 공간이다.





안심당 바로 뒤편에는 돌축대 위에 자리한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청량사의 범종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로소 경사가 완만해지며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청량사 주불전인 유리보전으로 향하는 길 좌측으로 햇빛을 역광으로 받아 어둡게 보이는
오층석탑 위로 큰 나비가 한 마리 날아 오른다.
세상의 온갖 미물을 모두 사랑하시어 살생을 금하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어서인지
저 이름 모를 나비의 비행이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망막에 각인된다.





이곳 청량사의 유리보전 앞쪽 벼랑 끝에 세워진 석탑 앞에는 기도를 드리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연꽃 형상을 이루는 이곳 청량산 12봉우리의 중심부에 자리한 청량사에서도 이 석탑이 자리한 위치가
연꽃의 수술에 해당하는 부분이기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영화 워낭소리의 오프닝 촬영지로 선택된 이유를 알듯하다.





오전 12시19분
청량사의 주불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 앞에서 잠시 멈춘다.
전면 3칸,측면 2칸으로된 아담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편액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 전해 진다.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는 말 자체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전역의 수많은 사찰을 다녀보면서도
주불전이 약사여래불을 주불로 모시는 '유리보전'은 처음 접한다.





사찰의 주불전을 일컫는 명칭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는 '대웅전/대웅보전',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적광전/비로전/화엄전'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극락전/무량수전/아미타전' 등이다.

'약사여래'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동쪽으로 '10항하사수(數)-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의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동방의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주재하는 분으로
중생의 모든 병을 치유해 주시는 분이라 한다.





낮 12시31분
청량사를 떠나 김생굴을 거쳐 능선에 오른 후 자소봉,탁필봉,연적봉 등을 거쳐 하늘다리로 향하기로 한
산행 계획을 다수 일행들의 의견에 쫓아 단축하여 하늘다리로 바로 오르는 길을 택해 산행길을 이어간다.
청량사를 떠난지 10여분이 경과하도록 급경사 오르막을 따르는 계단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난 주 다녀온 충북 단양 황정산의 경우 인공적인 시설물이 전혀 없는 곳인지라 밧줄을 타는 등
스릴 있는 구간이 많아 산행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으나,
도립공원인데다 전국적 명성 때문에 수많은 산행객이 찾는 이곳에서는 온통 인공적 구조물만 눈에 띈다.
조금은 못마땅하다.





낮 12시56분
해발고도 700m를 넘은 지점까지도 인공적 구조물인 계단은 게속 이어진다.
이처럼 녹음 짙은 숲을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그랬더라면 찾는 이들도 조금 줄어들어 자연 훼손의 방지도 되었을텐데...





오후 1시1분
서쪽 방향으로 하늘다리를 거쳐 장인봉으로 이어지는 길과
동쪽 방향으로 연적봉,자소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 지점인 뒷실고개에서 잠시 한숨돌린다.
자소봉을 거쳐 산행을 이어오는 산행객들이 급경사 내리막 철계단을 내려 온다.
청량산의 비경을 눈에 담고 온 저들이 미치도록 부러워 진다.

지난 2010년 10월 16일 산행시 청량사를 떠나 김생굴,자소봉,연적봉,탁필봉을 거쳐
이곳 뒷실고개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됐었다.
오늘은 청량사에서 이곳까지 바로 오르는데 40분이 소요되었다.
50분의 시간만 더 투자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운 마음에 2010년 가을날의 산행 기록을 되새겨 본다.

2010년 10월16일 오전 11시51분
청량산에 오르는 사람이 반드시 들린다는 '김생굴'앞에 당도했다.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고,
송(宋)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이 났었다는
통일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 [金生, 711~791] 이 10년간 서예에 매진하던 곳이라 한다.
김생굴 우측의 김생폭포에는 물에 메말라 먼지만 날리는 모습 뿐임이 아쉽다.





2010년 10월16일 오전 11시52분
김생굴 앞에서는 청량사 경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공민왕이 황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와 머물렀던 곳.
저곳 유리보전에는 종이를 녹여 만든 우리나라 유일의 약사여래상 지불(紙佛)이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해 무탈하게 보존되어 있다.
좌우로 협시불인 문수보살과 지장보살을 거느린채로..





2010년 10월16일 낮 12시32분
해발 840m 자소봉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 한다.
자소봉(紫?峰) 은 이곳 청량산의 열 두 봉우리 중 세번 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옛 이름은 菩薩峰(보살봉)이었으나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자소봉(紫?峰)이라는 뜻은 '자주빛 밝은 연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살님 계시는 하늘을 가리킴이다.





2010년 10월16일 낮 12시41분
자소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완만한 경사길로 이어지는 해발 800m대의 능선길이다.
산행로 한가운데 버티고 선 거대한 돌탑같은 형체가 앞 길을 가로 막는다.
사람이 오를 수 없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인 탁필봉이다.





2010년 10월16일 낮 12시41분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뾰족한 탑 모양인지라 사람이 오를 수는 없다.
산행로옆에 이와같은 정상석을 만들어 놓았다. '탁필봉 해발 820m'

돌봉우리의 빼어난 형상이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아 옛날에는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이 '탁(卓)'자를 더하여 '탁필봉' 이라 고치고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卓筆峯)'과 비교하였다 한다.
또한 이 봉을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2010년 10월16일 낮 12시45분
탁필봉 바로 옆에 위치한 연적봉 정상에서
지나온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면 바로 앞에 탁필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자소봉이 연이어 보인다.
해발 850m인 연적봉(硯滴峯)은 정상부가 조금 평평한 것이 흡사 연적(硯滴; 벼루의 물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 10월16일 낮 12시49분
해발고도 850m인 연적봉에서 망원렌즈로 서쪽 방향에 작게 보이는 하늘다리를 가까이 살펴 본다.
하늘다리 양쪽에는 수많은 산행객들이 이곳 청량산 제일의 명물인 하늘다리 주위의 경관에 취해
넋을 놓은 채 멈춰 있는듯하다. 빨리 저곳에 가고픈 마음에 조급증을 느낀다.





2012년 6월10일 오후 1시6분
2010년 가을의 추억에서 벗어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나무 그늘로 이동한다.
20 여명의 일행들과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비교적 긴 점심 식사 시간을 가진다.
워낙 무더운 날씨인지라 많이들 지친듯 하다.
이제 고작 두시간 남짓 이어진 산행에서 많이 지친 모습들을 보니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평소에 체력 관리들 좀 잘들 하시지....





오후 2시
매주 이어지는 나의 주말 산행 중 기록을 세울 정도로 긴 점심시간을 마친 후
자란봉과 그 바로 서쪽의 선학봉을 잇는 하늘다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또 철계단이 이어진다.
이곳 청량산에는 이와같은 철계단 또는 나무계단이 유난히 많다.
무릎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산이다.





오후 2시 9분
자란봉에 올라 서쪽의 선학봉까지 연결해 주는 이른바 하늘다리 앞에서 멋진 경치를 조망한다.
해발 800m높이에 지난 2008년 5월에 봉화군에서 만든 이 하늘다리는
최근 들어서는 청량산 최고 명물이 된 곳이다.





총공사비 21억원을 투입하여 만든 이 청량산 현수교는 길이 90m, 바닥폭 1.2m로
산악지대에 설치된 다리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길이 90m) 가장 높은 곳(해발 800m)에 설치된 현수교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는 지난 2005년 5월에 개통된 영암 월출산 구름다리가 해발 510m 높이에 54m길이였었다 한다.





총 길이 90m 의 다리를 지나며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한 기분이 든다.
중간 부분은 심하게 흔들려 재미까지 더해주는 다리를 건너며 눈에 들어오는 주변 경치도 가히 일품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 산 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李滉)이었다.
퇴계는 "청량산 육육봉(12봉우리)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다리를 건너 선학봉에서 동쪽을 바라다 본다.
멀리 연적봉,탁필봉,자소봉 등 바위 봉우리들이 점점이 눈에 들어 온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는 일본 오이타현의 '꿈의 다리(九中 '夢' 大吊橋)'가
길이 390m·높이 173m·너비 1.5m로 가장 길고 높다고 한다.
그런데 봉화군에서는 이곳 청량산 전망대인 금강대에서 명호면 관창리 일명 '늘뱅이 마을'까지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970m·높이 182m 또는
길이 500m·높이 115m(너비는 2.5m) 등 두 가지 규모를 놓고 고민 중이라 한다.
아무튼 두 가지 계획 모두 길이는 세계 최장(最長)이 되는 셈이다.





오후 2시32분
하늘다리를 떠나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한동안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지다가
해발고도 700m 가까이까지 내려온 후 다시 오늘 산행 구간 중 가장 길고 경사가 급한 오르막 계단을 만난다.
저 계단을 올라야 이곳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에 오를 수 있다.
하산을 위해서는 저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계단을 올라 장인봉 정상을 들렀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20여명의 일행 중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2/3 가량은 저 계단을 포기하고 바로 하산길로 접어들고 만다.





오후 2시40분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에 올라 북쪽으로 눈을 돌린다.
사전에서 뜻 풀이를 보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던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이 풍경으로 표현된다.
이곳 장인봉과 맞은편에 보이는 해발 894m 문명산 사이에 펼쳐지는 산골 마을들의 이름은
옥장골,장시골,독시골 등 그 이름만으로도 산골마을임을 알게 해 준다.





해발870m인 이곳 정상에 자리한 이 정상석의 글씨는 '김생'의 친필을 모아서(集子) 새긴 것이다.

옛날의 명칭은'대봉(大峰)'이었으나 주세붕이 '장인봉(丈人峯)'으로 이름하였다.
'장인(丈人)'의 '장(丈)'은 대자(大字)의 뜻을 부연한 것으로써
멀리 중국 태산(泰山)의 장악(丈嶽; 큰산)을 빗대어 본 것이라 한다.
또한 의상 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의상굴'을 연결하여 이 장인봉을 '의상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인근 동리와 산악인들은 장인봉을 의상봉으로 부르고 있다.





오후 2시58분
청량폭포가 위치한 하청량으로 하산하는 길은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더구나 이와같은 험한 바위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무릎이 부실한 이들은 조금은 고통스러워한다.
큰 바위들을 감싸고 도는 덩쿨과 나무 뿌리가 수없이 뒤엉키며 자라는 곳이다.





오후 3시15분
장인봉에서 1.2km정도 지나온 지점에서 작은 집 몇 채가 나타난다.
등산지도상에는 이곳의 지명이 '두들마'로 표기되어 있다.
'두들마'란 이름의 유래는 봉화군의 자료에도 없다.

다만, 한국 문학계의 거장으로 칭하는 작가 이문열의 고향인 경북 영양군에는
일반에 좀 알려진 '두들마을'이 있다.
그곳 두들마을의 경우 "언덕(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두들"이란 언덕,둔덕을 일컫는 경상도 지방 사투리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 돌아본다.
청량사를 연꽃처럼 두르고 늘어선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언제 또 이곳 청량산을 다시 찾을지 지금으로서는 기약하기 어렵다.
눈으로 또한 마음으로 멋진 경치를 듬뿍 담아본다.





망원렌즈로 봉우리 부분을 당겨 본다.
경북 지방의 유명산인 청송 주왕산,포항 내연산 등은 화산 폭발로 인한 화강암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이곳 청량산의 바위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풍화·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전북 진안 마이산의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을 이루는 두 봉우리인 타포니 지형과 흡사하다.
그 틈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의 억센 생명력이 경이롭다.





나무 숲 빈 공간을 가득 메우며 하얗게 피어나는 개망초 군락에는 온갖 벌과 나비들이 노닌다.
보기에 아름다운 이 꽃은 '개망초' 이다.
외래종인 이 꽃은 오래 전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점당하던 그 무렵부터 우리나라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할 때 피어난 꽃이라해서 '망초(亡草)'라는 이름을 얻은데 덧붙여
번식력이 강하다보니 산과 들 어디에서도 잘 자라는고로 '개'라는 글자 한 자를 더 얻었다.





두들마 주위 바위 기슭에는 곳곳에 벌집이 산재해 있다.
머잖아 전문 양봉업자가 아닌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저 벌통에 자연산 벌꿀이 가득 고일 것을 생각하니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내 입안에 절로 군침이 가득 고인다.
나 스스로 멋적어져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후 3시48분
4시간이 조금 못되는 산행을 끝내고 도로변에 위치한 청량폭포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바싹 마른 이름만 폭포인 청량폭포의 모습을 보니 허망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역을 극심한 가뭄으로 시달리게 만든 하늘이 원망스럽다.





물 마른 폭포 상단부를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 본다.
짙은 녹색 이끼로 뒤덮인 상단부 바위 틈으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내리는 모습이
그나마 이곳이 폭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는 한다.

청량폭포 앞을 떠나며 휴일 하루 더운 날씨 속에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걸으며 끝낸
청량산 산행을 끝내고 귀가 길에 오른다.
처음으로 이곳 청량산을 찾는 이들에게 조금 힘들더라도 꼭 자소봉을 거쳐 서쪽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을 따르는 산행을 해야 청량산의 참 맛을 알 수 있음을 알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