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산 산행을 위해 동행한 일행들과 버스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한다.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 청명유원지 입구의 햇살은 뜨겁다.
경춘선 청평역을 이용해 산행을 하는 산행객들도 아마 이곳을 산행 들머리로 삼는 경우가 많으리라.
서울에서 자라 학창생활을 보낸 이들은 아마도 대학시절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경춘선 열차를 타고
이곳 청평이나 가까운 대성리 쯤에서 여름밤을 보낸 추억들이 한 두번쯤은 있으리라.
불현듯 풋내 나던 젊은 청년 시절로 돌아가고파 진다.
유원지를 가로 질러 지난 후 명지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조종천을 지나야 호명산에 오를 수 있다.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저 다리를 통상 철판다리라 부른다.
겨울철 내린 눈이 얼어 붙어 빙판을 이룰 때나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면 무척 위험한 구간이다.
벌써 온 몸에 땀이 솟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호명산 정상까지는 2.7km 이고, 호명저수지까지는 6.3km이다.
현 지점의 해발고도가 50~60m에 불과하므로 해발고도로 600m 정도를 올라야 하는
여름 산행으로는 그리 쉽지 않은 여정이다.
개망초,애기똥풀, 금계국 등등..
흰색 작은 꽃들이 마치 할아버지의 긴 수염처럼 모여 피는 이 꽃은 큰까치수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에 분포하는 이 야생화는
어린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식물체 전체를 진주채(珍珠菜)라는 약재로 쓰는데,
생리불순·백대하·이질·인후염·유방염·타박상·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한다.
파란 하늘에 뭉게 구름이 두둥실 떠 다닌다.
비록 일기예보에선 비 예보가 없었지만
아마도 저 큰 구름들이 오후가 되며 한데 뭉쳐 소나기를 한 차례쯤 내려 줄지도 모르겠다.
밤꽃 향기는 남자의 정액 냄새와 흡사하다.
그 때문에 예전 우리네 시골에서는 밤꽃이 필 무렵에는 아녀자들 바깥 출입을 삼가는 풍습이 있었다.
더구나 과부나 혼기 찬 처녀들의 바깥 출입은 더 엄격히 통제되었다 한다.
조종천을 가로 지르는 철판다리를 건너자 마자 숲길로 들어서며
곧바로 이와같은 급경사 오르막 계단길로 들어선다.
계단을 오르자니 땀이 비 오듯 쏱아진다.
군데군데 참나무들이 한두그루씩 자라고 있지만 온통 잣나무 숲이다.
가평군이 우리나라 잣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산행 시작부터 나타나는 급경사 오르막은 산행객들의 진을 빼 놓기에 충분하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막 산길을 오른다.
호명산 정상까지 1.7km 를 남겨둔 지점에 간단한 운동기구가 비치된 휴식처가 잇다.
해발고도 140~150m 정도 되는 이곳 식수대에서 물 병에 물을 다시 가득 채우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더운 여름날의 산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식수 준비다.
급경사 오르막 길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이어진다.
시원한 가을,겨울철의 산행에 비해 속도가 너무 느리다.
뒤처지는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내 발걸음은 너무 자주 멈춰진다.
10여분 급경사 오르막 산길을 오른 후 눈 앞에는 다시 사람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계단 길이 나타난다.
조금 전 휴식처에서 출발한지 한참 지난듯 하건만 지도상 거리로는 겨우 200m를 왔을뿐이다.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은 비명을 지른다.
서로서로 격려해가며 힘든 오르막 계단길을 이어간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일행들을 독려한다.
해발고도 280m 정도인 이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청평호 맑은 물과 청평호를 가로지르는 청평댐이 보인다.
흐르는 땀을 식혀줄만한 시원한 풍경이다.
청평호 주변의 전원풍경이 아늑하다.
거울같이 잔잔한 호수 표면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유람선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해발고도 350m 정도 지점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오랜 예전부터 국가에서 직접 치수사업을 이어온 때문에
큰비가 와도 수해걱정을 않고, 가뭄이 심해도 물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 경기도 땅을 보며
자연재해는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
(*경기도는 고려·조선 시대부터 왕도와 왕실을 보위하기 위해 설치된 왕도의 외곽지역으로
토지관리,치수 등을 왕실 예산으로 심혈을 기울인 지역이므로 일반 타시,도와는 그 개념이 다른 곳이다)
이렇게 예쁜 야생화를 만나면 큰 위안을 얻는다.
보통 '나리'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참나리는 백합과 야생화로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대신 잎 밑 부분에 있는 주아가 땅에 떨어져 발아한다고 들은바 있다.
호명산 정상까지 800m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부터 비로소 오르막 경사가 조금 완만해진다.
해발고도 400m에 거의 가까운 이 지점부터는 잣나무는 보이지 않고 참나무 종류가 주를 이루는
울창한 활엽수림이다. 넓은 잎을 가진 나무들이 그늘을 쉬지 않고 만들어준다.
수많은 가지마다 자주빛 꽃망을을 일제히 터뜨린다.
나무는 주로 땔감용이며 나무껍질은 섬유로 쓰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경상북도 지방에 분포하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요즘은 전국 각지의 산에서 쉽게 눈에 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들고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발밑으로 뚝뚝 떨어질 때쯤
녹음 우거진 숲길을 뚫고 밝은 빛이 얼굴로 쏟아져 들어온다.
사람 키보다 큰 표지석에 해발고도 632.4m 라 새겨진 호명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 좌측인 북동쪽으로는 3.64km 떨어진 호명호수의 댐이 밝은색으로 보인다.
푸른 물이 가득한 호명호수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국내 최초의 양수식발전소를 위해 조성된 인공 산정(山頂) 호수인 호명호(虎鳴湖)가 저곳이다.
누군가는 저곳을 백두산 천지(天池)를 닮았다하여 천지연(天池淵)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호명산 정상에서부터 호명호수로 이어지는 능선길인 장자터고개까지의 울창한 숲길에서는
오래 전 옛날 호랑이 울음소리가 자주 들릴 정도였다 한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호랑이가 울부짖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虎鳴山)"이 되었다.
호명산 정상 부근 나무 그늘에서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3.64km 떨어진 호명호수를 향해 산길을 이어간다.
호명산 정상 공터 한켠에 '주(酒:술 주)유소"라는 팻말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는 간이 매점 앞을 지난다.
호명산 정상까지 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던 산길은 이제부터 북동쪽을 향하게 된다.
호명산 정상을 떠나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500~600m 대의 능선길은
호명산 정상까지 이어지던 산길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짙은 숲길에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걷기 편한 호젓한 산길이다.
가히 그 옛날 호랑이가 '어흥!"하고 나타났음직한 그런 한적한 길이다.
그러나 산길은 평지와는 다르다. 호명산 정상으로 향할때와 같은 급경사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 않을지라도
해발고도 500m 대로 내려갔다가 다시 600m대로 올라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짐은
여느 다른 산길과 다름이 없다.
잠시 한숨 돌리며 휴식을 취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청평호 상류 지점인 호명리 마을이 아련히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이 부근에서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과 산 이름에 '호명(虎鳴)'이란 글자를 붙여 주었을게다.
해발고도 619m 지점인 '아갈바위봉'. 일명 '기차봉'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뒤덮이며 날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진다.
'기차봉'이란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아갈바위봉'이란 이름은 봉우리의 모양이 호랑이가 입을 벌린 모양인지라
'범 아가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한다.
아갈바위봉을 지난 후 잠시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급히 우비를 꺼내 입는 등
가벼운 혼잡스러움도 있었으나 지나가는 비는 이내 그치고 편안하고 한적한 산길을 이어온 끝에
해발고도 550m 정도 되는 지점에서 이와같은 철망 사이에 만든 작은 문을 지난다.
호명호수까지 400m 를 남겨둔 지점안 이곳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 일반에게 개방되면서
저 작은 쪽문을 통과해 산행길을 이어가게 된 곳이다.
철망 사이에 만들어 놓은 쪽문을 지난 후 이어지는 숲길은 30년 가까이 사람의 통행이 없던 곳이어서인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울창한 숲길이다.
진하게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한껏 받아들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숲길이 끝나고 너른 공터가 나타나는 수리봉에는 이와같은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4시간 이상 이어진 산행길에 피로해진 다리에 휴식을 준다.
해발고도 535m 의 산 꼭대기에 위치한 면적 47만 9000㎡ 호수의 푸른 물에 산행객들의 벌어진 입이 닫힐 줄을 모른다.
우리가 종종 싯귀에서나 접하던 '거울같이 잔잔한 호수..'라는 표현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통상 산 아래에 저수지가 있게 마련인데,
산 꼭대기에서 이와같은 넓은 저수지를 만나게 됨은 누구에게나 색다른 경험이다.
저수지에서 산 동쪽 복장리에 있는 발전소와는 낙차 468m이지만,
발전용 물은 732m 길이의 수압철관로를 통해 지하발전소로 쏟아져 내렸다가
호명산을 관통하는 2,475m 길이인 방수로 터널을 거쳐 다시 청평호(하부저수지)로 보내진다.
청평호의 물은 전력소모량이 가장 적은 심야에 다시 호명저수지(상부저수지)로 끌어 올려진다.
현재 이곳 호명산 양수발전소에서는 발전기 2기에서 20만kw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가 여유롭다. 시원한 산바람이 땀을 조금씩 식혀 준다.
활짝 핀 꽃송이마다 수많은 나비와 벌이 분주히 오가며 다가오는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을 모은다.
저렇게 힘들게 모은 양식인 꿀을 싹쓸이 하다시피 빼앗아 가는 인간들이 어찌보면 잔인해 보인다.
비록 약육강식이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저 정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마치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는 고로
"천지연(天池淵)"이란 별명을 얻었다는데 귀가 시간이 임박하여 오르지 못함을 아쉬워 한다.
한밤중 싼 전력을 이용하여 호수로 양수하고 전력요금이 비싼 낮에 낙차를 이용한 발전을 한다는데
당시 이 험한 산꼭대기의 공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것가?
그 후 28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이 아름다운 호숫가를 지난 2008년부터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곳이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조형물들을 충남 청양 칠갑산 출렁다리 부근,
그리고 충북 괴산 산막이 옛길 등등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유난히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던 우리네 정서를 감안한 조형물인듯 하다.
곳곳에서 눈에 띈다.
호수 가운데 자리한 거북 모형은 "수면부유식 태양광 발전설비"이다.
거북 등에 215w 발전용량의 태양광 모듈 24개를 설치해 총발전량은 5.16 kw이다.
호숫가에 마련된 동전 투입구에 500원 동전을 넣으면 약 30초간 이와같은 분수 쇼를 연출한다.
주차장 부근 호명호숫가 북편에 자리 한 위령탑 부근에서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주말 하루 행복했던 호명산 산행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저 위령탑의 공식 명칭은 "한국전력순직사원위령탑 [韓國電力殉職社員慰靈塔] "이다. 혹자는 저 위령탑에 대해 이곳 호명호수 공사장에서 순직한 한국전력 직원을 위한 위령탑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그는 잘못이다.
한국전력에서 지난 1986년 6월에 건립한 저 위령탑에는
전국의 전력산업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약 500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호숫가 주차장까지는 하루 5~6차례 시내버스가 운행되지만 승용차 출입은 통제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체객들을 위한 관광버스는 사전 허락을 받으면 주차장까지 운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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