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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령 숲길을 지나 동해바다 아야진항으로



2012년 7월1일 일요일 오전 9시32분
이른 새벽 대전을 떠난지 거의 4시간이 지날 즈음 우리 일행 40여명이 탄 버스는
해발고도 529m 인 진부령을 지나며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내리막 경사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더니
비교적 평탄한 도로변에 40여명의 인원을 토해 놓는다.

해발고도 220 m 정도로 추정되는 46번 국도변에 붙은 "소똥령 등산로 입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내리던 비가 그쳤음은 물론 하늘 빛마저 눈 부시게 파란 쾌청한 날씨다.





오전 9시35분
아주 특이한 이름의 "소똥령 마을"은 행정 구역상으로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군 간성읍 장신2리이다.
마을 탐방을 위해 숲길로 들어서자 이내 아담한 '소똥령 구름다리'를 만난다.





구름다리는 깨끗한 물이 속삭이며 흘러 내리는 개울을 가로 지른다.
몇명 안되는 사람이 다리를 지나는 중임에도 이 사진 한 장 찍기가 무척 힘들 정도로 흔들거린다.
한 번에 20명 이상 건너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비로소 이해된다.

앞서 가는 일행의 걸음걸이를 바라보니 '횡보(橫步)' 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연이어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쓴 '횡보 염상섭'이 떠 오른다.
나 자신도 모르게 철 없는 학창시절로 돌아가 다리가 더 심하게 흔들리게 장난을 한 결과이리라.
다리를 지나는 일행들 모두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평소의 주말과 같은 높은 산을 힘들게 오르는 산행이 아니라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많은 숲길 탐방이므로 구름다리를 지난 후에도
속삭이듯 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 물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려 한다.
그러나 물 소리는 이름 모를 매미들의 합창 소리에 이내 묻혀 버린다.





오랜 가뭄 끝에 토요일인 어제 전국적으로 내린 비 덕분에 작은 계곡을 끼고 오르는 오르막 길에서
작은 바위를 타고 연이어 이루어지는 작은 물줄기를 바라보며 풍요로움을 느낀다.
지난 주 남한산성 성곽을 돌며, 또 그 전 주 경북 봉화의 청량산을 오르며 느꼈던
메마름으로 인한 삭막함을 겪지 않아도 되는 오늘이 행복하다.





오전 9시45분
구름다리에서 500m 쯤 지난 지점에서 '소똥봉우리'를 지난다.
물론 이 작은 더미가 소똥이 아닌 흙 무더기이지만 마을 이름과 연관지어 세운 팻말인듯 하다.
"소똥령"이라는 이름의 마을 이름에 대한 유래 중 하나는
원통(인제군)장에 소를 팔러 가기 위해 소똥령을 넘다가 쉬어 가는 주막에서 소가 똥을 하도 많이 누어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오전 9시58분
계속 이어진 오르막 길에서 많은 땀을 흘린 끝에 '소똥령 제1봉'이라는 이정표가 붙은 공터에서
잠시 한숨 돌리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이 지점의 해발고도는 360m 정도로 추정된다.
비록 높은 산을 오르는 힘든 산행은 아닐지라도 10여분 이상 오르막 산길을 오르다보면
땀이 흐르는게 당연한 것일테니.





오전 10시2분
'소똥령 제1봉'을 떠나 짧은 내리막 길에 연이어 오르막 길을 오르니
멋진 자태의 소나무가 반겨 주는 '소똥령 제2봉'에 도착한다.
해발고도는 제1봉보다 5m 정도 높은 365m 로 고도계에 찍힌다.





오전 10시7분
'소똥령 제2봉'을 떠나 또 다시 짧은 내리막 길에 연이어 오르막 길을 오른다.
해발고도가 제1봉과 같은 360m 인 소똥령 제3봉이다.





이곳에는 나무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자연스레 벤치에 앉는 등 휴식을 취하게 된다.
비록 높은 산을 오르는 힘든 산행은 아닐지언정 더운 여름날 오르막 길을 오르니
많은 땀이 흘러 내린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흐른 땀을 씻어 낸다.





이곳 소똥령 제3봉은 앞서 지나온 1봉이나 2봉에 비해 조망이 뛰어난 지점이다.
멋진 자태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북쪽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추억 남기기를 위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주변에서 끊이지 않는다.
또 하나 즐거운 웃음소리도 덧붙여서.





오전 10시21분
소똥령 제3봉을 떠나 이어지는 북향한 숲길은 걷기 편한 아늑한 길이다.
한동안 굴참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굴참나무는 표고버섯 재배용, 땔감 등으로 많이 사용하며 껍질의 코르크는 병마개로 쓰고,
잘게 부수어 코르크판으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요즈음은 도토리와 상수리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혼용하는 추세이지만
원래 도토리는 떡갈나무·신갈나무 등의 열매를 말함이며
상수리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의 열매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작은 물웅덩이가 있는 곳에 푯말이 세워져 있다.
"멧돼지 물 먹는 자리"라고.
설사 멧돼지가 와서 물을 먹지는 않더라도 탐방객들의 주의를 끌만한 발상이려니.





이번에는 '옛날 묘자리'라는 표지판 앞을 지난다.
석비,석부,석상 찾아 보세요! 라는 문구도 보인다.
6~7년 전부터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소똥령마을 여름 탐방축제" 를 위해서는
이런 표지판들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오전 10시34분
하늘을 찌를듯 쭉쭉 뻗은 키 큰 나무 숲을 지난다.
서로 경쟁하듯 울창하게 자라는 나무의 모습이 전나무 같기도 하고, 낙우송,낙엽송 같기도 하고..
나무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으니 그냥 눈으로 봐서 좋고 또한 내 마음에도 흡족하니 그냥 만족하기로 한다.





울창한 나무 숲이 끝나면서 작은 도랑물이 맑게 흐른다.
그 도랑가에 노랗게 피어나는 예쁜 꽃이 몇 송이 있다.
작은 잎사귀마다 물방을을 매단 이 야생화의 이름은 물봉선이다.
주로 물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피는 물봉선은 분홍색 꽃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금년 여름 들어서며 처음 만난 물봉선이 노란색인 경우는 몇년 새 처음이다.





나무 그늘 아래 수줍은듯 조용히 자라는 우산나물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삿갓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우산나물은 국화과이고,
백합과인 삿갓나물과는 분명 다른 종류임을 알 필요가 있다.
잎이 새로 나올 때 우산처럼 퍼지면서 나오므로 그 이름을 얻은 우산나물의 이린 순은 나물로 먹으며,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관절염(關節炎) 등에 약용으로 쓰인다.





오전 10시55분
어제 내린 비 때문이겠지만 수 분 전부터 시원한 물소리가 나무숲을 뚫고 전해지던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온통 나무숲과 바위로 둘러 싸인 자그마한 물 웅덩이가 나타난다.
크고 작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이 마치 폭포를 연상시키듯 물줄기를 흘려보내는 소리가 요란하다.





해발고도 120~30 m 정도에 위치한 이 작은 물 웅덩이의 명칭은 "칡소(칡沼)"이다.
"소(沼)"란 물이 고인 작은 늪,웅덩이 등을 이름이다.
주위에 덩굴성 식물인 칡덩굴이 많이 눈에 띈다.
1/13 초의 셔터 타임으로 찍어보니 비단결 같은 물 흐름이 마음을 편안히 해 준다.





이곳의 이름이 "칡소"가 된 이유는 오래 전 이곳에서는 칡덩굴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한다.
근대화 이전인 오랜 옛적에는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 등도 잡혔다고 한다.
가까운 남쪽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에는 요즈음도 연어 산란기에는 연어잡이가 성행하는 형편이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즈음에는 연어도 잡혔음직하다는 생각을 해 보며 칡소를 벗어니 걸음을 이어 간다.





오전 11시5분
또 다시 개울을 건너 간다.
칡소에 고였던 물이 칡소폭포를 만들고 그 연후에 하류로 흐르는 물이 나 자신과 동행하는 물길이다.
이번에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구름다리 마냥 멋있지는 않다.
비록 공사장에서 쓰고 남은 철판을 가져다 만든 다리지만 소박한 정성이 느껴진다.





다리 아래에는 맑은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시원한 물이 흐르고 짙은 나무 그늘이 만들어진 다리 아래 물가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행 중 몇몇이 이른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니 여유가 느껴진다.
휴일 하루 맑고 깨끗한 숲 속에서 섭취하는 음식은 아마 진시황제의 불로초 이상의 효능이 있으리라.





오전 11시9분
'자연(숲) 생태처험학습장'에 도착하여 잠시 머문다.
이곳 고성군의 "2011 자연생태 우수마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곳이다.
각종 야생화를 비롯한 잘 보존된 숲이 아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이 북위 38도를 넘어 북쪽으로 한참 올라온 지점임을 실감한다.
부근에는 수많은 참호가 남아 있다.
아마 관광객들과 생태학습을 위해 다녀가는 학생들을 위한 당국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북위 38도선 이북이니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일테니 안보교육울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엉겅퀴도 제철을 만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줄기에 가시가 전혀 없이 깨끗한 것을 보니 최근 급속도로 번지는 귀화종인 지느러미 엉겅퀴는 아닌듯 하다.
엉겅퀴의 뿌리는 약용으로 쓰며 연한 잎과 줄기는 나물로 해 먹는다.
특히 우리나라 특산종인 고려엉겅퀴를 이용한 나물이 강원도 지방의 특산물로 알려진
'곤드레나물"이다.





짙은 숲으로 어둠이 내려 앉은듯한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큰까치수염이
한 폭의 멋진 수채화를 그려 낸다.
짙은 초록빛 캔버스에 하얀 물감을 점점이 뿌려 놓은듯 흰 꽃들이 피어 난다.





큰까치수염은 어린순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식물체 전체를 진주채(珍珠菜)라는 약재로 쓰는데,
생리불순·백대하·이질·인후염·유방염·타박상·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이 사진과 위 사진을 보면 큰까치수염의 잎 겨드랑이가 붉은색이다.
그러나 비슷한 종류인 '까치수염'의 경우 잎겨드랑이에 붉은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생태체험학습장과 함께 있는 야생화 배움터를 벗어나 소똥령마을로 향하는 길은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을 끼고 이어지는 길이다.
나무 숲 사이로 한 웅큼씩 비치는 햇살을 받은 물줄기가 반짝거린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이처럼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작은 꽃이 군락을 이룬다.
이 야생화의 이름은 얄궂게도 "며느리 밑씻개" 이다.
줄기에 작은 가시가 촘촘히 박힌 이 야생화의 이름은 며느리를 미워하는 못된 시어머니로 인해 얻게되었다 한다.
오래 전 종이가 없던 시절 큰 일을 본 후 뒷처리를 풀잎으로 하던 그 시절에
며느리를 미워한 시에미가 하는 말인즉슨
"너는 저기 줄기에 가시 박힌 그 풀로 뒷처리를 해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동아시아 원산인 이 원추리 꽃은 요즈음 무척 눈에 많이 띈다.
아마도 관상용으로 많이 심기 때문인듯 하다.
어린 순을 나물로 많이 먹으며 뿌리를 이뇨,지혈제 등으로 쓰기도 하지만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뿌리를 함부로 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뿌리에는 독성이 있어 동물실험 결과 생쥐의 경우 뇌척수 병변,토끼의 경우 신장에 손상을 일으켰다 한다.





오전 11시36분
소똥령 마을 입구로 들어서서 논밭을 살펴 본다.
논물이 가득 고인 논에서 벼가 무럭무럭 자란다. 기분이 좋아진다.
수입 개방이 확산되어 모든 농산물이 수입품으로 바뀌더라도 단 한 가지
우리의 주식인 쌀만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급자족을 해야만 할 곡식이기 때문이다.
무기가 없을 경우는 맨손으로라도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밥을 먹지 못하면 우리는 멸망한다.





길가 아주 조그만 포도밭에도 포도 송이가 맺히기 시작한다.
진한 자주 빛 포도송이를 상상하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아시아 서부의 흑해연안과 카프카 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진 포도를 우리가 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약 70년 전 경기도 수원 지방에서 처음 포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내 어린 시절에도 포도는
매우 귀한 과일 중 하나였다.
물론 고려시대의 문헌에서 포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걸 보면 아마 그 당시에도
왕족이나 귀족들은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게다.





예전에는 산지의 냇가 등에서나 볼 수 있던 비비추가 요즈음은 주택가에서도 자주 보게된다.
아마도 원예종이 많이 보급되어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은듯 하다.
크고 흰 꽃이 피는 옥잠화와 생김새는 비슷하나 비비추는 크기가 작고 보라색을 띈다.
산행 중 만나는 비비추는 무척 예뻐 보이는데 주택가에서 만나는 비비추에 대한 느낌은 호박꽃과 진배 없다.
'희소성'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7월의 따가운 햇살 속에서 옥수수도 무럭무럭 자란다.
요즈음은 옥수수 수염 하나에 옥수수 알갱이가 하나씩 달린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안다.
언젠가 TV방송에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미의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한 안데스산맥에서 재배되던 옥수수가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진 후
전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16세기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이름도 중국음의 "위수수[玉蜀黍]" 에서 유래하여 한자의 우리식 발음인 옥수수가 되었다 한다.
이 옥수수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공헌이 큰 식량자원 중 하나이다.
어쨌든 이 옥수수가 전 세계로 전래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엄청난 식량난에 시달렸을 것이다.





마을 한켠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돌배나무도 자란다.
그만큼 이 마을이 오랜 기간동안 외부와 접촉이 적은 오지 마을로 지내왔음을 뜻하는 대목이다.
현대의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은 야생종을 개량한 것이 많다.
개복숭아,개살구 처럼 돌배나무도 우리나라 원산으로 산지에서 주로 자란다.
호사가들은 이 돌배나무를 가꾸어 그 열매로 돌배 술을 담그기도 한다.





돌담장 옆에서는 술패랭이꽃도 탐스럽게 자란다.
우리나라 원산의 야생화인 이꽃은 옛 문헌에 의하면 온 천지에 많이 피어나 누구나 이 꽃을 좋아하여
낙양화(洛陽花)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며 씨앗을 구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술패랭이 역시 요즈음은 원예종이 많이 개발되어 그 희소성을 잃어가고 있다.





오전 11시48분
소똥령마을 중심부에는 농촌체험관 건물이 마련되어 있다.
머잖아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어린 우리의 미래들이 저곳에서 농촌을 체험하고 가게될게다.
이처럼 아름다운 환경속에서 그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갔으면 한다.

오랜 옛날부터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나 봇짐장수들이 오랜 기간 이 마을 뒤 작은 고개를 넘다보니 자연적으로 길이 패여 생긴 소똥 모양의 봉우리를 두고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또 다른 소똥령 이름의 유래도 알고 돌아갔으면 싶다.





요즈음은 산에서 찾기 힘든 층층이꽃을 소똥령마을에서 만나니 무척 반갑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옴약으로 쓰이는 이 야생화는 꽃이 줄기를 따라 층을 이루듯 피어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특히 이 층층이꽃은 꿀풀과의 꽃답게 꿀이 많아 유난히 벌과 나비가 많이 모이는 꽃이다.





앙증맞은 작은 개복숭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개복숭아 나무도 싱싱하게 자란다.
십 수년전까지만해도 사람은 물론 지나가던 똥개조차 쳐다보지도 않던 "개복숭아".
그놈의 웰빙 바람 때문에 요즈음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보다 더 각광받는다.
"개복승아 팔자 시간문제다" 라는 속담이 생길 것도 같다.
특히 개복숭아는 유기산 및 알코올류, 펙틴 등 섬유소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S 라인 필등신 미녀들이 더 좋아한다니.. 개복숭아 팔자가 너무 부럽다.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군의 작은 마을인 이곳 소똥령마을은 해발고도가 100m 남짓한 곳이지만
피부로 느끼는 공기의 청량감이나 주변 분위기는 마치 태백산 주변 고산지대에 와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마도 지리적인 여건상 외지인에게 개방되지 않아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때문이리라..
제발 이곳에 만은 연예인들이 시시덕거리며 싸돌아다니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그런 부류들이
찾는 일 없이 오래오래 순수하게 보전되었으면 싶다.





낮 12시26분
3시간에 걸친 소똥령길을 거쳐 소똥령마을로 이어진 탐방길을 끝내고 46번국도변의
장신1리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릴 귀가차량 쪽으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개울을 건너 국도변으로 나간다.
32가구에 100명이 채 안되는 인구를 가진 소똥령마을이 오래오래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기를 바라지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32가구 중 농가는 절반인 16가구이고 나머지는 팬션을 운영하는 등 비농가이기 때문이다.





오후 1시45분
소똥령마을 탐방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바닷가에 위치한
관동팔경 중 하나로 알려진 청간정 주차장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청간역의 정자로 지어졌다는 건물로 전해지는 점이나
1520년(중종 15년 ) 간성군수 최청(崔淸)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정자는 아마도 당시 파발마를 모아두었던 역의 중심이었던듯 싶다.
팔작지붕 건물 구조인 정자의 현판에 쓰인 "청간정(淸澗亭)" 글씨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쓴 것이라 한다.





청간정 정자 2층에 올라서니 푸른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남쪽으로 천진해변 백사장이 길게 이어진다.
이곳이 북위 38도 이북으로 얼마 전까지 해안초소가 길게 이어져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어서인지
아직 철거되지 않은 철조망이 남아 있다.





좌측인 북쪽으로는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청간리 해변이 펼쳐진다.
저 아래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아야진항까지 해변을 따라 걷기로 하고 청간정을 떠난다.





청간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바닷가 풀숲에서 무척 소박해 보이는 꽃 한송이를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팔꽃이라고 생각하는 이 꽃은 '갯메꽃"이라는 야생화이다.
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팔꽃과는 구분이 된다.
우리나라 각처의 해안가에서 잘 자라는 덩굴성 풀인 이 꽃은 산이나 들에서 피는 '메꽃'과 흡사하다.
다만 이꽃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메꽃인지라 '갯'자를 덧붙여 그 이름을 얻었다.





한동안 옅은 구름으로 뒤덮였던 하늘이었지만
바닷가로 나가 해변산책을 시작하는 중 금방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평소 큰 죄를 짓지 않고 살면 하늘이 이런 복을 내리시는구나 하는 망상도 잠시 해 본다.





큰 바람이 불지 않는한 항상 잔잔하기만한 남해 바다와 달리
동해바다가 좋은 점은 언제 오더라도 해안가나 바위에 부딪치는 흰 포말을 볼 수 있음이다.
큰 파도가 밀려 들어와 바닷가의 바위를 덮친 후 그 바위 위로 솟아 오르는 흰 포말을 보는 순간

몸과 마음의 피로가 일시에 사라지는듯 하다. 아마도 근심걱정을 저 흰 포말이 씻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후 2시9분
7월 첫날인 여름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가장 강하게 내리 쬐는 시간이건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흰 등대를 바라보는 그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파 진다.
아마도 저 여인네들의 마음속 나이는 하나같이 이팔청춘 여고생의 그 나이일 것이다.
하긴 나 또한 10대 소년 시절 그 마음으로 지금 저 등대를 바라본다.





오후 2시15분
마음 같아서는 흰 구름이 점점이 박힌 높고 파란 하늘과 푸르다 못해 쪽빛으로 빛나는 맑고 깨끗한 바다를 바라보며
바위에 부서지는 흰 포말을 보는 것으로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뱃속에서는 그를 용납치 않는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건 잠시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아야진항 해변가의 횟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옆 자리에 앉은 다른 일행은 생선회를 주로 한 식단을 주문했지만 나는 "삼식이 매운탕"을 주문했다.
우럭을 비롯한 대부분의 어종이 양식인 반면 값이 좀 비싸더라도 '삼식이'는 자연산이다.
삼식이 매운탕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그 맛에 반하게된다.
기름기가 거의 없는 담백한 국물맛과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듯한 육질의 부드러움 때문이다.





'삼식이'라는 물고기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삼식이 사진을 참고로 첨부한다.
'삼식이'의 표준어는 '삼세기'이다.
쏨뱅이목의 어류인 삼세기는 아귀,메기 등과 같이 살이 연하고 흉측하게 생겨
옛날에는 잡혀도 그냥 내버렸다 한다. 그러나 오늘은 생선류 중에서도 고가의 어종이 되었다.
본래 지방 사투리로 강원도에서는 삼숙이, 전라도에서는 삼식이로 불렸었지만
요즈음은 음식맛 좋기로 이름난 전라도 사투리인 '삼식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통용된다.
못생기고 바보같다는 놀림말로 쓰이는 '삼식이'가 여기서 유래했다.





옆자리의 또 다른 일행들과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무척 향기가 좋고 맛이 있는 이 멍게는 일반적으로 접하는 그 멍게가 아니다.
일반적인 멍게는 그 색깔이 주황색인데 반해 이 멍게는 선홍색이다.
선홍색인 이 멍게의 이름은 '비단멍게'이다.





횟집 주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자연산 멍게 두 종류를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왼쪽의 돌기가 많은 멍게는 우리가 보통 먹는 일반 멍게이고, 우측의 매끈한 것이 비단멍게이다.
물론 정식 명칭은 '붉은멍게'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 특산물이므로
강원도 지방에서 쓰는 비단멍게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

영어로도 일반 멍게는 "Sea squirt"이지만 이 비단멍게는 "Sea peach"
즉, ‘바다의 복숭아 이다. 옛날에는 신선들만 먹었다는 복숭아를 먹는다.
알고 나니 비단멍게의 맛이 더욱 뛰어나게 느껴진다.
아마도 세상 만물은 아는 만큼 보이고, 또 아는 만큼 느끼는 모양이다





오후 3시34분
진시황제 부럽지 않은 멋진 오찬을 마친 후 아야진항 바닷가로 나가 여유로운 산책을 시작한다.
"아야진" 이라는 이름이 무척 생소하다.
그 이름의 유래는 이곳 아야진에서 옆 동네인 반암리로 넘어가는 산(山)의 생긴 모양이 한자어인 잇기'야(也)'자처럼 생긴 연유로 '야진(也津)" 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
마을의 단합을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우리라는 뜻을 포함하여 "아야진(我也津)"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며칠 째 장마비와 강한 바람으로 대부분의 어선이 조업을 나가지 못한 어항 한 귀퉁이에서
몇몇 사람이 하역작업을 하기에 가까이 가서 내용을 살핀다.
일반적인 새우는 어두운 회색빛을 띄다가 굽거나 삶으면 붉은색으로 변하는데
이 새우는 살아 있음에도 색깔이 붉다.
이름이 '붉은새우'라고 한다. 이곳 동해안 특산품이란다.
조금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나 1kg에 3만원이라는 비싼값에 주춤하던 나.
또 다른 어부의 입에서 튀어나온 물량이 달릴 때는 1kg에 8만원도 한다는 말에 생각을 접었다.





멀리 청학정이 있는 북쪽 해변을 바라본다. 소나무숲에 가려 그 자태는 볼 수 없다.
청간정만큼 유명세를 탄 곳은 아니지만 멋진 해송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치는
청간정의 그것을 몇배는 능가하는 곳. 시간 관계상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파도치는 해안가 바위 절벽에는 군초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의 위도상의 위치가 북위 38도27분이니 북한 땅이 지척이다.
전자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군사적으로 막중한 역할을 하던 지점이다.
하루 속히 평화로운 날이 찾아 오기만을 고대한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 바위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냥 이 자리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눈에 보이는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귓속으로 스며드는 소리는 파도 소리 뿐이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동해의 바닷물은 물속까지 훤히 비친다.
7월에 접어 들었건만 바닷물은 아직 차다.
바닷물 속에 잠시 손을 넣어보니 뼛속까지 시려 오는듯하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의 아야진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나 한동안 소외되었던 곳이다.
한때 양미리, 복어, 도루묵, 꽁치 등이 많이 잡히던 이곳.
다행스럽게도 지난 2011년말 이 빨간 등대가 세워진 길이 250m 의 북편 방파제가 완공되어
영세 어민들에게 도움울 줄 수 있을 것 같다.





오후 4시4분
지난 며칠간 장맛비와 강풍으로 조업을 하지 못한 어선들이 대기하고 있는 조용한 아야진항을
바다낚시꾼들을 태운 작은 배가 벗어난다. 서로 손을 흔들어 안전 항해를 기원한다.

세계 어느곳을 가더라도 항구로 몰아치는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의 등대 색깔은 통일되어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방파제 끝에는 붉은색 등대가 서 있고 밤에는 붉은색 등이 켜진다.
저 낚시배가 지나는 방파제 끝의 등대는 흰색이며 밤이면 녹색등이 켜진다.
비바람 몰아치는 깜깜한 밤중에도 붉은색 등대를 우측에 그리고 흰색 등대를 좌측에 끼고
항해를 하면 눈 감고도 안전한 항구로 대피할 수 있다.





오후 4시30분
이제 휴일 하루 여정을 끝내고 아야진항을 떠나 4시간이 걸리는 귀가 길에 올라야 한다.
많은 어선들이 조업준비에 한창이다.
눈 앞의 이 어선도 오늘 저녁이나 혹은 내일 새벽 출항을 위해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어선 중앙부에 실린 물품을 망원렌즈로 가까이 살펴 본다.
어선에 실린 조업 준비 물품만 보아도 무슨 어종을 잡으러 나갈 배인지 알 수 있다.
이 배는 문어 낚시를 하러 내일 새벽에 출항할 어선이다.
통발을 이용하여 문어를 잡는 남해안과 달리 통발이 허용되지 않는 이곳 어선들은 낚시로 문어를 잡는다.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만든 가짜 미끼를 이용하여 문어를 낚아 올린다.

저 작은 어선의 검게 탄 주름진 얼굴의 어부 얼굴에 만선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유익하고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 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