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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을 거쳐 다랭이마을로 이어진 남해 설흘산 산행기



 

2012년 5월6일. 일요일 오전 11시47분
응봉산을 거쳐 설흘산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위해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선구리 마을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임을 강조할 필요도 없을만큼 푸르고 깨끗한 바다가
때 이른 낮 더위로 인한 열기를 식혀 준다.





등산지도상에 어김없이 주요 지형지물로 표기되는 마을 입구의 보호수 옆을 지난다.
수령이 350 여년이며 높이는 대략 14~5m 정도 되는 팽나무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인 팽나무는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뿌리가 튼튼하여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고 내염성도 강해 해안가에서도 잘 자란다.





산행로 입구에서 수줍은듯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는 작고 예쁜 야생화를 만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이 야생화의 이름은 "산괴불주머니'이다.
'괴불주머니'란 예전 우리네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색 헝겊에 솜을 넣고 수를 놓아 예쁘게 만든 조그만 노리개로 어린이들이 주머니에 차고 다닌 것이라 한다.





바다 서쪽 너머로 며칠 후부터 엑스포가 개최될 여수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 이어진 섬은 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다.





여수 쪽을 망원렌즈로 당겨 보면 여수시내에서 돌산도로 이어지는 돌산대교가 선명히 보인다.





선구리 마을 북쪽의 사촌해수욕장의 물 빛깔이 쪽빛으로 빛난다.
가까이 있으면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느낌을 주는 바다.바다.바다.





눈 아래로 남해군에서 지난 2011년 말까지 입주를 목표로 조성했던 '향촌전원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총 면적 2만 1764㎡(약 6,500여평)의 저 전원마을은 총 21필지로 되어 있으며
분양가는 ㎡당 2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양이 다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오전 11시56분
산행로에서 몇발짝 벗어난 나무 숲속 큰 암반에 이처럼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는 작은 굴이 있다.
오래 전 누군가 이곳에 기거했던 것일까?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야생돌물도 서식을 할만한 여건으로 여겨 진다.





굴이 만들어져 있는 암반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자
산행로 옆으로 한동안 돌로 쌓은 낮은 담이 10여m 정도 이어진다.
아마도 오래 전 누군가가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거나 아니면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던듯 싶다.
이런 류의 흔적은 우리나라 남해안의 많은 섬에서 쉽게 눈에 띄는 흔적이다.
농어촌의 인구 격감을 이곳에서도 실감한다.





낮 12시11분
40여명의 우리 일행 외에 한 두팀 정도의 산행객들뿐인지라 비교적 한산한 산길이지만
이처럼 바위가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에서는 잠시 정체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남자들에 비해 다리가 짧은 여성들은 큰 바위를 오르내리는데 힘겨워 한다.





낮 12시35분
산에 오르는 일은 우리네 인생 살이와 흡사하다.
항상 힘든 바윗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행 기점에서 1km정도를 지난 지점이니 응봉산 정상까지는 대략 1.5km 정도 남은 지점
해발고도는 250m 정도 된다. 잠시 이처럼 편안한 숲길이 이어진다.
녹음 우거진 숲길은 따가운 봄 햇살을 충분히 막아주고도 남음이 있다.





숲길과 바윗길이 번갈아 나오는 지루하지 않은 산행길이다.
각양각색의 바위 너머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간간히 보이는 풍경.
벌,나비들도 하늘 높이 나르며 춤을 춘다. 봄은 이미 깊어져 여름으로 다가간다.





우리나라 원산으로 내음성과 내한성이 강하고 내염성, 내공해성도 강해 어디서든 잘 자라는
병꽃나무가 활짝 핀 붉은 얼굴로 산행객들을 반가이 맞아 준다.
꽃의 모양이 병처럼 생겨 얻은 이름으로 공원의 관상수로 많이 심으며
어떤 여건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이기에 조림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낮 12시51분
이곳 응봉산 산행구간 중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바위 능선이 눈 앞에 보인다.
누군가는 저곳 바위 능선을 공룡능선이라 부르기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낮 12시55분
고도계의 숫자가 해발고도 390m임을 알려주는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눈을 돌린다.
선구리 마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바다위에는 코고 작은 배들이 수많은 점을 찍어 놓은 모습이다.
그 너머로 길게 드러 누운듯 펼쳐져 있는 돌산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 1시7분
양쪽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인 좁은 바위 능선을 따라 동쪽 방향인 응봉산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나아간다.
조금 전 지나온 뒤쪽을 돌아본다.
아찔하지만 이곳에 오르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깎아지른듯 뾰족한 바위가 많은 곳에는 철제 계단 또는 목재로 안전시설을 갖추어 놓은 고로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나 비 내리는 날에는 안전을 위해
산행을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바위가 많은 구간이다.





해발고도 400m 정도의 좁은 바위 능선에 수많은 염소 배설물이 눈에 띈다.
사람이 오르기 힘든 높은 바위에도 거침 없이 올라감은 물론 개체 수가 많아지면
바다 건너 다른 섬으로 헤엄을 쳐서 이동하는 염소,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새삼 일깨워 주는 현장이다.





오후 1시24분
지나치게 좁은 바위 능선에는 사진에서처럼 두 줄로 안전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불과 수년 전 설치한 이 안전시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이곳에서 심심찮게 안전사고가 일어 났었다고 한다.






이제 뒤돌아 보기를 멈추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인 동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까마귀 떼가 심심찮게 배회하는 하늘 아래 가까이 응봉산 정상부가 보인다.
그 너머 좌측으로 설흘산이 보이고, 바다 건너 멀리 금산 정상부도 눈에 들어온다.





진행 방향 왼쪽인 북쪽으로는 자그마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임포리의 진깨모,임포,운암 마을들이다.
마을 뒷편으로는 해발 300여m 대의 고동산,망기산,장등산의 능선이 이어진다.





마을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층층이 계단을 이룬 다랭이 논에는 어김없이 남해 특산품인 마늘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남해는 임야면적이 68%로 농지는 23%에 불과하다.
지난 해 말 남해군의 인구는 49,000 여명이지만 한창 때인 1964년에 13만7천명에 달하는 사람이 살았던 남해는
이렇게 한 뼘의 산이라도 농지로 바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자연을 이기고 살아온 남해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오후 1시44분
바위 능선이 끝나는 지점이다. 이제 응봉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대략 500m 남짓.
그러나 해발고도 400m 대의 바위 능선이 끝나면서 다시 해발고도 300m 정도 지점까지 내려간 후
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야 응봉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지나온 능선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본 후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오후 2시
해발고도 472m인 응봉산 정상에 발을 딛는다.
지난 2010년 12월에 이곳에서 보았던 막걸리를 파는 상인이 오늘도 진을 치고 있다.
산행 중 음주는 극히 위험한 일이건만 과연 이 좁은 정상부에서 술을 팔아도 되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응봉산 정상석 뒤편으로 보이는 바다는 아름답기로 알려진 앵강만이고,
그 뒤로 설흘산과 바다 건너 금산이 눈에 들어온다.
응봉산은 "매봉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鷹峰山(응봉산)" 의 "鷹(응)"이라는 글자가 '매,송골매'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동쪽으로 멀리 잠시 후 올라야할 설흘산 정상부가 보인다.
앵강만을 좌측으로 두고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사면이 쪽빛 바다로 둘러싸인 경남 남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히는 앵강만은
마치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형상의 남해도 아래쪽에 있다.
이곳 응봉산 정상에서의 남은 거리는 약 2.02km이다.





2km 남짓 떨어진 설흘산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 뒤편 좌측으로 보이는 암반으로 된 봉우리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해발고도 681m인 금산 정상부이다.





설흘산 정상부만 좀더 세밀히 당겨 가까이 살펴 본다.
정상부의 봉수대 위에 올라선 산행객 몇 사람이 보인다.
매주 산행시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이 순간 저곳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게 여겨진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조금 조급함이 느껴진다.





오후 2시8분
설흘산 정상에 빨리 오르고픈 급한 마음을 잠시 달랠 수 있게 해 준 이 나비가 고맙다.
사람의 인기척만 느껴도 도망가기 바쁜 겁쟁이 나비가 어쩐 일인지 휴식 중인 내 옆에 사뿐히 앉는다.
나비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네발나비의 한 종류가 아닌가 싶다.





오후 2시22분
해발고도 300m정도 지점까지 내려온 후 설흘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이처럼 걷기 편한 평탄한 숲길이다.
마치 지금 땀 흘리는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풀벌레 소리 정겨운 숲속을 걷는 그런 느낌이다.





오후 2시52분
설흘산 정상까지 0.6km를 남겨둔 지점에서 나뭇잎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설흘산 봉수대를 향해
지친 다리를 이끌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해발고도 310m 지점에서 다시 481m 높이까지 올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산 북쪽 사면을 따라 오르는 길인지라 비교적 시원한 구간이다.





오후 3시8분
정상부를 봉수대가 지키고 있는 설흘산 정상에 발을 내 딛는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봉수대는 폭6m, 너비 7m로 사각형이다.
왜구의 침입과 재난을 알리기 위해 이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남해현읍지》에 의하면 남해 금산과
전남 돌산도 봉수대와 서로 연락하였다고 한다.





3시간 여전 출발한 서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까마득히 멀리 마치 칼날처럼 보이는 바위 능선 너머로 옅은 안개에 쌓인 남해바다가 희미하게 보인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려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중앙부인 남해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앵강만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앵강만은 꾀꼬리 앵(鶯)자에 물 강(江)자를 쓰고 있지만 어원은 명확치 않다.
꾀꼬리가 많이 울어 눈물이 강을 이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또 주변에 있는 곳골이 꾀꼬리의 순 우리말인 곳고리에서 유래됐지만
일제가 민족정기를 흐리기 위해 한자식으로 바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앵강만의 입구쪽인 위 사진의 우측 부분인 남쪽으로도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꾀꼬리의 눈물바다’로 불리는 앵강만이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인 노도를 품에 안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이 바로 노(櫓)처럼 생겨서 노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섬이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조선조 숙종 때 귀양살이를 한 섬이 바로 이곳이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통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뛰어난 곳.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다.
오랫동안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황홀한 경치에 심취한다.





지난 2009년 2월14일 이곳에 올랐을 때는 저 정상석이 봉수대 아래 계단 입구에 놓여 있었는데,
2010년 12월12일에 이곳을 올랐을 때는 지금 이자리에 있었다.
이 작은 정상석은 1년 반 전과 다름없이 나를 반겨준다.
네가 변심 잘 하는 사람보다 낫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009년 2월14일 오후 2시44분에 찍은 사진이다.
정상석이 봉수대 아래 계단 옆에 서 있다.





이곳 설흘산을 수차례 올랐지만 항상 겨울철에 왔던 때문인지
이곳 봉수대 부근은 항상 산행객들로 붐볐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놀이를 떠난 때문일까?
사람이 적은 한적함 때문에 주위 조망을 여유롭게 즐기는 행운도 누려본다.





남서쪽으로는 산행이 끝난 후 귀가할 때 탈 차량이 기다리는 가천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위 능선으로 이루어진 산줄기가 삼면을 둘러싼 아늑한 곳이다.
찬바람을 받지 않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음직한 따뜻한 남쪽나라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가까이 살펴 본다. 다랭이논 때문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된 가천마을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잠시 후 하산을 하게되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맑고 푸른 바닷가까지 발걸음을 옮길 생각을 해 보니 너무 행복해 지는 순간이다.
산과 바다의 참맛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오후 3시44분
설흘산 정상을 떠나 산행을 끝낸 후 가천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1024번 지방도로가에서 휴식을 취한다.
근면한 농민들은 좁은 경지에서도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사진에서처럼 층층이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논에서
남해의 주요 생산물인 마늘과 쌀을 이모작하는 방법으로 토지 이용률을 높여 왔다.
주요 농산물은 마늘, 쌀, 고구마 등인데
남해는 마늘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 끝 바닷가에 가까운 곳에 이른바 암수바위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붐빈다.
이 사진은 지난 해인 2011년 8월6일 오후에 찍은 사진으로
다랭이논과 더불어 이곳 가천마을의 또 다른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된 암수바위의 모습이다.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23일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푸짐한 제를 올리고 있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다.

이 암수바위는 기묘하게도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가천 마을의 바닷가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요즈음 시장 야채가게에 들리면 입맛을 돋구는 각종 산나물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그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품목이 다름 아닌 마늘쫑이다.
따가운 봄볕을 이겨내며 마늘쫑을 채취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후 4시29분
산행 후 피로를 휴식으로 달랜 후 남해를 떠나 귀가길에 오른다.

처음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 7년(687)인 남해.
이런 남해군은 고려 중엽부터 조선 중엽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왜구들의 끈질긴 침공과 약탈을 받았지만, 스스로의 끈질긴 항쟁으로 땅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이태리의 시칠리섬이나 프랑스의 콜시카섬 같은
섬 사람들만의 단결력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근면과 단결 없이 지금 보이는 이런 다랭이논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오후 6시3분
귀가 도중 삼천포항에서 잠시 머물며 시원한 바닷 바람에 몸을 맡긴다.
매년 십여차례씩 들리는 곳이지만 바다 풍경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고성군 하이면(下二面) 덕호리(德湖里)'이면서
'삼천포화력발전소'라는 이름을 가진 저 발전소는 굴뚝 숫자만으로 발전기가 몇기인지 얘기해서는 안된다.
발전설비는 총 6기이며, 석탄을 연료로하므로 완벽한 공해방지 시설을 갖춘 굴뚝이 3개이다.





해안도로변 언덕에 만들어져 있던 태풍,해일 등에 대비한 대피소의 초라한 모습이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이처럼 산뜻하게 옷을 갈아 입었다.
파란 하늘에 솜처럼 퍼진 구름 덩이와 풍차 모양의 빨간 지붕이 너무 잘 어울린다.





오후 6시15분
늦은 오후의 태양은 이제 삼천포대교 너머로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가 모는 태양마차의 속도가 빨라서 일까?태양마차의 빠른 속도를 상상하며 휴일 하루 행복했던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이곳 삼천포항에서 남해군 창선면으로 연결되는 공식명칭 "창선삼천포대교"는
총 연장 3.4㎞, 너비 14.5m이며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되었다.
지금 보이는 다리인 삼천포대교(길이 436m)를 비롯하여 초양대교(길이 200m),
늑도교(길이 340m), 창선대교(길이 150m), 단항교(길이 340m) 등 4개의 섬을 잇는
5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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