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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리가 아름다운 경북 봉화 청량산을 찾아서

2010년 10월 16일 토요일 오전 11시7분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에 자리한
청량골 계곡가의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산행 준비를 한다.
물가의 자그마한 정자인 선학정(仙鶴亭)앞의
단풍나무는 붉은 빛으로 가을이 깊어감을 일깨워준다.

오전 11시9분
단청을 하지 않아 자연미가 돋보이는 청량사 일주문 위로 청량산 자락이 눈에 들어 온다.
옛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으로 전남 영암의 월출산,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얘기가
허언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는 풍경이다.

오전 11시26분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시작된 급경사 오르막 도로를
20여분 오르느라 다리 근육이 뻐근해지기 시작하고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눈 앞에 돌축대 위에 자리한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청량사의 범종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로소 경사가 완만해지며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오전 11시31분
청량사의 주불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 앞에서 잠시 멈춘다.
전면 3칸,측면 2칸으로된 아담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편액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 전해 진다.

우리나라 전역의 수많은 사찰을 다녀보면서도
주불전이 약사여래불을 주불로 모시는 '유리보전'은 처음 접한다.
참고로 사찰의 주불전을 일컫는 명칭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는 '대웅전/대웅보전',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적광전/비로전/화엄전'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극락전/무량수전/아미타전' 등이다.

'약사여래'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동쪽으로 '10항하사수(數)-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의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동방의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주재하는 분으로
중생의 모든 병을 치유해 주시는 분이라 한다.

유리보전 앞쪽 벼랑 끝에 세워진 석탑 앞에는 기도를 드리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연꽃 형상을 이루는 이곳 청량산 12봉우리의 중심부에 자리한
창량사에서도 이 석탑이 자리한 위치가
연꽃의 수술에 해당하는 부분이기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영화 워낭소리의 오프닝 촬영지로 선택된 이유를 알듯하다.

오전 11시38분
청량사 경내를 벗어나 잠시 '산꾼의집'앞을 거쳐 산행을 하기로 한다.
대한민국 달마도 명장 1호라고들 일컫는
구름처럼 살며 바람처럼 떠도는 주인 같은 나그네,
나그네 같은 주인 이대실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입구에 "오고 가고 아픈 다리 약차 한 잔 그냥 들고 쉬었다가 가시구려"
라는 글귀가 씌어 있는 곳.
조난자가 생기면 달려가 구하고 심심하면 도자기 굽고 달마 한 폭 치다가
신명나면 꽹과리 치며 소리하고 춤추는 그런 산꾼이 사는 집이다.

오전 11시51분.
이곳 청량산에 오르는 사람이 반드시 들린다는 '김생굴'앞에 당도했다.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고,
송(宋)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이 났었다는
통일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 [金生, 711~791] 이 10년간
서예에 매진하던 곳이라 한다.
김생굴 우측의 김생폭포에는 물에 메말라 먼지만 날리는 모습 뿐임이 아쉽다.

오전 11시53분
김생굴을 떠나 자소봉으로 향하는 도중 나무숲 사이로 멀리 청량사를 바라본다.
눈이 시리게 푸르른 하늘에서 농담을 달리하는 구름과 맞닿은 청량사.
풍수지리상 삼각우총의 전설이 깃든 연꽃의 꽃술에다
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는 조선시대의 억불숭유 정책을 비롯해
수많은 환란과 풍상을 견디며 오늘까지 이어온 곳이다.

공민왕이 황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와 머물렀던 곳.
저곳 유리보전에는 종이를 녹여 만든 우리나라 유일의 약사여래상 지불(紙佛)이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해 무탈하게 보존되어 있다.
좌우로 협시불인 문수보살과 지장보살을 거느린채로..

낮 12시
자소봉을 0.5km쯤 남겨둔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바라보는 경관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청량산가를 부르며 스스로 청량산인으로 여김은 물론
청량산을 가 보지 않고서는 선비 노릇을 할 수 없다고 했던 퇴계 '이황'이
머릿 속으로 떠오른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凊凉山歌)'라는 싯귀를 남겼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峯)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

이를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 너 뿐이니
백구 너야 의젓하니 소문 아니 낼것이고 문제는 저놈의 도화 꽃이로다
저 도화 꽃이 강물에 떨어지면 어부(고깃배)가 그걸 보고 육육봉을 알까 하노라"

낮12시26분
자소봉을 오르는 마지막 급경사지대는
사진에서와 같이 나무철책으로 안전시설을 해 놓았다.
해발고도 800m가 넘는 지점이이서인지 나뭇잎들이 점점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들어 간다.
시원한 가을날씨이건만 급경사길을 오르느라
온몸에 땀방울이 한증막에 들어 앉은듯 흘러 내린다.

낮 12시32분
해발 840m 자소봉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 한다.
자소봉(紫霄峰) 은 이곳 청량산의 열 두 봉우리 중 세번 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옛 이름은 菩薩峰(보살봉)이었으나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자소봉(紫霄峰)이라는 뜻은 '자주빛 밝은 연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살님 계시는 하늘을 가리킴이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라 한다.
또한 이곳 청량산의 암석은 변성암류와 퇴적암류로 되어 있는데
퇴적암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낮 12시41분
자소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완만한 경사길로 이어지는
해발 800m대의 능선길이다.
산행로 한가운데에 버티고 선 거대한 돌탑같은 형체가 앞 길을 가로 막는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뾰족한 탑 모양인지라 사람이 오를 수는 없다.
산행로옆에 이와같은 정상석을 만들어 놓았다.
'탁필봉 해발 820m'

돌봉우리의 빼어난 형상이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아
옛날에는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이 '탁(卓)'자를 더하여
'탁필봉' 이라 고치고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卓筆峯)'과 비교하였다 한다.
또한 이 봉을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낮 12시45분
탁필봉 바로 옆에 위치한 문필봉 정상에서
지나온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면 바로 앞에 탁필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자소봉이 연이어 보인다.
해발 850m인 연적봉(硯滴峯)은
정상이 조금 평평한 것이 흡사 연적(硯滴; 벼루의 물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연적봉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이른바 '하늘다리'가 자그만하게 눈에 들어 온다.

망원렌즈로 하늘다리를 가까이 살펴 본다.
하늘다리 양쪽에는 수많은 산행객들이
이곳 청량산 제일의 명물인 하늘다리 주위의 경관에 취해
넋을 놓은채 멈춰 있는듯하다.
빨리 저곳에 가고픈 마음에 조급증을 느낀다.

낮 12시52분
단풍 짙어지는 능선길에는
이미 낙엽이 많이 떨어져 내딛는 걸음마다
푹신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듯한 포근함을 준다.
아름답고 기분 좋은 길이다.

낮 12시54분.
연적고개에서 잠시 멈추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목젖을 타고 흐르는 물이 싸늘하게 여겨질만큼 이제 가을은 깊어 간다.
자소봉에서 0.6km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까지 남은 거리는 1.5km.
쉬지 않고 갈 경우 약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오후 1시
연적고개에서부터 급경사 절벽을 내려오는 아찔한 철계단을 내려온 후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곳. 이곳의 명칭은
'뒷실고개'이다.
몇시간에 걸친 산행이 어려운 이들은 0.8km 떨어진 청량사에서 이곳 뒷실고개를 거쳐
0.5km떨어진 하늘다리를 보고 다시 청량사로 내려가는 길목이 이곳이다.

하늘다리로 향하는 급경사 오르막에서 또다시
이와같은 철계단을 만난다.
이곳 청량산은 유난히 이와같은 철계단이 많은 산이다.
아마도 다른 지자체에 비해 관광명소가 적은 봉화군이
도립공원인 이곳에 많은 투자를 하여 관광객을 끌어들이려
애쓰기 때문인듯 여겨지기도 한다.

오후 1시9분
하늘다리의 동쪽 끝인 자란봉에서 서쪽의 선학봉으로 이어진
해발 800m높이의 '하늘다리'앞에 도착했다.
지난 2008년 5월에 봉화군에서 만든 이 하늘다리는
최근 들어서는 청량산 최고 명물이 된 곳이다.

총공사비 21억원을 투입하여 만든 이 청량산 현수교는
길이 90m, 바닥폭 1.2m로 산악지대에 설치된 다리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길이 90m)
가장 높은 곳(해발 800m)에 설치된 현수교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는 지난 2005년 5월에 개통된 영암 월출산 구름다리가
해발 510m 높이에 54m길이였었다 한다.

오후 1시22분.
다리를 건너 해발 821m선학봉 자락에서
하늘다리를 바라보며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세찬 바람이 쉬지 않고 몰아치며 조금씩 흔들리는 하늘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몸 놀림이 무척 조심스럽다.
아래쪽을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는
일본 오이타현의 '꿈의 다리(九中 '夢' 大吊橋)'가 길이 390m·높이 173m·
너비 1.5m로 가장 길고 높다고 한다.
그런데 봉화군에서는 이곳 청량산 전망대인 금강대에서
명호면 관창리 일명 '늘뱅이 마을'까지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970m·높이 182m 또는
길이 500m·높이 115m(너비는 2.5m) 등 두 가지 규모를 놓고 고민 중이라 한다.
아무튼 두 가지 계획 모두 길이는 세계 최장(最長)이 되는 셈이다.

오후 1시46분
하늘다리를 떠나 장인봉으로 향하는 길은 또 다시 오르막길이다.
오전 산행 코스보다 오르막 경사가 훨씬 약한 편이지만
하늘다리 부근에서 점심식사와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이어지는
오르막 산행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럽기만하다.

더구나 이처럼 급경사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좁은 계단 중간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멈춘 숱한 인파를
헤쳐가며 지나가는 것이 무척 힘들다.

오후 1시54분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 앞에 도착했다.
해발870m인 이곳 정상에 자리한 이 정상석의 글씨는
'김생'의 친필을 모아서(集子) 새긴 것이다.

옛날의 명칭은'대봉(大峰)'이었으나
주세붕이 '장인봉(丈人峯)'으로 이름하였다.
'장인(丈人)'의 '장(丈)'은 대자(大字)의 뜻을 부연한 것으로써
멀리 중국 태산(泰山)의 장악(丈嶽; 큰산)을 빗대어 본 것이라 한다.
또한 의상 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의상굴'을 연결하여
이 장인봉을 '의상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인근 동리와 산악인들은 장인봉을 의상봉으로 부르고 있다.

오후2시32분
비교적 급경사로 이루어진 두들마로 이어지는 하산길을 택해
하청량마을에 도착해 다시 한번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한다.
당초 출발한 산행들머리보다는 서쪽으로 500m정도 내려온 지점이다.

오후2시37분.
도로변 청량폭포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몇몇 산행경험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비교적 멋진 폭포인 것으로 여겼었는데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물이 거의 메마른 폭포는 바로 앞에 세워진 안내판이 무색할 지경이다.

찍은 사진을 원본크기로 조정하여
하단부 일부만을 살펴보니 겨우 이곳이 폭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지난 여름 그렇게도 많이 내린 비가 원망스럽더니
이제는 아마도 가을 가뭄을 걱정해야할듯 싶어진다.

청량골 계곡을 좌측으로 끼고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1km 이상 되는 길은 단풍나무들의 잎이 붉게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길이다.
산행의 피로가 잊혀진다.

오래 전 학창시절 덕수궁돌담길을 거쳐
정동 MBC사옥까지 이어지는 낙엽길을 걷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시원하게 부는 가을 바람이 낙엽을 길 가장자리로 밀어 붙인다.
나 또한 낙엽 쌓인 곳만 골라 걸어본다.
인적이 거의 없는 길이기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겸연쩍어진다.
젊은이들이 봤으면 혹시라도 "나이 값도 못하게 방정맞다!"고
하지나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오후 2시44분
청량골을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다리인 자소교를 지나면서부터는
우측으로 청량골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계곡가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주 방문시 단풍이 시작되던 설악산을
다음주말에는 다시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오후2시55분
청량골을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장인교를 건넌 후 연이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청량교를 건너며 낙동강으로 떨어지는
이름 모를 폭포를 바라본다.
시원한 물줄기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낙동강으로 떨어진다.

청량교를 건너 35번 국도상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모습도 아름답다.
저 깨끗한 물줄기는 흘러서 안동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연이어 영남지방의 젖줄인 낙동강을 이루게 된다.
간혹 한 대씩 지나다니는 차량들도 속도를 늦추며 지나간다.
4시간 가까운 산행의 피로가 일시에 씻겨나간다.

오후 3시2분.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에서 여장을 푼다.
조금전까지 산행을 했던 청량산 12봉우리들이
짧은 가을 햇살을 만끽하려는듯 밝게 빛난다.

주세붕은 청량산을 일컬어 ‘규모는 작으나 선경(仙境)의 명산’이라고 했다.
'장인봉' 정상석 뒤면에 그의 싯구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 귀절을 되새겨 본다.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에게로 가고 싶네"

오후 4시3분
조금 늦게 도착한 일행들을 기다려 막걸리와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귀가 준비를 한다.
내 바로 옆에서는
이제 알을 낳은 후 찬바람이 불기 전에 여생을 마감할 잠자리 한 마리가
나와 함께 허기를 달래는 중이다.
자신의 몸통 크기 정도의 메뚜기 한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식사를 마친 잠자리가 푸른 창공으로 몸을 날린 후
나 또한 행복했던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