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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리 갈대밭으로 이어진 희리산 산행기

2010년 10월24일 일요일 오전 10시20분
행정구역상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에 위치한
국립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희리산은 지난 1999년 개장한 143ha 면적의 자연휴양림을
서쪽에서 북쪽을 휘감아 동쪽으로 이어지는
말발굽 형상을 이룬 야트막한 산이다.

산행 준비를 하는 나를 처음으로 반기는 존재가
이 벌개미취 꽃이다.
꽃말이 '청초(淸楚)'이며 우리나라가 원산인 이꽃은
개미취 종류 중 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해서
벌개미취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새벽녘부터 조금 전까지 가늘게 내린 가을비 때문인지
더욱 청초해 보인다.

오전 10시23분
개울을 가로 지르는 저 다리를 건너가면 대략 4km 정도 길이인
휴양림 산책로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은 산행을 위해 좌측 신행 들머리로 향한다.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씩 내리던 비 때문에
우의를 착용했던 몇몇 산행객들도 이제는 우의를 벗고
산행 준비를 한다.
빗물을 머금은 붉은색 나뭇잎이 윤기를 뽐낸다.

이곳이 충청남도이긴 하지만 전라북도 군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인데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라 따뜻한 남쪽지방이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듯 하다.
대부분의 중부 이북 지방은 단풍이 한창 붉고,노란 빛을 발하는
시점이지만 아직은 녹색잎을 간직한 활엽수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오전 10시37분
급경사 오르막길을 잠시 오른 후
해발 200m에 가까운 능선에 올라섰다.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거의 대부분
높이 4~5m 정도의 소나무들로 이루어진 아기자기한 오솔길 형태이다.

오전 10시40분
산행 들머리에서 대략 1.5km정도 거리에 자그마한 벤치가 두어개 마련된
쉼터를 만난다. 이름하여 '제1호쉼터'이다.
남서쪽으로 서해바다가 보인다. 잔뜩 찌푸린 날씨탓에 조망이 불량함이 아쉽다.
지난 2008년 12월25일에 이곳 희리산을 올랐을 때는
마량리 동백정 부근의 화력발전소 굴뚝까지 뚜렷이 볼 수 있었던 곳이다.
바로 앞의 작은 저수지는 아마도 종천리 배암골 부근의 '종천제'인듯 하다.

망원렌즈로 자세히 살펴보니 드넓은 논의 벼가 누렇게 익어가며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드넓은 들녘은 아마도 종천동이고 그 앞 바다는
비인면 아래쪽인 장구만이 아닐까 싶다.

오전 10시49분
제1호쉼터를 지나 북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본격적인 해송 숲길이다.
이곳 희리산 산행의 장점은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숲을 보며
솔잎의 진한 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종의 95%가 해송인 희리산 숲은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와
테르핀이라는 방향성 물질이 있는데
향기 좋은 방향성, 살균성의 성분으로 스트레스를 없애고
심신 순화, 각종 질병 예방 등 인체에 유익한 삼림욕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오전 11시14분
'제2호쉼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이곳 역시 자그마한 벤치가 두어개 놓여있는 아늑한 곳이다.
서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 봉우리의 정상 부근에서부터
단풍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한다.
아마도 저 산이 해발 311m인 문수산이 아닌가 싶다.

짙은 노란색의 미역취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원산인 이 국화과 식물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식물체를 일지황화(一枝黃花)라는 약재로 쓰는데,
감기로 인한 두통과 인후염, 편도선염에 효과가 있다 한다.

미역취 옆에서 투명한듯 깔끔한 붉은 열매가 달린 작은 나무도 만난다.
꽃나무에 대한 지식이 얕은 나로서는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청미래덩굴,팥배나무,피라칸타,낙상홍,가막살나무,백당나무 등의
열매와 비슷한데... 공부를 좀 해야겠다.

오전 11시20분
제2호 쉼터를 지나면서 진행방향이 동쪽으로 바뀌면서
오늘 산행로의 북쪽 끝부분인 제3호쉼터에 도착한다.
동쪽으로 흥림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장항선철교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지난 1922년 천안-온양 사이에 사설철도가 개설되어 충남선으로 불리었던 철도,
이어 1931년8월 남포-판교간 개통으로 143.8km 의 전구간이 개통된 후
1955년부터 장항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된 장항선 철도이다.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보니 서천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판교역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
불과 수년전까지만해도 흥림저수지변의 기동역을 거쳐 열차가 달렸으나
선형이 불량하고 구불구불한 장항선 철로 중 75km구간을 새로 깔면서
저 철교가 새로 만들어지고 기동역이란 기차역은 아예 없어져 버리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제3호쉼터에도 자그마한 벤치 두어개가 마련되어
피곤한 몸을 잠시 쉬도록 배려한다.
이곳에는 서쪽의 문수산으로 가는 산행로와
남쪽의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오솔길,
그리고 1.7km 떨어진 이곳 희리산 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멀리 흥림저수지 너머 천방산쪽은 낮은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낮12시18분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는 해발329m 희리산 정상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동쪽 아래를 조망해 본다.
산 바로 아래 종천산업단지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아마도
시초면소재지 부근 마을인듯 하다.

망원렌즈로 당겨본 마을 풍경과 그 멀리 야산 봉우리들이
마치도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들처럼 보인다.
아마도 시초면과 그 너머 마산면 사이에 있는 봉선저수지,
그리고 그 너머의 축동저수지가 있어 많은 수증기를 뿜어내기 때문일게다.
더구나 축동저수지 동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남으로 향하던 금강이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사부분에
신성리 갈대밭이 자리한 때문일 것이다.

낮 12시21분
희리산정상을 떠나 하산을 시작한다.
하루 전인 토요일에도 지리산 노고단과 피아골을 거치는
6시간여의 산행을 했던 나에게는
산행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산책에 가까운 발걸음이지만
산행경험이 거의 없는 몇몇 동행들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2시간여의 산행을 힘겨워한다.

오후 1시11분
내리막 경사길인 하산길에서는
오후 여정의 여유를 감안해서 동행한 일행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중간 휴식을 가지는등
오전보다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시간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는 산행보다
여유로운 이런 산행이 더 마음에 드는 오늘이다.
눈 아래 휴양림 입구의 자그마한 저수지가 눈에 들어 온다.
저 저수지의 이름은 산천저수지이다.

해발고도가 150m정도인 이곳에서
해송숲이 우거진 휴양림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찬서리를 맞으며 붉고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키 작은
잡목들이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전해 준다.

급경사 내리막길에 이어 한동안 이와같은
비교적 키 큰 해송 숲이 이어진다.
내일부터 1주일간은 대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살아야할 운명이기에
하산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맑은 공기를 더 많이 마시고파
숨을 크게 크게 들이마시며 걸음을 옮긴다.

오후 1시22분
휴양림 입구 우측 산행로 입구에 내려서며 3시간에 걸친 희리산 산행을 마친다.
지난 2008년 12월25일에는 이곳에서 출발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산행을 했으나, 오늘은 반대방행인 시계 방향으로 이어진 산행이었다.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자나 노약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최적의 산행로이다.

오후 2시18분
희리산을 떠나 신성리 갈대밭에 도착하여
둑방 위에서 금강유역에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을 바라 본다.
매년 한두차례씩 찾게되는 이곳 갈대밭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드는 풍경이 저 나무가 보이는 풍경이다.
나 스스로 저 나무에 붙인 이름은 '왕따나무'이다.

갈대는 아직 꽃을 활짝 피우지 않은 상태이다.
그 대신 갈대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멋진 억새꽃이
둑방 부근에 거대한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
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곳 신성리 갈대밭의 특징은
다른 곳의 갈대에 비해 키가 더 크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갈대밭 사이를 걷는 연인들의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곳이 이곳이다.
그러나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은 곳이 이곳이다.

금강 하구둑이 건설되기 이전 신성리 갈대밭은
현재의 갈대밭 둑너머로 드넓게 형성된 농경지 전체를 덮는 대규모의 갈대밭이었다.
옛날 신성리 주민은 갈대를 꺽어 빗자루를 만들어 쓰기도하고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리기도 했는데
‘갈비’라 불리우는 신성리 특산품이기도 했던 갈비는
쇠기전에 꺽어다 삶아 만들면 10년을 썼을 정도로 우수한 제품이었다 한다.

강가에 부는 시원한 가을 바람은 사람 키를 훨씬 넘는 갈대숲 속에서도 쉴새없이 불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숲에서는 계속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 이야기가 생각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내는 소리는 다름 아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자기네끼리 속삭이는 소리라는 그 이야기가.

폭 200미터, 길이 1Km, 면적이 198,000㎡에 이르는 우리나라 4대 갈대밭중의 하나인 신성리 갈대밭이
영화 JSA(공동경비구역) 촬영지로 일반에 알려지며 자연훼손 등으로 수난을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더구나 지난 2008년 상반기부터 서천군에서 시작한 이와같은 인공 조형물 공사로 인해
자연경관이 더욱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깝다.

서천군에서는“묵은 갈대 정리 및 터 고르기, 탐방로 정비 및 유실방지 공사”라고 했지만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억새 및 잡초의 창궐은 금강하구둑 때문만이 아니라
서천군에서 행한 이런 조형물 공사 때문에도 악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후 3시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갈대숲을 한동안 바라보니 마음속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한여름 아무리 햇빛이 뜨거워도. 홍수와 가뭄속에서도 꾸준함을 잃지 않은 갈대숲은
가을을 지난 후 겨울철 찬바람 속에서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를 맞는다.
다만 철따라 옷을 갈아 입을 뿐이다.
내년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지금 같은 변함없는 모습이 유지되기를 빌며 갈대밭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