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23일 토요일 오전 10시26분
지리산 노고단을 거쳐 피아골로 이어지는 산행을 위해
지리산 남부 성삼재분소에서 차를 내려 산행 준비를 한다.
해발고도 1,102m인 이곳의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이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姓三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 진다.
오전 시간임에도 주차장은 물론 도로가에도 수많은 차량으로
홍수를 이룬다.
구례와 남원을 잇는 861번 지방도
그 도로변 북서쪽은 급경사를 이룬 사면을 따라
붉고 노란 단풍이 점차 아래로 물들어간다.
멀리 만복대 기슭에 자리한 지리산온천랜드 주변의
이른바 산수유마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매년 3월 중순에서 하순사이에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로
온천지를 물들이는 상위마을과 하위마을이 눈에 익은 풍경이다.
매년 산수유 필 때 찾는 저곳.
내년 봄에 또 찾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인다.
오전 10시41분
노고단으로 향하는 임도는 단풍을 즐기려는 인파로
마치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이 많은 인파의 대부분은 노고단까지만 들린 후
다시 성삼재 주차장으로 내려올 사람들이니
노고단을 지나면 비교적 한적한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전 10시50분
성삼재에서 1.5km 정도 오른 해발 1,255m 지점 삼거리에서
인파의 물결을 피해 무넹기 방향으로 우회하는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비로소 울긋불긋한 단풍을 눈으로 즐기며 걷는 여유를 가진다.
오전 10시51분
무넹기 전망대앞에 도착했다.
남쪽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피부에 와 닿는다.
온 몸으로 한기를 느낀다.
무넹기는 '물을 넘긴다'는 뜻으로 해발 1,300m에 만들어 놓은 인공 수로다.
1930년에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화엄사 아래에 만든 저수지로 채우기 위해 물길을 바꿔 놓았다.
무넹기 전망대에서 남쪽 아래를 내려다 본다.
깊은 산골짜기 깊숙히 자리 한 화엄사가 어렴풋이 보이고
그 너머로 구례읍과 그 좌측에 나선형으로 구비쳐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가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0시58분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의 가장 큰 특징은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푸근함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산도 따를 수 없는 웅장함과 포용력이다.
아마도 그 어머니 품 같은 느낌은 이처럼 해발 1,300m가 넘는
고지대에서도 이런 맑은 물이 쉴새없이 흘러 내리는 모습에서 절감할 수 있으리라.
오전 11시5분
노고단대피소 바로 아래 등산로 주위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돌축대 흔적이 여러곳에서 눈에 띈다.
그리고 숲 한가운데에 석조 건물들의 흔적이 드문드문 보인다.
오래 전 구한말부터 우리나라를 찾은 서양인들이
이곳에 많은 별장을 지어 놓고 휴가를 즐겼던 곳이다.
비록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풍수지리에 대한
그네들의 식견이 우리를 뛰어넘는 수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고단 대피소 주변에는 성산재에서부터
40여분을 힘들게 오른 수많은 산행객,관광객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한다.
대피소 건물 우측의 단층 건물인 '밥 짓고 나누어 먹는 곳'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잠시 기운을 차린 후
0.4km 거리인 해발 1,440m 위치의 노고단 고개를 향해
다시 땀 흘려 산길을 올라야 한다.
오전 11시18분
해발 1,440m 위치인 노고단고개 너른 공터에는
한 시간여를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땀 흘려 노력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을 저마다 가슴에 간직한채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깊은 숨을 몰아 쉰다.
지리산 남서부 35만여평의 관활한 고원인 이곳 노고단은
신라시대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연무도장이 되는 한편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냈던 곳이다.
노고단 정상인 해발 1,507m 까지 이어진 길은
목재 데크로 만든 길로 누군가는 '하늘정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봄철의 원추리꽃을 시작으로 여름철이면
범꼬리,동자꽃,둥근이질풀,곰취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이다.
일명 '길상봉'이라고도 하는 '노고단[老姑壇]'의 '노고(老姑)'는
늙은 할머니을 뜻하는 것이며
도교(道敎)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仙桃聖母)를 일컫는 말이라 한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곳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 3대봉인
반야봉(1,734m)이 좌측 눈 앞에, 그리고 산중턱을 흰 구름이
휘감고 있는 천왕봉(1,915m)이 멀리 보인다.
이곳에서 반야봉까지의 거리는 5.5km이고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25.5km이다.
오전 11시21분
이곳 노고단고개에 처음 도착한 몇분 전에는 천왕봉 정상부가 구름에 가려 있었으나
지금은 구름이 잠시 아래로 내려가며 해발 1,915m 정상부를 뚜렷이 보여 준다.
500m 떨어진 노고단 정상. 15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건만
환경보호를 위해 출입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조금 전인 오전 11시에 통제가 시작되었고
오후 1시에나 다시 출입문을 열어 탐방객을 들여 보낸다 한다.
아쉽지만 정상부까지 발을 딛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500m떨어진 정상부를 300mm 망원렌즈로 살피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이 사진은 금년 6월초 노고단 정상석 바로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전 11시25분
피아골을 향해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1,300~1,400m대의 능선길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노고단까지 오르는 동안은 수많은 인파로 인해 혼잡스러운 형편이었지만
이제부터 이어지는 산행길은 비교적 한적한 산행길이다.
마음속의 여유를 찾으며 걷는 행복하고 여유로운 산행길이다.
오전 11시42분
울창한 숲 사이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얼마 전 잠시 머물렀던 노고단고개 쉼터에는
아까보다 훨씬 많은 인파로 붐빈다.
울긋불긋 피어나는 단풍과 산행객들의 원색 복장이
무척 잘 어울린다.
오전 11시51분
해발 1,400m에 가까운 능선길은 간혹 드문드문 피어 있는
산죽군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활엽수들은 단풍이 절정이다.
단풍으로 물든 숲을 지나는 내 온몸도 덩달아 붉게 물든듯하다.
단풍으로 물든 활엽수림이 오래 이어지는 길이지만
간혹 이와같은 산죽군락으로 이루어진 길도 지나게 된다.
마치 양탄자처럼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옷자락을 스치는 대나무 잎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처럼 느껴진다.
낮 12시6분
노고단고개에서 1.5km정도 지나온 곳
뒤쪽으로 시야가 훤히 트인다.
지나온 능선길을 살펴보니 멀리 해발 1,507m 노고단 정상부가 눈에 들어오며
지나온 능선길이 온통 붉은 빛이다.
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구름이 얄밉게 느껴진다.
1.5km 남짓 떨어진 노고단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많은 산행객들이 떠난 저곳에 지금은 인적이 없다.
늙은 할미가 외로움을 느끼지나 않을런지?
오후 1시가 지나야 지금은 닫혀있는 출입문이 열리고
어린 자손들의 재잘거림을 접할 수 있을텐데..
낮12시21분
노고단고개를 떠난지 1시간이 가까워온다.
진행방향인 동쪽 능선은 단풍이 더욱 짙어지는듯도 하다.
이제 천왕봉도 1,400여m정도의 크고작은 봉우리들에 가려 끝부분만 조금 보인다.
잠시 후면 저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낮12시28분
노고단고개에서 2.3km 지점. 지금까지 이어오던 동쪽 방향의
능선길을 버리고 남으로 방향을 바꿔 피아골로 내려가게될 피아골 삼거리까지
대략 0.5km를 남겨둔 지점에서 비교적 넓은 평지를 만난다.
남쪽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오며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억새꽃잎들을 흔들어준다.
낮12시46분
해발 1,336m인 피아골삼거리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한동안 노란색으로 물든 나무들을 만난다.
흔히들 붉은색 단풍과 노란색 단풍의 다른 색깔에 대해 무심코 넘기지만
은행잎으로 대표되는 노란색 단풍은 붉은색 단풍과 그 생성 기전이 완전히 다르다.
노란 잎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속하는 크산토필류 중
주로 제아크산틴·비올라크산틴 등에 의한 것인데,
이들은 이미 초봄 새싹 때 잎에서 만들어지고 여름에는 엽록소의 녹색에 가렸다가
늦가을이 되어 엽록소의 분해로 다시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오후 1시6분
피아골삼거리를 지나면서는 그동안 동쪽으로 이어지던
완만한 능선길이 아닌 남쪽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이른바 지리산 10경중 하나로 칭하는 피아골단풍의 장관을
경험하는 현장인 것이다.
이어지는 하산길이 온통 붉은 빛이다.
노란색의 단풍과 이처럼 붉은 빛의 단풍은 작용기전이 별개인바
이처럼 붉은 단풍은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고,
새로 안토시안이 생성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또한 식물의 종류가 달라도 안토시안은 크리산테민 1종뿐이다.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이 홍색소와 공존하고 있는
엽록소나 황색·갈색의 색소 성분이 양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후 1시34분
피아골 삼거리를 지난지 50여분이 흘렀건만
울긋불긋한 단풍은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하는듯하다.
피아골이란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맑고 풍부한 물이
임걸령 ·불무장 등의 밀림지대를 누비며 피아골 삼거리 ·연곡사 등을 지나
섬진강으로 빠지는 길이 약 20km에 이르는 계곡을 이름이다.
오후 1시56분
해발 850m 지점인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난 1984년 세워진 수용인원 50명(81㎡)의 고즈넉한 산장(山莊).
행정구역상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 368번지인 이곳.
오랫동안 촛불이나 랜턴으로 어둠을 밝혀왔으나
지난 2006년 8월부터 전기가 들어옴은 물론 모든 이동통신사의
휴대폰 통화가 가능해졌다.
해발 1,336m인 피아골삼거리에서 이곳까지 2km의 거리를
해발고도로 600m가까이 내려오는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린 것만 보아도
내리막길이 급경사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보충한다.
오후2시15분
피아골대피소를 떠나 표고막터까지 이어지는 3km남짓한 하산길도
온통 붉게 물든 단풍 터널의 연속이다.
주의를 스치는 산행객들의 얼굴이 온통 붉은빛이다.
매년 가을이면 단풍철이면 잊지 않고 찾는
설악산 흘림골,주전골,천불동계곡과 견주어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화려함이다.
이를 두고 문자 쓰기를 즐기는 호사가들의 입에서 튀어 나올
한마디 말이 있다면 다름 아닌 '난형난제[難兄難弟]'가 아닐까 싶다.
오후2시31분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물로 땀에 젖은 얼굴을 씻어본다.
뼛속까지 저려오듯 차가운 물은 지리산 계곡의
깊고 울창함을 대변하는듯 하다.
붉은 단풍에 취해 혼미하던 정신이 되살아나는듯 싶다.
오후2시43분
해발 700m위치의 구계포계곡을 지난다.
단단한 암반위로 영롱한 오색구슬이 함박 쏟아지는듯
9개의 층층계단을 타고 내리듯 맑은물이 흘러내린다 하여
구계포라는 이름이 붙은 곳.
비록 흐르는 물이 많지 않아 멋진 폭포는 볼 수 없지만
곱게 물든 단풍이 단아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오후2시45분
구계포계곡을 가로지르는 구계포교를 지난다.
화려한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기분이다.
'피아골(稷田谷)'이라는 이름은 옛날부터 불러 내려오는 유서 갚은 이름이다.
옛날 산 아래 직전마을에서
곡식의 한 종류인 "피(稷)를 많이 가꾸어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 후 점차 그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라 한다.
오후2시58분
해발 600m 지점인 '삼홍소'를 지난다.
삼홍소(三紅沼)란 이름은
산은 단풍에 의해 붉고(산홍; 山紅),
그 붉은 산이 계곡물에 비쳐서 물도 붉고(수홍; 水紅),
또한 그 물에 반사된 사람의 얼굴 또한 붉어진다(인홍; 人紅)는
즉 산·물·사람 모두가 빨갛다는 의미이다.
오후3시21분
해발 496m지점인 '표고막터'에서 길고도 길었던
산길은 끝이난다.
표고막터란 이름은 지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60여년간 표고버섯을 키웠던데서 유래한다.
오후3시53분
표고막터에서부터 한동안 이어지던 임도가 끝나면서
눈 앞에 갑자기 자그마한 상가가 나타난다.
비로소 5시간 반 가까운 산행이 끝이 났다.
아마도 성삼재에서부터 시작해 걸어온 거리가
대략 13~14km정도는 될듯하다.
아담하고 조용한 직전마을.
옛날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진 이곳.
임진왜란 ·한말(韓末)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 ·25전쟁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10월 말에는 전국에서 모이는 등산객들이 피아골 단풍제를 지내는데,
이 산신제는 1977년부터의 연례행사로 금년에는
10월30,31 양일간 열린다.
오후4시
귀가할 차량 탑승을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연곡사[鷰 谷寺]에 들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末寺)인 이곳은
544년(신라 진흥왕 5년) 화엄사의 종주(宗主)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곳 연곡사의주 불전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대적광전은 주로 화엄종 사찰에서 본전으로 세우고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전국의 사찰을 많이 둘러봐도 국보를 보유한 사찰이 거의 없음에도
이 자그마한 절에 국보가 2개나 있다.
그 중 하나인 '국보 제53호인 연곡사 동부도(東浮屠)' 모습이다.
탑이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라면,
부도는 유명했던 스님들의 사리를 두는 곳이다.
부도의 구성은 석탑과 같아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는다.
이 부도는 연곡사의 동쪽에 네모난 바닥돌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전기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곳에는 이 부도 외에도 서부도(보물 제154호),
북부도(국보 제54호) 등 2기가 더 있다.
동부도는 그 중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라 한다.
도선국사의 부도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으며,
일제 때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부도 북쪽 위 30m지점에 자리한
국보 제54호 연곡사 북부도 [北浮屠] 모습이다.
이 부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누구의 부도인지는 모르고
다만 '북부도'라고 부른다.
동부도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반면에
이 북부도는 그 후인 고려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한 부도로서 8각형 부도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오후4시8분
북부도를 자세히 살핀 후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연곡사를 위에서
내려다 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신라 5악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
또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렸던곳.
행복했던 지리산에서의 하루를 마감하며
과연 우매한 나 자신은 오늘 하루 6시간여를 머물며
어떤 지혜를 얻고 돌아가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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