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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남북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는 곳

2010년 10월31일 일요일 오전 11시54분
이른바 '철의삼각전적지 안보견학'이라 일컫는
민통선 내 제2땅굴을 비롯한 여러 전적지를 둘러보는
안보관광을 위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소재
철의 삼각전적지관광사업소의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철원8경의 하나인 고석정으로 첫 발을 내 딛는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정자 앞에서 아래 한탄강변을 내려다 본다.
사진에 보이는 한탄강 하류쪽으로 현무암 협곡을 따라 이어진
순담계곡은 여름철 래프팅으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고석정 [孤石亭] 의 모습이다.
신라 때 진평왕이 처음 세운 것으로 석굴암벽(石窟岩壁)에 시문(詩文)을 새겨
풍경을 예찬한 구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며
또 고려 충숙왕이 노닐던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정자는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1년 철원 유지들이 재건한 것인지라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보니
요즈음은 일반적으로 강 중앙부의 고석과 이 정자 및
이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부른다.

고석정의 경치 중 백미인 높이 십여m에 이르는 자연석인
거대한 고석이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조선 명종 때에는 의적당(義賊黨)의 두목 임꺽정(林巨正)이
고석정 건너편에 돌벽을 높이 쌓고 칩거하면서
조공물(朝貢物)을 탈취하여 빈민을 구제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한탄강 상류쪽의 경치도 일품이다.
태백산맥의 황선산과 회양의 철령에서 발원하여
북녘땅을 거쳐 내려온 한탄강 강줄기는 비무장지대를 지나
삼합교,외동교 아래로 흘러내려 칠안암과 직탕폭포를 지난 후
태봉대교,승일교, 그리고 조금전 차량을 타고 건너온
한탄대교 아래를 흘러 내려온다.
그리고 경기도 접경에 들어서며 비로소 임진강과 합류하게 된다.

낮 12시43분
고석정 부근의 멋진 풍광 덕분에 눈이 즐거워진 후
산나물 비빔밥으로 맛있는 점심을 끝내고
고석정랜드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고석정랜드란 이곳 고석정과 관광사업소,주차장 등 일대를 묶어
철원군에서 붙인 이름이다.
10월 마지막 날의 가을 하늘이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

민간인통제선 안으로 들어가야하는 안보관광을 위한 차량 탑승시까지
잠깐 시간을 내어 이른바 고석정랜드 주위를 둘러본다.
분수대 주위의 헐벗은 나뭇가지 아래로 수북히 쌓여가는
노란 은행잎들을 바라보며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한다.

오후 2시13분
민간인 통제선인 이른바 '민통선'내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차량으로 이동하여 독수리 도래지로 알려진 토교저수지 변의
제2땅굴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이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지 20,915일 째이다.
바로 뒷편 언덕부터는 철조망이 쳐진 비무장지대이다.

땅굴 입구에서 경비근무중인 군인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헬멧을 받아 착용하고 땅굴 내부로 들어간다.
지난 1975년 3월19일 발견된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인 제2땅굴.
비록 그 중 일부 구간만 약 20여분에 걸쳐
2땅굴 내부를 둘러보는 과정은 나에게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일반 여성들도 머리를 숙이고 지나야하는 구간이 많은지라
키가 180cm인 나로서는 거의 허리를 굽힌채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내부 사진이 없는 것은 내부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이다.

오후 2시58분
철원평화전망대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오르막 길을 오른다.
오르막을 오르는 중간에 '호국용화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고
오르막 정점 부근에는 이와같은 마리아상이 있다.
이름은 '평화의 성모상'이다.

오후 2시59분
철원평화전망대 앞에 당도했다.
이 건물 바로 뒤쪽부터는 비무장지대이다.
건물 좌측으로 멀리 북한 땅의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 온다.
지난 2007년 11월에 지어진 이 건물은 궁예가 세웠던 태봉국의 옛성터와
철원 평야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쌍안경을 통해 북한군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오르는 10여분간의 급경사길을 오르기 힘든
노약자들을 위해 이곳에는 50인승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대부분 고령인 실향민들은 왕복 3,000원인 저 모노레일을 타고
이곳 전망대를 찾아 이산의 아픔을 나눈다.

눈 앞의 동송저수지 너머로 넓은 농토가 펼쳐진다.
그리고 저 드넓은 철원평야 너머로
한국전쟁 당시 395m 야트막한 야산을 두고 피아간 1만7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수없이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 전투의 격전지가 있다.

동송저수지의 우측 끝부터는 통상 DMZ(demilitarized zone)로 불리는
비무장지대이다.
한국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심장부였으며 전략적 요충지였던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에서
얼마나 많은 젊음이 피를 흘렸던가?
가슴이 저려 온다.

남북으로 각 2km씩인 비무장지대 너머는 북녘땅이다.
북쪽을 바라보는 모든이들의 마음 속에는 아마도
지구상 유일한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아픔이 새겨져 있으리라.
북쪽 방면으로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라
300mm 망원렌즈를 휴대한 상태이면서도
멀리 북녘땅을 망원렌즈로 살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내 마음도 무거워진다.
나이 80은 넘어보이는 어느 어르신의 눈가에는 이슬처럼 눈물이 맺혀 있다.

오후 3시28분
평화전망대를 떠나 다음 행선지인 월정리역에 도착했다.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최북단 분단지점인 이곳 월정리역.
전쟁 이전에는 달과 우물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는
월정리란 이름의 큰 마을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원래 월정리역이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며
이곳은 전쟁 이후에 장소만 빌려 복원한 것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간판 아래 한국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싯누런 녹물을 드러낸채 앙상한 몰골로 누워 있다.

흉칙하게 파손된채로 녹이 심하게 쓴 이 잔해에서도
민족상잔과 분단의 아픔을 크게 느낀다.
이 잔해들은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니고
비무장지대 안에 있던 것을 전시를 위해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열차 잔해의 뒷부분인 객차뿐이고
열차의 앞부분 잔해는 후퇴하던 인민군이 가져갔다.
마지막 열차마저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과거의 역사를 되새긴다.

끊어진 경원선의 북쪽 끝 부분은 녹이 진하게 슬어 있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우리 동포들과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들에 의해
강원도에 가장 먼저 부설되었던
서울~원산(元山)을 잇는 223.7km의 철도.
1914년 9월 16일 전 구간 개통식이 원산에서 거행되었던 이 경원선은
현재는 국토 분단으로 용산~신탄리 사이의 89km만 운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곳 철원평야는 풍부한 먹이와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온천수가 흐르는
샘통과 같은 얕은 개천이 흐르는 자연적인 조건외에도
민간이 통제지역인지라 철새들이 겨울철을 지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함께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정리역을 마주 보고 선
이와같은 볼썽 사나운 '철원두루미관'이라는
건물 내부에 박제된 조류 및 야생동물들만 전시되어 있을뿐
북쪽 철원평야를 직접 볼 수가 없다.
이 건물 뒤편은 DMZ이다.

오후 3시58분
마지막 행선지인 노동당사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행정구역 상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官田里).
1945년 8월 해방직후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혼란기에 빠진다.
38선 이북인 이곳.
1946년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1,850㎡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와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였다 한다.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의 참상을 알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해도 철원은 인구 2만이 넘는 규모있는 도시였다.
그 도시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 노동당사로 오는 길목에 폐허로 남아 있는 제빙공장,농산물검사소 등등..
이 건물 또한 뒷편의 흉흉한 총탄자국만 남긴채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서 있다.
지난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기획재정부 소유이며 철원군수가 관리한다.

오후 4시4분
남북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낀 하루를 보내고 귀가길에 오른다.
노동당사 맞은편 지척의 거리에 있는 백마고지 위령비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아마도 이런 미련이 다음에 또 이곳을 찾게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KBS 열린음악회가 녹화되기도 했던 곳.
통일을 바라는 온국민의 마음도 나와 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