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25일 토요일 오전 9시23분.
지리산 능선을 북쪽에서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알려진
해발 1,187m인 삼봉산(경남 함양군 함양읍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으로
향하는 도중 산행 들머리인 오도재 아래의 지안재에서 잠시 멈춘다.
지난 7월 하순에도 방문했을 정도로 자주 들리는 곳이지만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길이다.
다만 바라보는 나 자신은 즐겁지만 뱀처럼 휘감아 도는
저 길을 운전하는 운전자에게는 괴로운 길이다.
같은 위치에서 야간에 2~3분 정도의 장노출로 사진을 찍으면
이런 사진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만한 멋진 모습이다.
오전 9시46분.
해발 773m지점인 오도재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 준비를 한다.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었던 이곳 오도재(또는 오도령)를
넘는 길. 지금은 4년 전 함양군에서 만들어 놓은 '지리산제1문'을 통해
차량들이 지난 다닌다.
오도(悟道)란 뜻을 깨우친다 쯤으로 해석이 가능하리라.
예전에 보조국사 지눌과 청매선사가 오도령(悟道嶺)을 넘다가
도를 깨달았다해서 이 고개 이름이 오도령,
또는 오도재로 불린다는 얘기도 있다.
오전 9시49분
주차장 윗편 언덕에 자리한 산신각 좌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산신각 좌측'산신각복원비'에 산신각의 유래를 음각해 놓았다.
가락국 10대 구형왕의 비(妃)인 계화부인이 이곳에 제단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들의 명복을 빌었던 곳이라 한다.
오전 9시56분.
등산객이 아닌 일반 관광객들이 쉽게 올라와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게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오르막길을 잠시 올라 '관음정'에 당도한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하다.
전망대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능선이 한 눈에 보인다.
좌로부터 하봉(해발 1,781m),중봉(해발 1,874m), 그리고 지리산 최고봉인
해발 1,915m인 천왕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제석봉(해발 1,808m),
장터목 대피소(해발 1,653m)등이 연이어 이어진다.
다만 흰 구름이 시샘하듯 시야를 가리고 있을뿐이다.
잠시 후 해발 1,000m 이상인 오도봉을 지나면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간직한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삼봉산 정상가지는 대략 3.7km정도의 거리이다.
오전 10시31분.
관음정을 지나면서부터는 계속 이와같은 숲길이 이어진다.
시원한 가을 날씨이지만 30여분 이상 오르막길을 오르자니
온몸에 구슬땀이 흘러 내린다.
그러나, 해발 900m를 넘어 1,000m에 육박하는 능선길인지라
시원한 가을 바람이 계속 불어와 흐르는 땀을 조금은 식혀 준다.
오전 10시54분.
해발 1,035m 오도봉 정상석 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남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북쪽 아래로는 함양읍의 전경이 펼쳐지는
조망이 뛰어난 장소이다. 한동안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이제 삼봉산 정상까지는 대략 1.7km 정도 남았다.
오전 11시26분.
오도재에서 오도봉까지 이어지던 키 큰 나무숲이
이와같은 키 작은 숲으로 바뀌었을뿐 숲은 지금까지보다
더 울창하다.
사람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산인지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자락을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좋은 느낌을 주는 무척 마음에 드는 산길이다.
오전 11시37분.
해발 1,100m를 넘어선 능선에 오르자 남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듯 눈 앞에 다가 온다.
어머니 품속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하는 부드러운 능선이다.
예전에는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리었고,
오늘날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리우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주능선을 한참 바라본다.
좌측의 하봉과 중봉은 흰 구름에 가렸으나
그 우측의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은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이다.
망원렌즈로 당겨 본 천왕봉 아래 산골마을의 모습은 평화롭다.
화전민들의 부지런함이 쌓이고 쌓여 오랜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산비탈의 다랭이논에서도 벼이삭은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오전 11시47분.
삼봉산 정상에서 시원한 가을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들인다.
산을 오르는 두 시간 동안의 고통,흘린 땀을 일순간에
씻어주고 마음속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위해 항상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정상석에 새겨진 산 높이는 해발 1,186.7m이다.
남쪽으로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눈에 들어오지만
북쪽을 바라보면 남덕유산과 이어지는 준령들이
흰 구름 뒤로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그 산자락 아래 함양 읍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물레방아골 함양'이라는 관광홍보용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함양군의 중심 함양읍을 가까이 당겨 본다.
1년에 몇번이나 이용할지가 의심스러운 종합경기장과
성냥곽처럼 흉물스런 고층아파트가 눈에 거슬린다.
'물레방아골'이라는 말은 조선말기 실학자이자 안의현감(1792년 부임)을 지냈던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문물을 둘러보고 온 후
조선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든곳이 바로 이곳 함양이기 때문이다.
낮 12시44분.
삼봉산 정상을 떠나 6km 떨어진 금대암으로 향하는 길을
1시간 이상 지나는 동안 계속 이와같은 지난 가을 떨어진채 남은
낙엽을 밟으며 걷는 호젓한 숲길이다.
이제 지난 여름 그리도 시끄럽게 들려오던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간혹 이름 모를 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하고 편안한 길이다.
낮 2시12분
금대암까지 2.5km정도를 남긴 지점인 등구재에 당도했다.
지난해 5월9일 지리산 옛길을 걸으며 지났던 곳이다.
당시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 마을로 이어지는
동서방향의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었고,
오늘은 삼봉산에서 금대암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산행길이란 점이 다르다.
등산로를 가로막고 앉아 식사를 하는 일행들을 좋은말로 타일렀다.
다행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로 미루어 차후에는
그와같은 몰상식한 짓은 삼가하리라 생각해 본다.
거북이 등을 닮았대서 거북 구(龜)를 쓰는 등구재 (登龜재)는
해발고도가 대략 620m정도이다.
경남 햠양의 창원마을과 전북 남원의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인월장으로 장 보러 가던길이며,새색씨가 꽃가마 타고 시집 가던 길이라 한다.
오후 2시17분.
이틀 전 추석 다음 날인 23일에 속리산 산행시
상주 화북에서 문장대를 오른 후 관음봉과 묘봉으로 이어지는
41년만에 개방된 험한 바위 능선길을 산행하느라 쌓인 피로가
덜 가신듯 하여 해발 903m 의 백운산과 해발 847m 금대산을 거쳐
금대암으로 향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지리산 둘레길 트래킹을 하는 수많은
인파에 뒤섞여 나 또한 최종 목적지인 의탄교가 있는 금계마을을 향해
지난 해 5월9일에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는다.
쭉쭉 뻗은 낙엽송 숲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나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오후 2시37분.
창원마을을 지나며 눈에 띄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의 수가 엄청나다.
1년 전만 해도 인적이 거의 없는 호젓한 길을 걸었건만 오늘은 마치
시장바닥같이 소란스럽다.
알고보니 얼마 전 모 방송국의 인기 프로인 '1박2일'에서
소개를 했다고 한다.
내가 매년 봄이면 찾는 거제도 앞바다의 동백섬 지심도에도 '1박2일'팀이
다냐간 이후 시장바닥처럼 혼란스러워 내년부터는 발길을 끊기로한바 있는데,
왜 그들은 전국 방방곡곡의 호젓한 곳을 시장바닥처럼 혼란스럽게 만들고 다니는가??
대부분이 다랭이논인 이곳 창원마을의 논이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바라보기만해도 뱃속이 든든해진다.
창촌. 창말이라고도 부르는 창원(昌元)마을은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마천면내의 세금으로 거둔 차나 약초, 곡식을
이 마을의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오도재를 넘어서 지게로 날랐다고 한다.
산나물, 토종꿀, 옻순, 호두가 주 산물인 창원마을에는
현재 약 2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다랭이논과
논둑길 옆으로 큰키를 자랑하며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줄기는
이제 막 꽃을 피운다.
억새꽃 너머 남쪽으로 펼쳐지는 지리산 능선의
천왕봉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둔다.
오후 3시9분
짧은 가을해는 이미 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한다.
작은 먼지를 하늘 높이 날리며 수확한 수수를 탈곡하는
창원마을 주민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먼지를 피해 , 또한 일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빠른 걸음으로 옆을 스친다.
오후4시19분
6시간 반에 걸친 여정을 마치고 의탄교가 보이는 엄천강가에 도착했다.
지난해 5월5일 내가 처음 지리산 옛길걷기를 시작할때의
시발점이기도 했던 의탄교.
다리 아래를 흐르는 엄천강물이 여름철에 비해 많이 줄어
빈약해 보임이 아쉽다.
저 다리 너머로 보이는 작은 마을은 의중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650년의 느티나무 당산목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오후 5시3분
백운산과 금대산을 거쳐 산행을 한 일행들을 기다렸다
3km남짓 떨어진 마천면 소재지의 지금은 폐교가 된
마천중학교 운동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구름이 멋진 수채화로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오후 6시9분
귀가길 도로변에 핀 코스모스밭에 뛰어들어
만발한 코스모스의 현란한 색채와
코스모스향기로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오늘밤은 다른 어느때보다 더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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