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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무릇을 찾아 떠난 선운산 산행기

2010년 9월19일 일요일 오전 10시48분
전북 고창군 해리면 평지리. 733번 지방도로에서
김제의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조계종 2대 본사인
선운사를 둘러싼 선운산(도솔산) 줄기의 남쪽 사면을 바라본다.
햇살은 뜨겁지만 피부로 전해지는 공기는 가을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천오백년 고찰인 선운사를 3~4백미터급 바위 능선들이 둘러싼
선운사 주위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이 높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으나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져
'호남의 내금강'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이다.

지난 9월5일 선운사 북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벌봉-도솔산(일명 수리봉)-개이빨산-낙조대를 거친 산행을 한데 이어
오늘은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쥐바위-청룡산-배맨바위를 거치는
산행에 이어 붉게 피는 꽃무릇을 보기 위해 나섰다.
지도상에 절 표시가 된 선운사를 가운데 두고
파란색 표시는 9월5일 산행을 했던 경로이고,
오늘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경로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전 10시57분.
평소 이곳을 기점으로 하는 산행객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산행들머리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때문에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진한 풀내음을 맡으며 오르는 급경사 숲길에서
굵은 땀방울이 얼굴은 물론 잔등을 축축히 적신다.

오전 11시29분
많은 땀을 흘리며 평지에서 시작 해 해발고도 300m정도의
능선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서쪽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바위능선들의 풍경이
마치 설악산의 고지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처럼 장엄하게 느껴진다.
쥐바위,청룡산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중앙의 청룡산쯤으로 여겨지는 바위 봉우리 부분을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10여명의 산행객들이
시원한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산행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다.
깎아지른듯한 바위 절벽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오전 11시38분
이제부터 이어지는 산행길은 큰 오르내림이 없는
암릉길이다.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와 상쾌하긴 하지만
이와같은 기암괴석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조심스런 산행길이다.

오전 11시51분.
청룡산을 1km남짓, 낙조대를 2.5km 정도 남긴 지점에서
암벽위를 타고 넘는다.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시간 여유를 두고 아주 천천히 산행을 하기로
예정을 한 마당이라 등산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어가며 발길을 옮긴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여러 산행객들도 타인을 배려하며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에도 흐뭇하다.

낮 12시8분
이곳 선운산 능선 산행시 가장 독특하게 생겼을뿐 아니라
내 눈에는 가장 멋지게 보이는 배맨바위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억새 군락 사이로
멋진 자태를 뽐내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큰 거북이 웅크리고 있는듯도 하다.

배맨바위를 망원으로 가까이 당겨본다.
'배맨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오래 전 옛날에는 이곳 선운사 주위를 지나 염전과 젓갈로 유명한
곰소만으로 흘러가는 인천강을 따라 바닷물이 선운사까지
들어왔었다한다.
그 당시 바다에 뜬 배를 밧줄로 묶어 두었던 바위인지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한다.

낮12시18분.
조금 전 암벽을 넘느라 로프를 잡고 올랐는데
이제는 더 높은 암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바로 쥐바위라 이름 붙은 암반이다.
등산 베테랑급인 여러 산행객들이 초심자나 부녀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쥐바위를 오르내리는 산행객들의 몸놀림이 무척 조심스럽다.
이곳 선운사를 둘러싼 암릉들은
해발300~400m에 불과한 높이지만 수많은 암반들의 멋진 모습과
조심스러운 암릉구간은 해발 1,500m를 넘는 태백산,오대산보다
더욱 조심스러운 곳이다.

조심스럽게 쥐바위를 내려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처음 출발한 해리면 평지리 마을이 멀리 보인다.
지나온 능선과 곳곳에 즐비한 기암들의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한다.

낮 12시25분
바위 능선이 주를 이루는 산행길이지만
이런 키작은 소나무 숲길도 연이어 나타난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각종 야생화들도 곧잘 눈에 띈다.
특히 며느리밥풀꽃이나 닭의장풀은 자주 눈에 띈다.

소나무 숲이 잠시 끊어지며 눈 앞으로 청룡산과 그 뒤로 배맨바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 청룡산까지는 500m거리이다.

낮 12시42분
이제는 그동안 좌측면만 보이던 배맨바위가 정면으로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는 사진 중앙부의 낙조대와 바로 우측에 붙은 천마봉이 뚜렷이 보인다.
천마봉 우측 아래는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이어지는 계곡으로는
도솔천이 흐르고 그 우측으로 사자바위,투구바위도 보인다.

낮 12시53분.
해발 334m인 청룡산 정상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숨을 고른다.
별도의 정상석이 없이 이정표만이 있는 곳이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멋진 그림을 계속 그린다.
빠른 속도로 산행을 했으면 한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두시간이 걸리게 느린 속도로하는 산행이어서인지
마음도 더 차분해지고 기분 또한 평상시보다 무척 좋은 오늘 산행이다.

오후 1시6분.
배맨바위 앞을 지난다.
멀리서보면 그리 크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배를 매는 바위'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선입견때문에
돛단배쯤을 매어 놓는 작은 바위쯤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옆을 지나면서 보니 거대한 항공모함을 묶어두어도 될듯한
거대한 암봉이다.

오후 1시34분.
병풍바위 부근까지 당도해 북쪽을 바라보니
눈 앞에 봉긋하게 솟은 바위 봉우리인 천마봉이 보이고
바로 뒷편 좌측에 연이어 낙조대의 장관이 펼쳐진다.
그너머로는 지난 9월5일 산행시 거쳤던
천상봉,개이빨산 등의 모습도 보인다.

오후 1시46분.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상궁이 자살한 장소라는 푯말이 붙은
낙조대 앞 휴식터에서 서쪽 방향으로 낙조대를 바라본다.
예전부터‘낙조대에 올라야 선운산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이곳은 해넘이 풍경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이곳에서 해넘이를 보리라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오후 1시49분.
도솔암 입구쪽으로 하산하기 위해
급경사 철계단이 있는 벼랑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맞은편 도솔암 뒤를 둘러싼 암벽을 바라본다.
우측으로 아담하게 자리한 도솔암도 눈에 들어온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면 도솔암 좌측 암반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이 어렴풋이 보인다.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알려진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음으로 미루어
도솔암은 미륵신앙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한다.

오후 2시10분.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와 마애불좌상 앞에서 마애불을 자세히 살펴본다.
높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미륵상 마애불이다.
'미륵불'이란 석가모니 이후에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를 말함이다.

이 불상의 배꼽에는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가 봉해놓은
신비스러운 비결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그것이 세상에 출현하는 날에는 한양이 망한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또한 그곳에는 그 비결과 함께 벼락살을 동봉해 놓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비결을 꺼내려고 손을 대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고 했다.
실제로 오래 전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것을 꺼내다가
벼락이 쳐 도로 봉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 후 세상 사람들은 미륵불의 전설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하지만 비결은 1893년 가을 동학접주 손화중에 의해 꺼내지고,
다음 해에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전라도를 휩쓸게 되는데,
비결의 개봉이 세상을 개벽하려는 농민들의 의식을 깨우는데
일조했다는 얘기들도 전해진다.

오후 2시15분.
지난 9월5일 이곳을 지날때는 이제 막 꽃대가 오르기 시작할뿐
꽃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곳.
꽃무릇이 이곳 도솔암 '나한전'앞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한전 [羅漢殿]이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聖者)이다.
부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때문에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후 2시24분
도솔암을 떠나 맑은 물이 흐르는 도솔천을 끼고
선운사를 향해 내려간다.
이제 산길은 끝나고 간혹 차량이 한두대씩 지나다니는 흙길이다.
길 옆으로는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붉은 꽃망을을 터뜨리는 꽃무릇이 끝없이 이어진다.

금년은 늦더위로 인해 꽃무릇의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늦어
1주일쯤 후에나 주위를 온통 붉게 타는듯 물들일 꽃무릇의 향연이
펼쳐질듯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 취향으로는 완전히 만개한 상태보다
오늘처럼 절반은 꽃봉오리만 보이는 이런 여유로움이 더 좋게 여겨진다.

6개의 수술이 꽃 밖으로 길게 삐져 나오는 이 '꽃무릇'은
원산지가 이웃나라 일본이며 일명 '석산(石蒜)'이라고도 한다.
9~10월에 꽃대만 솟아오른 줄기 끝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못한채 꽃이 떨어진 다음 짙은 녹색의 잎이 나오는데,
이 잎은 다음해 봄에 시든다.
그래서 간혹 '상사화'라 부르기도 하지만 '상사화'라는 꽃은
따로 있다. '상사화'는 우리나라 원산이다.

이 붉은 꽃무릇의 공식 명칭은 '석산(Lycoris radiata)'으로
다른 색은 없고 붉은색뿐이다.
원산지가 일본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 중국의 양자강 지역에서 자라던 것이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덩이뿌리로만 번식하기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가 들어올 수 없어
대대로 부모의 형질을 이어 받았고,
동아시아 지역의 석산은 모두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오후2시54분.
30여분 이상을 꽃무릇에 묻혀 걷는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여인과 스님의 사랑이야기로 얽힌 전설이 있다.
혼자 애만 태우다 죽은 처녀,그리고 스님의 처소 앞에 핀 이름 모를 꽃.
꽃과 잎이 서로 같이 만날 수 없는 꽃무릇의 운명인가보다.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저승길에 피어있는 꽃으로 여겨
귀신을 쫓기위해 집 주변에 심기도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꽃잎의 모양이 마치 불꽃같아
집안에서 키우면 화재가 발생하기때문에 민가에서는 키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이꽃을 많이 심는다.
누군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꽃무릇의 뿌리에는 독소가 함유되어 있는데
그 독소는 방부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사찰 건물에 단청을 하거나 탱화를 그릴 때
뿌리를 찧어서 바르면 좀이 쓸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오후 3시30분.
선운사 입구 녹차밭 주변에는 다른 곳과 달리 꽃무릇이 만개한 상태다.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쳐 놓은 곳에까지 들어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피해
겨우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우리나라의 3대 꽃무릇군락지는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그리고 이곳 고창 선운사 일대이다.
내년에는 시기를 잘 맞춰 좀 더 활짝핀 상태의 꽃무릇을 시간 여유를 갖고
감상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선운사 주위를 벗어난다.

꽃무릇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보니 선운사 경내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매년 한 두차례씩 들리는 선운사인지라 다음 기회로 미룬다.

위 사진은 지난 2008년 7월20일 오전 11시8분에 찍은
선운사 대웅전 앞의 모습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인 선운사 [禪雲寺]는
서기 577년(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다 한다.
1,500여년 된 고찰답게 비 그친 후의 경내 모습이 무척 차분함을 주는 사찰이다.

오후 3시39분.
귀가 차량이 멀리 보이는 주차장 가까이에서
이제는 철이 지나 거의 져 가는 예쁜 꽃을 만난다.

이 꽃이 바로 우리나라가 원산인 "상사화[相思花]"이다.
붉게 핀 '꽃무릇'과 같은 백합과이지만
'꽃무릇'이 꽃이 피고 진 후 잎이 나는데 반해
이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났다가 6~7월에 잎이 진 후
8월에 꽃대가 외로이 솟아 올라 꽃이 핀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고 하여 "상사화[相思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년 여름 상사화와 꽃무릇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