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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바위와 다랭이논이 있는 남해 설흘산 산행기

2010년 12월12일 일요일 오전 11시33분
응봉산을 거치는 설흘산 산행을 위해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선구리 마을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무척 추운 날씨인데다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는 을시년스런 날씨지만
한려수도의 청정 해역을 품에 안은 풍경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잔잔한 바다 위로 낚싯배가 부지런히 오간다.
아마도 부근 갯바위에 낚시꾼들을 내려주고 오는 배인듯 하다.
이 부근 바다는 겨울철이면 대형 감성돔 조황이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오래 전 낚시에 열 올리던 시절의 짜릿했던 손맛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마을 입구의 보호수 옆을 지난다.
수령이 350 여년이며 높이는 대략 14~5m 정도되는 팽나무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인 팽나무는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뿌리가 튼튼하여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고 내염성도 강해 해안가에서도 잘 자란다.

오전 11시40분
마을 길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아직 꽃이 남아 있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는 곳
위를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숲길로 들어 선다.

오전 11시46분
잠시 이어지던 낙엽 쌓인 숲길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암반 길로 이어진다.
짙은 빛깔의 큰 암반 위로 오르는 발걸음들이 무거워 보인다.
추운 날씨인지라 아직은 산행객들의 몸이 덜 풀린 때문일 것이다.

암반 위에 올라 서니 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해발고도는 대략 160m 정도.
눈 아래로 남해군에서 조성중인 '향촌전원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오는 2011년말까지 입주 완료를 목표로 추진중인 2만 1764㎡(약 6,500여평)의
전원마을은 총 21필지로 되어 있으며 분양가는 ㎡당 18만 500원 ~21만 2000원이라 한다.

계속 동쪽 방향으로 걸음을 이어간다.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는 곳. 돌담길 옆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아마도 예전에 이곳에서 누군가가 집을 짓고 살았거나
아니면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음직한 곳이다.

낮 12시8분
한동안 비교적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지더니 큰 암반이 앞을 가로 막는다.
오늘 산행객이 그리 많은편은 아니지만 초보자들이 많은 때문이지
이런 암반이 나타나면 한동안 정체 현상이 빚어진다.

해발 257m 조망바위에서 남동쪽으로 눈을 돌린다.
아담하고 예쁜 향촌마을이 눈에 들어오고
바다 너머로 갓김치로 유명한 여수시 돌산도가 길게 드러누워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섬은 지난 봄 다녀온 금오도인듯 하다.

낮 12시18분
산행길은 계속 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아직 잎이 다 떨어지지 않은 가지 많은 나무에
찬 바닷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나뭇잎은 하나 둘씩 가지에서 벗어나
숲길 위에 떨어진다. 그 낙엽을 밟으며 지나간다.

진행 방향으로 오른쪽인 남쪽은 바다가 이어지고
왼쪽인 북쪽으로는 자그마한 마을이 보인다.
임포리의 진깨모,임포,운암 마을들이다.
마을 뒷편으로는 해발 300여m 대의 고동산,망기산,장등산의 능선이 이어진다.

마을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층층이 계단을 이룬 다랭이 논에는 어김없이 남해 특산품인
마늘이 빼곡히 심어져 있다.
남해는 임야면적이 68%로 농지는 23%에 불과하다.
한때 13만을 넘는 사람이 살았던 남해는
이렇게 한 뼘의 산이라도 농지로 바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자연을 이기고 살아온 남해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낮 12시27분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몸이 활기를 찾는다.
목덜미와 이마에서는 조금씩 땀이 배어나기 시작한다.
한동안 산행길은 바위와 이와같은 낙엽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아기자기한 길이다.

낮 12시30분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능선 위로 오르는 구간에서는 다시
길게 정체가 이어 진다.
가파른 바위 능선을 오르는 산행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낮 12시37분
해발고도 390m를 가리키는 바위 능선에 올라섰다.
서쪽 눈 아래로 '향촌전원마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그 바다 너머로는 길게 누운듯한 돌산도와 그 우측 중심부에 여수항이 보인다.

낮 12시45분
설흘산 산행 구간의 백미인 응봉산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공룡능선이 이어진다.
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칼날같은 바위 능선이다.
능선 끝부분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가 응봉산이고
그 좌측 봉우리가 오늘 산행 구간중 최고봉인 설흘산이다.
그 너머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아마도 금산인듯 하다.

조금 전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칼날같은 바위 능선 위를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산행객들의 모습이 아찔하다.
그 너머로 전남 여수시가 보인다.

바다 건너 여수쪽을 자세히 살펴 본다.
중앙에 여수에서 돌산도로 이어지는 돌산대교의 모습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방파제로 연결된 오동도의 모습도 뚜렷이 보인다.

참고로 이 돌산대교 사진은 지난 4월18일 오전 금오도 대부산 산행을 위해
돌산대교 아래를 배를 타고 지나며 찍은 사진이다.

낮 12시59분
칼날같은 바위 능선을 20여분간 지난 후
눈 앞에 보이는 응봉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암릉 구간을 벗어나 급경사 내리막 길을 다시 내려간다.

응봉산을 향해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전
잠시 한 숨을 돌리며 뒤쪽을 돌아 본다.
남해 바다의 작은 섬이 이처럼 기묘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음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응봉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내 딛는다.

오후 1시10분
응봉산 정상에 올랐다.
그리 넓지 않은 정상부에는 막걸리와 각종 음료를 파는 상인이 진을 치고 있다.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뒤섞여 무척 부산한 모습이다.

응봉산 정상석 앞에서 북동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다.
정상석 너머로 마치 저수지처럼 보이는 곳이 앵강만이다.
해안가의 마을은 남해군 이동면 화계리이다.
앵강만은 꾀꼬리 앵(鶯)자에 물 강(江)자를 쓰고 있지만 어원은 명확치 않다.
꾀꼬리가 많이 울어 눈물이 강을 이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또 주변에 있는 곳골이 꾀꼬리의 순 우리말인 곳고리에서 유래됐지만
일제가 민족정기를 흐리기 위해 한자식으로 바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동쪽으로 잠시 후 올라야할 설흘산 정상부가 보인다.
앵강만을 좌측으로 두고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사면이 쪽빛 바다로 둘러싸인 경남 남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히는 앵강만은
마치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형상의 남해도 아래쪽에 있다.
이곳 응봉산 정상에서의 남은 거리는 약 2km이다.

설흘산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정상부의 봉수대 위에 올라선 산행객 몇 사람이 보인다.
매주 산행시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이 순간 저곳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게 여겨진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조금 조급함이 느껴진다.

오후 1시24분
응봉산 정상을 떠나 설흘산을 향해 동쪽으로 향하는 능선.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에서 같은 차량을 타고 와 산행을 시작한 일행들과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남쪽 아래로 남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
그 한 가운데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가천마을이 보인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쪽빛 바다가 마을을 둘러싼 아담한 곳.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이지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량이
다른 휴일날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어든듯 하다.

오후 1시47분
점심과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이어지는 산행길.
해발 350m정도의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낙엽이 두텁게 깔린 오솔길이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피로하지 않을듯 싶다.

오후 1시54분
설흘산 정상까지 1.5km를 남겨둔 지점의 비교적 넓은 평지에
헬기장이 마련되어 있다.
많은 산행객들이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기는 곳이다.
수년 째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다보니 아는 얼굴이 많아졌다.
이곳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이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죄 짓고는 못 살 세상인듯 싶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다시 이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걷기 편한 길이 이어진다.

오후 1시58분
설흘산 정상까지 1km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낙엽 쌓인 오솔길이 끝나며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평지가 나타난다.
동쪽으로 설흘산 정상부가 뚜렷이 보이는 곳. 해발 300m 지점이다.
응봉산을 거쳐 오느라 지친 산행객들 일부는 이곳에서 1km남짓 거리인
가천마을로 곧바로 하산하기도 하는 곳이다.
또한 설흘산만을 오르는 산행객들도 이곳을 통해 설흘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이다.

오후 2시18분
억새꽃이 만발하던 평지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돌이 많은 오르막 산길은 많은 산행객들에게 고통을 준다.
이제 설흘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50여m. 해발고도는 440m정도 지점이다.
온 몸에 땀이 솟는다. 마지막 힘을 낸다.

오후 2시25분
설흘산 정상의 봉수대 앞에 당도했다.
사방이 뻥 뚫린 곳. 바람이 무척 세차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봉수대는 6m, 너비 7m로 사각형이다.
왜구의 침입과 재난을 알리기 위해 이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남해현읍지》에 의하면 남해 금산과
전남 돌산도 봉수대와 서로 연락하였다고 한다.

지난 2009년 2월14일 이곳에 올랐을 때는 저 정상석이
봉수대 아래 계단 입구에 놓여 있었는데
오늘은 이곳 봉수대 위에 놓여 있다.
산행 중 등산자켓을 벗고 티셔츠 하나만 입었었는데
강한 겨울 바람을 못견뎌 자켓을 여며 입고 오랫만에 내 사진을 한 장 찍어 본다.
못 생긴 얼굴 드러내고 함부로 사진 찍지 말라던 아내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정상석 옆에서는 두터운 모자에 귀마개까지 한채 추위에 떨면서도
남해바다의 멋진 풍광을 폰카에 담으려는 이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남서쪽으로는 가천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위 능선으로 이루어진 산줄기가 삼면을 둘러싼 아늑한 곳이다.
찬바람을 받지 않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음직한 아늑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가까이 살펴 본다.
잠시 후 하산을 하게되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맑고 푸른 바닷가까지 발걸음을 옮길 생각을 해 보니
너무 행복해 지는 순간이다.
산과 바다의 참맛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꾀꼬리의 눈물바다’로 불리는 앵강만이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인 노도를 품에 안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이 바로 노(櫓)처럼 생겨서 노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섬이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조선조 숙종 때귀양살이를 한 섬이 바로 이곳이다.

오후 2시32분
설흘산 봉수대를 떠나 하산하는 산꾼들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인다.
흔히들 그냥 설흘산이라 하지 않고 '설흘산봉수대(雪屹山烽燧臺)'라 불리는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흘산(所訖山) 봉수’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訖(흘)'이라는 한자의 뜻이 "산이우뚝솟을 흘"이니 아마 산의 모양에서
이름을 얻은듯하다.

오후 2시58분
가천마을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길이기는 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다운 마을과 바다 풍경이 간헐적으로 보이는
지루하지 않은 하산길이다.

오후 3시8분
산행길이 끝나고 아스팔트 포장이 깔끔하게 되어 있는
1024번 지방도로변에서 가천마을을 내려다 본다.
지난 여름 비내리는 어느날에도 잠시 다녀간 곳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풍경이다.

근면한 농민들은 좁은 경지에서도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사진에서처럼 층층이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논에서
남해의 주요 생산물인 마늘과 쌀을 이모작하는 방법으로 토지 이용률을 높여 왔다.
주요 농산물은 마늘, 쌀, 고구마 등인데
남해는 마늘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를 차지하고 있다.

오후 3시14분
가천마을 가운데 자리한 '밥무덤'앞을 지난다.
기록에 의하면 이 마을에 이런 밥무덤이 3곳이 있다는데
나 자신은 이곳 한곳 외에는 찾지 못했다.
매년 음력 10월 15일 밤에 마을사람들이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축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내는 곳이다.

다랭이논과 더불어 이곳 가천마을의 또 다른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된 암수바위의 모습이다.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23일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푸짐한 제를 올리고 있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다.

오후 3시25분
목재 데크로 안전한 산책로를 만들어 둔 바닷가에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귀로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가천 마을의 바닷가 모습을 마음속에 담는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가천(加川)이라고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멀리 조금 전 서 있던 해발 481m인 설흘산이 눈에 들어 온다.

삼한시대에 남쪽 변한(弁韓)의 12개 부족 국가중
군미국(軍彌國) 또는 낙노국(樂奴國)에 속하였다고 추측되며
이후 가야연합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현 진주 관할인 고령(古寧)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처음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 7년(687)인 남해.

이런 남해군은 고려 중엽부터 조선 중엽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왜구들의 끈질긴 침공과 약탈을 받았지만, 스스로의 끈질긴 항쟁으로 땅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이태리의 시칠리섬이나 프랑스의 콜시카섬 같은
섬 사람들만의 단결력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근면과 단결 없이 지금 보이는 이런 다랭이논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오후 5시7분
귀가 길 남해를 벗어나기 전
남해대교가 한 눈에 보이는 설천면 쉼터에서 잠시 아름다운 남해대교를 바라보며
휴일 하루 일정을 마친다.

저 다리를 건너면 하동군 금남면 노량이다.
한국 최초의 현수교(懸垂橋)로 지난 1973년 6월 준공된 길이 660 m의
왕복 2차선인 남해대교.

노후화로 인해 총중량 32.4t 미만으로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있는 저 남해대교 대신
좀 더 서쪽에 43.2t까지 통행이 가능한 왕복 4차로에 총연장 990m의 제2남해대교가
지난 2009년 10월 착공되었으니
제2남해대교가 2016년 9월 준공되면 이곳 남해를 찾는 관광객도 더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