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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가 참선을 했던 의상봉이 있는 우두산 산행기

2010년 11월28일 오전 10시31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의 고견사 입구 주차장에서 차량 하차 후
우두산 산행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1.2km거리의 고견사를 거쳐 의상봉으로 오르기도 하지만
조금 더 시간 여유를 가지고 암릉구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1.6km거리의 마장재를 우회하여 의상봉을 거쳐 하산시
고견사를 들리기로 한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대략 510m 정도이다.

오전 10시41분
10여분 이상을 이처럼 낙엽이 쌓인 푹신한 산길을 따라 오르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겨울에 하얀 눈이 뒤덮여도 아름다울듯한 숲길이다.

마장재까지 거리가 1.1km인 용소삼거리에서는
북쪽으로 1.7km거리인 우두산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오지만
마장재를 향해 동쪽 방향으로 산길을 이어간다.
용소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돌부리 산'이라 불릴 정도로
온통 암반 투성이인 우두산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점점 많이 눈에 띈다.

오전 10시48분
자그마한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660m정도 지점이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갈지도 모를 그런 아늑한 옹달샘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듯 하다.

오전 11시17분
북쪽으로 2km지점에 우두산 상봉이 자리하고
남쪽으로 2.8km를 가면 비계산이 나오는 삼거리 지점인 마장재에 도착했다.
해발고도는 대략 810m정도인듯 하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우측에서 좌측으로
잠시 후 당도하게 될 의상봉이 눈에 들어오고
지남산,장군봉,바리봉 등으로 연결된 암릉이 펼쳐 진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측 아래 죽전저수지와 그 주변의 죽전마을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남산제일봉, 그리고 그 뒤로 합천 해인사를 품에 안은
해발 1,430m 가야산도 뚜렷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 마장재에는 거창군에서 지난 2007년부터 2년에 걸쳐
산철쭉 2만 그루를 식재한바 있어 수년내로 봄철이면 붉게 피어나는
산철쭉으로 장관을 이룰듯 하다.

죽전저수지의 쪽빛으로 빛나는 물빛이 아름답다.
가야산 단지봉 줄기에 싸인 계곡형 저수지인 저곳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죽전리이다.
지난 1986년 준공된 5만2천평 면적의 죽전저수지는 붕어,잉어,향어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 11시19분
마장재까지는 동쪽을 향한 산행이었지만
마장재에서부터 우두산 정상부인 상봉을 거쳐 의상봉까지 이르는 길은
북향한 길이며 암릉의 연속이다.
마장재를 출발해서 잠깐동안 마치 터널을 연상시키듯한 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오전 11시40분
마장재를 지나 20여분간 이와같은 멋진 바위들의 사열을 받으며 가는 암릉길이다.
이제 해발고도는 900m정도로 계속 이어진다.
암릉구간인지라 마장재에서 불과 0.6km정도를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전 11시53분
멀리 눈 앞으로 의상대사가 수도할 때 하루 두 사람분의 쌀이 나왔다는
쌀굴이 자리한 거대한 암반이 보인다.
그 앞쪽의 기묘한 바위가 아마도 쌀굴 앞에 우뚝 솟아 있다는 십이지신상석이 아닌가 싶다.

암반 주위를 300mm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남쪽에서 비치는 한낮의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는
산행객들의 모습에서 행복감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지나온 암릉 구간을 뒤돌아 본다.
멀리 30여분 전에 지나온 마장재가 보이고
그 너머로 노르재,뒷들재를 거쳐 이어지는 곳에
해발 1,126m인 비계산이 보인다.

낮 12시2분
흔들바위 뒤로 가조면 수월리 마을이 어렴풋이 내려다 보인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거창군에서 가조면은 남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사과,딸기,복수박,야콘 등이 특산품인 가조면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낮 12시6분
쌀굴이 있는 암반에 도착했다.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서 보니 더 멋진 바위이다.
같은 버스를 타고온 일행 중 산행을 힘들어 하는 몇몇분의 안전을 돌보며
천천히 왔지만 후미 그룹을 기다려주는 일행들의 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낮 12시11분
다시 이어지는 산행길도 위험한 암릉 구간이다.
위험성이 높은 곳에는 철제 난간 또는 밧줄을 묶어 두었지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초보 산행객들은 상당히 더딘 걸음이다.

조금 전 지나온 쌀굴이 있는 암반의 뒷 모습도 기묘하다.
암반 너머로 가조분지와 비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인다.
나 자신 한 손에 무게 3.5kg의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쪽 팔만으로 암반을 오르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평소 꾸준히 해 온 체력 단련이
이럴 때는 큰 도움이 된다.

낮 12시16분
앞만 보고 가는 길이 아닌 지나온 암릉 구간을 뒤돌아보며 가는 산행길이다.
이처럼 멋진 풍경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온 암릉을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비가 내릴 때는 극히 위함하므로 산행을 삼가야할듯 하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남산제일봉 너머로 가야산이 뚜렷이 보인다.
가야산 앞으로 펼쳐진 능선은 아마도 만물상 구간이 아닐까 싶다.

낮 12시45분
해발 970m정도 위치에 자리한 능선삼거리의 평지에서
20여분간 머물며 점심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산행길을 이어간다.
대부분 암릉구간인 이곳 우두산 산행구간에서 점심식사를 할만한 장소가
아마도 이곳 뿐인듯하여 산행객들로 무척 붐비는 곳이다.

나무숲으로 둘러 싸이고 억새꽃이 만발한 아늑한 장소이다.
절정기가 지나 이제 시들어 가는 억새꽃이지만
햇빛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낮 12시54분
이곳 우두산 정상인 상봉을 오르기 직전 만난 기묘한 바위의 모습이다.
마치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무슨 전동공구같기도 하고..
자연이 빚어 놓은 아름다움이다.

낮12시58분
이곳 우두산의 최고봉인 해발 1,046m 상봉에 도착했다.
이 이정표 외에는 정상석이 없다.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의 형세가 소머리를 닮았다 하여
우두산(牛頭山)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

그러나 정상부의 몇평 남짓한 평지를 점령한 채 식사를 하는
이런 몰상식한 못된 인간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두산 주봉(主峰)에서의 조망을 포기한 채 이동한다.

오후 1시7분
눈 앞으로 이곳 우두산 제2봉인 의상봉(義湘峰)이 가까이 보인다.
제2봉이면서도 주봉인 상봉보다 인기가 많아 산이름이 이 봉우리의
이름인 의상봉으로 알려진 경우도 많다.

의상봉을 좀 더 가까이 살펴 본다.
깎아지른듯한 암벽에 만들어 놓은 계단을 따라 많은 산행객들이 힘겹게 오른다.
정상에 올라선 사람들에게서 부러움을 느낀다.

오후 1시17분
눈 앞에 가까이 보이는 의상봉이지만 의상봉 바로 아래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이와같은 위험한 암릉구간을
지나야하므로 20여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오후 1시26분
의상봉 정상에 오르기 위해 급경사 오르막인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며 계단 숫자를 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마다 숫자가 다르다. 202,207,210 등등..
대충 200계단 정도 되는듯 하다.

오후 1시46분
정상석 주위에 기념사진을 찍는 인파가 너무 많아
10여분을 기다린 후 사진 1장을 찍는다.
해발 1,038m이다.
이곳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참선하던 곳으로 알려진데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 때문에 다른 봉우리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가북면의 자그마한 산골 마을들이 한둘씩 보이고
그 너머 멀리로는 남덕유산을 이루는 완만한 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다.

북동쪽을 바라보면 조금 전 지나온 우두산 정상인 상봉으로 이어지는
기암괴석들 너머로 멀리 가야산이 눈에 들어 온다.

오후 1시59분
의상봉을 떠나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경사가 급한 하산길.
산죽군락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곳.
아직 잎이 채 떨어지지 않은 단풍나무를 비롯한 각종 활엽수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계곡 옆으로 하산길이 계속된다.

오후 2시35분
고견사(古見寺) 입구에 당도했다.
입구라기보다는 산에서 하산하는 지점이니 옆이라고 해야할듯하다.
해발고도는 대략 700m안팎인듯하다.
가지런히 놓인 몇 안되는 장독대가 정감을 느끼게 한다.

멋지게 생긴 바위 봉우리가 북쪽의 찬바람을 막아 주고
남쪽으로 경사를 이루는 아늑한 곳에 자리한 아담한 고견사.
아마도 이 문은 사천왕문이나 불이문쯤으로 여겨지는데 현판은 없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사찰이라하더라도
일주문은 있지만 금강문,사천왕문,불이문 등이 없는 곳이 많은데
좀 특이함을 느낀다.

오래 전 옛날에는 견암사(見庵寺:見巖寺), 견암선사(見庵禪寺)라고 불렸던 이곳
절을 지을 때 쌓아 올렸던 신라 때의 석축이 남아 있다고 했는데
저 석축이 신라 때 쌓은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전면,측면 각 3칸인 팔작지붕 구조의 대웅전 모습이다.
고견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애장왕(재위 800∼809년) 때 순응(順應)과 이정(理貞)이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360년(공민왕 9)에 달순(達順)과 소산(小山)이 김신좌(金臣佐)와 함께 중수하였다.
그 후 1630년 설현(雪賢)과 금복(金福), 종해(宗海)가 중건하면서 고견사로 개칭했다 한다.

오후 2시44분
신라시대 최치원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앞을 지난다.
지난 2000년 보호수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대략 1,0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대략 28m이고 둘레가 6m가 넘는 큰 나무이다.

맞배지붕으로 된 작은 문을 지나며 고견사를 벗어난다.
현판에 '우두산고견사'라 적힌 이 문이 아마도 금강문 쯤 되는듯하다.
사찰에 있어서 일주문 다음의 두 번째 문이 금강문인데
일주문은 하산하면서 보지 못했다.

오후 3시6분
고견사를 벗어나 하산하는 길은 크고 작은 돌이 연이어 이어지는
너덜길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산길이다.
해발 550m정도 되는 지점에서 산길 모퉁이를 돌면서
거대한 암반을 만난다.
바로 "견암폭포"이다.
수직으로 솟은 암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여름철이면 높이 20m의 수직 암벽을 타고
세찬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는 곳이지만
한동안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은 때문인지 물줄기가 무척 가늘다.
겨울철에는 산악인들이 빙벽타기 연습장소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비록 흐르는 물의 양이 적기는 하지만
바위를 타고 흘러 내리는 맑은 물이 고인 곳에는 작은 소(沼)가 만들어져 있다.
저곳에도 옛날부터 전해오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든가
목욕하다 옷을 잃은 선녀의 얘기가 전해올지도 모르겠다.

오후 3시14분
4시간 반에 걸친 산행을 끝내고 당초 출발했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각종 산나물 등을 작은 함지에 이고 와서 파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의
호객을 위한 외침소리가 숨가쁘게 느껴진다.
짧은 겨울해가 서산에 걸렸기 때문일게다.

나 또한 길가 작은 식품점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으로
추운 몸을 녹인 후 행복했던 휴일 하루를 마감하며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