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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에서 순천만 갈대밭으로 이어진 늦가을 정취 가득한 길

2010년 11월21일 일요일 오전 10시47분
행정구역상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인 송광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송광사로 향하는 길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완만한 경사길이다.
나뭇가지에 잎이 얼마 남지 않을 정도로 길 위에는
낙엽이 소복하게 쌓인 길을 10여분 이상 걷는다.
발 아래 밟히는 낙엽의 감촉이 싫지 않다.

오전 10시54분
소백산맥 끝자락에 솟아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끼고 있는 조계산(884m).
이곳 송광사는 조계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산 전체가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될 정도로 다양한 수종으로 이루어진
숲길이 아름답다.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렸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진입로 좌우의 나무숲이 마치 깊은 산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줄 정도로 울창하다.

오전 11시
일주문이 가까이 보이는 곳
늦게까지 고운 빛을 발하는 붉은 단풍잎이 거울같은
잔잔한 개울 물에 비친다.
저 다리를 건너 가면 수많은 송광사 부속 암자 중 몇 곳인
불일암,광운암,감로암으로 갈 수 있다.

물가 길 옆에는 돌 비석 하나가 뭍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 있다.
수레를 탄 사람은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이다.
즉 신성구역을 뜻하는 경계비인 것이다.

하마비의 연원은 아마도 1413년(조선 태종 13년) 왕명으로 종묘,
그리고 궐문 앞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새긴 경계석을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게 했던 것일게다.

하마비 맞은편의 수많은 부도탑으로 이루어진 부도군(浮屠群)은
이곳 송광사가 불보(佛寶)사찰인 통도사, 법보(法寶)사찰 해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사찰로써 고려시대 이후 16국사가 배출된
승가의 대표적 승보(僧寶)사찰임을 한 눈에 보여 준다.

오전 11시3분
송광사의 일주문인 '조계문'을 들어선다.
대부분 사찰의 경우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첫 관문인 일주문은
경내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며 이와같은 담이 없이
거의 외로이 서 있다. 아주 특이한 것임은 분명하다.
이 일주문은 최초에 신라시대에 지은 이래 1310년,1464년,1676년,
그리고 1802년에 고쳐 지었다는데, 건축 양식으로 보아
현재의 일주문은 1802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오전 11시7분
송광사의 주 불전인 대웅보전 앞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어느 사찰에서도 보기 힘든 지나치게 우람한 건물이다.
정면 7칸,측면 5칸의 아자형(亞字形) 건물이다.
화려한 다포식 공포를 조합하여 평면이 아(亞)자를 이루는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난 1988년에 다시 지었다는 이 건물 때문에
나는 송광사의 건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점수를 0점만 준다.
돈 자랑하는건 싫다. 아마 부처님도 싫어하실 것이 분명하다.

관음전 뒷뜰 언덕에 자리한 '보조국사감로탑(普照國師甘露塔)'앞에서 잠시 멈춘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로
정혜결사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당시 고려후기의 불교계에 새로운 정신개혁 운동을 전개한 선봉자로서
한 시대의 부패한 현실을 정의롭게 이끌고자 했던 종교지도자였다.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이곳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그 후 고려시대인 1200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한다.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10여점 이상의 보물, 기타 문화재 등의 보유량이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손꼽히게 많은 송광사.
외형적인 성장이 아닌 내면적인 깊은 불심의 성장을 바란다.

오전 11시24분
우리 도시인들이 오래된 사찰을 찾는 이유는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 큰 건물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산사의 고즈넉함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이다.
내가 원하던 풍경에 잠시 멈추어서 본다.
그나마 이런 풍경에서 조금 위안을 얻고 송광사를 벗어난다.

오전 11시39분
송광사를 벗어나 시작되는 본격적인 산행길은 환상적인 길이다.
비록 단풍철 막바지인지라 불타는듯한 화려함은 없지만
조릿대가 길 양편으로 도열한 가운데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으며 지나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이곳 송광사 부근의 대표적인 골짜기인 '홍골'을 좌측으로 끼고 오르는 길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릴 때는 물이 흐르던 곳에 갈수기인 요즘은
녹색의 이끼가 또 다른 멋을 안겨 준다.

아직은 잎이 많이 남은 활엽수림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
바닥을 뒤덮은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한동안 걷다보면
마치 내가 숲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무아지경이다.

오전 11시47분
토다리 삼거리를 지나며 또 한 번 이런 멋진 다리를 지난다.
송광사에서 1km남짓 지나온 지점이다.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들어서 동쪽으로 향하면 피아골를 거쳐 선암사에 가까운
작은굴목재로 가는 길이지만 나는 숲속 경관이 더 좋은 남동쪽을 향해 직진한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이 길을 택한다.

낮 12시1분
'걸친바위' 앞을 지난다.
걸친바위전설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옛날 조계산에 살던 스님들을 시기하는 마군들이
송광사와 선암사를 왕래하는 스님들의 길을 막기 위해 큰 바위를 굴렸고
이를 막기 위해 도승이 굴린 돌이 큰 바위를 괴며 길 막는 것을 막아낸다.
훗날 사람들은 이 바위를 길을 막으려다 괸 돌에 걸쳤다하여
"걸친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토다리 삼거리에서 이어지는 산길은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이다.
비록 계절적으로 가을의 끝자락이긴 하지만
조릿대 군락과 간혹 눈에 띄는 붉은 단풍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산길이다.

낮 12시14분
송광사에서부터 2.3km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대피소가 만들어져 있다.
내부에 2~3명이 걸터 앉을 수 있는 쪽마루가 만들어져 있는곳.
산행 중 급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나 강한 바람 정도는 피할 수 있을만한 곳이다.

낮 12시33분
송광굴목재에 도착했다. 해발 720m.
'재'란 고개를 이르는 말인데, 이처럼 '재'에 멋진 표지석을 세운 경우는 드물다.
이곳 조계산의 최고봉인 해발 884m 장군봉보다 이곳 '송광굴목재'와
선암사쪽에 가까운 큰굴목재(선암굴목재),작은굴목재가 송광사-선암사를 잇는
산행길에서 더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송광사에 2.5km떨어진 이곳 굴목재는 산행객들의 중간휴식터이다.
나무벤치마다 지친 몸을 추스르는 산행객들로 만원이다.

굴목재를 이 부근 어르신들은 굴맥이재라고 부르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예언가가 이곳 지하로 '굴'이 뚫릴 '목'이라 하여 '굴목재'라 이름을 지었으며
이후 주암댐과 상사호 간의 통수로가 이곳 굴목재 지하로 뚫림으로서
그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래의 얘기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옛부터 이 지방 사람들은 굴목재 양쪽 사이의 골짜기인 장박'골'을
장박'굴'이라고 발음했다고 한다. 그리고 골짜기를 가로막고 있는 '목'의 뜻도 가져와
발음의 편리상 '맥이'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굴맥이재로 표기해야 맞다고 한다.

낮12시44분
굴목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4갈래 길인 굴목재에서 좌측(북쪽)으로 가면 연산봉을 거쳐
4.4km떨어진 장군봉으로 향하게 되고, 우측(남쪽)으로 가면 1.7km떨어진 천자암으로 향한다.
그러나, 나는 직진방향(동쪽)으로 4km떨어진 선암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굴목재를 벗어나 몇분 지나지 않아 형체가 뚜렷이 남아 있는 숯가마터를 지난다.
해발 670m 지점이다.
이곳 조계산에는 유난히 숯가마터가 많다.
아마도 갈참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종류가 많은 때문인듯 하다.
이곳 마을사람들은 '숯가마'를 "숯굿막"이라 부른다.
이는 '숯굿(숯가마)' 과 '숯막(숯 굽는 사람들의 움막)'이 합쳐진 말이다.

낮 12시50분.
해발 600m지점에서 또 하나의 대피소를 지난다. 30여분 전 지난 곳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이 대피소는 "배도사(裵道士)대피소"라는 이름을 얻은 곳이다.
1983년경 지어진 이 대피소에 오래 전 한 때 긴머리 수염에 훤칠한 체격을 가진
배(裵)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곳에서 기거한적이 있는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풍수와 사주에도 일가견이 있는듯한 그 사람을
기억하던 이들에 의해 세월이 지나면서 "배도사대피소"가 되었다 한다.

오후 1시9분
이곳 조계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보리밥집'에는 늦은 점심을 즐기는
수많은 산행객들로 붐빈다.
해발 560m 장밭골 분지에 자리한 이 보리밥집은 산에 올라야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보리밥 한 그릇에 6,000원. 야채전,도토리묵,동동주,솔잎주 등도 판다.
보통 사람인 나 또한 이곳을 찾을 때는 으례 그러하듯 보리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떼운다.

혹자는 이곳이 불법, 또는 무하가가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이 식당은 자연공원법상 자연취락지구내에 위치한 곳으로
도립공원 행위허가(점용허가;99.8.26), 건축물 사용승인(2000.7.4),
식품접객업 영업허가(2002.2.18)를 받아 합법적으로 상행위를 하고 있다.

오후 1시25분
보리밥집을 벗어나 굴목교삼거리에 도착했다. 해발 590m지점이다.
선암사까지는 두갈래길로 나눠진다.
좌측(북쪽)으로 작은굴목재를 지나는 길은 선암사까지 3.5km
직진(동쪽)방향으로 큰굴목재를 지나는 길은 선암사까지 2.7km.
늦은 오후 순천만갈대밭을 경유하기 위한 차량 탑승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또, 큰굴목재에서부터 선암사골까지 이어지는 단풍나무군락지를 지나기 위해
직진 코스를 선택한다.

자연친화적인 나무로된 굴목교를 지나며 아래를 보니 맑은 물이 흐른다.
얼굴과 손을 맑은 물로 씻는다.
얼음장마냥 차가운 물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오후 1시37분
큰굴목재를 향하는 길. 한동안 오르막길을 올라야한다.
선암사까지 가는 길목에서 마지막 오르막이다.
보리밥집에서 배불리 먹은 후 오르는 오르막길은 모두에게 큰 고통이다.
산행 초보자들은 뱃속이 가벼워야 산에 오르기가 수월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구간이다.

오후 1시40분
큰굴목재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한숨 돌린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680m를 가리킨다.
좌측(북쪽)으로는 1km떨어진 작은굴목재를 거쳐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남쪽)으로는 호남정맥을 따라 고동산으로 이어진다.
나는 2.3km남은 선암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단풍나무 군락지를 따라 직진한다.

아직 나뭇잎이 남아있는 단풍나무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형형색색 나무숲을 헤치며 지나는 숲길. 온몸으로 숲의 기운을 빨아들인다.

오후 1시51분
해발 500m지점에서 큰 암반 옆을 지나는 하산길이다.
그 앞 안내판에 '호랑이 턱걸이 바위 전설'이라는 글귀 아래에 설명문이 씌어 있다.

옛날 이 바위위에 목을 걸치고 엎드려 있던
악인과 선인을 구별할 줄 아는 똑똑한 호랑이 얘기이다.
착한 사람에게는 자리를 비켜주고,악한 사람은 해치려했다 한다.
그 후 호랑이가 턱을 내 밀고(걸치고)있는 바위라 하여 이름을 얻었다.

오후 2시5분
단풍나무 군락이 끝나는 부분 맑은 물이 조금씩 흐르는 쉼터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가을을 한동안 지켜본다.

오후 2시18분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이정표에는 '편백림숲 산책로'라 씌어 있다.
'히노끼'라 칭하며 일본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이 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내는 소나무과 중에서도 방출량이 으뜸인
사람에게 무척 이로운 나무 중 하나이다.

오후 2시31분
야생화 미로원단지, 대승암 삼거리,서부도전 앞을 지나 산길이 끝나고
멀리 눈 앞에 선암사 건물이 조금 보이는 곳.
가을 바람을 맞은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여겨지는 전형적인 남도의 가을날 오후이다.

오후 2시34분
이곳 조계산의 동쪽에 자리한 태고총림(太古叢林)인
선암사(仙巖寺)를 둘러보려 했으나, 차량탑승시간을 맞추기 위해
주차장으로 곧장 걸음을 옮긴다.

강선루(降仙樓)아래로 지나간다.
선암사의 문루(門樓)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누문을 일주문 안쪽에 두는 데 반해
선암사의 경우 누문을 일주문 밖에 두어 계곡과 어울리도록 한 것이 이채롭다.

승선교 아래 계곡물에 비친 강선루의 모습이 아름답다.
보물 제400호인 이 승선교(昇仙橋)는 화강암으로 된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승선교의 치석(治石)과 홍예의 결구(結構)가 벌교 홍교의 것보다 고식(古式)을 띠고 있으며,
그 구조도 웅장한 점으로 보아
영조(英祖) 때 조성하였다는 벌교 홍교보다 조성연대가 앞선다고들 한다.

오후 2시40분
선암사 경내를 완전히 벗어난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년)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문득 정호승 시인의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라는 시가 생각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오후 4시9분
선암사 주차장을 떠나 순천만 갈대밭으로 향하는 길.
차량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상사호 주변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차량 탑승 시간을 지키지 않고 선암사 경내를 구경하느라 늦은 몇몇 사람들 때문에
이 아름다운 상사호 주변 경치 구경을 할 시간이 없어 멈추지 못함이 아쉽다.

오후 4시51분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입구를 통해 걸어 들어가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1년에 한 두번씩 들리는 곳이지만 늦은 오후의 이 풍경이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이다.

일몰 시각이 가까워지며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비행한다.
'여자만 장어'라는 상호를 잉태한 장본인인 '여자만'으로 불리기도하는
순천만일대의 철새는 양보다 질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염습지 식물의 일종이며 새들의 먹이가 되는 칠면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기에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가 세계 전개체의 약 1%이상이
서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두루미가 발견되고 있다.
그 외에도 저어새, 황새의 발견기록이 있으며 혹부리오리가 세계 전개체의
약 18%가 서식하고 있으며 민물도요는 세계 전개체의 약 7%가 서식하고 있다 한다.

오후 4시57분
생태공원에서 갈대밭으로 연결된 나무데크 다리 위에서 멀리 용산전망대쪽을 바라다 본다.
1964년 발표된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 을 통해
처음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순천만,
물론 소설속의 무대는 순천만의 일부인 대대포구 부근이긴 하지만 ..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곳의 안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이후로 대대포구의 아침안개는 유명해졌고,
더불어 순천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갯벌과 갈대밭,
포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귀가할 차량 탑승시간 때문에 1km이상 떨어진 왕복 1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용산전망대까지 가지 못하고 망원렌즈로 전망대를 살펴본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지난 2007년 12월1일 오후 저곳에서 순천만의 아름다움에 취했던 기억이 솟아 난다.

2007년 12월1일 오후 3시30분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2007년 12월1일 오후 4시3분

2007년 12월1일 오후 4시4분

2007년 12월1일 오후 4시19분

이곳 약 30만평의 갈대군락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갈대 군락은 적조를 막는 정화 기능이 뛰어나
순천만의 천연 하수 종말 처리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홍수조절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한다.
또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고 안정감을 주어, 물고기들의 보금자리가 되며,
다시 이들을 먹이로 하는 수서 조류들이 찾아오게 된다.
순천만이 희귀 조류의 서식지가 된데에는 바로 갈대군락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한다.

순천만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람사습지협약"에 가입된 곳이다.
그 넓이만 해도 800만평에 이르고
세계적 희귀조인 흑두루미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서식하는 곳이다.
일몰시각이 가까워오지만 지평선상에 짙게 드리운 구름 속에
이미 서쪽의 해는 모습을 감추었다.
갈대밭에서의 일몰을 보지 못한채 많은 사람들은 발길을 돌린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억새)

참고로 귀가를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
생태공원 연못에 뒤섞여 피어있는 억새와 갈대 사진을 각각 올린다.
억새는 산에서 많이 자라지만 물가에서도 물억새가 자란다.
꽃이 상당히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을 준다.

(갈대)
갈대는 산에서는 자랄 수 없고 물가에서만 자란다.
자세히 보면 꽃이 억세고 남성스러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