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은혜로운 섬 자은도 두봉산 산행기

2010년 11월14일 일요일 오전 11시36분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해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3시간 반을 달려온 버스가 도착한 곳. 전남 신안군 압해면 송공선착장.
낮 12시에 출항해 암태도 오도선착장으로 향할 '신안농협페리호'가 접안중이다.

어제 오후부터 찾아온 추위로 행락객이 줄어든 점은
추위를 크게 타지 않는 나에게는
여유있는 여행 및 산행을 위해서는 차라리 도움이 되는듯하다.
세차게 몰아치는 겨울 바람속에서도 파도가 그리 심하지는 않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자은도를 가기 위해서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40여분 걸리는 암태도 남강선착장을 거쳐야 했으나
지난 2008년 5월 목포와 압해도 사이에 압해대교가 준공된 후에는
암태도 오도선착장까지 이곳에서 뱃길로 20여분이면 도착한다.

대전에서부터 타고온 45인승 버스도 같이 배를 타고 떠난다.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자은도까지는 암태도와 자은도를 연결하는
은암대교를 건너 자은도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이다.

낮 12시7분
12시 정각에 출항한 총톤수 254톤, 정원 162명의 페리보트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암태도를 향해 나아간다.
겨울용 등산자켓의 후드를 뒤집어 썼는데도 강한 바닷바람에 몸이 움츠러든다.
정면으로 멀리 암태도 최고봉인 해발 355.5m인 승봉산 너머로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자은도의 두봉산이 어렴풋이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잠시 후 도착할 암태도 오도선착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자은도의 두봉산 모습도 뚜렷이 보인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비록 짧은 산행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낮12시26분
2년여 전만해도 소형 어선들만 머물던 작은 포구였던 오도선착장이
이제는 암태도의 주관문 역할을 한다.
차량을 실어 나르는 페리보트 선착장과 도로를 만드느라 절개한 야산 사면이
아직은 황량한 풍경을 연출한다.

오후 1시경이 간조(썰물)시각인지라 물이 많이 빠진 선착장 주변
대형버스가 페리보트에서 내리는데 비교적 긴 시간이 걸린다.
하늘에 옅은 구름이 조금씩 모여들긴 하지만
시계는 비교적 양호한 날씨인지라 산행시 조망이 그리 나쁠것 같지는 않다.

오후 1시3분
자은면사무소 부근 도로에서 버스를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52.7㎢의 면적에 1,269세대 2,438명(2009년 말 기준)이 사는 이곳 자은도의
살림을 맡은 아담한 면사무소의 모습에 정감이 간다.
이곳 역시 지난 1,999년에는 3,146명이던 인구가 10년 사이에 크게 줄었다.
우리의 암울한 미래가 크게 걱정된다.

이곳 자은도의 특산물은 마늘이다.
좋은 토질에서 자란 자은 마늘은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품질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대부분 마늘밭에는 이처럼 일정 간격으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는데,
섬 전체를 뒤덮은 마늘밭에 쏟아지는 스프링클러의 시원스런 물줄기도
이곳 자은도의 볼거리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이미 꽃이 진 억새가 대부분이지만
따뜻한 지방이어서인지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군락이
육지 손님을 반가이 맞이한다.

오후 1시16분
울창한 잡목 숲을 헤치고 산길을 오른지 10여분
이곳 자은면 소재지인 구영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은도는 예로부터 어염시수 (魚鹽柴水 :고기, 소금, 나무, 물 )가 풍족하여
부촌이고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고려때는 산성이 있었고,
조선 시대엔 수군 진지가 있었으며,
일제도 이곳에 해군 진지를 구축 했었다고 한다.

비록 서해바다의 작은 섬이지만
산행 들머리에서 시작해 해발 200m 이상의 바위능선으로 오르기까지
한동안 이와같은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들이 어우러진 멋진 곳이다.
가을 단풍산행의 즐거움도 만끽하며 오르는 산행길이다.

오후 1시46분
동서 방향으로 뻗은 바위 능선에 올라섰다.
남서쪽으로 구영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바다위의 작은 섬들이 보인다.
유난히 저수지가 많은 섬이다.
좌측의 저수지는 산행 들머리 부근에 있던 구영2저수지이고,
우측에 보이는 작은 저수지는 장고저수지이다.

북서쪽으로 눈길을 돌려도 역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해발 225m 성제봉 너머로
서해바다의 작은 섬들이 작은 점을 찍은듯하다.
구름 낀 하늘이 조금은 아쉽다.

바닷가를 망원렌즈로 자세히 살펴본다.
이곳 자은도의 서부는 사빈해안으로 해변엔 질 좋은 규사가 생산 됐었으며
전경이 아름다운 해수욕장만 9개가 위치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사빈[sand beach, 砂濱]이란 주로 유입하천(流入河川)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되거나,
해식애(海蝕崖)와 인접 해안의 침식으로 생긴 사력(砂礫) 등이
연안의 파랑이나 바닷물의 흐름에 의해 운반 ·퇴적되어 생성된 모래 해안을 말한다.

오후 1시52분
이곳 자은도 최고봉인 두봉산 정상까지는 이와같은
암릉이 동서 방향으로 한동안 이어진다.
동쪽 방향으로 바닷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암릉 구간을 조심스레 나아간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암태도와 이곳 자은도를 연결하는 은암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 바다에는 수많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은암대교 우측으로는 백길 방조제에 연이어 유명한 백길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한 시간 남짓 전에 버스를 타고 건너온 은암대교를 망원렌즈로 자세히 살펴본다.
자은도 - 암태도 간 연도교로서 다도해 특정지역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도서주민의 생활환경을 향상시켜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해상국립공원 개발을 추진시키기 위해 지난 1990년 12월에 착공하여
1996년 5월 완공한 길이 675m,폭 9m의 교량이다.

오후 2시3분
암릉구간을 이어가는 산행길이라 걸음이 조심스럽고 더디다.
지나온 능선길의 웅장함이 마치 육지의 높은산의 느낌을 준다.
아득한 옛날 태고 때 천지가 생성되던 그 때에 이곳 자은땅이
모두 물 속에 잠겨 있었는데,
그 후 한 말(1斗) 가량의 땅 덩어리가 솟아 있었다가
세월이 흘러 점점 바닷물이 줄고 육지가 형성되어
높은 산을 이루어 두봉산(斗峯山)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서쪽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도 긴 암릉구간이 계속 이어진다.
앞서 기술한 두봉산의 생성에 관한 설화를 자은도 주민뿐만 아니라
이 지역 섬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두봉산의 산정까지도
그 옛날의 자취를 알 수 있는 조개껍질이 바위 등에 붙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한다.
하긴 지구상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도 먼 옛날에는 바다속에 잠겨 있었다고하니
설화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닐 것이다.

오후 2시15분
이곳 자은도의 최고봉인 두봉산 정상석 앞에 도착했다.
해발 363.8m로 높이는 낮으나 섬산행의 특성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행구간인만큼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하루 전 토요일에 다녀온 담양 추월산의 경우
해발 731m의 정상에 정상석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정상을 밟은 기분이 든다.

오후 2시49분
정상 부근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점심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아름다운 경치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하산 준비를 한다.
중앙에 바다 건너 보이는 산이 암태도의 승봉산이다.
저 승봉산은 해발 355.5m로 두봉산보다 8m 정도 낮다.
그래서 한 되(升) 가량의 땅덩어리가 솟았다해서 승봉산(升峯山)으로 이름 지었다 한다.

오후 2시58분.
산행 시작시와 달리 이 섬의 남동쪽인 유천리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 암반길이다.
이 부근에 임진왜란 당시 지원나왔던 명나라 이여송 휘하의 군사 두사춘(斗四春)이
반역자로 몰려 피신했던 2평 남짓한 방 모양의 천혜방(天惠房)이라는
바위굴이 있다니 그럴만도 할 것 같은 험난한 구간이다.

오후 3시5분
남서쪽으로 멀리 수많은 섬들이 마치 일렬로 늘어선듯 보인다.
중앙부의 가장 높은곳이 아마도 지난해 봄 다녀온 비금도의 그림산이 아닌가 싶다.
저곳 비금도와 그아래 서남문대교로 연결된 도초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구역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이곳에서 서쪽 방향인 흑산도에서 시작해
전남 여수 앞바다의 돌산도까지 구간을 아우른다.
그리고 여수 돌산도에서부터 시작해 우측으로 통영 한산도까지의 남해바다는
'한려해상국립공원'구역이다.

오후 3시27분
산행이 끝나고 귀가할 버스가 기다리는 유천리 마을로 향한다.
인가 가까이에 묘지가 있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해안지방에서 전래되던 '초분'이라 일컫는
장례 풍습의 여파가 아닐까 싶다.

*초분(草墳)은 풀이하면 ‘풀무덤’이다.
상주가 고기잡이로 멀리 나가 급히 장례를 치를 수 없을 때
바닷가 섬 사람들은 일단 시신을 짚으로 덮어 땅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3년 혹은 5년 뒤쯤 시신이 깨끗하게 썩고 나면 날을 잡아 무덤을 만들었다.
섬마을에서만 행해지던 풍장(風葬)이다.

유천리 마을 가옥들은 섬마을답게 키높이의 돌담들이 정겨운 곳이다.
앞서 얘기한 명나라 이여송 휘하의 군사 두사춘(斗四春)이 반역자로 몰려 피신하다가
이 섬에 와보니 지형지세가 모난 데 없이 평탄하고 사람들이 온후하여 생명을 보전하게 되자
감사의 뜻으로 섬 이름을 자은도(慈恩島)라고 부른데서 섬 이름이 유래했다 한다.

오후 4시34분
낮에 출발했던 암태도의 오도선착장에 도착했다.
몇시간 전보다 파도가 조금 잔잔해진듯하다.
이곳 암태도는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있다고 하여
암태도로 불리게된 곳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름철에 다시 찾아와 며칠 머물고 싶은 섬이
자은도,그리고 암태도이다.

서쪽으로는 짧은 겨울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1924년에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나라 소작쟁의의 효시였다.
지난 1998년, 높이 6.74m에 면적 1,360㎡의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을
세워 암태도의 숭고한 소작인 항쟁을 기념하고 있는 이곳 암태도.
그런 연유로 이곳 암태도를 한마디로 표현한 캐치 프레이즈는
"의로운 농민의 혼이 숨쉬는 암태면"이다.

오후 4시39분
출항 예정시각이 오후 4시40분이건만 일요일 늦은 오후인지라
육지로 나갈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서서 페리보트에 몸을 실을 순서를 기다린다.
평소 일요일에 남,서해안 섬지방을 다녀올 때 익히 보아온 모습인지라
느긋하게 출발시간을 기다리기로하고 따뜻한 선실에서 몸을 녹인다.

오후 5시23분
출항 예정시각에서 20분이나 늦게 출발한 신안농협페리호는
차량을 가득 싣고 압해면 송공선착장으로 접안을 시작한다.

이르면 금년말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이곳 압해면과 암태도간에 놓일 길이 7.23km의 가칭 '새천년대교'가
완공되면 지금 이 모습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섬 전체가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그 이름을 얻은
압해도(押海島) 송공선착장에 고깃배가 만선의 즐거움으로 도착했다.

노향림 시인의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라는
싯귀를 떠올리며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압해도 사람들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이마받이를 하고 문득 눈을 들면
사람보다 더 놀란 압해도
반·고호의 마을로 가는지
뿔테 안경의 아이들이 부르는 휘파람 소리
일렬로 늘어선 풀들이 깨끔발로 돌아다니고
집집의 지붕마다 귀가 잘려
사시사철 한쪽 귀로만 풀들이 피는 나지막한 마을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압해도를 듣지 못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