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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를 건너 장곡사로 이어진 칠갑산 산행기

2010년 12월18일 토요일 오전 10시6분
한때 충남의 알프스라고도 불릴 정도로 험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자랑했던 칠갑산 산행을 위해
칠갑산 휴게소에서 차를 내려 산행 준비를 한다.

칠갑산 정상 부근은 행정구역상 충남 청양군 대치면이지만
이곳은 청양군 정산면 신덕리이다.
서쪽 산행방향으로 300m정도 높이의 야산에 둘러 싸인
인공 저수지인 천장호가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0시6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천장호 호수 주변의 어제 내린 흰 눈을 밟고 맑은 공기를 들이킨다.
지난 1979년 완공된 후 깨끗한 수면과 빼어난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청양명승 10선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린 천장호.
7년간의 공사 끝에 축조된 관개용 저수지로 면적은 1,200㏊이다.
1㏊(헥타아르) 가 10,000제곱미터m²이며 3,025평이니
대략 3백6십만평 정도 되는 호수의 넓이다.

오전 10시17분
산행을 위해 천장호를 가로지르는 이른바 출렁다리 앞에 도착했다.
지역 특산물로 구기자와 고추를 홍보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청양군의 노력이 이 다리에서도 엿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온 '청양고추'는
이곳 청양군에서 말하는 '청양군'의 고추는 아니다.
'청양고추'는 국내 모 종묘회사에서 지난 1983년에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에 성공하였으며,
현지 농가의 요청에 의해 청송의 청(靑),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등록한 것이다.

지난해인 2009년 7월 개통된 길이 207m,폭 1.5m 의 출렁다리를 지난다.
오랫동안 칠갑산 등산의 시발점으로 인기 높던 북쪽 대치터널 부근
한치고개의 산행객을 이곳으로 옮기게한 출렁다리.
청양군에서는 국내 최장의 출렁다리라고 자랑을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전북 완주군 대둔산의 구름다리,
전북 순창군 강천산의 현수교인 구름다리나
경북 봉화군 청량산의 하늘다리에는 훨씬 그 감흥이 못 미치는 느낌이다.

좌우로 30~50cm 흔들리도록 설계된 출렁다리를 건너며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껏 웃음보를 터뜨리는 중년의 산행객들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흐뭇한 마음으로 즐거워 진다.
거울같은 호수면을 비치는 태양을 등 뒤로 하고 서쪽으로 향한다.

오전 10시25분
출렁다리를 건너 산길로 이어지는 쉼터에 호랑이와 용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그 앞 안내판에는 '용과 호랑이의 전설'이라는 제목하에
천장호에서 천년을 기다려 승천하려다 자신의 몸을 바쳐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한 황룡,
영물이 되어 칠갑산을 수호한다는 호랑이에 대한 얘기이다.
30년 전 인공으로 만든 저수지에 이런 전설을 엮어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청양군 관계자의 노력이 가상하게 여겨진다.

급경사 오르막인 산행 들머리의 목재 데크 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어제 내린 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계단에 발을 딛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는듯 발걸음이 가볍다.

오전 10시39분
산행들머리의 급경사 오르막을 지나면서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산길이 이어진다.
해발 200m를 넘어서면서 소복히 쌓인 흰 눈을 밟으며 지난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길을 지나는 산행이다.

오전 11시28분
이제 해발고도가 400m를 가리킨다. 칠갑산 정상까지의 남은 거리는 대략 1km정도.
진행 방향 우측인 북쪽 방향 나뭇가지 사이로 천문대 건물이 보인다.
천장호 출렁다리 개통괴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7월 문을 연
'스타파크'라는 이름의 저 천문대는 앞으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는 명소로 발돋움할 것이다.

오전 11시34분
해발고도 400m를 넘어서면서부터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능선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비록 해발500여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1시간 이상 걷다보니
몸에 땀이 난다. 등산 자켓을 벗고 티셔츠 한벌만 입었는데도 덥다.
이렇게 산길을 걸으며 땀을 흘리는 것은
보약 100첩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떠올려 본다.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북쪽 능선의 흰 눈이 아련히 보인다.
차령산맥에서 이어지는 북쪽의 한티고개(大峙:대치)를 지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덕봉(大德峰:472m)·명덕봉(明德峰:320m)·정혜산(定惠山:355m) 등과 이어지는 칠갑산은
대치천(大峙川)·장곡천(長谷川)·지천(芝川)·잉화달천(仍火達川)·중추천(中湫川) 등이
산의 능선을 따라 내려 흘러 금강으로 흘러간다.

오전 11시55분
칠갑산 정상에 올라선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 아래 온통 헐벗은 앙상한 나뭇가지들.
그나마 어제 내린 흰 눈이 그 삭막함을 조금은 메워준다.

정상석 앞에서 지나온 동쪽 방향을 바라본다.
산행을 시작한 천장호 부근은 눈 앞의 산봉우리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따뜻한 겨울날씨인지라 어제 내린 눈이 북쪽 사면에만 남아 있고
햇볕을 잘 받는 남쪽 사면의 눈은 거의 녹은 상태이다.
능선의 부드러움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해발561m인 칠갑산. 백제시대에는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칠갑산(七甲山)이라 경칭하여 왔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 칠갑산 능선을 흘러 금강으로 향하는 지천(芝川)·잉화달천(仍火達川)등이
계곡을 싸고 돌아 7곳에 명당이 생겼다 하여 칠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칠갑산자연휴양림과 청소년수련원이 있는
칠갑저수지 부근에 눈에 들어온다.

칠갑저수지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오래전인 1930년대에 만들어진 대치면 광대리의 저 칠갑저수지는
오전에 지나온 천장호 면적의 1/20 에 불과한 58ha의 작은 저수지이지만
봄,가을이면 붕어·잉어·가물치 등이 잘 잡히는 곳이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칠갑대교는 36번국도를 이어준다.

낮12시8분
동행한 산악회 운영진들이 종산제를 지내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요즘 들어 대도시 근교산에는 이처럼 종산제나 시산제를 위한 제단을 마련해둔 곳이 많다.
지난해 이맘때는 모산악회의 종산제에 동행해 충남 홍성의 백월산에 올랐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이 사진에서 나타난다.
산악회 기(旗)는 정면이 보이는데 반해 정작 우리나라 태극기는
전면이 아닌 뒷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각종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우리 국가대표선수들이
태극기를 거꾸로 들거나 하여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던가?

다음번에 시산제나 종산제를 할 경우에는 이와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낮 12시16분
종산제 행사중 마무리 과정인 음복을 하며
한해동안의 안전산행을 자축하고 서로간의 화합을 다지는 행복한
시간이 이어진다.
어제 내린 눈은 이런 멋진 풍경을 연출하기 위한 서설(瑞雪)이었나보다.

오후 1시6분
칠갑산 정상 넓은 공터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오랫동안 즐긴 후
하산을 시작한다.
오전 산행이 칠갑산 정상을 향해 서쪽으로 이어진데 이어
하산길도 장곡사로 향하는 서쪽 방향이다.
산길이 끝나는 장곡사까지는 3km,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까지는 4.3km의 거리이다.

오후1시21분
시간이 여유있는 산행에서의 하산길은 마음부터 편안하다.
땅위에 쌓인 낙엽 위에 내려 앉은 흰 눈.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위에 두 발을 올리면 마치 양탄자를 밟듯 부드럽다.
행복감에 겨워 그 위에 길게 드러누워도 본다.

오후 1시27분
장곡사까지 1.8km정도 남은 지점. 이제 해발고도도 400m 아래로 떨어졌다.
20여분 전 떠난 칠갑산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살펴 본다.
장상부의 봉우리에는 키 큰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야생 벚나무와 진달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 산이 희고 붉은 빛으로 뒤덮이는 저곳.
내년 봄에 다시 찾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소나무,참나무 등이 터널을 이루는 아름다운 숲길.
흰눈을 밟으며 지나는 하산길.
이제 겨울이 깊어가면서 더 많은 눈이 내리게되면
오늘처럼 등산화만으로는 힘든 아이젠을 착용해야하는 산행길이 될 것이다.

오후 2시11분
산행이 끝나고 장곡사 경내에 발을 내 딛는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대략 150m정도이다.
가장 최근 이곳을 찾은 것이 지난 2008년 11월이니
근 2년만에 다시 찾은셈이다.
당시 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풍경에서
흰 눈이 은행잎 대신하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장곡사(長谷寺)는 850년(통일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외에는 참고 자료가 거의 없는 곳이다.

가장 특이한 점은 대웅전이 2개소라는 점이다.
이 사진은 보물 제181호인 '하대웅전(下大雄殿)'의 모습이다.
동남향으로 자리한 이 맞배지붕 건물은 조선 중기에 지은 것이라 한다.

하대웅전 내부를 보면 보물 제337호인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이
홀로 모셔져 있다.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통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는 경우가 많은데
대웅전에 약사여래상을 홀로 모신 경우는 오직 이곳 장곡사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이한 광경이다.

하대웅전 뒷편 언덕의 상대웅전으로 올라 상대웅전 앞 뜰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조용하고 아늑한 사찰이다.
공주시 사곡면에 있는 대사찰인 마곡사의 말사인 이렇게 작고 아담한 사찰에
국보 2점을 비롯하여 여러 점의 보물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마곡사에도 보물만 몇점 있을뿐 국보는 없으며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는 보물조차 1점도 없는 곳이 대부분일진대.

보물 제162호인 상대웅전(上大雄殿)의 모습이다.
맞배지붕 구조에 전면 3칸 측면 2칸인 점은 아래의 하대웅전과 유사하나
하대웅전이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에 반해 이 상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아주 특이한 점은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는 점이다.

상대웅전 안을 들여다 본다.
중앙의 보물 20174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鐵造毘盧遮那佛坐像─石造臺座]'
모습이다.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의 대좌는 본시 이 불상의 대좌가 아니라
석등(石燈)의 대좌인데 후대에 이 불상의 대좌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의 진신(眞身)을 높여 부르는 칭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로 모신 점 또한 아주 특이하다.

비로자나물 좌측에 있는 국보 제58호인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의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고 전해진다.

대웅전 뜰의 감나무에는 이제는 익을대로 익어 홍시가 된 붉은 감이
여럿 매달려 있다.
한겨울 먹이가 없어 굶주리는 배고픈 새들의 먹잇감을 남겨두고
감을 수확하는 우리네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와 더불어
자비로운 부처님의 미소가 어우러지는 대목이다.

오후 2시47분
장곡사 경내를 여유있게 두루두루 살핀 후
눈길을 걸어 내려와 장곡사 경내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인
일주문을 벗어나며 천장호 출렁다리에서부터
장곡사까지 이어진 칠갑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해발 1,400m가 넘는 가야산 산행을 앞둔 나로서는
가벼운 산행이었지만 호젓한 산길을 걸은 후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둘러볼 수 있는 행복한 주말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