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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철쭉 화원 지리산 바래봉

2011년 5월22일 일요일 오전 10시38분
전북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소재 '전북학생교육원'을 뒤로하고
오르막 경사길을 힘주어 올라간다.

해발 600m가 채 못되는 지점에서 시작해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기를 10여분 째
이제 해발고도가 600m를 훌쩍 넘었다.

오전 10시43분
지루하게 이어지던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 포장도로가 끝나고
해발 고도 700m 정도에서 비로소 산길로 접어든다.
하늘을 찌를듯한 낙엽송이 강한 피톤치드를 내뿜는
비교적 울창한 숲 길이 마음에 든다.

오전 11시20분
해발 830m 정도되는 지점의 작은 공터에서 걸음을 멈추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이어지는 오르막 산행길.
온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며 숨이 가빠 온다.
이제 다리 근육이 알맞게 풀려 걸음은 편해졌다.
해발 900m를 넘어서며 좁은 산행길 주위에
비교적 연한 빛깔의 철쭉이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오전 11시38분
1시간 이상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오르막 숲길을 오르느라
기진맥진할 즈음 급경사 오르막 위로 하늘이 보인다.
산행들머리에서 2km 거리인 '세동치'에 도착했다.
좌측 나뭇가지에 걸린 자그마한 표지판에는
'학생교육원~세동치 : 종점'이라 표기되어 있다.
아마도 산행 초보자에게는 무척 힘든 구간임을 시사하는듯 싶다.

오전 11시42분
해발고도 1,120m 인 세동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남동쪽을 향하던 산행 방향을 북동쪽으로 바꾸어 능선길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남서쪽으로 4.3km 떨어진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한 산행객들과
나처럼 학생교육원에서 산행을 시작한 산행객들이 합쳐지는 이곳 세동치.
심한 정체가 이어진다.
여기서 바래봉까지의 거리는 5.1km이다.

오전 11시48분
사람 키를 조금 넘을 정도의 울창한 관목숲을 잇는 능선길.
앞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 속도를 맞추어 나가는 지루한 길이다.
눈 앞으로 잠시 시야가 트이며 진행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으로 멀리 민둥산처럼 보이는 바래봉도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1시59분
뒤따르는 인파가 잠시 끊어진 틈을 타 뒤쪽을 돌아본다.
녹음 짙어가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세걸산,고리봉,정령치가 한 눈에 보이고
멀리 흰구름 아래로는 펑퍼짐한 모습이 특이한
지리산 제2봉인 1,732m의 반야봉(般若峰)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뒷편 능선길 한 부분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산행 인파가 꼬리를 물고 따라 온다.
당초 오늘 산행 들머리를 해발 1,172m인 정령치로 계획했으나
많은 인파로 인한 정체를 염려하여 전북학생교육원으로 수정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오전 9시40분에 정령치를 출발한 산행객을 이곳에서 만났으니
정령치에서 이곳까지 2시간이 걸린셈인데,
아마 1시간 늦은 10시 40분경 그곳을 출발했다면
심한 정체로 인해 이곳까지는 3시간 이상 걸렸음직하다.

진행 방향 우측인 남동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붉은 철쭉꽃 아래로 흰 점이 몇개 찍힌듯한 상부은 마을이 보이고
그 바로 뒷편으로는 해발 1,225m 삼정산,영원령을 중심으로한 능선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능선 너머 중앙부 멀리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이다.
천왕봉 좌측 가까이 해발 1,875m 중봉이 뚜렷이 보이고
천왕봉 우측으로는 제석봉,연하봉,촛대봉으로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상부운마을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도로에서 4km이상 떨어진 곳.
1650년경 장수황씨가 속세를 떠나 처음 정착했다는 곳이다.

산기슭에 집들이 띄엄띄엄 몇 호씩 있어 마치 뜬 구름같이 있다 하여
‘뜰 부(浮)’자와 ‘구름 운(雲)’자를 써서 부운(浮雲)이라고도 하며,
첩첩산중에 항상 구름이 머물러 있어 구름 속에 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운이라고도 한다.

낮 12시19분
해발 1,000m에서 1,100m대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북쪽으로 향하는 능선길.
키 작은 관목으로 이어진 좁은 산행로를 몸을 굽히다시피하고 걸음을 잇는다.
간혹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산죽잎이 옷깃을 스치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낮 12시45분
해발 1,115m 지점인 부운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우리나라 특산인 병꽃나무에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주로 산지 숲속에서 자라는 이 나무의 꽃은
노랗게 피었다가 점점 색깔이 붉어진다.
이제 바래봉까지 남은 거리는 3km이다.
세동치에서 2.1km인 이곳까지 오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평일날이면 3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건만.

조망이 트이는 서쪽을 바라다 본다.
산행 들머리인 운봉읍 공안리 마을 넓은 논밭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중앙부의 작은 저수지는 공안저수지이고,
그 뒤로 덕산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좌측은 주촌리,
우측은 덕산리 마을이다.
덕산저수지 뒷편 마치 동네 뒷산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봉우리가
해발 804m인 수정봉이니 저 마을의 해발고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자그마한 공안저수지를 가까이 살펴 본다.
쪽빛 맑은 물이 가득한 공안제라고 흔히 불리는 저수지를 바라보니
금년 봄 농사에 물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듯 싶다.

오후 1시
해발 1,000m 정도로 낮아진 능선길을 한동안 걸은 후
1,123m 봉에 올라서 진행 방향인 북쪽을 바라보니
2시간 반동안 이어진 지금까지의 산행길과는 판이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붉게 핀 철쭉 군락들이 멀리 우측 끝에 민둥산처럼 보이는 바래봉까지
마치 도로 표시를 한듯 이어진다.

급한 마음에 멀리 볼록하게 솟은 부분인 팔랑치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수많은 산행객들이 천상의 화원에서 만발한 철쭉꽃에 파묻혀 있다.

주위를 붉게 물들인 철쭉의 향연 속으로 나 자신 빠져 들어간다.

비교적 분홍에 가까운 채도가 낮은 철쭉이 거의 같은 색깔로 피어
자그마한 산 전체를 뒤덮는 전남 보성의 일림산 철쭉이나
조금은 짙은 색으로 넓은 황매평전을 뒤덮다시피 피어나는
경남 합천,산청의 황매산 철쭉과는 달리
이곳의 철쭉은 그 색깔이 무척 다양하다.
연분홍에서부터 짙은 붉은색까지.

어제 밤 늦게까지 내린 비로 인해 맑아진 하늘 아래
마치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는 흰 구름이 어우러진
철쭉꽃 핀 산행로를 걷는다기보다는 거닐며 지난다.

이처럼 철쭉이 터널을 이루는 곳을 지나면
주위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붉게 보인다.

키 작은 철쭉군락 사이를 지날 때는
뒤돌아 서서 한참을 멈추어 있기도 한다.

오후 1시17분
철쭉 군락 속에 들어 온 이후 거의 전진을 못하고
만개한 철쭉을 즐긴다.
저 한쌍의 남녀도 넋을 잃고 천상의 화원을 바라보느라
오랫동안 꼼짝을 하지 않는다.

주위의 다른 꽃들에 비해 분홍에 가까운 철쭉군락 속에서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
여유를 가지고 꽃속에 파묻혀 점심과 휴식을 취한다.

최근들어 철쭉산행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곳 바래봉 구간은
멀리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인 팔랑치 부근 1.5km정도 구간에
철쭉이 집중적으로 피어나 천상의 화원을 만들어 낸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고도 하며,
산에서 나는 산철쭉은 '수달래', 물가에서 피는 것은 '물철쭉'이라 한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는 철쭉꽃 축제라 부르지 않고 수달래 축제라 부른다.

철쭉이라는 이름은 확실한 것은 아니나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뜻의
‘척촉(擲燭)’이 변해서 된 이름이라는 얘기도 들은바 있다.
철쭉을 먹이식물로 하는 곤충으로는 진달래류의 잎을 먹고 사는
'극동등에잎벌'의 애벌레가 있는데, 철쭉 잎 속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철쭉도 진달래과의 식물이다.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작은 곤충이 극동에잎벌을 닮은듯도 하다.

오후 1시35분
지나온 능선과 철쭉군락이 시작되는 곳을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보며 팔랑치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이곳 팔랑치 부근에서 바래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큰 나무가 없이 철쭉을 비롯한 키 작은 나무들만 자란다.

이유는 지난 1969년 축산 선진국인 호주의 도움을 받아
이 일대의 나무를 베어내고 초지를 조성하여
면양을 사육하는 시범목장을 설치한데서 비롯된다.

당시 시범목장이었던 운봉목장은
1972년부터 1976년까지 호주에서 면양 2천 7백여 마리를 들여와 방목하였는데,
면양들은 독성이 있는 철쭉을 먹지 않아 일반 잡초는 없어지고 철쭉만 남았다 한다.

오후 1시57분
해발고도 1,010m 지점인 팔랑치를 떠나 나무계단을 지나
전망대로 향한다.
팔랑치(八郞峙)는 과거 마한(백제국 창건 이전의 부족국가)시절
변한(가야국)과 진한(신라의 이전국가체계)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8명의 장수를 배치하여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2시17분
팔랑치를 지나 바래봉으로 향하는 길 전망대에서 잠시 멈추어
조망을 즐긴다.
진행방향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드넓은 운봉읍 전경이 펼쳐진다.

가까이 살펴보면 바둑판처럼 네모로 만들어 놓은 논에 논물이 가득하다.
저런 논은 대형기계로 농사짓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어쨌든 농산물 수입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의 주식인 쌀만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급해야한다는 생각을
나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남동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흰 구름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다.
좌측 끝 중봉의 호위를 받으며 천왕봉이 늠름하게 자태를 뽐내는 중에
우측으로는 제석봉,촛대봉,덕평봉,명선봉,토끼봉,반야봉,노고단,만복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좌측에 해발 1,875m의 중봉, 그리고 우측에 해발 1,806m의 제석봉을 거느린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의 위용이 느껴진다.

북동쪽으로 1km 남짓 떨어진 바래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바래봉이란 본래 발산(鉢山)이라 하였으며,
바래란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란 뜻으로
봉우리 모양이 비슷하게 생긴데서 유래했다하며,
속칭 삿갓봉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던 곳이다.

오후 2시28분
바래봉 정상을 500m 남겨둔 지점에서는 잠시
이와 같은 전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곳은 아랫마을인 운봉읍 용산리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일반 관광객들을 위한 넓고 편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바래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사면에는
수많은 작은 키의 구상나무가 식재되어 예쁜 자태를 뽐낸다.

소나무과의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는
한라산,무등산,지리산,덕유산 등의 해발 5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며 수형이 아름다워 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공원수, 기념수, 크리스마스트리용 등 으로 매우 인기있는 수종이다.
구상나무의 영어 표기는 'Korean Fir'이다.

오후 2시46분
바래봉 정상에 올라서서 남동쪽으로 눈을 돌려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는다.
눈 아래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솜 속 깊이 새긴다.

오후 2시55분
매주 산행을 하면서도 정상석 앞에서조차
나 자신의 사진은 찍지 않는 습관을 버리고 정상표지 앞에 서 본다.
해발 1,165m로 그리 높은 곳은 아니지만
뛰어난 조망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나보다.

오후 2시59분
5km 남짓 떨어진 운봉읍 용산리 주차장을 향해
바래봉을 떠나 하산을 시작한다.
바래봉 정상을 향해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는 산행객의 행렬이
오늘따라 무척 여유롭게 느껴짐은 아마도
붉게 피어난 철쭉꽃 속에서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때문일지도 모른다.

운봉읍내를 내려다보며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산행객이 아닌 일반 관광객까지 뒤섞여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그러나 바래봉에서 운봉읍 용산리로 이어지는 5km정도의 하산길은
SUV차량이 바래봉 바로 아래 500m 지점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인지라
통행에 어려움은 없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하산길이지만
띄엄띄엄 피어 있는 붉은 철쭉꽃 무리 속에서
이처럼 예쁜 흰꽃을 만나게 되면 지루함이 한 순간 덜어진다.
우리나라 원산으로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팝나무이다.

꽃이 핀 모양이 마치 좁쌀을 튀겨 놓은 것처럼 보여 조밥나무라고 했으며,
차차 그 발음이 강해지면서 조팝나무로 변했다 한다.

또 다른 흰 꽃이 핀 키 큰 나무가 있어 가까이에서 살펴본다.
일명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우리나라 원산의 '함박꽃나무'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골짜기 숲속에서 잘 자라는 이 나무를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하여 나라꽃으로 여긴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오후 3시44분
해발고도 600m 지점에 이르러 하산길은 완만해지며
눈 앞으로 운봉읍내 전경이 펼쳐진다.
운봉(雲峰)이라는 이름은 넓은 벌판위에 섬처럼 들어서 있는
조그마한 봉우리들 때문에 운봉이라고 불러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이 있는 용산리는
옛날 바래봉 북서쪽에 있는 해발 1,150m 덕두산 중턱의 용마름산이 헤엄치듯 움직이자
어느 도사가 칼로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산줄기를 잘라
용이 멈춰선 형국에 이룬 마을이라는 전설이 서린 동네이다.

오후 3시55분
5시간 반동안 이어진 산행이 끝나고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지난 4월28일 시작하여 내일인 5월23일에 막을 내리는
"제17회 지리산 운봉바래봉 철쭉제"를 위한 임시 음식점들은
관광객들을 맞느라 부산하다.

지난 주 황매산 산행에서 만개한 철쭉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곳 바래봉 산행에서 충분히 보상받은 행복한 마음으로 휴일 하루 일정을 마친다.

위 지도에서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오늘 산행 경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