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28일 토요일 오전 11시33분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산24번지 일대에 조성된
'영덕 풍력발전단지'에서 아침 일찍 대전을 떠나
3시간 반 가량 차량을 타고 달려 오느라 찌뿌듯한 몸을 풀어준다.
지난 2005년 완공된 이곳 풍력발전단지에는 총 24기의 풍력발전기가 있다.
그러나, 가까운 곳의 풍력발전기조차 안개로 인해 희미할 정도로 시계가 좋지 않다.
방문했었다는 흔적만 남기고
오늘 여행의 주목적인 '블루로드 B코스'탐방을 위해 발길을 돌린다.
오전 11시49분
영덕 블루로드는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50km떨어진 영덕군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총 50km 구간에 조성된 도보여행을 위한 해안길이다.
50km를 3개 구간으로 구분한 구간 중 오늘은
이 지방 특산물인 영덕대게를 형상화한 창포말 등대를 출발하여
북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걷는 15km 거리의 블루로드 B코스를 탐방할 예정이다.
오전 11시53분
창포말등대를 뒤로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받으며 발길을 내 딛는다.
멀리 수평선 위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작은 섬이
오늘 최종 목적지인 죽도섬이다. 허리춤에 부착한 만보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행정구역상 영덕읍 창포리인 이곳 '영덕해맞이공원'은
지난 1997년 산불로 황폐해진 곳을 '자연 그대로의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1998년 착공, 2002년 완공된 해안형 자연공원이다.
창포말등대도 이곳 해맞이공원의 중요 시설물 중 하나이다.
낮 12시1분.
북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벗어나 대탄리 마을로 향하는 바닷가로 들어선다.
길섶에 예닐곱개의 남근(男根) 형상의 목장승이 탐방객을 맞는다.
'대탄(大灘)리' 라는 동명의 유래는
동해 바닷가 큰 여울 옆이 되므로 해여울, 해월, 또는 대탄이라 하였다 전해 진다.
좌측으로 예닐곱 개 남근상의 사열을 받으며 지난다.
맨 마지막 남근상은 이름도 갖고 있다.
"머시기'라는 이름이다.
음기가 너무 충만하여 문제가 되는 지역에 양기를 보충하기 위해
남근상을 세우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세계적인 풍속이었다.
거센 풍량에 많은 남자들이 목숨을 빼앗기는 어촌의 남근상은
우리나라의 많은 해안지방에서 쉽게 발견하는 부분이다.
낮 12시15분
대탄리를 지나 '오보교'라는 명판이 붙은 자그마한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
'오보(烏保)리'로 들어 선다.
눈 앞으로 펼쳐지는 손바닥만한 '오보해수욕장'의 물 색깔이
푸르다 못해 쪽빛으로 빛난다.
남태평양의 에메랄드 빛 바다 색깔을 능가하는 맑고 투명함이 느껴진다.
출발 지점인 해맞이 공원에서 이제 1.6km를 걸었다.
오보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가
까마귀(烏)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올치미"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전해 내려오면서 오보(烏保)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 눈으로 까만 바위를 보지는 못했다.
바닷가 한켠 길섶에는 분홍빛 '갯메꽃'이 지천으로 피어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이 갯메꽃은 우리나라 전역의
바닷가 모래밭에서 자란다.
꽃말이 '수줍음'인 이 꽃은 인후염, 기관지염 등을 치료한다고 하며.
약용 외에 뿌리를 삶아서 식용으로 먹기도 했다 한다.
낮 12시23분
오보리를 떠나 이어지는 다음 마을은 '노물(老勿)리'이다.
방파제 입구의 바닷물을 내려다보니 물 밑까지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항구나 포구로 들어올 때 방파제 우측의 등대는 붉은색,
좌측의 등대는 흰색이다.
그러나, 이곳 노물리처럼 규모가 작은 포구의 경우
등대가 하나뿐인 경우도 쉬이 접할 수 있음이다.
대게 성수기가 지난 때문인지 인적 끊긴 마을 한복판
노물리노인회관 앞 길에서 작은 유모차를
보행 보조기로 쓰는 할머니 한 분이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우리나라 농어촌의 현실을 생각하며
한동안 나 자신 마음 아파한다.
노물리 동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노물(老勿)」이란 늙지 말라는 뜻으로써
늙지않는, 즉 장수(長壽)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물(勿)'자는 고구려 계통의 언어로 아마 4~5세기 경
고구려가 남하하여 아랫 동네인 포항시 북구 청하면과
윗 동네인 영덕군 흥해읍을 경계로 할 때,
영덕의 옛 지명인 '야시홀'이란 이름이 붙을 당시에 같이 생긴 이름으로 추정하는듯 하다.
낮 12시35분
노물리를 지나면서부터 이와같은 해안 절경이 이어진다.
바닷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가까이 들으며 걷는 길.
삼삼오오 걸음을 멈추고 추억남기기를 위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수평선 위로 멀리 최종 목적지인 죽도섬이 조금 더 가까이 보인다.
좌측 바위 사면 곳곳에서는 이처럼 예쁜 꽃들이 탐방객을 반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야생화로 "갯완두"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꽃이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생하며,
이른 봄 갯완두의 어린 싹을 베어 말린 것을 대두황권(大豆黃卷)이라 하는데,
서열증·열나기·비증뿐만 아니라 소변을 잘 보게 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갯완두와 비슷한 색깔인 '붓꽃' 또한 연이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만주, 몽골 등지에 분포하는 이 꽃은
꽃봉오리가 붓 모양을 닮아서 붓꽃이라 이름이 붙었다.
민간에서는 뿌리줄기를 피부병·인후염 등에 쓰기도 했다 한다.
갯완두,붓꽃 등을 바라보며 눈이 호사스러워질 때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이처럼 시원한 풍경이 연이어 펼쳐 진다.
작은 바위를 두드린 후 흰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파도.
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깨끗한 바다.
1주일간 찌든 마음 속의 때가 말끔히 벗겨진다.
해안을 따라 걷는 블루로드는 이처럼 아슬아슬한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지기도 한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하던 이들에게는 이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구간이
무척 힘에 겨운 모양이다.
그러나, 평소 산행을 즐기던 이들에게는 여유있게 경치를 즐기며
탐방을 이어갈 수 있는 환상적인 구간이다.
낮 12시49분
바위 절벽을 타고 오르는 철계단을 올라선 정점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시원한 바닷 바람이 불어오는 멋진 바위들이 모여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 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오후 1시17분
점심과 더불어 달콤한 휴식을 즐긴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해안가 높은 곳에 자리한 이와같은 감시 초소를 수없이 만난다.
오랫동안 우리 젊은이들이 밤잠을 잊고 나라를 지키던 저곳.
시멘트 블럭은 온통 금이 가고 성한 곳이 없지만
싱싱한 담쟁이 덩굴이 세월의 흐름을 지키려는듯 아픔을 감싸 준다.
오후 1시31분
해안가를 벗어나며 다음 마을로 들어서는 길에서
이처럼 예쁜 노란 꽃을 만난다.
우리나라가 원산인 이 야생화의 이름은 "인동"이다.
한겨울에도 잎과 덩굴이 말라 죽지 않고 있다가
봄이면 다시 새싹이 돋는다하여 겨울을 잘 이겨내는 식물이라며
"인동초(忍冬草)"라고들 흔히 부르지만 "초(草)"가 아닌
'덩굴성 반상록활엽관목'이므로 나무임이 분명하다.
꽃말이 '사랑의 인연'인 이 꽃은
꽃의 색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리운다.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각종 균들에 대한 억제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이 '인동"은 여러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꽃의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과 흡사하다 하여 "노옹수(老翁鬚)" ,
꽃 속에 꿀이 있음으로해서 "밀보등(密補藤)" ,
귀신을 다스리는데 효험이 있는 약용식물이라 하여 "통령초(通靈草)" ,
꽃잎이 펼쳐진 모양이 해오라기를 닮았다 하여 "노사등(鷺'해오라기 사'藤)" 등...
오후 1시37분
그동안 지나온 몇몇 마을보다는 조금 규모가 큰 '석(石)리' 마을로 들어선다.
'석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영덕군에서 지정한 어촌체험마을 중 한 곳이다.
석리 동명의 유래는 돌이 많은 곳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도 예외없이 투명한 빛깔의 깨끗한 바닷물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이 부근은 '예진(芮津)' 마을이라 불리는 곳으로 돌이 유난히 많아
돌미역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석리 마을을 벗어나며 다시 해안가 바위 절벽으로 오른다.
2시간 이상 걸음을 이어온 다리가 계단을 오르느라 힘겹지만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경치에 너도나도 환호성을 지른다.
바닷가의 자갈들, 그리고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만든 해수 풀장이 이채롭다.
4개의 뿔 모양을 가진 자그마한 "테트라포드[Tetrapod]"로 바닷물을 막아 만든
저 깨끗한 풀에 뛰어들고픈 마음만을 간직한채
눈으로 즐기며 걸음을 이어 간다.
오후 1시46분
석리 마을을 지나 바위 절벽에서 내려온 후의 해안 풍경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다.
시야가 트이는 넓은 평원에 다다른 느낌이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조금씩 푸른 빛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2시간 여 전 출발시 보다 조금은 더 가까워진듯한 죽도섬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온통 대나무가 뒤덮고 있는 해발 80m 의 자그마한 섬이 마치 지난 주 다녀온
지리산 바래봉 처럼 삿갓을 엎어 놓은듯 하다.
최근에 만들어진 저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려면 아직도 걸어온 길보다 더 먼 길을 걸어야 한다.
한동안 몇십 미터 위 바위 절벽을 따라 걸으며
아랫쪽으로 내려다보던 바다를
이제는 거의 수평으로 바라보며 걷는 길이 이어진다.
흰 포말을 쉴새없이 일으키는 파도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마치 귓전으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대화를 나누며 걷는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길이다.
오후 2시
경정3리로 들어서는 해변가에서는
이와같은 붉은 빛을 띈 바위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
이런 바위를 역암이라 하던가?
2년 전 여름 전남 신안군 홍도 주위를 유람선으로 유람하며 만난 붉은 바위들이 연상된다.
그곳 홍도는 철분을 함유한 붉은 바위들이 많은 탓에 "홍도(紅島)'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들었다.
경정3리 마을 초입에 마치 파수꾼처럼 서 있는
키 큰 바위가 있다. 나는 이를 촛대바위라 부르기로 한다.
지나는 탐방객들이 올려 놓은듯한 작은 돌멩이들이 촘촘이 얹혀 있다.
나 또한 자그마한 소원을 하나 빌며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크기의 앙증맞은 돌멩이를 하나 올려 놓는다.
촛대바위 뒷편 길가의 평범한 2층 주택에는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문수정사'라는 작은 입간판이 서 있다.
그 뒤편 담장 너머로 금색으로 칠을 입힌 커다란 부처님 좌상이 보인다.
'대웅전'이라는 현판을 보았건만 부처님 좌상은 통상 대웅전에 주불로 모시는
'석가모니불'이 아니다.
오른손을 치켜든 모습으로는 '아미타불'인듯하다.
아미타불은 '극락전' , '무량수전' 등에 주불로 모시는 부처상이다..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는 향나무인 '오매향나무' 앞을 지난다.
작은 언덕을 뒤덮은 이 오매향나무는 마을 주민들의 보호를 받는 보호수이다.
500여년 전에 이곳에 소나무,대나무,향나무를 심었는데
6.25 한국전쟁을 지나며 지금의 향나무만 남았다 한다.
오후 2시8분
경정3리 오매마을 중심부의 해변을 지난다.
아담한 해수욕장에는 파도가 쉬임없이 밀려든다.
1,2,3리로 나눠진 경정(景汀)리 동명의 유래는
긴 모래불이 있으므로 뱃불 또는 경정이라 하였다.
그 중 이곳 경정3리는 남쪽에 오두산(烏頭山)이 있고,
마을 앞에는 매화산(梅花山)이 있으므로 오(烏)자와 매(梅)자를 따서
오매라 칭했다고도 하고, 일설에는 까마귀가 열매를 물고 들어오는 형국이라 하여 오매라 하였다고도 하고,
또 까마귀가 춤을 추고 들어오는 형국이라 하여 오무(烏舞)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긴 모래불이 있어 경정리라 불리었다는 지명 유래처럼
경정3리 오매마을에서 경정1리로 이어지는 해안가는 이처럼
탁 트인 바닷가가 이어진다.
이제 걸어온 거리가 대략 10km남짓이고,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5km가 조금 넘을듯 하다.
오후 2시18분
경정1리 초입의 바닷가
경정해수욕장이 시작되는 모래밭 끝부분에 이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이 한 채 방치되어 있다.
아마도 기초 부분이 강한 해일에 씻겨내린듯 싶다.
얼마 전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괴력의 쓰나미가 연상되며 등골이 오싹해진다.
오후 2시20분
지금까지 지나온 작은 마을의 아담한 해수욕장과는 달리
이곳 경정1리 해변의 해수욕장은 규모가 꽤 큰 편이다.
그래서인지 지도상에도 '경정해수욕장'이라 명기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외지 차량을 위한 주차장 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해맞이공원에서 이곳까지 3시간 가까이 걸어 오느라 힘에 부친 탐방객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는 차량편을 이용하여 최종 목적지인 축산항으로 향하고
여력이 있는 탐방객들은 축산항과 그 앞의 죽도산을 향해 발길을 이어 간다.
주차장 부근 도로변 담벽에 붙은 이 표지판을 보니
조금 전 위태로운 건물을 보며 느꼈던 두려움이 조금은 가신다.
최근에 만들어 붙인듯한 지진해일(쓰나미) 안내 표지판이다.
모두가 눈 여겨 봐야할 부분이다.
해수욕장 옆에는 자그마한 포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역시 지금까지의 다른 마을 포구에 비해 규모가 좀 더 크다는 것을
방파제 양쪽에 붉은 등대와 흰 등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좌측인 북쪽에 경정2리, 우측인 남쪽에 경정3리를 거느린
이곳 경정1리는 다른 이름으로 '뱃불 마을'이라 불리운다.
오후 2시39분
경정1리 뱃불마을을 떠나 경정2리 마을에 도달했다.
이곳 경정2리는 다른 말로 "수구너미 마을" 또는 "차유(車踰)'마을이라 부른다.
11세기 중기(1060년경)에 영해 부사(寧海府使)가 마을을 순시하던 중 말을 타고 재를 넘으면서
이 마을의 형국을 보고 우마차(牛馬車) 같이 생겼다고 하여
우차의 차(車)와 넘을 유(踰)자를 따라 차유(車踰)라 명명하였다 한다.
바닷가에는 작은 정자와 함께 조그만 돌비가 하나 서 있다.
자그마한 돌비는 다름 아닌 이곳이 영덕대게 원조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돌로 된 이 표지석에는 지난 1999년에 영덕군에서 만든 것으로
마을 이름 유래 및 영덕대게의 유래에 대해 표기되어 있다.
대게는 수심 200~300m 지점인 깊은 바다에서 서식하며
7~8년동안 1회 탈피하여 성숙한 후 갑피가 11~12cm까지 크는데
15년이 걸릴 정도로 성장이 더디다.
길게 뻗은 8개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져 나가고 대통처럼 비어 있다 해서
또 마을에서 멀리 바라 보이는 죽도산의 대나무처럼 생겼다해서 '대게'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후 2시46분
차유마을을 벗어난 탐방객들 대부분이 해안가를 따라 북으로 이동하는데 비해
나는 산길로 접어든다.
해발고도가 채 100m 도 되지 않는 작은 언덕에 불과한 곳이지만
급경사 오르막에는 이처럼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오후 3시9분
산길로 들어선지 20여분이 지났건만 사람의 인기척조차 없는 한적한 길이다.
그래서일까? 연한 녹색을 띈 기다란 뱀 한마리가
내 발밑을 스치며 솔 숲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어쨌든 짙은 솔향기를 듬뿍 맡으며 홀로 걷는 행복한 산행길이다.
오후 3시15분
길게 이어지던 숲길 북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축산면 소재지의 비교적 큰 동네가 보인다.
동쪽으로 고개를 내민듯한 형상의 축산항 너머 북쪽 바다도 시야에 들어온다.
오후 3시18분
축산해수욕장 남단의 바닷가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며 산행길이 끝난다.
죽도산으로 연결되는 출렁다리와 산 정상의 전망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거울처럼 맑은 바닷물빛에 눈이 부시다.
오후 3시26분
축산해수욕장 남쪽 끝에서 북쪽을 향해 모래사장을 걸어간다.
4시간의 걸음으로 혹사시킨 발도 잠시 시원한 바닷물 속에 담그는 호사도 누려 본다.
발의 피로를 그리 느끼지 않음은 수년째 매주 이어지는 산행으로 단련된 덕분인듯도 싶다.
망원렌즈로 눈 앞에 보이는 죽도산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 부위를 살펴 본다.
얼마 전 다녀온 합천 황매산의 계단이나 진해 웅산의 계단에 비해 규모는 비길바가 못되지만
그런대로 운치는 있어 보인다.
다헹스럽게도 4시간 이상의 도보여행으로 지친 탐뱅객들 상당 수가
저곳에 오르는 것을 포기한 때문인지 인파가 적음이 마음에 든다.
축산해수욕장 북단에서 죽도산으로 연결되는 출렁다리를 건너간다.
지난 2007년 '축산 아트 프로방스'란 이름으로 공모하여 시작된 관광개발 사업이
1년 후 아름다운 우리말인 '축산항 푸른바다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시행중인
개발 사업 때문인지 깨끗하게 단장된 멋진 다리를 지난다.
온통 대나무로 뒤덮인 자그마한 섬이 오랜 기간
축산항의 확대로 인해 육지와 연결된 곳.
대나무가 많으면 그냥 '죽도(竹島)'로 불러도 될터인데,
정상부 높이가 해발 80m인 이곳 이름은 '죽도산'이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공사중인지라 부근에 통행이 차단되었던 곳.
오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행운이다.
내일인 5월29일이 개관날짜이지만
하루 전인 오늘 이미 전망대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가동이 되고 있다.
오후 3시53분
축산해수욕장과 연이은 바다쪽을 바라본다. 남쪽 방향이다.
맑고 푸른 동해 바다. 저 멀리 수평선 끝 부분이 4시간여 전 출발해서
15km이상을 걸어 이곳까지 오게된 출발점이다.
망원렌즈를 300mm 까지 당겨서 출발 지점 부근을 살펴 본다.
가까이서는 제대로 보지 못하던 풍력발전기가 20여기 가까이 보인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물이나 또는 무형적 대상을 꼭 가까이서 봐야만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저곳 영덕읍 창포리 풍력발전단지에는 1천650㎾급 발전기 24기가
3만9천600㎾의 전력을 생산, 2만가구(가구당 월사용량 400㎾h 기준)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서쪽 바로 아래에는 지난 1924년 처음 조성된 영덕의 대표적 어항 중 하나인
축산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축산항은 영덕군 남쪽의 강구항과 마찬가지로 대게로 유명하며,
대게 위판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이다.
오후 3시59분
전망대에 오를 때와는 달리 전망대 뒤쪽의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길.
도로변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남쪽 출렁다리와 해수욕장 너머 우뚝 솟은 산이 이곳으로 올 때
내가 넘어 온 산이다.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에 소재한 이곳 "축산(丑山)항"은
이곳 축산항의 뒷산인 봉수대 유적지에 올라 내려다 본 축산항의 생김새가
한 마리의 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소축(丑),뫼산(山)자를 써서 축산(丑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오후 4시10분
축산항 부두에서 다시 한 번 죽도산 전망대쪽을 올려다 본다.
축산항 일대는 하루 전부터 내일까지 열리는 물가자미축제로 인해 무척 소란스럽다.
시끄럽고 번잡스러운게 싫고,
또 하루 세끼 식사와 커피 몇 잔 외에는 간식을 하지 않는 식습관을 깨뜨리기 싫어
인산인해를 이루는 축제장 부근을 벗어나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허리춤에 부착한 만보계 눈금이 21,00을 넘어 22,000에 가까워진다.
4시간 반동안 함께한 맑고 푸른 동해바다에 고마움을 느끼며 행복했던 주말 일정을 마친다.
위 사진에서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동 경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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