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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남자의 굵은 팔뚝 힘줄을 연상시키는 진도 동석산 산행기



 

2011년 9월25일 오전 10시19분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해 2시간 반 이상을 달려온 길.
휴식을 위해 두번 째 멈춘 곳은 길이 484m 의 쌍둥이 사장교인 진도대교 아래.
바다 건너는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이고, 이곳은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이다.

이곳 명량해협은 유속이 11.5노트(24km)의 거센 조류가 흐르기 때문에 물속에 교각을 세우기 힘들어서
양쪽 해안에 높이 69 m 강철교탑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의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울돌목은 갑자기 좁아지는 지형 때문에 급류가 발생하여 유속이 초당 5~6m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고 동양 에서는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의 빠른 유속이라 한다.
울돌목이라는 이름은 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사람이 우는 소리와 비슷해서.
바다가 운다하여 한자어로 명량(鳴梁)이라고 한 것이다.
옛 문헌에 의하면 한밤중이면 바다가 우는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렸다 한다.
진도대교 아래의 유속의 빠름을 사진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리 좌측 우수영관광지 앞 바다에 이순신장군 동상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정유재란 때 불과 13척의 전함을 이끌고 4백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세계 해군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의 그날.
영국,스페인 등 해양강국의 해군장교들이 필수적으로 배우는 그 명량대첩이 있었던 그날인
1597년(선조 30년) 9월의 일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오전 10시59분
동석산 산행을 위해 산행 들머리인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일행이 탄 버스가 멈춘다.
땅을 디디고 내려선 순간 북서쪽으로 눈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산.
숨이 탁 멎을 정도의 장관에 우선 압도 당한다.
국토의 남쪽 끝 작은 섬 진도의 남서쪽 끝자락에 어찌 이런 장관이 펼쳐질 수 있단 말인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누운 길이 1.5km에 달하는 거대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동석산.
마치 건장한 사내의 강한 근육을 따라 툭툭 불거진 거친 힘줄을 연상시키는 이곳 동석산
최고의 스릴과 장관을 맛보기 위해서는 남쪽 끝 부분인 종성교회 뒷편을 산행 들머리로 삼아야하지만
워낙 위험한 암릉구간인데다 산행중 추락으로 인한 인명사고가 잦은 관계로
진도군 당국에서 그곳 등산로를 폐쇄한 때문에 위험성이 덜한 천종사 좌측의 중업바위로 향하는
소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이곳 동석산동쪽 자락에 강한 바람이 불면 크고 작은 천개의 봉우리가
일시에 종소리를 토해내어 골짜기에는 서기가 가득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은 이곳을 "천종하강지지(千鍾下降之地)"라고들 한다.
'천종사(千鍾寺)"라는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남쪽 끝에서부터 산행을 하지는 못하지만
천종사 좌측 소로길을 따라 걸으며 멋진 바위산의 장관을 눈으로나마 실컷 즐긴다.
다행스러운 것은 같은 버스를 타고온 우리 일행 40여명 외에는 다른 산행객들이 전혀 없으니
붐비지 않는 조용한 산행이 될 수 있음이다.





산행 들머리에서 처음 눈에 띈 이 야생화는 산행 시간 내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던 꽃이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만 받고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다시피한 불쌍한 며느리가 죽고 난 후
그 무덤 위에서 처음 피어났던 꽃.
흰 쌀밥을 못먹은게 한이되어서였을까?
붉은 입술 사이에 흰 밥알 두알을 꼭 물고 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새며느리밥풀"이다.





오전 11시10분
거대한 암반 사이로 이어진 깎아지른듯한 오르막에는 이처럼
목재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아 벌써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는 계단을 오르느라 내뿜는 거친 숨소리뿐이다.





오전 11시23분
10여분 이상 비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위 능선에 올라 남동쪽 아래를 내려다 본다.
심동리에서 송호리를 거쳐 멀리 서해 바다 팽목항으로 이어지는 메마른 작은 개천.
봉암저수지와 심동저수지에서 이어지는 물줄기는 거의 메마른 상태이다.
아마도 저 황금 들녘의 가을 수확이 끝난 후 마늘 농사 등을 위한 물을 가둬 놓은 때문이리라.





남쪽으로는 등산로 폐쇄 때문에 오르지 못한 칼날같은 남쪽 바위 능선이 눈길을 끈다.
저 칼날같은 바위 능선을 보고 누군가는 거대한 물고기의 등지느러미를 봤다 했고,
누군가는 울부짖는 사자의 형상을 봤다고 했다.
또한 그 자체로 거대한 성곽이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오르지 못한 뒷편에만 멋진 바위 능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몇시간 동안 가야할 앞길에도 이처럼 멋지고 험한 암릉이 가로막고 서 있다.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칼날같은 바위 능선을 따라 조심스런 발걸음을 이어가는
40여명의 우리 일행들 모습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긴 뱀의 꿈틀거림처럼 여겨진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선두 그룹이 이미 올라가 있는 맨 끝 바위 봉우리를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모서리 부분의 바위들에 크게 벌어진 틈이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조금 전 멀리서 보았을 때 위태로워 보이던 바위 봉우리를 오르기 전
동쪽 방향으로 아래쪽을 내려다 본다.
바로 아래 천종사 경내가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자그마한 마을 저수지인 봉암저수지의 멋진 자태가 눈길을 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을 오를 때는 이처럼 암반에 고정해 놓은
쇠 갈고리를 잡고 조심스레 올라야한다.
대부분의 산행이 다리 운동에 그치는데 비해 이곳 동석산 산행시에는
이곳처럼 팔힘을 필요로 하는 곳도 수월찮게 있다.





오전 11시38분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오는 바위 봉우리에 올라 지나온 남쪽 방향을 바라본다.
30여분간 지나온 능선길이 보기만해도 아찔하다.
오른쪽의 자그마한 저수지는 심동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심동저수지이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따라
수많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우리나라 남서쪽 끝에 있는 제주도,거제도 다음으로 세번째로 큰 섬인 진도.
이곳 동석산은 진도섬의 남서쪽 끝 부분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북쪽 방향으로는 수많은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끝이 없을듯 이어져 있다.
아! 어느 세월에 저 바위 봉우리들을 다 지나갈 수 있을까?





조금 전 올랐던 바위 봉우리에서 다시 내려온다.
쇠갈고리를 잡고 오르고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더구나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조심스럽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옆에서 다른 이들을 도우며 위험한 구간을 안전하게 지나간다.





오전 11시49분
유난히 위험스런 칼날같은 암릉 구간은 암릉 위로 지날 수 없으므로
사면을 따라 만들어 놓은 철책과 안전시설에 의지해 우회한다.





낮 12시32분
정상 바로 아래 나무 그늘에서 일행들과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정상석이 만들어져 있는 자그마한 바위 봉우리에 올랐다.
산행 경험이 없는 이들은 이 정상석에 새겨진 해발219m란 표시만 보고 코웃음을 칠런지도 모른다.
그 높이가 무슨 산이냐고.

그러나, 해발 1,400, 1,500m를 넘는 가야산,태백산,덕유산,설악산,오대산,지리산 등을
두루 다녀본 내 경험으로 앞에 열거한 높은 산 이상으로 산행이 힘든 곳이
해발고도가 200,300,400m 정도에 불과한 섬 산행이다.
해발고도 0에서 출발해 200,300m 정도 봉우리를 수없이 오르내려야하기 때문이다.





정상석 앞에서 잠시 머문 후 다시 산행길을 이어간다.

'동석산 [銅錫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진도 남서쪽 조도에서 바라보면 아이를 안은 형상이라 아이 '동(童)' 글자가 들어갔다고도 하고,
동석산 능선 중앙부에 위치한 종성굴에 마파람이 몰아치면 은은한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종을 만드는 원료인 구리 '동(銅)'이 이름에 들어갔다고도 한다.





우측으로 봉암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산행길을 이어간다.
이 풍경만으로는 이곳이 국토의 남서단에 위치한 작은 섬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마치 깊은 산골에 자리한 신비스런 호숫가 같은 느낌을 준다.





낮 12시36분
오르막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바위 봉우리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섬들은 ‘모성’의 상징인 바다에 안긴 때문인지 부드러움으로 다가오지만
이곳 동석산은 건장한 사내의 팔뚝에 툭툭 불거진 강한 힘줄을 연상시킬 정도의 바위 산이다.





최근 수년간 산행 중 처음으로 지네를 만났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으나 지네에 물려 죽는 일은 없으니 크게 적정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늦여름이나 초가을 산행시에는 가장 위험한 것이 벌에 쏘이는 것이다.





낮 12시47분
또다시 위험한 칼날 능선을 만나 사면을 따라 우회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비록 따가운 햇살 아래의 산행이라 온몸에 땀이 흘러내리지만
푸른 하늘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녹음 짙던 나뭇잎들도 점점 색깔이 변해감을 알 수 있다.





오후 1시3분
바위능선 사면을 우회하는 길은 능선을 타는 것보다 더 힘이든다.
급경사 사면을 따라 설치된 로프에 의지해 걸음을 옮겨야하기 때문이다.
높은 바위봉우리에 올라선 선두그룹의 멋진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붇돋워 발끝에 힘을 준다.





로프를 잡은 팔에 힘을 주고
바위를 딛는 등산화 발바닥에도 정신을 집중해 힘을 주며 암반 위로 오른다.





이제 좁은 바위 틈만 비집고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멋진 조망이 사방으로 트이는 봉우리가 있다.
잠시 한숨 돌리며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바위 봉우리에 올라 땀을 식히며 나아갈 방향인 북쪽을 바라본다.
이제 암릉구간은 거의 끝나가는듯 깊다.
멀리 녹색 나무숲으로 뒤덮인 작은애기봉,큰애기봉이 보인다.
2시간 여를 딱딱한 바위만 밟고 걷다보니 잡초 우거진 푹신한 흙길이 무척 그립다.





오후 1시16분
그러나 막상 암릉구간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니
다리는 힘이들었지만 위험스런 구간을 지나며 느꼈던 스릴과 멋진 조망이 아쉬워진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은 모양이다.
바위 위에 오랫동안 걸터앉아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마지못해 걸음을 옮긴다.





오후 1시34분
암릉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한동안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 후
멋진 숲길이 나타난다.
산행객이 적은 탓인지 등산로 위를 덮은 억새 등 각종 잡초를 헤치며 걷는 숲길의 느낌이 새롭다.





오후 1시50분
동석산 정상에서 2km 정도를 지난 지점에서 소나무숲 사이로 1km정도 떨어진 작은애기봉이 보인다.
3시간 가까운 산행이 이어지다보니 산행경험이 많지 않은 일부 일행들의 발걸음이 처지기 시작한다.
그들이 염려되어 후미 그룹을 챙기다보니 내 발걸음도 자주 멈추게 된다.





오후 2시7분
동석산 정상에서 3km 가까이 지나온 지점에서 뒤돌아보니
오전에 산행을 시작한 심동리 마을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날카로우면서도 우람한 남성을 느끼게하는 멋진 암릉들만이 먼거리에서도 그 자태를 뽐낸다.





진행방향 좌측인 서쪽 아래로는 귀가차량이 기다리는 세방낙조휴게소 남쪽 마을인
가학리 마을과 가학선착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학선착장 바로 앞 바다에 각흘도가 외롭게 떠 있고
그 우측으로는 곡섬,잠두도 등 작은 섬들이 수많은 점을 찍어 놓은듯 흩어져 있다.





오후 2시23분
작은애기봉에 올라 진행 방향인 북쪽을 바라본다.
전망대가 있는 큰애기봉이 보인다.
불과 몇백미터 떨어지지 않은 저 큰애기봉 북쪽은 바다이기에 더 오를 곳이 없는 지점이다.





오후 3시까지 도착하기로 되어있는 세방낙조휴게소에 가기 위해서는
큰애기봉에 들릴 시간이 빠듯하기에 망원렌즈로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큰애기봉 전망대에 올라 있는 낯익은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산행 중 접하지 못했던 동백나무 군락이 한동안 이어진다.
상당히 키가 큰 동백나무 군락을 지나는 동안 마치 밤이 일찍 찾아온듯한
어둠을 헤쳐나가는 색다른 분위기를 느껴 본다.





비록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전력 대란 직전까지 가는 등
끈질기게 버티던 여름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물러가며
가을은 사람 키를 넘는 억새군락과 함쎄 시나브로 우리곁에 다가왔다.





곧 닥쳐 올 혹독한 겨울 추위에 대비해
마지막 먹이 사냥에 나선 벌 또한 혼신의 힘을 기울여 꿀을 모은다.
그만큼 계절의 변화는 급히 이루어진다.





오후 2시59분
대부분의 일행들이 약속 시간인 오후 3시에 거의 맞춰 주차장에 도착한다.
서로서로 다른 이들의 안전산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비록 다리는 피곤하고 온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얼굴 가득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오후 3시47분
땀 흘린 힘든 산행을 끝내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간소한 음식으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며 일행들끼리 삼삼오오 둘러 앉아 얘기꽃을 피우며 피로를 푼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햇살을 받은 바다는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간조시간이어서인지 물빠진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흑산도 인근에서부터 여수 돌산도까지 이어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구역인 이곳 서해 먼바다는
남해안 못지 않게 맑고 푸르다.
가을햇살을 받은 바닷물이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한다.
한동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곳 세방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아름다움은
호사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 진도 세방리의 해넘이는 유독 선혈처럼 붉고 비장하다고들 한다.
아마도 이곳 세방리 앞에 점점이 떠 있는 양덕도, 주지도, 장도,
소장도, 당구도, 혈도 같은 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곳 세방리의 낙조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중 하나라고 정해 준 기상청도
그 아름다움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다.





세방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위의 작은 섬들 중 특이한 형태의 바위 봉우리가 있다.
그중 하나인 이 바위의 이름은 솥뚜껑바위라고 주차장에서 마을 특산품을 파는
이곳 부녀회원들이 일러준다.





또 다른 특이한 형태의 이 바위 이름이 발가락바위라는 얘기를 듣고
잠시 동안 즐겁게 대화했던 그분들과 헤어져 귀가길에 오른다.





오후 4시34분
세방낙조휴게소를 떠난 귀가길에서 잠시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소재한
운림산방(雲林山房)에 들린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 1856년 9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이름은 운림각이라고 하고 거실은 묵의헌이라 불렀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지었다 한다.





수련잎으로 뒤덮인 석양 무렵의 운림산방 경내에 있는 운림지 앞에서 잠시 휴식을 위한다.
마음의 평온을 느낀다.
연못 한 가운데의 백일홍은 소치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며 배용준 주연의 영화 '스캔들'에서
조선시대 상류층의 놀이문화를 보여주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오후 4시59분
소치 선생 사망 후 아들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면서 매각되어 거의 폐허가 되었던 이곳.
그후 소치 선생의 손자인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운림산방을 다시 사들였고
1982년 허형의 아들 허건이 운림산방을 예전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한다.

다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푸대접받는 위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면서
휴일 하루 행복했던 진도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