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나폴리 통영항을 품에 안은 미륵산 산행을 위해
경남 통영시 봉평동 용화사 주차장에서 산행 채비를 한다.
가장 최근 미륵산 산행이 지난 해인 2010년 12월5일이었으니 10개월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오전 11시40분
지난 해 12월에는 이곳 미륵산이 있는 미륵도의 서쪽 끝에서 시작해
미륵산 정상을 거쳐 동쪽 끝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했지만,
그에 비하면 오늘 산행은 동네 뒷산 산책 수준의 가벼운 산행이다.
용화사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아침 이른 시각에 10도 이하로 떨어졌던 쌀쌀한 날씨가 따뜻한 봄날로 바뀌었다.
미륵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대략 2km 남짓.
길섶 산죽군락을 스치는 바람이 포근해진다.
조금씩 땀이 솟기 시작한다. 등산 자켓을 벗어 배낭에 갈무리하고 반팔 차림으로 걸음을 이어간다.
오전 11시49분
산행로 우측 숲 사이로 관음사 건물 일부가 눈에 들어 온다.
영조 8년(1732)에 지었다고도 하고.
조선조 광해군 8년(1615년) 청안선사가 창건했다고도 전해지는 관음사 입구의 문루에는
‘당래선원(當來禪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미륵산의 스님들은 미륵하생 후 미륵불이 설법할 자리로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에 이어 미륵섬 미륵산을 3차 설법지로 믿고 있다고 들은바 있다.
‘당래선원(當來禪院)’이라는 편액을 붙여 놓은 이유도 3차 설법을 하러 올 당래교주인 미륵불을 반기기 위해서라 한다.
미륵산의 남쪽에 있는 ‘미래사(彌來寺)’라는 절도 ‘미륵부처님이 오실 절’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유난히 키가 큰 석탑 너머로 보이는 관음사 괌음전을 일별한 채
관음사를 스쳐 지나 산길을 계속 오른다.
오전 11시54분
오르막 길을 오르느라 조금씩 숨이 차 오를 즈음 아담한 돌담으로 둘러 싸인
도솔암 전경이 눈 앞에 나타 난다.
고려 태조 26년(943)에 도솔선사가 창건했다.
암자 뒤편에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도솔선사와 호랑이에 얽힌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한국불교 선종의 거봉인 효봉선사가
한국전쟁 때 이 암자로 피난 와 머물면서 통영땅에 선종의 뿌리를 내린 곳이다.
도솔암을 지나며 산길은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곳은 이처럼 작은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미륵산 정상까지는 대략 1.3km정도 남았다.
짧은 나무 계단을 지나면 이와같은 운치있는 숲길이 잠시 이어진다.
코 끝으로 전해지는 나무 냄새, 풀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심호흡으로 맑은 숲 향기를 잔뜩 들이 마셔 본다.
낮 12시5분
큼지막한 돌탑이 만들어져 있는 현금산 갈림길에서 잠시 한 숨 돌린다.
미륵산 정상까지 800m를 남겨둔 지점인 이곳에서 대부분 산행객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나 역시 지난 해 12월 서쪽 현금산을 거쳐 미륵산을 오를 때도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바 있다.
돌탑 위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미륵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개천절인 오늘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태극기를 게양하는 일이었음을 상기하며 개천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현금산 갈림길을 지난 후부터는 계속 바윗길이다.
이끼 낀 바위를 밟고 지나는 길이 조심스럽다.
더구나 오르막 경사가 더욱 심해지며 다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간다.
큰 암반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를 지나기도 한다.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의 나무들도 계절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녹음 짙던 나뭇잎들이 점차 누런 빛으로 변해 간다.
낮 12시25분
좁은 암반 사이를 지나 우측의 큰 암반 위에 오르자 남쪽으로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40여분 이상 산길을 오르며 흘린 땀이 씻어지며 피로감이 일시에 걷힌다.
낮 12시33분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발 460 여m에 불과한 낮은 산이라는 생각만으로
산행에 나선 초보 산꾼들이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구간이다.
가파른 암반에 만들어진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올라
해발 410m지점 널따란 암반 위에서 잠시 지나온 능선길을 바라보며
멋진 조망을 즐긴다.
낮 12시37분
철계단을 오르고 다시 나무계단을 힘겹게 오른 후
정상 바로 아래 큰 암반 옆에서 조금 전 지나온 지점을 다시 조망한다.
바위 틈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가 멋진 자태를 뽐낸다.
음악가 윤이상은“미륵도에서 우주의 소리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곳 미륵산이 있는 통영은 박경리, 전혁림, 김상옥, 윤이상 등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예향이다. 그들의 마음 속 풍경이 이 모습이 아닐까?
낮 12시39분
거대한 암반 옆을 조심스레 지난 후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미륵산 정상석 바로 아래 전망대 남동쪽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남동쪽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그들의 눈길은 한산섬 우측으로 이어지는 용초도와
그 우측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비진도를 건너
멀리 아름다운 등대섬이 있는 소매물도까지 이어지는듯 하다.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미륵산 정상부와
그 주변 전망대에는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려는 나들이 인파로 혼잡스럽다.
아마도 저들의 대부분은 정상 바로 아래인 해발 380m 지점까지 오르는
1,975m의 길이의 케이블에 연결된 2선(bi-cable)자동순환식 곤돌라를 타고 올라왔을 것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중간 지주를 1개만 세우는 공법으로 건설한
48대의 8인승 캐빈 중 어느 1대에 타고서..
낮 12시43분
미륵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통영 중심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통영이란 명칭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다.
선조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통영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충무시(忠武市)의 본 지명은 통영군이고,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 하였으며,
그 후 시,군 통폐합 과정에서 다시 “통영시”라는 명칭으로 환원 된 것이다.
북동쪽 멀리 거제대교 부근을 300m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장평리에서 지금은 폐교가 된 해양분교가 있는 '해간도'로 연결된
작고 예쁜 해간교 너머로 긴 다리가 2개 보인다.
앞에 보이는 다리는 지난 1971년에 준공된 거제대교(길이 740m, 폭 10m)이고,
조금 북쪽인 뒤쪽의 다리는 1999년 세워진 길이 940m,
폭 20m의 왕복 4차선 교량인 '신거제대교'이다.
정상석의 북쪽면에는 한자로 彌勒山(미륵산)이라 씌어 있다.
미륵산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삼회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불교 설화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또 이곳 미륵산의 속칭인 용화산은 이곳 산록에 자리하고 있는 유서깊은 절 용화사의 이름을 딴 지명으로,
약칭하여 용산이라 일컫는다.
이제 동쪽 방향으로 눈을 돌려 본다.
해안가 도남관광단지 바로 앞 바다의 작은 섬은 방화도이고
그 옆의 가느다란 섬이 화도인데,
화도와 이곳 미륵도 사이 바다가 바로 이순신장군께서 대첩을 거둔 곳이다.
화도 우측으로 이어지는 섬은 한산도이다.
숨가쁨과 다리의 피로를 감내하고 정상에 오른 이들은
파란 하늘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나는 억새 줄기에서도 이제 꽃이 만발하기 시작한다.
정상석의 남쪽면은 한글로 미륵산이라 씌어 있다.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줄서기가 질서있게 지켜진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1시간 남짓한 산책 수준의 산행임에도
상의가 땀에 젖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이다.
10개월만에 다시 오른 미륵산 정상에서의 멋진 경치에 잠시 동안 넋을 놓는다.
오후 1시26분
잔망대 바로 아래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깨끗한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풀밭에서
대전에서부터 버스로 동행한 일행들이 모여 앉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하산을 시작한다.
옅은 구름이 낀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을 바라보니
괜시리 마음이 심란해 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오후 1시31분
정상에서 띠밭등 방향으로 이어지는 북동향의 하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작은 돌이 많은 길.
발목이나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오후 1시44분
가파른 내리막 산길이 끝나고 띠밭등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넓고 걷기 편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띠밭등'이란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서 "띠"가 많이 자랐던 고로 붙여진 이름이다.
"띠(모:茅)"는 벼목 화본과의 여러해 살이 풀인데,
김 등을 널어 말릴 때 사용되는 깔개를 만드는 재료로 섬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식물이었다.
띠풀로 엮어 만든 초가집을 모옥(茅屋)이라 불렀었다.
우거진 나무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것이다.
맑은 공기와 짙은 숲향기가 온 몸의 피로를 풀어준다.
기운이 솟아나는듯 하다.
오후 2시5분
이곳 미륵산 자락의 여러 사찰 중 가장 큰 규모인 용화사 경내로 들어선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미륵산은 예로부터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의 상주처로 믿어져왔던 곳이다.
선덕여왕(632∼647) 때 은점(恩霑)이 정수사(淨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이곳 용화사 경내 모습은 일반적인 사찰의 느낌과 조금 다르다.
특히 이 사진에서 보는 흰 기둥이 이색적인
진신사리 7과를 봉안한 "불사리사사자법륜탑(佛舍利四獅子法輪塔)"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1260년(원종 1) 큰비로 산사태가 나서 당우가 허물어진 것을
1263년에 자윤(自允)·성화(性和)가 절을 옮겨 지으면서 천택사(天澤寺)라 하였으며.
1617년(광해군 9) 통제사 윤천(尹天)의 주선으로 군막사(軍幕寺)의 성격을 띤 사찰로 중건하였다 한다.
그후 1628년(인조 6)에 다시 화재로 소진되었으나 1742년(영조 8)에 벽담(碧潭)이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용화사라는 이름으로 중창하였다고 전해 진다.
지금의 보광전(普光殿) 기둥은 그 때 옮겨온 것이라 한다.
사진 좌측 부분 하늘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은 미륵산 정상 가까이로 오르는 케이블카 곤돌라의 모습이다.
용화사 경내와 담을 사이에 둔 자그마한 부지에는
이와같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탑들이 자리하고 있다.
비교적 정성스레 보살핌을 받는듯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런 곳이다.
오후 2시22분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 즉 용화사 광장에 도착했다.
2시간 반 정도 걸린 산책 수준에 가까운 가벼운 산행이어서인지 피로하지도 않고
오전 출발 때보다 더 기운이 나는듯 하다.
일명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의 철 늦은 붉은 꽃이
이제 막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푸른 나뭇잎과도 잘 어울리는듯 하다.
오후 4시1분
산행이 끝난 후 동행한 산행 모임 회장님이 준비한 싱싱한 자연산 생선회에
서민의 술인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싱싱한 광어,숭어,민어. 각각의 맛을 음미하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행복감으로 충만한 나와 일행들을 태운 차량은 귀가길에 오른다.
차창 밖으로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아름다운 통영항의 풍경이 오래도록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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