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토요일 오전 8시 36분.
주문진으로 향하는 도중 잠시 머문 경기도 여주 휴게소 뒷편의 드넓은 논들은
이제 막 모내기를 시작하는 남부지방과는 달리 이미 모내기가 끝나고 제초제 살포에 여념이 없다.
요즘 들어 각 지방마다 자기네 고장 쌀이 좋다고들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아무래도 경기도 쌀이
가장 좋다는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 중에서도 경기도 여주,이천 지방 쌀이 최고임은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니, 아마도 비옥한 토양과 좋은 기후 조건에다 농부의 이런 정성이 합쳐져서
옛날부터 임금님께 진상한다던 명품 여주,이천 쌀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오전 11시 46분.
요즈음은 강릉을 비롯한 강원 동해안 지방으로 갈 때 대부분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므로
과거에 비해 찾는 이가 크게 줄어든 진부령 고개에 있는 진고개 휴게소에 잠시 머물렀다.
해발 960m 의 높이 때문인지 ? 아니면 차량과 인파가 적어서인지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감촉,
그리고 코 끝으로 느끼는 공기의 냄새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더구나 푸른 하늘위로 두둥실 떠 다니는
흰 구름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오후 1시 56분.
진부령을 넘어 오대산 휴게소에서 맛깔스런 산채 비빔밥으로 배를 채운 후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에 있는
해안 사찰 휴휴암(休休庵)에 도착했다. 신흥사의 말사이다.
관세음보살상이 해안가 절벽에 누워 있기 때문에 휴휴암(休休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관세음보살상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 주위 경관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내의 바닷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는 더위를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다.
끊임없이 밀려와 바위를 때리며 흰 포말을 무수히 흩뜨리고 물라가는 바닷물의 맑고 투명한 색깔이 선연하다.
순백색의 포말과 어울리는 투명한 바닷물. 꼭 남태평양을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동해안에서도 이런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멀리 보이는 방파제를 바라보며 셧터를 누르는 순간 바위를 때리며 피어 오르는 흰 포말.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놀라 호들갑을 떠는 통에 내가 오히려 놀랄 지경이었다.
바닷가에 왔으면 시원한 바닷물을 한바가지 뒤집어 쓰는 것 또한 바다를 찾은 묘미일텐데.
맑고 깨끗한 바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에 행락객들은 넋을 놓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탁 트인 짙푸른 동해 바다의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이 아마도 멀지 않아 최고의 일출명소로
자리 매김을 할 것 같다.
동쪽을 향하는 언덕 위 넓은 공터에 해수관음보살상 건립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곧이어 대웅전 공사도 이어질 모양이다.
현재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사찰의 본전 역할을 하는 묘적전을 뒤로하고 휴휴암을 떠난다.
오후 3시 8분.
주문진항으로 향하는 도중 들린 주문진 해수욕장에서 또 한번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흰 포말을 보느라면 마음 속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곳 주문진 해수욕장은 백사장길이가 700m로 그리 큰 해수욕장은 아니나 동해안 해수욕장 중에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며 수심이 얕고 바닷물이 맑아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가족 단위 피서지로 좋은 편이라고 한다.
오후 4시 16분.
주문진항에 도착하여 싱싱한 해물들로 눈요기부터한 후 싱싱한 횟감으로 포식을 했다. 해산물을 주로 먹는
일본인들의 평균 수명이 세계 최고임을 떠 올리며 내 수명도 며칠 길어지지 않을까하는 망상도 곁들여본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이후 방문객이 부쩍 늘어났다는 얘기에 걸맞게 차량과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아수라장의 시장. 그러나 바로 옆 바닷가의 모습은 대조적으로 한산해 보이기까지 한다.
간혹 한 척씩 지나다니는 조그만 어선들, 그리고 갈매기들. 너무나 여유로운 풍광이다.
오후 7시 31분.
평소보다 늦은 귀가 시간이 일몰을 볼 수 있는 행운도 안겨 주었다.
돌아오는 길 영동고속도로의 여주 휴게소에서 일몰을 맞았다.
오후 7시 35분.
이제 하루 종일 잰걸음으로 동서를 가로지른 태양이 서산 너머로 그 모습을 감춘다.
후미 등이 붉게 빛나는 차량들에게 불 밝힌 가로등이 친절하게 고속도로 진입을 도와준다.
출발부터 귀가까지가 무척 상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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