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7일 일요일
하루 전인 9월6일부터 제10회 효석문화제가 시작된 강원도 평창군 봉평의 메밀 밭을 가는 도중 같은 봉평면에 있는 허브나라를 찾았다.
넓이가 약 9만 9,000㎡인 이곳은 1996년 가을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충북 청원군의 상수허브랜드에 몇차례 방문했기에 허브 농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있는 편인지라 친근감이 든다.
1997년 문을 연 부지 면적 약 6만 5,000㎡인 청원의 상수허브랜드가 야외정원보다 실내온실의 비중이 높은데 비해 부지 면적이 50%정도 넓은 이곳은 주로 야외에 허브를 가꾸어 놓은 점이 차이점이다.
허브의 어원은 라틴어 herba(푸른풀)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사전적 의미는 잎,줄기가 식용이나 약용으로 이용되며,
또한 향기나 향미가 이용되는 식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잎이나 줄기 외에 꽃과 뿌리도 적극 활용되며
식용,약용을 뛰어 넘어 세제. 미용. 염료 등 광범위한 분야로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가까이 접하는 쑥이나 생강 등도 허브의 일종임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곳 봉평 허브나라는 모네정원, 세익스피어 정원 ,요리정원·향기정원·약용정원 등 14~5개의 주제로 꾸민 야외 허브정원과 2개의 온실에서 100여 종의 허브가 자란다.
허브요리와 허브차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각종 허브상품을 판매하는 상점, 허브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허브자료관이 있다. 그밖에 11실을 갖춘 숙박시설, 음악회 등을 여는 야외공연장, 터키문화전시관이 있다.
허브나라에서 진한 허브향에 취한 상쾌한 기분으로 효석문화제의 주 무대인 메밀밭에 도착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흥정천 개울 위에 놓인 섶다리를 건너는 행락객들의 행복한 모습이 메밀 밭 위의 푸른 하늘, 그리고 흰 구름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얽음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예전에, 온갖 피륙을 팔던 가게)의 허생원도 여름 밤 대화까지 80리 길을 걸을 때 이 길을 지났으리라는 상상을 하며 섶다리를 건너 메밀밭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야산 아래 평평한 들녂이나 비좁은 산비탈의 메밀밭을 바라보며 문득 수년 전 세간의 화제작이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밭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밭은 부드럽고 편안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전북 고창의 학원농장의 모습이다. 그곳은 아래쪽에서 바라보면 하얀 메밀밭과 푸른 가을하늘이 맞닿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 봉평은 효석의 소설에서 20년 전 성 서방네 처녀와의 인연에 대한 회고의 느낌처럼 착잡하면서 무거운 느낌마저 든다.
메밀 밭 가운데 홀로 선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에서는 소설 속의 성서방네 처녀가 떠오른다.
봉평 장이 섰던 여름날 달 밝은 밤 메밀밭 옆을 흐르는 개울가에서 목욕으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옷 벗으러 들어간 물방앗간에서 마주친 그 처녀는 봉평에서 제일 가는 일색이었다 한다.
아마 얽음뱅이요 왼손잡이인 젊은 시절의 허생원은 예쁜 처녀를 만날 팔자는 있었나보다.
메밀밭 사잇 길을 손을 잡고 걷는 연인의 모습을 보며 문득 생뚱맞게도 소설 속의 한 귀절이 떠 오른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9월 초순의 늦더위와 뜨거운 태양은 해발 700고지인 이곳 봉평 마을에도 예외는 없다.
메밀밭의 분위기에 취해 정신 없이 셧터를 누르다 잠시 원두막에 기대어 쉬는 모습을 담는 나를 위해 해맑은 미소를 보내는 아름다운 모습. 진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메밀은 일명 비황작물(備荒作物)이라고도 불리우는 구황작물[救荒作物]의 일종이다.
이들 작물은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다. 생육기간이 짧은(70~90일) 조·피·기장·메밀·고구마·감자 등이 이에 속한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께서는 ‘구황벽곡방’을 편찬하여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배려에도 힘을 썼다고 한다. 아마 이곳 봉평 마을에 메밀이 자라게 된 것도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는 메밀의 특성 때문이리라.
일반인들은 흔히 ‘메밀’ 과 ‘모밀’ 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밀은 함경도 사투리임을 이 기회에 알고 넘어갔으면 한다.
‘메밀국수’ 가운데는 작은 대나무 발 등에 올려 놓은 메밀 사리를 장국(소스)에 찍어 먹는 형태가 있다. 우리의 전통 메밀국수와는 다른 일본식으로, 소위 ‘소바’라 부르는 것이다. ‘소바(そば·蕎麥)’는 메밀을 뜻하는 일본말이며 지금은 ‘소바키리(そば切り)’, 즉 메밀국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효석의 생가 옆에도 메밀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1907년 태어나 35세를 일기로 요절한 효석이 평창읍에 있는 평창초등학교 시절 하숙을 하는 동안 100리길을 걸어 다녀가던 그의 생가를 1년 전인 2007년 가을 원로들의 고증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효석이 태어나고 자란 원래의 생가 터는 위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이다.
효석의 생가가 있는 메밀밭과 흥정천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봉평 장터에서는 갖가지 축제 행사가 한창이다.
카메라를 의식하고 내려치는 떡메에 힘을 부쩍 싣는 모습에서는 효석의 소설에서 물에 빠진 허생원을 업고 밤길을 걷는 왼손잡이이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자란 젊은 동이가 연상된다.
장터의 다른 한 편에서는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품바 공연이 한창이다.
품바란 말의 기원은
품바의 사전적 의미는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는 사람”이다..
고금을 막론코, 피지배계급(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관을 피하여 다니는 자, 지배계급에 불만을 품고 다니는 자, 소외된 자 등)에 있는 자들이 걸인 행세를 많이 하였는데 그들은 부정으로 치부한 자, 아부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 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恨)과 울분을 표출했다 한다.
인체의 바이오리듬 [biorhythm]에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해발 700고지인 이곳 봉평을 떠남에 아쉬운 느낌이다.
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마지막 귀절을 떠 올리며 봉평을 떠난다.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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