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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그리고 백천사를 찾아



9월28일 일요일 낮 1시25분

지난 여름 이후 초가을의 맑은 바다를 보기 위해 다시 삼천포항을 찾았다.

금년들어 유난히 욕을 많이 먹는 기상중계청(?)에 대해 마음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퍼 붓게 만든다.
'구름 조금'이라는 뜻을 우매한 내가 이해를 못하는건지 하늘은 온통 잿빛 구름으로 덮여있다.



1000 여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유람선인 '한려수도'호를 타고 1시간 반 남짓한 한려수도 해상 유람에 나섰다.
오후 2시 출항한 유람선이 서서히 제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섬은 남해군 창선면이다. 그래서인지 눈 앞에는 남해 지역의 대표적인 원시정치망인 죽방렴이 보인다.
부채꼴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에서 어획되는 멸치는 맛과 질이 우수하기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오후 2시15분
유람선이 출항한지 15분이 경과되자 삼천포대교 밑을 지나 상당히 멀리 온 것 같다.
총 연장 3.4㎞, 너비 14.5m이며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된 이 다리의 공식 명칭은 "창선삼천포대교"이다.

이유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처음 가설된 주 목적이 남해군의 창선면(창선도)의 주민 편의를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삼천포대교(길이 436m), 초양대교(길이 200m), 늑도교(길이 340m), 창선대교(길이 150m), 단항교(길이 340m) 등 4개의 섬을 잇는 5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해상 유람이 시작된지 30분 가까이 시간이 흐르자 유람선 주위에는 수많은 갈매기 떼가 모여든다.
3층 야외 갑판에서 승객들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얻어먹기 위해서이다.

이곳의 대형 유람선 운항 역사가 짧아서인지 아직 인천 연안부두의 갈매기처럼 승객이 던지는 새우깡을 공중에서
포획하거나, 아니면 승객이 손에 쥔 새우깡을 그대로 낚아채는 솜씨 있는 갈매기는 보이지 않지만
바다 위에 떨어진 새우깡을 주워 먹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수년 후면 이 갈매기들도 살아 있는 물고기를 사냥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인간이 던져 주는
인스턴트 식품에 찌들어갈 것이 명약관화하리라.



창선삼천포대교의 5개 다리 중 창선대교의 모습이다.

한려수도의 중심부이어서인지 바닷물이 무척 깨끗하다.
이처럼 깨끗한 물에서 나오는 해산물을 먹으며 공해 없는 밭에서 나는 채소류를 곁들이는
남해 군민들의 평균 수명이 국내 최고인 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게다.



오후 3시 2분.
삼천포 화력발전소와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온 유람선은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편의를 위해 잠시 속도를 늦춘다.

시설용량 324만kw. 국내 화력발전소 중 최대 단위기 용량인 56만kw급 화력발전설비 4기(1-4호기)와
50만kw급 화력발전설비 2기(5, 6호기)를 갖춘 이곳 삼천포 화력발전소는 지난 1983년 1호기 준공을 시작으로
1998년 6호기 준공을 완료한 석탄 발전소이다.

뒤쪽의 각진 6개의 탑이 발전기이며, 앞쪽의 붉은색 띠를 두른 굴뚝은 완벽한 공해 방지 시설을 갖춘 굴뚝이다.

창원 ·여천 공업단지에 절격을 공급하는 중요 시설인 이곳의 행정구역은 삼천포가 아닌
"경남 고성군 하이면(下二面) 덕호리(德湖里)"이다.



삼천포화력발전소의 서쪽 끝부분 바위인 이른바 "코끼리 바위"의 모습이다.
코끼리가 물을 먹는 듯한 형상인 코끼리바위(象頭鼻岩)는 한 눈에 알 수 있지만,
그 앞의 작은 바위를 '거북바위'라고 하는건 안목 낮은 나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하는 대목이다.



코끼리 바위 뒤편으로 아담한 남일대 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말엽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의 맑고 푸른 바다와 해안의 백사장 및 주변의 절경에 감탄하여
남녘 땅에서는 제일의 경치라고 하여 '남일대(南逸臺)'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이곳은

서부경남의 유일한 조개껍데기 모래의 해수욕장으로 길이 700m, 폭 500m의 자그마한 반달형의 백사장으로 되어 있다.



오후 3시 27분.
선착장을 떠나 서쪽 방향으로 삼천포대교 밑을 지나 창선대교 밑을 통과하는 해상 유람을 마친 유람선이
출항 1시간 반이 지나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 온다.

갈매기들이 물위에 낮게 떠서 사냥에 분주한걸 보면 이 일대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는 모양이다.



유람선이 선착장에 정박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1층에 마련된 700여명 수용 규모의 대형 나이트클럽에서는
우리네 이웃들인 아줌마,아저씨들이 귀청을 찢을듯한 빠른 음악에 맞춰 쉴새없이 몸을 흔들며
뱃살 살빼기에 여념이 없다.

하선을 위해 출구쪽으로 나가는 내 귓전에 "부킹"이라는 낱말도 들려 온다. 성공을 기원해 본다.



오후 4시 30분.

삼천포항을 떠나 귀가하는길에 들른 사천시 백천동 와룡산 자락에 위치한 백천사 대웅전 앞이다.
다음날이 음력 초하루인지라 연등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곳 백천사는 신라 문무왕(663년) 때 의선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僧軍)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옛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딘가 TV프로에도 소개가 되었다는 입으로 목탁 소리를 낸다는 세마리의 소를 기르는 외양간 앞에
많은 이들이 앉아 있다. 물론 앞에 놓인 "불전함"에 현금을 투입한 후에 자리에 앉는다.

이른바 우보살(牛菩薩)이라 불리는 소들이 목탁 소리 내는 것을 구경한다.
소가 마치 인간의 흉내를 내는것같아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인파에 시달리는소의 눈매가 처량해 보인다.

시골 약장수에게 끌려 다니는 원숭이와 다를바 없어 보인다.



약사와불전의 모습이다.

이곳 약사와불전 내부에는 길이 13m·높이 4m의 목조와불이 놓여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진에 보이는 불전 내부 와의 몸속에 작은 법당이 있다.

이곳 백천사의 모든 시설물 앞에는 어김없이 목청 큰 아줌마,아저씨가 앞에 서서 내방객들에게
큰 소리로 불전함에 돈을 넣은 후 예불을 드릴 것을 유도한다.

남대문 시장 한가운데 노점상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골라! 골라! 거저나 다름없어!"



가을 빛이 점점 깃들어가는 백천사를 떠나며 머릿속이 개운치 못하다.
천태종 본산인 단양 구인사에서 느낀 졸부들의 "주체하지 못하는 돈 냄새"의 악취를
여기서도 맡은 듯한 느낌이다.

아름답고 조용한 산 속의 오래된 사찰인 소백산 '희방사'에서 느꼈던 아늑하고 검소한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형형색색의 가을 꽃 뒤편으로 아늑히 보이는 백천사를 뒤로하는 내 머릿속에
오래 전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는 인물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 오른다.


고려 태조 왕건의 8번째이자 막내 아들인 욱과 그의 아들 순(8대 현종)이 귀양살이 했던 곳이 바로 이곳 와룡산이다.

욱이 조카인 경종의 두 번째 부인 헌정왕후와 정을 통한 사실을 6대 왕인 성종이 알고 와룡산 기슭으로 귀양을 보내게 되며
그 후 경종은 욱과 헌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순을 아버지인 욱에게 보내고 순은 아버지 욱이 숨을 거둔 여섯 살까지
이곳에서 아버지 욱과 함께 보낸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