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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27호 최남단에 자리 한 거금도 적대봉



 

2012년 1월8일 일요일 오전 11시37분
오전 7시반 경 경부고속도로 대전IC를 떠난 차량이 300km 가까운 거리를 4시간 가량 달린 끝에
전남 고흥군 남단의 녹동항에서 소록도로 연결되는 연륙교인 소록대교를 지난다.
길이 1.16㎞이며, 현수교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지난 2009년에 개통된 다리이다.

한센병(나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한 소록도는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것에 비해 무척 작은 섬이다.
약 80만평인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배가 채 안되는 115만평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이라는 사실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소록대교 건너 야산 너머로 보이는 잠시 후 지나게 될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의 교각 주탑이 눈에 보이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오전 11시40분
소록대교를 건너 소록도를 가로지른 27번 국도는 곧이어 짧은 터널을 지난 후
불과 3주 전인 2011년 12월16일 개통된 길이 2,028m 의 거금대교에 들어선다.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국내 최초로 윗층은 차량이 통행하고
아랫층은 사람과 자전거가 통행하도록 만들어진 다리라는 홍보 덕분에
개통 후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낮 12시6분
해발고도 140m 남짓 되는 지점인 파성재 주차장에 도착 후 차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석정리이다.
이른 아침 영하 8도 정도의 추운 날씨였으나 지금 이곳의 날씨는 마치 봄날씨를 방불케한다.
등산로 주변에 핀 붉은 동백꽃이 이곳이 따뜻한 남쪽나라임을 강조하는듯 하다.





낮 12시12분
육지가 아닌 작은 섬에서 해발고도 600m에 가까운 산을 오르는 산행로는 대부분 급경사 오르막이다.
아직 몸에 땀이 나기도 전이건만 뒤돌아보니 조금 전 출발한 파성재 주차장은 물론
바다 건너 고흥반도 육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낮 12시17분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자켓을 벗고 반팔 차림으로 걸어도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날씨이다.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라는 소한을 이틀 지난 한 겨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해발고도는 300m 가까운 지점이다.
북동 방향으로 나무숲을 뚫고 적대봉 정상부 주변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낮 12시20분
적대봉 약수터 주변 공터에는 자그마한 휴식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산행 보다는 관광차 이곳을 찾은 한 무리의 단체 여행객들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무척 소란스런 가운데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소주병도 무수히 나뒹군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되어야 오래 전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악습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온갖 음식 냄새가 악취로 느껴지는 그곳.
약수터의 맑은물은 새벽이면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는 날씨 때문에 꽁꽁 얼어 있다.





낮 12시30분
해발고도 340m 지점에서 큰 돌탑을 또 만난다. 몇분 전 지난 돌탑보다 그 크기가 조금 더 큰 돌탑.
중앙부에 소원탑이라는 표지석까지 세워져 있는 돌탑 너머 북서쪽으로 1시간여 전 건너온 거금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 건너 소록도와 그 너머로 녹동항 주변도 뚜렷이 보인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小鹿島)라고 불리운다는 소록도의 모습이
그러고보니 작은 사슴을 닮은듯도 싶다.





거금대교를 좀 더 가까이 살펴본다.
잔잔한 바다색깔이 너무 깨끗해 보인다.
다리 주위 바다 위에 떠 있듯이 자리한 작은 무인도인 대화도,소화도,소록화도 등의 모습이
마치도 한 폭의 수채화에 작은 점들을 찍어 그 그림을 마감한듯도 하다.





낮 12시54분
산행 시작 지점인 파성재에서 1.6km 떨어진 마당목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 숨 돌린다.
해발고도 470m 정도 되는 지점이다. 싸늘한 바닷 바람이 불어온다.
반팔 티 차림이어서인지 한기가 느껴져 벗어두었던 자켓을 다시 걸쳐 입는다.





북서쪽으로는 이곳 거금도 최고봉인 적대봉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적대봉으로 이어지는 1km거리의 능선길은 억새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는 길이다.
지난해 10월 억새군락을 보기 위해 찾았던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에서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낀다.
지금 그곳에는 당시 장관을 연출했던 억새군락 대신 흰눈이 온 산을 뒤덮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땅이 그리 좁은 땅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대지는 활용도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자연의 선물인 것이다.





적대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의 좌측으로는 아름다운 푸른 바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피부로 느끼는 바닷바람은 이곳 남쪽 지방에는 벌써 봄이 다가 오고 있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능선길 오른쪽인 남동 방향으로는 멀리 몽돌해수욕장이 가까이 있는 오천리 바다쪽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전 지나온 마당목재 부근에서 발원하여 바닷가로 흘러 나가는 오천천을 흐른 물이 모여 이루어진
작은 저수지인 오천제의 물빛이 쪽빛으로 빛난다.





오후 1시3분
억새 군락 사이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은 마치도 내륙 지방의 큰 산을 오르는 느낌이 든다.
덕유산 능선길인 덕유평전이나 지리산 바래봉을 향하는 능선길의 느낌과 흡사하다.
정말 이곳이 남해안의 작은 섬인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하는 풍경이다.





멀리 떨어진 적대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수많은 산행객들이 정상부에 올라서서 시원한 바람과 장쾌한 조망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 거금도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오늘 산행 구간을 단축하여 산행함이 아쉽다.
조만간 낮시간이 길어질 때인 여름철이 다가올 무렵 이곳을 다시 찾아
5~6시간 정도의 산행 시간을 즐기며 멋진 바다 조망을 즐기고픈 마음이 간절한 순간이다.





오후 1시16분
적대봉 정상을 300m 남짓 남겨둔 지점부터 억새군락은 더욱 울창해진다.
많은 산행객들이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억새군락 여기저기에 모여앉아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지나온 뒤쪽인 서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멀리 이곳 거금도 서쪽 끝에 우뚝 솟은 해발 418m 용두봉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 조선시대에 이곳 적대봉 부근 능선에는 말 사육장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전역의 말 사육장 중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말 두수를 사육하던 곳.
그만큼 이곳 거금도의 토질이 비옥하고 말을 먹일 풀과 물이 풍부했음을 입증하는 사실일게다.





오후 1시22분
이곳 거금도 최고봉인 해발 592.2m 적대봉(績臺峰) 정상부에 도착했다.
'적대봉'이란 이름에 대한 유래는 고흥군청 홈페이지에서도 찾지 못했다.
다만 예전에 이곳에 봉화대가 있었다는 얘기에 근거해
봉화대(臺)를 돌로 쌓은(績) 봉우리라는 의미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직경 7m, 높이 4m , 둘레 34m 인 돌로 쌓은 원형 봉화대 바로 앞에 아주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고흥군청 자료에는 이곳 적대봉을 한자로 '績臺峰'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동국여지승람'에는 '赤臺峰'으로 표기하고 있다.

옛 문헌에 의하면 "사화랑 봉화대(沙火郞熢火臺)"는 "서응녹도(西應鹿島)-지금의 녹동읍,
동응발포(東應鉢浦)-지금의 고흥읍)"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의 "사화랑 봉화대(沙火郞熢火臺)"가 지금 이곳 적대봉 봉화대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봉화대 위에 올라 주위 조망을 즐긴다.
남동쪽 아래로는 오늘 산행을 끝낸 후 두 코스로 나누어 산행을 하는 일행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될 오천항 앞바다와 그 바다위에 외로이 떠 있는 준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으로는 거금대교와 소록도가 눈 아래 보이고 바다 건너 장흥군 쪽 육지는
짙은 해무에 쌓여 있다. 안개 때문에 멋진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관산을 조망하지 못함이 아쉽다.

이곳 거금도는 큰 금맥(金脈)이 있어 거금도(居金島)라 불렀다고 하며
조선 중기의 문헌에는 속칭 “거억금도(巨億今島)”라고 기록되어 왔다.
또한 조선시대에 도양목장(道陽牧場)에 속한 속장(屬長)의 하나로 절이도(折爾島)라고도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치르신 수많은 해전 가운데 1598년 11월19일 이충무공께서 전사하신
노량해전을 기술한 부분에서도 이곳 부근에서 치른 해전 중 하나인
'절이도해전'에 대한 기술 부분이 나온다.
맑고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충무공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본다.





오후 1시35분
적대봉 정상을 떠나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바다쪽으로는 월포방조제가 있고,
오른쪽 아래 산골마을은 홍련마을이다.





오후 2시9분
정상 바로 아래 큰 암반이 산사태를 일으킨 후 만들어 놓은 너덜지대 돌무더미에서
일행 몇몇이 둘러 앉아 점심 식사와 휴식을 즐기는 중 가까운 바위 절벽 부근에서 까마귀떼가 배회중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노리는듯 싶다.

육식 조류인 바다의 갈매기는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입맛을 들이고,
또 다른 육식 조류인 까마귀는 인간들의 가공식품에 맛을들인 세태를 어찌 생각해야할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에 대한 자연의 보답은 재앙뿐임을 우리는 역사의 기록으로 잘 알고 있다.
괜스레 불길한 마음이 든다.





오후 2시55분
점심 및 휴식을 마친 후 이어지는 하산길은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한동안 조심스런 걸음을 한 이후 산행길이 끝나는 동정마을까지 700여 m 를 채 못남긴 지점부터
걷기 편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 지난 가을 낙엽길을 걷지 못한 이들에게는
가을에 못다 푼 숙제를 한 가지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찾아온 셈이다.





오후 3시5분
해발고도 160m 부근에서 이와같은 돌로 쌓은 얕은 담이 일부 남아있는 곳을 지난다.
이 돌담 아래부터는 마을이 시작된다.
아마 오래전 말을 사육하던 당시 목장과 마을을 구획했던 30리 길이에 달했었다고 전해지는
장성의 일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후 3시7분
산행길이 끝나고 동정(桐井)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마을길을 따라 유자나무가 연이어 이어지고 높은 가지 끝에는 따지 않은 유자 열매가
노란색 얼굴로 맑게 웃는다.
유자는 고흥군이 자랑하는 8품(品) 9미(味), 10경(景) 중
제 1품에 해당하는 고흥군의 특산물 중 하나이다.





동정마을을 가로질러 지나는 동안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곳은
이 사진에서 보는 곳과 같은 마늘밭이다.
마늘 또한 고흥군이 자랑하는 8품(品) 9미(味), 10경(景) 중 제4품에 해당하는 품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를 넘겨 보관이 가능한 한지마늘의 주산지는 경북 의성 일대이며,
난지마늘의 주산지는 경남 남해와 전남 진도군이다.





오후 3시17분
3시간 남짓한 산행이 끝난 후 동정마을 입구에서 바다쪽을 바라다본다.
북서쪽으로 거금대교가 손에 잡힐듯 보이는 곳.
이곳 동정(桐井)마을은 원래는 산골 안에 금(金)이 매장된 마을이 있어 '古羅金(고라금)'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 연못가에 오동나무가 있고 그 밑에 있는 바위에 솟는 샘이 있다하여 "동정(桐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오후 3시58분
산행을 끝낸 후 다른 구간으로 산행한 일행들과의 합류를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거금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오천리 마을이다.
오랫동안 육지와 떨어져 지낸 섬마을 남쪽 끝이어서인지
수만가지 이야기거리를 간직했음직한 멋진 고목나무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듯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방치한듯 싶은 마을 곳곳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16일 거금대교가 개통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을 채비를 하는듯 하다.
멸치판매장을 손보는 등 부산함이 눈에 띈다.
국도 27호선이 더 이상 갈곳이 없는 이곳 남쪽 끝에 세워진 이 표지석도
관광명소로 발돋움할 희망에 부풀어 있는듯하다.





이곳 오천항이 있는 오천리(五泉里)는
예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서 오류천(梧柳川)이라 불러오던 곳이나
현재와 같은 서촌마을 동촌마을이 분리되면서 행벙구역 명칭이 오천리(五泉里)로 되었다한다.
옛 이름이 더 친근감이 가는건 왜일까?
마치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준도,독도 등 작은 섬이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한 아늑한 작은 어항이다.





오후 5시10분
오늘 산행의 모든 것을 준비한 운영진들이 마련해준 동태탕으로 추위와 허기를 떼우며
피로를 푼 후 27번 국도의 최남단인 오천항을 떠나 귀가길에 오르기 전 오천항 전경을 다시 한번 망막에 새긴다.
미역,톳,다시마 등의 양식업. 그리고 멸치잡이를 주로하는 오천항이 번창하기를 빌며 귀가길에 오른다.
이제부터 300km 가까운 거리를 4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길이기에
언제 또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