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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선자령 눈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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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12일 일요일 낮 12시20분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한 일행들이 탄 차량이 선자령 눈산행을 위해 도착한 곳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영동고속도로 휴게소이다.
비교적 따뜻하고 맑은 휴일인지라 주차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이다.





매년 몇차례씩은 들리는 곳인데다 산행 시작 시간이 너무 지체된고로
고속도로 준공기념비앞에 오르는 대신 멀리서 눈으로만 일별한 후 산행 채비를 한다.





낮 12시31분
대관령 국사 성황당(大關嶺國師城隍堂)입구를 알리는 표지석 앞을 지나며 산행길로 접어든다.
매년 음력 4월15일에 이곳 대관령국사성황당의 신위를 강릉 홍제동의 여국사성황사로 모셨다가
음력 5월3일에 강릉 여국사성황사에서 영신제를 모신다고 하는데,
이 행사는 강릉 단오제의 일환으로 성대하게 치뤄진다고 들은바 있다.





선자령 등산로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판 앞을 지나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이곳에서 선자령까지 이르는 5km 구간은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길이 많아 태백산,계방산 등에서와 같은 극심한 혼잡스러움은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눈이 거의 오지 않고 겨울이 지나가는 올 겨울을 지낸 도시인들에게
이처럼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인 산야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낮 12시42분
해발고도가 840m 정도인 주차장에서 시작한 산행이 이제 해발고도 900m지점에 이르렀다.
평탄한 공터가 있는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준비해 온 아이젠을 등산화에 부착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곳에 산행객이 아닌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편이지만
겨우내 흰눈으로 덮인 동안에는 일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세찬 북서풍과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도 빠지는 눈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낮 12시57분
KT 무선통신 기지국 앞을 지나며 지나온 쪽인 남서쪽을 뒤돌아본다.
평창 읍내를 둘러싼듯한 용평 리조트의 스키 슬로프가 어렴풋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흰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들이 즐비하다.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가리왕산이 아닌가 싶다.





오후 1시5분
산행 출발 지점에서 1.6km정도를 지난 지점이다.
아직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오르는 중이다.
하지만 온통 두껍게 쌓인 눈으로 뒤덮인 길인지라 따뜻한 봄,여름에 이곳에 와 보지 않은 이들은
지금 지나는 눈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할 정도이다.





유난히 바람이 세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선자령까지 이르는 길 좌측인 서쪽은
키 큰 나무가 거의 없다. 그나마 꽃 피는 봄이 오면 천대 받는 사철 푸르른 상록수가
무채색의 삭막함을 조금은 덜어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눈 덮인 능선에 줄줄이 서 있는 풍력발전기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후 1시9분
산행을 시작해서 이제 1.8km를 걸어왔다. 선자령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3.2km.
흰 눈속에 파묻힌듯한 '강원항공무선표지소'앞을 지나며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등산로변에 세워진 '무선표지소'라는 팻말을 보고도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무심코 지나친다.
처음 접하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다. 아마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라면 그러지 않으리라.
'항공무선표지소'란 쉽게 표현 하자면 바다에서 접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면된다.
아무 표시가 없는 바다위에도 항로가 있듯이 하늘에도 비행기가 지날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나라 하늘 위인 대한민국 비행정보구역 내에는 국제항공로 12개, 국내항공로 13개가 정해져 있으며
모든 항공기는 정해진 항공로를 따라 항공무선표지소에서 제공하는 비행정보에 따라 비행해야 한다.
이와같은 항공무선표지소가 우리나라 전역에 10개소가 있다.





오후 1시15분
이제 해발고도가 1,000m를 넘어섰다.
뒤돌아 보면 흰 눈에 파묻힌 평창 읍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3수 끝에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 낸 동계 올림픽이 수년 후 저곳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다만 그로 인해 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훼손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허장성세처럼 여겨지는 동계올림픽 개최보다 자연환경 보호가 우리 후손들에게는
훨씬 이익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아가야 할 방향인 북쪽으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을 바라보며 서 있는
수많은 풍력발전기의 장관이 펼쳐진다.
지난 해 어느 추운 겨울날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폭설 때문에
흰 눈송이만 바라보다 되돌아섰던 쓰라림을 보충하고도 남을만한 장관이다.
흰 눈과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가장 가까운 풍력발전기를 중심으로 북서쪽을 향해 300m 망원렌즈로 가까이 살펴본다.
힘차게 돌아가는 날개짓 너머로 멀리 해발 1,407m 황병산 정상에 자리한 기상레이다 시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 학창시절 기상학 공부를 하면서 서울 관악산 기상레이더 시설 내부를 견학할 당시
우리나라에 하나뿐이던 기상레이다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여러곳 생겼다.
필리핀,태국을 바라보며 우리나라는 언제 저 나라들만큼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나의 어린 시절을 곱씹으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오늘의 우리를 생각하니 가슴 속이 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후 1시50분
선자령까지 2.7km를 남겨둔 지점 바람 잔잔한 눈밭에 일행들이 모여 앉아 늦은 점심과 휴식을 즐긴다.
유난히 복받은 오늘 날씨가 단연 화제가 된다.
겨울철 선자령 산행 중 장갑 끼지 않은 맨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한 날씨에서
우리는 또 한 번 큰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이처럼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우리 가까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주위는 온통 눈 세상이다. 가볍고 흰 솜털로 덮인듯한 착각마저 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겨울 눈산행시 장관을 이루는 상고대를 볼 수 없음이다.
며칠 째 계속되는 영동지방의 건조주의보로도 알 수 있듯이 공기 중에 수분이 너무 없어
새벽녘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나뭇가지에 희게 피어나는 상고대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 2시12분
점심 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다시 선자령으로 향하는 눈산행은 이어진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때문인지 이제 눈은 발목까지 깊이 빠진다.
깊이 쌓인 눈속에서는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쉬이 미끄러진다. 조심스런 걸음이 계속된다.





아득히 먼 앞쪽을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선자령 정상석을 향해 오르는 산행객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음이 조급해지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제 선자령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3km 정도.
수많은 풍력발전기들을 좌측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사열을 받으며 걷는 느낌이다.
수년 전 저 풍력발전기 너머에 자리한 삼양목장을 통해 저곳 풍력발전기 밑에 서서
세찬 바람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는 광경에 넋을 놓았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멀리서는 느끼지 못하던 풍력발전기의 엄청난 크기에 처음 접하는 이들은 경외감까지 느낀다.
중심높이가 60m이고 회전자 직경은 80m인 풍력발전기는 "쉿!" "쉿!" 소리를 연이어 내지르며
세찬 겨울 바람을 묵묵히 견디며 버티고 서 있다.





이곳 선자령 부근의 겨울 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는 이 사진 한 장이 잘 설명한다.
바람이 몰아치는 북서쪽 사면은 강한 바람이 쌓인 눈을 계속 쓸어내는 통에
눈이 쌓여 있을 겨를이 없다.
마치 억센 싸리비로 쓸어낸듯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후 2시40분
선자령 정상까지 300여m를 남긴 지점에서 우측 방향인 동쪽으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옅은 안개와 해안선을 따라 짙게 드리운 해무로 인해 시계가 좋지 않은 점이 무척 아쉽다.





서쪽에서 강하게 불던 겨울 바람도 오늘은 잠시 쉬는 날인듯 바람이 잔잔하다.
오랜 시간 눈길을 헤치며 걸어온 때문인지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의 포근한 날씨다.





오후 2시49분
흰 눈으로 뒤덮인 선자령 정상에 올랐다.
'백두대간 선자령'이라 새겨진 정상석 주위에는 기념 사진을 찍는 인파로 무척 붐빈다.
북서쪽 멀리 좌측 끝으로 황병산 정상의 기상 레이다도 자그맣게 눈에 들어온다.





해발 1,157m 인 선자령(仙子嶺)은 백두대간 주능선에 솟은 산이다.
그런데 왜 '봉(峰)'이 아닌 고개를 뜻하는 '령(嶺)'이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산경표,에는 대관산, '동국여지지도'에는 보현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한다.
아무튼 "선자(仙子)"라는 말의 뜻이 '신선' 또는 용모 단정한 여인을 뜻함이니
이곳에서 둘러보는 산세의 느낌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강릉 시내와 그 너머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옅은 안개 때문에 푸른 동해바다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아도 희미한 영상으로만 보인다.
다음 번에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푸른 바다의 흰 파도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오후 2시57분
수많은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선자령 정상을 떠나 하산길에 나선다.

이곳 선자령 주변의 풍력발전기는 2000kw 발전기 49기로써 총 시설 능력은 98MW이다.
강원풍력발전주식회사 에서 총사업비 1600억원을 투입해 2002년 11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4년이 걸려 완공한 것이다.
현재 발전 능력은 연간 244,400 mwh로써 2006년 당시 강릉시 전력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충당했으며
이로 인한 이상화탄소 저감량은 150,000ton/year이다.





조금 전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하산길이지만
오를 때와 또 다른 풍경을 즐기며 하산하는 길은 행복감으로 충만해 있다.
발밑으로 느끼는 흰눈의 감촉은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숨가쁘고 삭막한 도시생활의 큰 위안거리가 되리라.





등산로 옆 나무숲의 아무도 밟지 않은듯한 흰눈 속에 발길을 옮겨본다.
무릎까지 순식간에 빠져든다.
그 느낌이 좋아 동심으로 돌아가 한동안 눈장난도 쳐 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무릎까지 빠지는 깊은 눈길인지라
앞 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만들어진 눈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발밑으로 들리는 '뽀드득'소리를 즐기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오후 3시46분
당초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까지 2km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뒤쪽의 풍력발전기들을 한동안 바라본다.
이제 모퉁이를 돌면 저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오후 4시26분
사방이 온통 흰눈으로 둘러싸인 주차장에 도착하여 등산화에서 아이젠을 풀어내며
4시간 가량 이어진 눈산행을 마친다.
완만한 산행길이라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수준의 오늘 눈산행의 즐거움을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오후 4시46분
오늘 행사를 준비한 운영진에서 마련한 따끈한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먹으며
추위와 허기를 달랜 후 귀가길에 오른다.
4시간 여전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붐비던 주차장에 이제 남은 차량은 몇대 뿐이다.
밤 늦은 시간이 되어야 집에 도착하게될 터이지만 흰눈과 더불어 멋진 자연속에서 보낸
휴일 하루의 행복감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귀가길에 오른다.





위 지도상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