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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들도 쉬었다 간다는 백두대간 마루능선의 조령산(鳥嶺山)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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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26일 일요일 오전 10시14분
조령산 산행을 위해 대전을 출발해 2시간 여를 달려온 차량에서 내린 이화령 주차장.
겨우내 내린 흰 눈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대도시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설원이 펼쳐진다.
국도 3호선 도로변 안내 간판에는 해발고도 529m로 표기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 이화령과 흔히 문경새재라 불리는 조령(鳥嶺)을구별하지 못한다.
문경새재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7~8km 떨어진 문경새재 제3관문인 鳥嶺關(조령관) 부근에 위치한 고개로
그곳 조령의 해발고도는 642m이다.

이곳 이화령(梨花嶺)을 지나는 3번 국도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새로 닦은 길인데,
그들이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하여 백두대간의 맥을 잘랐다하여
수년 전부터 행정안전부와 산림청 등의 협조를 얻어 40여억원의 예산으로 현재
끊어진 백두대간을 잇는 복원작업이 진행중이라 한다.
더구나 일본인들은 이곳의 원래 지명인 "이화령(伊火嶺)"의 한자 표기까지 멋대로 바꾸어 놓았다.
며칠 후 3.1절이 다가옴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천벌 받을 왜놈들!"





이곳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 지점이다.
서쪽으로는 괴산군 연풍면의 마을들이 눈 아래 들어온다.

이곳 이화령은 60여년전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이화령전투"로도 우리나라 전쟁사에 기록으로 남은 곳이다.
1950년 6월25일 우리 자유대한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위해
그해 7월13일부터 16일까지 우리 국군 제6사단 제2연대 장병들이 조국을 지키며
붉은 피를 흘렸던 곳이다.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묵념을 올린다.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마을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이다.
이화령을 생각하며 왜놈들 때문에, 또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바친 호국 장병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언짢아진 마음을 '문경(聞慶)'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떠올리며 털어버리고 애써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문경(聞慶)"이라는 이름은 한양으로 과거길을 떠났던 선비들이 과거 시험에 급제했다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곳' 이라는 뜻의 한자어인
"문희경서(聞喜慶瑞)"에서 유래하여 얻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27분
산행을 시작한지 10여분이 경과한 시간이다.
산속 깊이 들어가며, 해발고도가 높아져 감에따라 발밑으로 밟히는 눈이 점점 많아짐을 느낀다.





오전 10시45분
영하의 추운 날씨지만 이마와 콧잔등에 조금씩 땀이 솟아날 무렵 잣나무숲으로 들어선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쌓였던 눈가루를 조금씩 흩뿌린다.
얼굴에 닿는 눈가루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엊그제 내린 눈을 온몸으로 받친듯한 잣나무 잎들이 힘겨워 보인다.
엄동설한에 내리는 눈보다 늦겨울이나 이른 봄철에 내리는 눈은 수분함유량이 많아
여린 가지나 나뭇잎들이 그 눈을 받치기에는 너무 무거움을 저 나무들은 아는지?





오전 11시1분
해발고도 800m를 넘어서면서 잡목숲이 이어지고 환상적인 상고대의 장관이 펼쳐진다.
간혹 눈에 띄는 산행객들이 여기저기서 걸음을 멈추고 설경을 배경으로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12월 하순 덕유산 눈산행 때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상고대를
금년들어 계방산,선자령 눈산행시는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준다.





진행방향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조령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능선에도
온통 흰꽃이 만발한듯 보이는 상고대가 장관을 이룬다.

일명 수상(樹霜), 수빙(樹氷) 등으로 불리는 상고대는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기온이 0도 이하 일 때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승화되어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을 말한다.





오전 11시18분
산행을 시작한 이화령에서 2.1km 거리에 위치한 조령샘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시원한 약수가 목마른 길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오전 11시20분
조령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후 산행길을 이어간다.
영하의 추운 날씨는 잠시 머무는 산행객들에게 추위를 몰고 온다.
산행 중에 느끼는 추위는 걸음을 옮겨 몸에 열이나게하는 방법 외에는 없음을 알기에
억새밭 사이로 이어지는 눈 쌓인 산길을 따라 한걸음씩 옮긴다.





급경사 오르막 산길을 숨가쁘게 오른다.
인공적인 시설물이 거의 없는 이곳 조령산 등산로에서 처음으로 통나무를 이용해 층층이 쌓은
계단을 만난다.





발목까지 빠지는 깊게 쌓인 눈과 눈꽃을 이룬 상고대로 뒤덮인 나무숲을 지난다.
사방이 흰 눈으로 덮인 은세계가 이곳이다. 눈이 즐겁다.





가파른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 능선에 도착한 몇몇 산행객들의 즐거운 담소 모습이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행복한 시간들을 만끽한다.





아마도 오늘 이같은 흰 눈속에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이번 겨울 마지막 눈산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내 발걸음이 더뎌진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오전 11시41분
해발고도 1,000m 정도되는 능선에 오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조령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부 공터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부럽기보다 아쉬움이 커진다.
이제 10여분 후면 정상에 도착하고, 그만큼 이렇게 멋진 눈세상에서 머물 시간이 짧아짐을 뜻하기 때문일게다.





조령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켜켜이 쌓인 곳은 쌓인 눈의 깊이가 무척 깊다.
이제 다가오는 봄을 맞아 저 눈이 녹아 내리면서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수가 될 것임을 안다.





상고대로 뒤덮인 나뭇가지의 흰색이 강렬하다.
마치 매년 초여름 입하 무렵이면 흰꽃을 만개하는 유성온천 지역의 이팝나무 아래를 지나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팝나무 필 무렵 유성온천지역의 축제 이름이 '눈꽃축제'였던 것이 기억난다.





나무 그늘 아래 아무도 밟지 않은듯한 눈구덩이에 한쪽 발을 담궈본다.
무릎까지 빠지는 쌓인 눈의 촉감이 무척 부드럽다.
가까이 살펴보면 쌓인 눈의 결정체가 마치 새하얀 털을 가진 새들의 부드러운 깃털처럼 보인다.





오전 11시51분
오늘의 산행 목적지인 조령산 정상석 앞에 당도해 걸음을 멈춘다.
성인의 허리 정도 높이로 낮은 키의 정상석에는 해발고도를 1,017m로 표기해 놓았으나
그 좌측의 이정표에는 해발고도를 1,025m 로 표기기해 놓았다.





하늘을 나는 새도 넘기 힘들다하여 "조령산(鳥嶺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이는 과거 우리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요즈음 우리가 부르는 '조령(鳥嶺)'을 속칭 "초재(草岾)"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草)는 억새 등의 풀을 말하는 '새'이고, 재(岾)는 우리가 만든 한자로서
음은 '재' 또는 '점'으로 초재는 '새재'이며, 우리말인 억새가 많은 고개를 뜻함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새"가 날아다니는 새로 잘못 전해져 '조령(鳥嶺)'이 돼버린 것이다.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문경새재 과거길 우측에 솟은 주흘산을 이루는
멋진 암릉으로 이루어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주흘산 능선 아래로는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을 통과하면 곧이어 나타나는
KBS에서 사극 촬영을 위해 건립한 촬영장이 옅은 안개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인다.
지난 2000년 2월에 드라마 '왕건'촬영을 위해 건립한 저곳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촬영을 위해 마련했던 곳이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경복궁,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건물구조와는 좀 다른 양식의 건물이므로
고려시대를 배경으로한 드라마나 영화 촬영시에 간혹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 방향으로도 흰 눈이 뒤덮인 아름다운 능선들이 눈길을 끈다.
아마도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봉우리는 해발 1,063m인 백화산이 아닌가 싶다.





낮 12시29분
정상석 부근 공터에서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북쪽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북쪽 사면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북향한 능선길은 오전에 조령산 정상을 오르던 남쪽 사면보다 쌓인 눈의 양이 많다.





북향한 낭떠러지 위 전망좋은 곳에서 멀리 신선암봉쪽으로 바라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중앙부의 유난히 희게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신선암봉이다.
과연 신선이 살듯 싶은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멋진 바위 봉우리다.





낮 12시36분
비교적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 사작되는 지점까지 이와같은 나무터널이 한동안 이어진다.
상고대로 뒤덮인 잡목들의 가느다랗고 흰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스칠듯 지나간다.
간혹 얼굴을 스치는 나뭇가지의 감촉이 가슴속까지 서늘하게 한다.





낮 12시41분
멀리 상고대로 뒤덮인 산봉우리 뒤로 신선암봉이 보이는 지점에서
북쪽 방향인 산행로를 버리고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당초 산행 시작시의 계획은 저 앞의 봉우리를 지나 해발고도 937m 인 신선암봉을 거쳐
하산을 할 계획이었으나 암릉이 많은 구간의 위험성을 감안해 안전을 택하기로 했다.
비록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산행으로 인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함이니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오후 1시5분
하산길은 오랫동안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더구나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북서쪽 사면인지라 쌓인 눈의 양도 무척 많다.
자그마한 바가지가 하나 달랑 놓여있는 이 샘은 꽁꽁 얼어붙어 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다.





얼어 붙은 샘물 바로 아래에는 사람 키의 몇배 정도 되는 거대한 자연석이 서 있다.
불심 깊은 누군가가 처음 뭔가를 새겨 놓은 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새긴듯 하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새긴 탓인지 가까이 살펴보니 어지러울 지경이다.





산행로 양측은 높은 산줄기가 둘러싼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지금이 2월 하순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온 천지가 흰 눈에 뒤덮여 있다.





골짜기를 에워싼 능선을 뒤덮은 온갖 나무들도 지난 밤에 내려앉은 상고대로 온통 뒤덮힌 채 그대로이다.
아마도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에 한낮이 되었음에도 얼었던 부분이 녹지 못하고
영하의 날씨에 도리어 더 두텁게 얼어가는듯 싶다.





오후 1시26분
미끄러운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지던 하산길이 해발고도 530m 쯤에 이르자 비로소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와같은 편안한 산죽길이 이어진다.
긴장했던 다리에도 조금 여유를 준다.





지금 이어지는 하산길은 계곡 옆의 좁은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절골'로 향하는 길 옆의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줄기가 꽁꽁 얼어붙어
마치 성벽을 이루어 놓은듯 싶을 정도로 이곳은 지금 한창 한겨울을 느끼게 한다.





오후 2시3분
해발고도 300m 정도에 자리한 작은 산골마을인 절골에 도착하며 비로소 산행길이 끝난다.
마을 잎을 흐르는 계곡물은 얼음 사이로 작은 물소리를 내며 흐른다.
봄 소식을 눈과 귀로 접한다.

'절골'이란 마을 이름은 아마도 동쪽 가까이 자리 한 '상암사'라는 절 때문에 얻은 이름인듯 싶다.
마을 이름인 '절골'의 옛 이름은 한자어로 "사동(寺洞)"이다.





동쪽 방향으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조령산을 이루는 산 능선에 뒤덮인 흰 눈을 바라보니 무척 아름다움과 동시에 험준함을 느낀다.
저 능선 위를 따라 오늘 산행을 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아찔함을 느낀다.





오후 3시34분
산행이 끝난 후 절골마을을 비롯 신풍마을 새터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신풍리 중심의
공터에 일행들이 모여 앉아 추위와 허기를 맛있는 김치찌개와 소주 한잔으로 떼운 후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지난 1994년 마을 주민들이 세운 신풍리 유래비 앞에서 바라보이는 조령산 능선의 상고대는
늦은 오후부터 구름을 헤치고 비치기 시작한 햇빛 덕분에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
사진 우측으로 보이는 수령 290 여년 된 높이 13m, 둘레 4.8m 인 마을 보호수 느티나무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행복했던 휴일 산행을 마감하고 귀가 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