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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25일 일요일 오전 10시55분
벌써 수년 째 매년 이맘 때면 매화꽃과 함께 봄을 맞기 위해 찾는
섬진강변 매화마을 부근 쫓비산 산행 들머리에 도착한 차량에서 내리니
관동마을 주변의 매화는 제법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채 산행객들을 반긴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전남 광양시 다압면이다.
왕복 2차선 도로변에 꼬리를 물고 잠시 머문 채 엄청난 산행객들을 토해 내는
전국에서 몰려온 산악회 버스의 행렬에 놀라 멀리 부드러운 산세를
매화꽃 너머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행을 포기한다.
해발고도 500m 정도의 산길 8km 에 오늘처럼 많은 인파가 몰리면
쾌적한 산행이라기보다는 끝없이 이어지는 인파로 인한 정체 때문에 짜증만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지라.
관동마을에서 4km 남짓 떨어진 매화마을(섬진마을) 주변 곳곳에는 만개한 매화에서 뿜어나오는
짙은 매화 향이 그득하다.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변의 홍매화가 할짝 웃는 얼굴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매화 종류 중 개화 시기가 빠른 홍매화다.
언제 보아도 맑고 잔잔한 물이 조용히 흐르는 섬진강.
초속 7~8m 정도로 강풍이 몰아치는 오늘은 보기 드물게 물살이 거칠다.
동해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흰 물보라까지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지난 3월17일부터 오늘까지 열리는 매화축제의 주 무대인 청매실농원 입구는
축제 기간임을 감안하면 무척 한산하다.
지난 해에는 구제역 여파로 축제가 취소되기까지 했던 이곳 매화축제.
금년에는 '국제매화문화축제'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갖다 붙였건만..
늦추위로 인해 매화꽃 개화 시기가 늦어진데다
갑자기 몰아닥친 꽃샘 추위와 강풍으로 인해 아마도 행사 주최측은 지금 울상을 짓고 있으리라.
매년 3월 중순이면 만개하던 매화꽃이 3월 하순임에도 절반도 채 피지 않은듯하다.
그나마 햇빛을 잘 받는 양지쪽의 매화 나무는 그나마 이처럼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짙은 매화향을 맡으며 부지런히 꿀을 모으기 위해 날아 다녀야 할 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꽃샘 추위와 함께 찾아온 세찬 강풍 때문인듯 싶다.
지난 2008년 이후 매년 이맘 때면 이곳을 찾아 매화꽃 향기와 함께 봄을 맞는 것이
이제 습관처럼 되어 버린 나에게는 오늘처럼 붐비지 않는 인파가 오히려 고맙게 여겨진다.
겨울철이면 영하 20~30도의 강추위속에서 눈산행을 이어 오는 나에게
오늘같은 최저기온 영상 1~2도의 날씨와 초속 7~8m 정도의 바람은 차라리 포근함까지 느끼게 한다.
비록 세찬 바람이 계속 휘몰아치기는 하지만 하늘은 높고 푸르다.
어제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몰라도 마치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듯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 다니는 모습이 여유로운 걸음을 어이가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파란하늘의 흰 구름과 섬진강의 파란 물빛을 더욱 돋보이게하는 흰 매화꽃의 어울림이
무척이나 조화롭게 느껴진다. 쫓비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중 하나가
쫓비산에 올라 바라 본 섬진강의 맑고 고운 물 색깔이 쪽빛(남색)을 띠고 있어서 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쫓비산 자락의 품에 안겨 섬진강을 끼고 자리 한 아늑한 매화마을은 매화꽃에 묻혀있다.
원래 이마을 이름은 섬진마을이었으나 청매실농원을 중심으로 매화나무가 번창하며
이제는 이름이 매화마을로 바뀌었다.
매화마을의 핵심인 청매실농원 중심부에는 유난히 큰 매화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있다.
푸른빛이 감도는 꽃이 핀다. 이 꽃은 흔히들 청매화라고 부른다.
청매실농원 입구에는 각종 봄나물과 매화 묘목을 팔고 사는 인파로 붐빈다.
수많은 인파와 차량의 홍수로 인해 휴일 나들이에 대한 짜증을 잠시나마 느꼈던 상춘객들도
한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이른 봄철 꽃의 향연을 벌이는 매화 향기에 취해 짜증을 모두 던져 버린다.
이곳 매화마을에서도 가장 큰 매화 재배지이자 운치 좋은 곳이 청매실농원이다.
청매실농원은 고(故) 김오천 선생이 1931년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밤나무와 매화나무 묘목을 가지고 들어와
산자락 45만 평에 이르는 임야에 처음 심었고, 그의 며느리 홍쌍리여사가 대를 이어 매화농사를 짓고 있다.
홍쌍리여사는 매화나무 재배와 매실 식품 상용화에도 힘을 기울여 섬진마을 일원이 오늘날 매화마을로 정착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매실 가공식품류를 숙성,보관하는 수많은 장독의 모습도 이곳의 큰 구경거리 중 하나이다.
지난 해까지 장독의 갯수가 2,500 여개라고 들었는데,
며칠 전 언론 보도에서는 3,000여개라고 한다. 그새 갯수가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설중매(雪中梅)라는 말로 우리 귀에 친숙한 매화.
겨울이 다가기 전 아직 잔설이 난분분한 시절에 피기 시작하는 매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중국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
이제는 우리에게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꽃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화와 벚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물론 시기적으로 매화 꽃이 지기 시작하면서 벚꽃이 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 몇가지는
우선 매화는 꽃잎 가장자리가 둥글고, 벚꽃은 꽃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을 이룬다.
개화 시기를 보면 매화는 2~3월, 벚꽃은 3~4월이다.
(* 이 사진은 2010년 4월10일 마산 무학산 자락에서 찍은 벚꽃 사진이다.)
벚꽃은 위 사진에서처럼 한곳에서 대여섯개의 꽃자루가 길게 나와 꽃을 피운다.
그러나 매화꽃은 가지에 바로 붙어서 하나 또는 두 송이 정도의 꽃을 피울 뿐이다.
따라서 바람에 하늘거리는건 벚꽃이지 매화가 아니다.
또한 향기가 약한 벚꽃에 비해 매화는 향기가 진하게 나는 특징이 있다.
정유재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의 모가지를 나꿔 채 남강 물에 익사 시키며
자신의 생명도 초개같이 버렸던 논개의 고향인 전북 장수군의 '수분재( 수분령이라고도함)'에서 발원하여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하동포구를 거쳐 광양만으로 흐르는 쪽빛 섬진강의 도도한 물줄기는
이곳 매화마을을 찾은이들의 가슴을 더욱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꽃말이 "고결한 마음, 인내"인 매화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중국 산동 지방에 '용래'라는 청년의 약혼녀가 약혼식 3일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약혼녀 무덤에서 울던 용래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나무가 한 그루 돋아난다.
용래는 그 나무를 집에 옮겨 심고 약혼녀의 넋으로 여긴 그 나무를 바라보다 일생을 마친다.
그리고 용래가 늙어 죽어서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그 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후세에 사람들은 용래의 약혼녀 무덤에서 핀 나무를 '매화나무'라 하였고,
그 매화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곁에 가까이 있던 새를 '휘파람새'라 불렀다.
꽃샘 추위와 세찬 바람으로 인해 예년 같으면 크게 붐볐을 전망대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곳 청매실농원을 둘러싼 매화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싶다면
청매실농원 뒷쪽 야산에 만들어진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고결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매화에는 퇴계 이황 선생에 얽힌 얘기도 전해 온다.
퇴계 선생이 단양 현감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를 몹시 사모하던 한 기생이
선생께 사랑의 정표로 숱한 선물을 건넸으나 모두 물리치면서도
매화나무 한 가지만은 선물로 받아 동헌 뜰에 심고 그를 즐기셨다 한다.
그리고, 도산으로 돌아 가실 때 그 매화나무를 도산서원으로 옯겨 심었는데,
오늘날 도산서원의 매화나무는
그 기생이 선물한 매화나무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전망대 뒤쪽 야산으로 홀로 올라간다.
해발 고도 200m 정도 지점에 오르니 바람은 더욱 거세다.
그러나 오후 1시반이 가까운 시간인지라 영상 7도 정도되는 날씨의 봄볕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세 곳으로 나누어 만들어 놓은 청매실농원의 장독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발효음식이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의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도 재조명 되는 요즈음이다.
귀가길에는 매실 장아찌라도 한 웅큼 사서 입맛 떨어지고 나른해지는 봄철
미각을 돋구어주는 촉매제로 쓰고 싶어진다.
어제 내린 비로 평소보다 불어난 섬진강물이 비온 다음날 같지 않게 맑고 깨끗하다.
봄 햇살을 받아 쪽빛으로 빛나는 맑은 물이 모래톱을 비껴가며 요리조리 흐르는 모습이 무척 정겹다.
오후 3시7분
오랜 시간 해발 200m 정도의 높은 지대에서 거닐다 매화축제가 열리는 마을로 내려오니
만개한 매화꽃에서 짙은 매화향이 느껴지는듯 하다.
휴일을 맞아 이곳을 찾은 상춘객들은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리고 난초, 국화, 대나무와 짝을 이루어 사군자라 해서
귀한 꽃으로 대접 받는 매화에 둘러 싸여 지낸 이곳에서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축제장 한켠에 마련된 관광객들을 위한 떡메치기가 현장도 보인다.
처음 해보는 떡메질이 어설프지만 그들은 즐거워한다.
떡메는 지방에 따라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남부지방의 경우 떡메 자루가 상부에 붙어 있고 아래가 긴 것을 많이 사용했고,
중부지방의 경우 떡메자루가 중간부분에 붙어 있는 것을 많이 사용했다.
사진에서 보는 떡메는 자루가 중간 부분에 붙어 있다. 이곳이 남부지방임에도..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가는길은 세찬 강바람을 맞으며 섬진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이곳 섬진강은 옛부터 모래가 고와 다사강(多沙江), 대사강(帶沙강), 사천(沙川) 등으로 불리었으나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를 내쫓았다하여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을 써서 섬진강이 되었다 한다.
강 한가운데서는 수많은 청둥오리가 먹이 사냥에 분주하다.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 중 가장 흔하며 대표적인 청둥오리는
야생 오리 중 가장 흔한 종으로 오늘날 집에서 키우는 집 오리의 조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오후 5시13분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귀가길,
끝없이 이어지는 매화꽃 사이에 산수유가 몇 그루 노란 망울을 터뜨린
풍치 좋은 섬진강변에서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
한국, 중국이 원산지인 산수유나무는 특히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에서 잘 성장하고
햇볕을 좋아하나 음지에서도 개화 결실하며
각종 공해에는 약한 편이나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지역인 이천시 백사면에서도 재배하지만 주로 남부의 산지에서 자생한다.
우리 나라 산수유(열매) 생산량의 60%가 이 부근인 전남 구례군에서 생산된다.
산수유 열매는 8월부터 녹색의 핵과가 형성되어
10월이면 진한 붉은색으로 익은 아름다운 산수유 열매를 볼 수 있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 서리가 내린 다음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씨에는 렉틴(Lectins)이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므로 반드시 씨를 제거토록 해야 한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과 함께 비교적 일반에게 잘 알려진 한약 중 하나인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산수유를 비롯한 여섯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공해에 약하지만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아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보다 먼저 개화하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수형과 아름다운 열매로 조경수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 퍼지며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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