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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아름다운 섬 금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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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1일. 일요일 오전 9시2분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 금당도로 떠나는 페리에 몸을 싣는다.
이른 아침인 오전 5시 경부고속도로 대전 IC를 떠난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자리한 녹동신항여객선 터미널.
행정구역상 완도군에 속한 금당도이지만 완도군 동북부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상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약 32km)인지라
가까운 녹동항(약 12km)에서 배를 타고 떠난다.

눈 앞으로 보이는 멋진 다리는 지난 해 말 완공된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이다.





오전 9시37분
9시15분경 녹동항을 떠난 배는 거금대교를 뒤로하고 남서쪽 방향의 금당도를 향해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져 간다.
어제까지 찌푸린 날씨에 거세게 불던 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맑고 따뜻한 날씨를 보여준다.





오전 9시57분
눈 앞으로 금당도의 동쪽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멋진 바위 능선이 눈길을 끈다.
중앙부에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고도 178m인 복개산이며,
우리가 배에서 내릴 곳인 울포항은 사진의 좌측 끝 부분이다.





오전 10시2분
울포항 선착장 가까이에 다가가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스님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스님바위 또는 부처바위라 부르는 바위를 300mm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본다.
바위 아랫 부분의 내리는 비를 충분히 막아 주고도 남을듯한 넓은 공간에는
여러 사람들이 저곳을 찾아 불공을 드린 흔적이 엿보인다.





오전 10시6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 보트는 금당도에 접안한다.
육지로 오가는 각종 해산물,생필품 들을 실어 나르는 자그마한 트럭 몇 대만 보일뿐 한적한 풍경이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도 우리 일행 30여명 뿐일 정도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다.





오전 10시17분
면적 12㎢,해안선 길이 28㎞ 정도의 작은 섬인 금당도는 섬 북쪽인 가학리 주변에 갯벌이 넒게 펼쳐지며
우리가 내린 섬 동쪽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오후 3시에 녹동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30여명의 일행이 작은 유람선 2대에 나눠 타고 해안 절경을 보기위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유람선 선장이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거북바위를 가리킨다.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보니 바위틈으로 솟아나 자라는 소나무 가지를 헤치며 기어가는
거북의 형상과 흡사하다. 오래 전 바위 능선의 일부분이 사태를 일으키며 떨어져 내린 바위가 멈춘 곳일게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품이다.





따뜻한 봄볕을 받아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바라 보는 것만도 큰 기쁨이건만
눈 앞에 펼쳐지는 해안의 바위는 온통 이름 모를 장인이 빚어 놓은 조각 작품처럼 여겨진다.
사진 중앙부의 자그마한 바위에는 누군가 악어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그마한 야산의 정상부는 거대한 암반이 마치 성벽을 쌓아 놓은듯 보인다.
마치 남아프리카 남단의 유명한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
그리고 영화 '주라기 공원'의 배경이 되었던 남아메리카 북부의 아마존 밀림 위에 솟은
일명 '테이블 마운틴'이라 부르는 '테푸이'와 흡사한 멋진 경관이다.

남아프리카 '테이블 마운틴'의 경우 약 4억~5억 년 전에 얕은 바다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 덩어리가
대규모 지각운동으로 지금 높이인 해발 1,086 미터까지 융기된 것이라 하는데
이곳도 그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처럼 멋진 주상절리(柱狀節理)의 아름다움도 연이어 이어진다.
화산암(火山岩) 암맥이나 용암(熔岩), 용결응회암(熔結凝灰岩) 등에서 생기는 주상절리는
제주도 서귀포 해안이 대표적이며 광주 무등산의 주상절리도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런가하면 금강산의 멋진 경치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만물상의 축소판 같은 풍경도 펼쳐진다.
바위 틈새를 비집고 자라는 소나무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하는 곳이다.





지금 보이는 이 바위 부분은 금당팔경에 이름을 올린 바위들이다.
옆으로 곧게 뻗은 부상절리가 병풍을 펼친듯 보인다 해서 '병풍바위'라는 이름을 얻었고,
또 그 아래 부채살처럼 타원으로 펼쳐진 부분을 '부채바위'라고 부르는듯 싶다.





오전 10시31분
처음 도착했던 울포 선착장에서 북쪽을 향해 이곳 금당도 동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던 해상 유람선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남쪽 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내달린다.
이곳 금당도 8경의 하나인 ‘교암청풍(轎岩淸風)’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
맑고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고 바위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예전에는 가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마바위’라 불렀는데 최근 새들이 그 바위 안에 많이 살아
'새집바위' 또는 '새아파트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 아래에서 유람선은 잠시 멈춘다.
가까이서 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올빼미가 두 눈을 부릅뜨고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었다는 구멍들을 자세히 살펴 본다.
이와같은 바위를 타포니 지형이라 한다.

타포니란 벌집모양의 자연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의 방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타포니는 전북 진안 마이산의 마이봉이다.
진안 마이산의 경우 약 9천만년 전부터 1억년 전 사이 호수가 융기해 생긴 것이라는데 이곳은?




잠시 멈추었던 새집바위를 떠나 계속 남쪽 방향으로 유람선은 이동한다.
멀리 이곳 금당도 남동쪽 끝 부분인 세포리의 이른바 '금당절벽'부분이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는 암반의 우측 끝 부분에 살며시 올라 앉은 바위 하나가 보인다.
저 바위를 '상여바위'라 부르는듯 하다.

상여바위 위로는 자그만 전망대와 지붕을 이고 앉은 작은 정자가 보인다.
지금의 유람선을 이용한 해상 유람을 마친 후 저곳까지 걸어 올라야할 곳이다.
잠시만 기다려다오! 조만간 너를 만나러 갈테니..





오전 10시41분
금당절벽을 지난 유람선은 금당도 최남단에 야트막한 둑으로 이어진 무인도인 목섬을 돌아가며
이제는 방향을 서쪽으로 바꾼다.
오른쪽의 소화도에서부터 중화도,대화도까지 3개의 작은 무인도가 멀리서는 마치 하나의 섬처럼 보인다.
오른쪽 소화도에는 해안초소의 흔적이 남아 있고, 가운데 중화도에는 '초가집바위'가 있으며
좌측 대화도에는 코끼리바위와 남근석(男根石)이 있다.





소화도 해안 남쪽 끝에 자리한 예전 해안초소의 흔적이다.
요즈음 남해안과 서해안의 작은 섬이나, 동해안의 해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적들이다.
오래전 우리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달래가며 나라를 지켰던 힘든 일을
요즈음은 첨단과학 장비가 멀리서 대신 수행한다. 과연 요즈음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지난 1950년 생을 마감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읽어보면
꼭 그런것만 같지는 않다.





중화도 해변을 가까이 살펴보면 멋진 바위들 중에서 집 한 채가 눈에 띈다.
이곳 금당팔경 중 하나인 '집바위' 또는 '초가집바위'이다.
용왕님께 죄를 짓고 바닷가로 귀양 왔던 예쁜 인어공주가 잠시 살았음직한 깔끔한 집이다.





제일 왼쪽에 자리한 대화도 해안의 바위절벽 중간쯤에
거대한 몸집에 코끼리가 코를 길게 드리운듯한, 길다란 코 아랫부분은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는듯한
"코끼리바위"가 보인다.
이 코끼리 바위는 저 해안가를 돌아 반대쪽인 서쪽에서 보아야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코끼리바위가 있는 무인도인 대화도의 남쪽에서 코끼리바위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코끼리바위 좌측의 기다란 기둥모양의 바위 위에 네모난 작은 바위가 하나 올라 앉은듯 보이는데
바로 저 바위가 이곳 금당팔경 중 하나인 '남근석(男根石)'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 보아도 닮은 것 같지가 않다. 고개가 갸우뚱한다.





모든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게 마련이다.
이는 사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듯.
남쪽 끝부분을 완전히 돌아 지난 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명확한 '남근(男根)'의 모습이 그려진다.
비록 서울 도봉산의 우이암이나 경남 남해 가천마을의 암수바위에서 보는듯한 사실감은 덜할지언정.





 

또한 이 방향에서 바라보는 코끼리 바위의 모습은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아름다운 여인들은 오른쪽 얼굴보다 왼쪽 얼굴이 남성들의 눈에 더 예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데,
이곳 금당도의 코끼리 바위는 오른쪽 얼굴이 왼쪽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함이 분명하다.





오전 10시52분
해상 유람을 마치고 새집바위 위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세포항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2대의 유람선에 각각 나누어 탄 우리 일행들을 가까이 접한다.
양쪽에서 동시에 환호성이 터진다.





저들의 행복해하는 표정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읽는다.
1주일간 일터에서 삶을 꾸리느라 쇠잔해진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
소박한 '물 한 모금의 행복'이다. 행복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금당절벽을 이루는 해안가 바위절벽을 조금 전 남쪽 방향으로 향할 때와 달리
이제는 북쪽을 향하며 바라본다.
이곳이 남해 바다의 작은 섬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움장함으로 다가온다.
바닷물 색깔은 남태평양 어느곳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왜 많은이들은 비싼 돈 들여가며 해외로만 가려고 하는걸까?





바닷가 끝자락에는 마치 사자나 호랑이를 연상케하는 거대한 맹수가 웅크리고 앉아
두 눈 부릅뜨고 우리 땅을 지키는 듯한 형상의 멋진 바위도 보인다.
이름을 지으라면 '범바위'쯤이 어떨까 한다.





웅크리고 앉은 맹수의 옆구리를 따라 굵은 힘줄을 연상시키는 바위 단층이 이어진다.
오랜기간 퇴적된 지질이 지반의 융기 또는 침하에 의해 형성된 모습이 아닌가 싶다.
바닷물에 씻기우는 아랫부분을 누군가는 '누룩바위'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오전 11시9분
해상 유람을 마치고 이곳 금당도의 남쪽 끝 부근인 세포리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방파제 안쪽의 바다 수면이 마치 편안한 마음을 닮은 깊은 산 속의 호수 수면처럼 잔잔하다.
솜털 이불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저곳에 잠시 드러누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오전 11시22분
남쪽 끝 해안 절벽에 자리한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해변을 따라 이동하는 길이다.
북쪽 끝 가학리에는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지만 이곳 세포리에는 갯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저 아낙네들은 물 빠진 바닷가에서 뭘 저리 열심히 하는걸까?

이곳 세포마을은 1730년 조선 영조대에 천안전씨가 전남 영암에서 이곳에 와
마을을 형성한 곳으로 마을 포구가 길고 가늘어서 '가는개'라고 불리어오다가
한자어인 '細浦里(세포리)'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다.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오르막 산길을 오르자니 이마에 땀이 솟기 시작한다.
해상 유람을 하는동안 껴 입었던 옷을 벗어 배낭에 챙겨 넣고 반팔 차림으로 걸어도
전혀 한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봄날씨가 상쾌하다.





중부 지방으로는 약한 황사가 지날 가능성이 있다는 아침 일기예보였지만
이곳 남쪽 바다, 그리고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다. 가슴이 탁 트인다.





금년 봄을 맞으며 처음으로 진달래를 가까이에서 만난다.
진달래꽃을 마주한 순간 다음 주말 산행을 어디로 할까 고민을 시작한다.
분홍빛 진달래를 만나기 위한 산행지 선정 때문이다.
여수 영취산,마산 무학산, 대구 비슬산,강화 고려산... 모두 한 차례 이상 가 본 산이지만
어제 다르고 또 오늘 그 모습이 다른 것이 자연의 모습이기에..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고도 112m 지점을 거쳐야한다.
통나무로 단장한 계단을 오른다.
해발고도 112m 지점의 봉우리에는 '댈추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무슨 뜻일까? 또 하나의 숙제로 남긴다.





산행로 주변에 유난히 많은 이 나무에 자꾸만 눈이 간다.
사철 푸른 잎을 가진 상록수임이 분명한 나무로 눈길은 자꾸 가지만 주위에 이름을 아는 이가 없다.





윤기나고 넓은 나뭇잎 뒤에 수줍은듯 숨어 피어나는 꽃.
아직 채 다 피지 않은 채 기지개를 켜는 작은 꽃송이들.
이 나무의 이름은 사스레피나무이다.
바닷가의 산기슭에서 자라는 차나무과의 상록활엽 관목인
이 사스레피나무의 가지와 잎을 태운 잿물은 염색재료로 쓴다고 한다.





산길 한 가운데서 금년 들어 처음으로 할미꽃도 만난다.
흙 색깔과 구분이 잘 되지 않아 사람들의 발에 밟힌 것도 간혹 눈에 띈다.

할미꽃을 흔히들 머리를 숙이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꽃이 진 후 흰 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같이 보이기 때문에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는 할미꽃의 한자어로 된 이름이 "백두옹(白頭翁)"인 것으로 알 수 있다.





해발 112m인 댈추봉에서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면 너른 공터에 전망대와 자그마한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눈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동쪽 방향의 풍경이 일품이다.
눈 앞에 가까이 보이는 섬은 비견도이고, 그 우측의 섬은 이곳 금당도,비견도와 함께
금당면을 구성하는 3개의 유인도 중 하나인 허우도이다.
비견도 너머 멀리 좌측으로는 아침에 배를 타고 출발한 녹동이 어렴풋이 보이고,
비견도 뒤에 크게 보이는 섬은 국도 27호 최남단이 위치한 거금도이다.
행정구역상 전남 고흥군 금산면인 저곳의 최고봉인 적대봉은 금년 1월8일에 다녀온 바 있다.





비견도 너머 멀리 녹동쪽을 망원렌즈로 당겨 보면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가 뚜렷이 보인다.
지난해 12월 중순 개통된 길이 2km가 넘는 사장교인 저 다리의 주탑 2개의 높이가 167.5m라 하니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보다 훨씬 높다.





오전 11시56분
30여명의 우리 일행 외에는 인적이 없이 조용한 전망대에서 한동안 봄바람을 실컷 들이킨다.
매주 주말 산행이나 여행을 다니며 느끼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 파묻히면
그냥 그 자리에 눌러 앉고 싶어만 진다.
훗날 생업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시간 제약없이 걸어서 다녀봤으면...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세포리로 돌아가는 길.
쪽빛 바닷물은 투명하다 못해 속까지 온통 들여다 보인다.
저 맑은 물 속에 뛰어들고픈 충동마저 느낀다.





화사한 분홍빛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달래 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즐기며 세포리 마을로 돌아온다.
눈이 즐겁다.





낮 12시31분
세포리 마을 바닷가 근처 양지 바른 풀밭에 새끼 손톱만큼 작은 파란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우리가 봄철이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이다.
흔히들 '개불알꽃'이라 부르는 이 야생화의 정확한 이름은 "큰개불알풀(Veronica persica Poir)"이다.

8~9월에 열리는 열매의 모양이 개의 불알과 같다하여 붙여진 요망스런 이름이지만,
지혜롭고 명예로운 우리 조상들이 붙인 이름은 아니다.
요망스런 일본인들이 붙인 한자 이름을 그대로 우리 말로 직역하다보니 붙인 이름이다.
'난'의 일종인 '개불알꽃'의 이름을 근래 들어 '복주머니란'으로 바꾼 것처럼
아름다운 우리 이름으로 바꿨으면 싶다. 식물학자들이 각성하기 바란다.





요망스런 이름의 이 작은 꽃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참 아름답다.
옛날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향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의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 이가 "Veronica(베로니카)'라는 이름이었는데,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닮은 꽃이어서 학명이 "Veronica persica Poir" 일까?





그 옆에는 이처럼 붉은 색의 작은 꽃도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다.
이 꽃의 이름은 "광대나물"이다.
분홍색 치마 저고리로 아름답게 치장한 광대들이 춤추는 모습이 이와 같을까?
잎이 부드러울 때 생으로 비빔밥에 넣거나, 겉절이를 해도 맛있다고 한다.





낮 12시46분
오전에 배를 타고 도착한 울포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노란 개나리가 길 양편에 무성하게 피어난다.
윗쪽 내륙지방은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건만 따뜻한 이곳 남쪽 바닷가는 봄이 한창 무르익었다.





오후 1시18분
동백꽃 활짝 핀 따뜻한 정자 아래 나무벤치에 앉아 점심과 휴식을 취한 후
해변가를 따라 가벼운 산행을 하기 위해 보건지소와 금당면사무소가 나란히 붙은 길을 지나 산길로 향한다.
3개의 유인도와 15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금당면의 면소재지가 이곳 금당도 울포리이다.





면사무소에서 불과 100 여m 떨어진 곳에 방치된 폐가를 뒤덮은 담쟁이를 비롯한 덩굴식물들이
이곳 금당도는 물론 오늘 우리의 농어촌 현실을 한 눈으로 보여주는듯 하여 씁쓸하다.
지난 1994년 1,736명이던 이곳 인구가 지난 2009년 말에는 1,168명으로 줄었다.
아마도 오늘 이 시간에는 인구가 더 줄었을 것 같다.





마늘밭 옆에 진한 향기와 함께 피어나는 유채꽃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 한구석의 앙금을 조금이나마 걷어내 본다.





산길로 접어든지 10여분이 경과하자 시원한 바다 풍경과 진달래꽃이 만발한 아름다움이 이어진다.





오전에 바다에서 멀리 바라보았던 스님바위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산길은
절벽 옆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길이다.
하지만 그만큼 눈에 비치는 경치는 일품이다.





가까이에서, 그것도 바다에서와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 보는 스님바위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온다.
마치 뒷다리로 서서 다니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





스님바위 아래의 불공을 드릴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무척 넓다.
세찬 비바람만 아니라면 웬만한 비는 충분히 피할 정도의 공간이다.

다만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금방 윗부분이 와르르 쏟아질듯 느낄 정도로 바위가 부실해 보인다.
바위의 형질이 운반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퇴적암 중 입자가 비교적 굵은 역암 종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스님바위 앞을 지나 반대쪽 산길을 오르며 우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다.
바다에서 기어나와 힘들게 산을 오르는 거대한 파충류인 공룡의 한 종류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이곳인지라 산길도 숲이 무성하다.
키 작은 소나무숲을 헤치며, 또 진달래 숲을 헤치며 걷는다.
간혹 가시나무에 찔리기도 하지만 요즈음 도시 근교 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을 접함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듯한 산길을 오른다.





잎 이 난 후 꽃이 피는 철쭉에 비해 잎이 나기 전 꽃부터 피는 진달래.
철쭉은 독소가 있어 먹을 수 없음에 반해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기에 참꽃이라고도 부른다.
진달래 꽃잎을 몇 점 따서 입에 넣고 씹어 보는 호사도 누려 본다.





오후 1시58분
오후 3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기에 가벼운 산행을 끝내고 하산을 시작한다.
울포 마을 북쪽에 인근에 자리한 차우리 마을 전경이 아름답다.

1640년 조선 인조대에 진주강씨가 고흥에서 처음으로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한 곳으로
마을뒷산인 공산을 수리(독수리)가 넘어 왔다고 하여 '수리 넘어'로 불러오다가
그 후 다시 공산을 타고 넘었다하여 차우리(車牛里)라 이름 붙였다 한다.





차우리에서 울포리로 이어지는 길은 꽃길이다.
동백꽃 활짝 핀 길을 걷기도 하고





이처럼 개나리 만발한 꽃길을 이어 걷기도 한다.





울포리 마을 골목담에는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강원도 산골 만항재 부근의 마을에는 꽃을 주로 그렸고,
통영 동피랑 마을에는 꽃과 해산물이 골고루 그려져 있으나
이곳 벽화의 주제는 거의가 해산물이다.





오후 2시38분
울포리 선착장 부근에서 간단한 간식과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와 피로를 풀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 '금당도(金塘島)'의 지명 유래에 대한 정설은 찾지 못했다.
다만 예전의 이름은 '금당(金堂)'이었다는 것과
주변의 금일도, 생일도의 금곡리처럼 금이 산출된 것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금댕이'가 '금당'으로 불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금당도는 한때 ‘부자섬’으로 불렸다 한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 김값이 금값이었을 때는 김 수확,가공작업을 하느라 바빠서
대변을 보고 뒷처리로 흘러 넘치는 지폐 다발을 사용하면
부근을 어슬렁거리던 똥개들이 돈을 입에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전해 졌었다.





오후 3시13분
금당도 울포항에서 우리 일행을 실은 배는 녹동항을 향해 선착장을 벗어난다.
오래 전 젊은 시절부터 틈만 나면 여행을 즐기던 나에게 배를 타는 일은 무척 익숙한 일이다.
남해안,서해안 일대의 수많은 섬을 다녀온 것은 물론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16시간에 걸쳐 배를 타고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배가 항구를 떠날 때는 웬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가 사는 대지를 어머니 품처럼 감싸 안은 존재가 바다이기 때문일까?





오후 3시31분
이제 5시간 남짓 머물렀던 금당도가 뒤로 아득히 보인다.
스님바위,물개바위, 병풍바위,부채바위 등 기암괴석이 늘어선 아름다운 해안은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지만 마음속으로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본다.





좌측에 연흥도 우측에 거금도를 사이에 둔 좁은 해협을 지나자 사방이 트이며
눈 앞으로 오전에 지나온 거금대교의 모습이 들어온다.
하루 종일 따뜻한 햇빛과 잔잔한 바람으로 섬 여행을 도와준 날씨에 감사할 따름이다.





거금대교 아래를 지나면 녹동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2011년 12월16일 개통된 길이 2,028m로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국내 최초로 윗층은 차량이 통행하고 아랫층은 사람과 자전거가 통행하도록 만들어진 다리라는 홍보 덕분에
개통 후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오후 3시51분
녹동항 방파제를 들어서며 좌측으로 지난 2009년 개통된 녹동과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를 바라본다.
항구로 들어가는 배에서 바라보면 좌측에는 흰색등대, 우측에는 붉은색 등대가 있다.
국제 표준인 이 색깔만 알고 있으면 처음 가는 바다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처음 방문한 금당도의 신비롭고 아름다움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픈 마음으로
휴일 하루 행복했던 여정을 마감하고 귀가 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