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솔향기 가득한 태안반도 북단의 `솔향기길`



 

2011년 12월17일 토요일 오전 11시
충청남도 서부 해안의 태안반도 북단의 해변가에 조성된 솔향기길 탐방을 위해
행정구역상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위치한 만대항에 도착했다.
해 뜨기 전 아침 일찍 출발했던 대전 지방의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8도에 육박했던 점을 생각하면
예상 외로 춥지 않은 날씨이다.

"만대(萬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 곳’이라는 뜻인데,
"만대"라는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조선시대 한 스님이 하산 해 태안 땅에 발을 들인 후 인가가 없는 곳을 찾아 걷던 중
멀리 파란 바닷물이 넘실대는 것을 본다.
이에 그 스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허 참! 아까는 분명 땅이었는데!" 라고 하며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가다 가다 (그)만(둔)데’라는 말이 그대로 이름이 되어 버린 곳이다.





오전 11시7분
해안가 절벽 위 소나무숲으로 들어서며 남쪽으로 10.2km 떨어진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솔향기길 제1구간 탐방을 시작한다.
멀리 가로림만 입구 해안가 쪽으로 작은 바위섬인 삼형제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는 두 형제의 모습만 보인다.





눈 아래 울창한 소나무숲을 뚫고 바다 건너 서산시 대산읍의 황금산이 눈에 들어온다.
2년 전 다녀온 바 있는 황금산 해변의 아름다운 절경이 눈에 선하다.
황금산 우측으로는 대산 공업단지의 수많은 굴뚝들이 눈길을 끈다.





대산 공업단지의 수많은 굴뚝들이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을 상징한다.
그러나 한편 수년 전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사고로 인해
태안군 주민들은 물론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겼던 것을 생각하면
경제 발전이란 것이 꼭 우리에게 행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황금산 비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삼형제바위.
아직은 형제 하나를 탐방객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인지 꼭꼭 숨기고 있다.
기름 유출 사고 당시의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슬픔의 눈물을 닦아내고 우리 모두에게 모습을 보여 주기를...





오전 10시23분
출발점에서 0.5km를 지났으니 최종 목적지인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는 9.7kn가 남았다.
"작은구매수둥" 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 지점. 자그마한 자갈로 덮인 해변이 나타난다.
인적 없는 해변에 버려진 그물 조각 하나가 추운 겨울날의 황량함을 더해 준다.

탐방로 표지판에는 "수둥"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태안군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안내 지도에는 "수동"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생소한 "구매수동" 또는 "구매수둥"이란 말에 대한 자세한 설명조차 없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구매'란 말은 언덕이라는 뜻의 '구미'라는 말과 유사한듯 싶고,
'수둥'이란 해안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사안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공무원들의 한심한 작태에 무척 실망스럽다.
어영구영 정년만 넘기면 일반 국민들은 생각도 못할 큰 돈을 매달 연금으로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공무원들... 우리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오전 11시29분
출발 지점인 만대항에서 0.7km를 지난 지점에 이르자 비로소 삼형제바위의
형제 셋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추운 겨울 바람이나 세찬 파도에도 흔들리지 말고 형제간의 우애를 드높여 주기를...





오전 11시33분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 9.3km를 남긴 지점에서 이번에는 "큰구매수둥"을 지난다.
세찬 바다가 몰아치는 파도에 의해 오랜 세월동안 깍여 나간
해안가의 바위들의 형상이 기기묘묘한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멋진 곳이다.





오전 11시48분
만대항에서 2km 정도 지난 지점인 북쪽 끝의 '붉은앙뗑이"에서 바라보는 북동쪽 경치가
가슴 속을 시원하게 해 준다.
중간 부분 소나무 가지 너머로 붉은 색의 "장안여 등대" 가 눈에 들어 온다.
장안여는 육지에서 200여m 떨어져 있는 바위섬. 만조 때는 물에 잠긴다.
이 때문에 여객선이 침몰해 1998년 등대를 설치했다. 이원면 유일의 등대다.

"붉은앙뗑이"라는 용어도 생소하다.
앙뗑이는 ‘절벽’의 태안 사투리이며, 붉은 앙뗑이는 인근의 돌과 흙이 붉은 빛을 띠어 붙여진 이름이다.





오전 11시54분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 8.1km를 남긴 지점의 "세막금"을 지나며 또다시 급경사 오르막이 나타난다.
2주전 다녀온바 있는 태안군 서쪽 해안을 따르는 5구간으로 나누어 조성된 태안해변길의 경우
비교적 완만한 평지로 이루어진 해변길인데 반해 이곳 솔향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이어 이어진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길"이라는 개념만 머릿속에 담고 찾는 이들은 상당히 힘들어한다.





낮 12시6분
영하의 날씨임에도 오르막을 오르느라 온 몸에 땀이 솟는다.
다리 근육에 기분 좋을만큼의 가벼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
오르막길이 끝나고 눈 아래 해안 절경이 다시금 펼쳐진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같은 크고 작은 "여"가 많이 보이는 이곳 해안이다.
"여"라는 우리 말은 밀물 때는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고 썰물 때는 눈에 보이는
작은 바위 섬을 이르는 말이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정자가 자리하여 길손들의 다리 쉼을 도운다.
표지판에는 "당봉전망대"라 씌어 있다.





낮 12시23분
근욱골해변에서 북동쪽으로 바라보는 해안 절벽인 붉은앙뗑이와 어우러진
장안여등대의 시원스런 풍경이 얼굴에 흐른 땀과 더불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출발 지점인 만대항에서 이제 3.2km를 지나 온 지점이다.





낮 12시27분
이정표에 칼바위라고 표기된 지점을 지나며 해안가를 내려다 본다.
아마도 눈 아래 보이는 바위에 붙은 이름인듯 하지만
바라보는 방향이나 각도가 달라서인지 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낮 12시31분
만대항에서 3.8km를 지난 지점인 큰노루금을 지나며
다시 멋들어진 소나무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마치 지리산둘레길을 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길.
해풍에 실려 오는 짙은 소나무 향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 마신다.





낮 12시40분
남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여섬이 바라다 보이는 가마봉의 너른 공터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이제 목적지인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는 대략 6km정도 남았다.





오후 1시17분
가마봉에서 휴식을 끝낸 후 악너머약수터를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오른 후
전망 좋은 절벽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마봉에서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여섬이 눈 앞에 나타난다.

여섬은 20m 높이의 작은 섬이다. 이원방조제 축조 후 제방 안에 있는 섬은 육지가 돼 단 하나 남은 섬이다.
그 옛날 남을 여(餘)자를 붙여 ‘여(餘)섬’이라 부른 선인들의 예견이 흥미롭다.
여섬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밀물에 유속이 빨라지면 바위를 때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가 장관이다.
게다가 인근에 어족이 풍부해 최고의 갯바위 낚시터로 꼽힌다.





오후 1시24분
최종 목적지까지 5.5KM를 남긴 지점에서 소나무숲을 뚫고 북쪽으로 바라보는 여섬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임을 새삼 깨닫는다.





오후 1시39분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 4.5km를 남긴 지점에 아담한 해변이 펼쳐지고
해변가에서 이어지는 야트막한 야산 자락에는 팬션단지가 조성되어
바닷가를 찾는 도시인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곳 팬션단지가 모여 있는 해변의 이름은 중막골해변이다.
물 빠진 해변가의 바위들은 그 모양만이 아니라 색깔 또한 다양하다.
이런 다양함이 우리에게는 즐거움을 준다.





오후 1시50분
중막골을 지나면서는 물 빠진 해변의 각양각색 바위를 따라 남으로 이동하며 해안절경을 즐긴다.
오랜 예전 굴 속에 있던 용이 밖으로 나와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오는 용난굴 앞을 지난다.
용이 난 굴이라하여 '용난굴"로 이름 지어진 곳.

같은 버스로 솔향기길 탐방을 시작한 30여명 일행 중 이곳에 들린 일행이 대여섯 명 뿐이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뭐 그리 급한 일이 있기에 이런 멋진 곳을 둘러보지 않고
앞만 보고 냅다 뛰다시피 걸어가는지?
그들에게 열린 마음을 가져 보기를 권한다.





용난굴 앞 해변에는 굴 속에 있던 두 마리의 용 중에서 승천하지 못한 다른 한 마리의 용이
이처럼 멋진 망부석으로 변하여 굴을 지키고 있다.





오후 2시3분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걸음걸이는 무척 더디어졌다.
조금 전까지 칼날처럼 날카로운 암반들을 지나더니
이제는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하다만듯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밝은 색의 바위들이 줄을 잇는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겨울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동쪽 사면은
솔향기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솔향기를 계속 뿜어내는 소나무숲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짙게 드리운 구름을 뚫고 실낱처럼 비치는 햇빛을 받아
겨울 날씨임에도 무척 잔잔한 바다는 은빛으로 빛난다.
그 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오후 2시7분
해안가를 벗어나 다시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간을 갖고 혼자 떠난 여행이라면 이곳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물고 싶은 곳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해안가 소나무숲에는 이와같은 오래된 해안초소도 눈에 띈다.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러 주변의 철조망도 붉게 녹이 쓴 상태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그리고 그 후 냉전시기를 겪으며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애쓰던
젊은이들의 고생이 눈에 선하다.
민족상잔의 비극은 언제나 잊혀지려는지? 또 통일은 언제나 이루어지려는지?





오후 2시55분
최종 목적지인 꾸지나무해수욕장에 도착했다.
4시간 동안 총 10.2km를 걸어왔다. 다리는 기분 좋을 정도의 가벼운 피로감이 느껴진다.
추운 겨울날이 아니라면 저 시원한 물속으로 뛰어들었으리라.

바다 건너 멀리 태안화력발전소의 굴뚝의 연기를 바라보며
올겨울에는 지난 가을과 같은 전력 수급 불안정으로 인한 전력대란이 발생치 않기를 또한 빌어 본다.





이곳 꾸지나무해수욕장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수욕장이다.
폭 200m, 길이 0.8km의 작은 해수욕장을 한참 바라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질만큼 아늑한 곳이다.
이곳 태안군의 이름인 "태안(泰安)"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는 의미인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따온 말이기 때문일까?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꾸지나무해수욕장을 떠난다.
그런데 "꾸지나무"란 뽕나무과의 한 종류인 활엽수의 이름인데,
난대성 식물로 나무껍질은 종이의 원료로 각종 한지를 만들고,
열매는 약으로 쓰거나 맛이 좋아 그냥 먹기도 하며 어린 잎도 식용하고,
한방에서 신체 허약·시력 감퇴·수종(水腫) 등에 약으로 쓴다는 꾸지나무가
이곳에서 자라는지? 하는 숙제를 하나 남긴다.





오후 4시42분
태안군에서의 솔향기길 1구간 탐방을 마친 후 맛있는 굴밥으로 허기를 메우기 위해
도착한 곳은 꾸지나무해수욕장에서 77km 거리의 천북항이다.
행정구역상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인 이곳은 매년 11월하순부터 12월초까지
석굴축제가 열리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있는 곳이다.

지난 2008년 12월27일 이곳에서 멋진 일몰을 맞은바 있는 나로서는
그 때보다 더 멋진 일몰을 기대했으나 수평선 위로 짙게 드리운 구름을 보니
멋진 일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듯 하다.





오후 5시13분
여행을 다니면서 접하는 것이지만 산지에서 먹는 해산물의 맛은 별미이다.
맛있는 굴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다시 바닷가로 나간다.





오후 5시15분
수평선을 따라 짙게 드리운 구름에 가려 햇빛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비록 멋진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솔향기를 맡으며 이어진 4시간여의 산책에 이어
감칠맛 나는 굴밥으로 뱃속을 채운 행복감으로 주말 하루를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참고로 이 사진은 위 사진과 비슷한 지점에서
지난 2008년 12월27일 오후 5시19분에 찍은 일몰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