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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땅끝 마을 해남 달마산 산행기



 

2011년 11월27일 일요일 오전 11시11분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해 4시간 여를 달려온 차에서 내린 곳은
전남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의 송촌 마을 입구이다.
남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 능선 너머에서 비치는 따스한 가을 햇살로 인해
검은 실루엣으로 비쳐지는 달마산 능선의 모습에 압도 당한다.
마치 수 많은 마디로 이루어진 지네를 닮은듯한 8km 길이의 바위 능선.
저 바위 능선 중 일부를 오늘 내 두 발로 오르게 된다.





오전 11시16분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 군락을 헤치며 마을 길을 지나간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대략 20m 정도로 추정된다.
해발고도 489m 인 달마산 최고봉인 불썬봉까지의 거리는 대략 4.1km정도.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산길인지라 그리 수월치는 않은 산행길이 되리라.





오전 11시36분
중부 이북 지방은 11월 초순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활엽수들은 헐벗은 삭막함을 보여주는데 반해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의 산행은 마치 지난 10월에 다녀온 지리산 뱀사골에서의
멋진 단풍숲을 상기시켜 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깊은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전 11시55분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는 산행길이 1.5km 정도 지난 지점에서
나무숲이 끝나며 눈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거대한 석재 가공 공장을 찾은듯한 돌무더기가 앞을 가로막는다.
오래 전 고갯마루의 암반들이 산사태를 만나 해발고도 220m 정도 되는 이 지점까지
깨진 돌무더기가 굴러 내려온 결과이리라.
며칠 전 내린 비로 인해 습기를 머금은 날카로운 너덜지대를 지나는 일은 무척 조심스럽다.





낮 12시1분
습기를 머금은 돌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디디며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숨이 턱에 차 오른다. 장갑 낀 두 손도 이제는 발이된다.
햇살 사이로 보이는 칼날 같은 바위 능선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마치 어느 순간 굴러 떨어질듯한 착각마저 든다.





뒤돌아보니 동행한 일행들이 저만치 뒤에서 오르막 너덜지대를 힘겹게 올라온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무척 힘들어 보인다.
현재 나 자신 양쪽 다리의 정강이 부분은 온통 멍 투성이이다.
대부분 이와같은 너덜지대나 뾰족한 암반을 지나다 남긴 흔적들이다.
오늘 하루 산행 중 큰 부상자가 없기만을 바란다.





낮 12시13분
크고 작은 바위를 헤치며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과정이 끝이 없어 보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고작 1시간 째인데 벌써 다리에 피로를 느낀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들이킨 후 다시 네 발로 돌무더기 사이를 헤집고 오른다.





낮 12시24분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게 여겨지던 돌무더기 오름길을 벗어나며 위쪽으로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저곳이 등산지도상에 바람재로 표기된 곳인듯 싶다.
다시금 몸에 힘이 솟는듯 하다.





해발고도 390m 정도인 이곳 작은 바람재에서 처음 출발했던
2.1km 떨어진 송촌 마을을 내려다 본다.
급경사를 이루는 산 사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툭툭 불거져 나온 바위들의 형상이 기묘하다.





2km 거리인 불썬봉으로 가기 위해 눈 앞에 보이는 큰바람재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모습을 보고 많은 호사가들이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렀을게다.
울퉁불퉁 솟아있는 기암괴석이 마치 거대한 수석전시장을 찾은 듯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낮 12시32분
칼날같이 솟은 뾰족한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지나는 능선길이다.
아래 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사면이다. 내려다보면 아찔함을 느낀다.
뒷편 북동쪽 멀리 달도를 거쳐 완도대교로 연결된 완도가 바다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완도대교 건너 완도군 군외면 면사무소가 위치한 포구의 모습이
평화로운 어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완도는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온통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바위 사이를 지나는 걸음은 무척 더디다.
아랫쪽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 아래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가하면
다음 순간은 이와같은 암반 사이를 비집고 지나야하는 산행로가 이어진다.
몸은 힘들지만 눈은 즐겁다.





암반 사이로 눈 아래 송촌마을의 전경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부지런한 우리네 농촌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난 논밭에 마늘 등 겨울 작물을 심어 가꾼다.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지금 보기에는 좋지만
이상 난동으로 인해 웃자란 농산물들이 머잖아 찾아올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는 피해가 생길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낮 12시41분
15분 전 지나온 바람재쪽을 뒤돌아본다.
끝부분인 관음봉 바로 아래 바람재에서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 저들도 이쪽을 바라보며 멋진 풍광에 넋을 놓고 있으리라.
지금 나 또한 저 멋진 경치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낮 12시52분
지도상에 434m 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을 바라다본다.
마치 수많은 돌들이 사면을 따라 흘러 내리다 멈춘듯한 능선의 정점인
470봉 너머 좌측 멀리 뾰족한 모습의 실루엣으로 보이는 불썬봉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 달마산을 자주 찾는다는 어느 산행객의 얘기가 생각난다.

"조물주가 금강산 만물상 조성 때 배치의 묘를 연습한 뒤
달마산에서 무르익은 기교를 맘껏 부리지 않았나 싶다"고..
더구나 이곳 달마산은 금강산이 보유하지 못한 환상적인 바다 조망의 즐거움까지 우리에게 주는 곳이다.





오후 1시
470봉에 올라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관음봉에서부터 이어지는 내가 지나온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옴은 물론
바다 건너 완도와 해남 땅끝 사이를 이루는 다도해의 쪽빛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470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이전까지와 같은 수석 전시장을 요리조리 피해 지나는
그런 힘든 길이 아닌 비교적 편안한 능선길이다.
하지만 양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좁은 바위 능선인지라 몸 놀림은 여전히 조심스럽기만 하다.





비록 산행길이 좀 편해지긴 했다지만 걸음은 전혀 빨라지지 않는다.
앞뒤좌우 어느쪽으로 눈을 돌리든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 주는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11월 하순임에도 기온이 20도에 육박하는 따뜻한 날씨인지라
이 멋진 곳에 오래 머물고 싶을 뿐이다. 걸음이 느려지는건 당연한 이치이다.





오후 1시24분
2km에 불과한 능선길을 꼬박 1시간을 걸어 이곳 달마산 최고봉인 불썬봉에 도착했다.
정상부가 온통 돌탑으로 이루어진 불썬봉이 눈 앞에 나타난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다 영암 땅에서 월출산을 빚어낸 후 힘에 부쳐
잠시 낮게 흐른 뒤 강진 , 해남땅에서 다시 솟구친다.
땅끝기맥은 강진 덕룡산을 기점으로 남으로 주작산과
해남의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땅끝마을 전망대가 위치한 해발 122m의 사자봉에서
그 소임을 다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산줄기이다.





달마산 최고봉인 해발 489m 불썬봉 앞이다.
이곳에는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장성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통신을 주고받던 곳으로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이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불썬봉" 이라는 이름은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봉' 이라 해서 붙여졌다 한다.





휴대폰으로 내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자리를 뜬다.
'달마산(達摩山)'이라는 이름은 산 아래에 자리한 미황사측의 홍보 자료에 의하면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그 유명한 소림권법을 창안했다고도 전해지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였던 달마대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다.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알 수 없게 된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와 안주한 곳이
이곳 달마산이라는 얘기인데...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이다.





불썬봉을 떠나 남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하산 길에 나선다.
눈 앞에 보이는 방향으로 계속 나가면 땅끝 전망대가 있는 송호리 땅끝마을 방향이다.




오후 1시37분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하산길을 따라 내려오며 불썬봉 쪽을 뒤돌아본다.
정상부에 수많은 인파가 북적인다.
우리 일행처럼 송촌마을을 기점으로 산행을 하는 산행객은 거의 없는데 반해
대부분 1시간이면 이곳까지 오를 수 있는 산 아래 미황사에서 시작해 이곳에 오른 인파가 아니가 싶다.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완도대교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최신 공법으로 지어진 4차선 멋진 다리. 그 바로 앞에 오래 전부터 이용해 오던 2차선 다리.
그리고 그 중간에 지난 1960년대 초반 임진강 철교를 옮겨와 재조립했던 역사의 유물인 철교.
3개의 다리가 나란히 서 있는 곳이다.





산 아래 서쪽 숲에는 유서깊은 고찰인 미황사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멀리로는 서정저수지와 멀리 군곡저수지가 일직선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멀리 좌측으로는 해원저수지도 보인다.
저수지에 가득 들어찬 농업용수는 농민들뿐 아니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우리나라 육지의 사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한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불교가 한창 흥할 때는 불교의 요람이 되어 스님도 많았고 주위에 12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아담한 미황사 주위를 온통 동백숲이 둘러싸고 있다.





오후 1시57분
형형색색의 멋진 바위들을 구경하며 바위 능선을 따르던 하산 길은
이제 급경사를 이루는 암반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따라 이어진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척 조심스러워진다.





온통 사방으로 하늘을 뒤덮은 듯한 거대한 바위 기둥 사이를 지나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듯한 바위 기둥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지금 보이는 바위는 행여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오면 금방 아래로 떨어질듯
위태로워 보이기조차 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오후 2시6분
불썬봉에서 0.5km를 지나온 지점에서 큰 바위 기둥으로 이루어진 문을 지난다.
이제 더 이상 바다를 볼 수 없게됨을 알기에
한참 머물며 푸른 바다를 조망한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한껏 들이킨 후 온통 물기를 머금어 미끄러운 바위 틈을 조심스레 지난다.





급경사 내리막 하산길은 기묘한 바위를 타고 이어지는 위험한 하산길이다.
온갖 모양의 바위들이 연이어지는 곳.
모든 바위를 사진으로 담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다만 망막으로 흡수해 가슴에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오후 2시26분
위험한 급경사 내리막 길은 해발고도 310m 지점에 이르러 끝이나며
이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낙엽이 바닥을 뒤덮은 산죽 군락 길이 나타난다.
근 50여분 동안 이어진 힘든 길에 고생한 '네 발(손과 발)'에 비로소 휴식을 준다.





오후 2시35분
해발 300m 지점에 자리한 널찍한 헬기장에서 동쪽으로 펼쳐지는 달마산 바위 능선을
한동안 바라본다.
자연이 빚어낸 오묘함이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싶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단풍 짙은 숲길.
오랜 시간 단단한 바위를 조심스레 디디며 이어온 산행으로 피곤해진 발바닥이
푹신한 카페트를 밟고 지나는듯한 편안한 길이다.





오후 2시49분
산길이 끝나며 앞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온통 동백숲으로 둘러 싸인
1,400 여년된 고찰 미황사 경내에 도착했음을 알게된다.
숲의 전체 규모는 천연기념물인 고창 선운사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윤기 나는 잎을 지닌 동백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크기는 비슷하다.





이상 고온 현상 때문이겠지만 철 모르는 동백 꽃이 한 송이 망울을 터뜨린채 달려 있다.

붉은 선혈을 연상시키는 동백 꽃.
봄철에 피는 매화나 벚꽃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피었다가
짧은 시간에 떨어지는데 비해 동백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불전에 바치거나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오후 2시56분
보물 제 947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전면,측면 각 3칸의 팔작 지붕 다포 계열 구조인 대웅전의 소박함이 마음에 든다.
단청이 벗겨진 시기가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려한 원색의 단청보다는 목재 자체의 소박한 나무색이 훨씬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배흘림 기둥이 올라 앉은 주춧돌에 거북,게 등으로 추정되는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음 또한 특이하다.





달마산의 날카로운 바위들을 마치 사천왕처럼 거느린 미황사를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미황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金人)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일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오후 3시4분
지나치게 큰 규모에 조금은 못마땅한 일주문을 지나며 미황사 경내를 벗어난다.
주위의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일주문 [一柱門] 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 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서정1저수지 변으로 향하는 길
길섶에 옹기종기 모여 피어있는 자그맣고 예쁜 야생화를 만난다.
11월 하순에 예쁜 야생화라니?
생김새는 8월에 꽃이 피는 쥐손이풀과 흡사한데 정확한 이름을 모름은 나의 지식 부족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10여종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쥐손이풀과의 꽃임은 분명해 보인다.





오후 3시21분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가을 바람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저수지변에서 달마산 암릉을 바라본다.

그 느낌은 고려시대 고승인 "무외(無外)"의 표현으로 대신한다.

"북으로 두륜산 접해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와 닿아있는 산,
송호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여 모두 백여척이나 되는 것들이 치마를 두른 듯 서있다.
그 위에 마주한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은 깃발과도 같다.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고 또는 용과 범이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얗게 쌓인 눈이 공중에 한 발짝 다가서 서있는 듯하다."





오후 3시35분
저수지 주변 따뜻한 햇살을 받는 풀밭의 온갖 꽃들에는 수많은 벌들이 꿀 모으기에 분주하다.
봄,여름이면 뒷다리에 두툼하게 꽃가루를 뭉친채 날아다니는 벌을 쉬이 볼 수 있는데 반해
꽃이 귀한 요즈음이어서인지 뒷다리에 꽃가루가 뭉쳐진 벌을 보기가 힘들다.

짧은 늦가을 해가 기울기 전에 많은 꿀을 모아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나 또한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