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가을 철 보름달이 산봉우리에 맞닿는 추월산 산행기



 

2011년 10월13일 일요일 오전 10시7분
지난 1972년 전라남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바 있는
전라남도 5대 명산 중의 하나인 추월산 산행을 위해 탑승 차량에서 하차 한 29분 국도변
서쪽 멀리 가을철이면 보름달이 걸린듯 보인다는 보리암 정상부의 암반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침부터 옅게 낀 안개는 쉽게 걷힐 것 같지 않다.





오전 10시10분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마을 입구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1530여년경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곳은
마을의 생김새가 달속의 월계수와 같다하여 월계(月桂)라 했다 한다.
조선시대 말에는 복룡(伏龍), 월계(月桂), 월암(月岩), 신령(新令), 월성(月星),
진수동(進水洞) 등의 마을이 있었으나 담양호 건설로 일부 마을이 수몰되고
지금은 월계마을과 복룡마을을 합쳐 월계리로 총칭 운영되고 있다.





오전 10시16분
마을 길이 끝나고 대숲 사이로 이어지는 운치있는 길을 들어서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대나무의 본고장인 담양에 왔음을 실감한다.





오전 10시31분
대나무의 본고장인 담양군에 왔음을 입증하듯
두텁게 깔린 낙엽을 밝으며 옷깃을 스치는
산죽 군락 사이를 걷는 기분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오전 11시23분
해발고도 100m 를 조금 넘는 지점에서 시작한 산행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 오름길이 1시간 이상 이어진다.
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활엽수 숲을 지나는 산행길에서 이처럼 특이한 형상의
큰 바위를 하나 만나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린다.
해발고도가 600m에 거의 육박하는 지점이다.
등산 자켓과 긴팔 티를 벗어부치고 반팔 차림으로 하는 산행길이지만
이미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멋진 바위를 지나면서 잠시 이와같은 통나무로 만든
계단길을 오른다.
1시간 이상의 오르막 산행으로 조금 피로해진 다리는
이런 계단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그러나 힘들지만 참고 걸어야야만 한다.





오전 11시44분
산행 들머리인 월계리에서 1.1km를 지난 시점에서 급경사 오르막이 끝나고
완만한 경사의 능선 길에 오른 후 10여분이 경과한 시점에서 해발고도 700m를 넘어선다.
이제 이곳 추월산 정상부까지는 200여 m가 남았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추월산 정상부를 거쳐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보리암쪽 능선이 보인다.
한낮이 다되어 가건만 옅은 안개가 계속 시야를 방해 한다.





오전 11시54분
그 흔한 정상석이 없이 이정표만 외로이 서 있는
해발고도 731m인 추월산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 북쪽으로는 옅은 안개에 휩싸인 수리봉과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땀으로 젖은 온몸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말려주는 곳.
주위 분에게 부탁해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한장 찍는다.





남동 방향으로는 멀리 앞으로 가야 할 1.7km 떨어진 보리암 정상까지 이어지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선명하게 보이는 좌측 담양호 물빛이 안개로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낮 12시39분
정상 부근 공터에서 동행한 일행들과 함께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보리암 정상을 향해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을 이어간다.
해발고도 700m 대의 능선길은 온갖 활엽수와 활짝 핀 억새군락이 운치를 더해주는 멋진 길이다.





낮 12시46분
오전 산행 들머리에서 보였던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보리암 정상부로 가까워질수록
산행로는 점점 바위가 많아진다.
비좁은 바위 능선을 지나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낮 12시49분
추월산 정상에서 0.8km 를 지난 작은 봉우리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추월산 정상부가 마지막으로 보이는 곳이다.
쌍둥이 봉우리의 좌측 봉우리가 해발 731m 추월산 정상부이다.





낮 12시52분
해발670m 지점인 쌍태리 갈림길에는 널찍한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고,
공터 옆에는 이처럼 송수신탑이 세워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산중임에도 휴대폰이 잘 터진다.
등산객들의 안전에는 많은 도움이될듯 싶다.





오후 1시6분
보리암 정상 바로 아래를 지나는 중이다.
큰 암반을 옆으로 끼고 우회하는 위험구간으로 쇠파이프로 안전 난간이 마련되어 있는 곳.
휴일을 맞은 나들이 인파로 무척 붐빈다.
지난 해 같은 날에 비해 엄청난 인파에 놀란다.
누군가 얼마 전 이곳 보리암이 TV에 방송되었다고 한다.
TV방송의 큰 폐해 중 하나를 여기서 또 보게된다.





오후 1시10분
좁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보리암 정상도 많은 인파로 붐빈다.
해발691m 인 이 봉우리의 이름은 상봉, 또는 추월봉이라 불리었으나
비로 아래 바위 절벽 위의 보리암 때문에 보리암 정상이라 불리운다.

좁디 좁은 보리암 정상부에도 일부 몰지각한 산행객들이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온통 반찬 냄새를 풍기며 게걸스럽게 식사 중이다.
몰지각한 그들로 인해 더욱 혼잡을 가중시킨다.
마치 평생 굶고 살아온 걸인들처럼 볼썽사납다.





오후 1시11분
보리암 정상에서 하산지점인 관광단지까지 이어지는 하산로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대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진 위험구간이다보니 많은 부분이
목재 데크로 만들어진 급경사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옅은 안개로 인해 맑은 날 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없음이 유감이다.





참고로 이 사진은 꼭 1년 전인 지난해 11월13일 오후 비슷한 지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산자락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단풍과 함께 쪽빛 담양호 물빛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오후 1시21분
급경사의 좁은 계단을 통해 하산하는 길은 무척 붐비면서도 위험한 구간이다.
더구나 오후 시간임에도 산을 오르는 인파가 줄을 잇는다.
10여분 이상 하산길이 이어졌음에도 아직은 해발 650m 지점에 위치한 보리암이 눈 아래 멀리 보인다.





오후 1시28분
해발고도 650m 바위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보리암 앞 뜰에서
동쪽 아래 담양호를 내려다 본다.
이곳 역시 옅은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여 희뿌연 모습만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사진은 꼭 1년 전인 지난해 11월13일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산행객들은 저마다 이 절경에 감탄하여
탄성을 연발하곤 했었다.





보리암(菩提庵)은 한자로 보살 보(菩), 보리수나무 리(提/들제)인데, 본음은 보제(菩提)이다.

불교의 용어로서, 도(道), 지(智), 각(覺)의 뜻이며,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불타정각(正覺)의 지혜와 불과(佛果), 또는 정각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 삼보리(三菩提)의 불도를 닦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남 남해의 금산에 있는 '보리암'이 일반에게는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오후 1시42분
보리암을 떠나 하산하는 길. 가파른 계단에서 보리암쪽을 뒤돌아본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의 보리암이 위태로워 보인다.
고려 신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저곳 보리암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 홍양 이씨가 왜적을 피해
저곳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깍은 매 세 마리를 날려보냈는데
그중 한 마리는 장성의 백양사 터, 한 마리는 승주의 송광사 터,
나머지 한 마리는 이곳 추월산 보리암터에 내려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추월산은 가까이 있는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농민운동 때에도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담양호를 내려다 보며 이어지는 급경사 하산길은 계속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담양호의 장관을 안개가 계속 방해한다.
아쉬움이 마음 속으로 진하게 배어든다.





오후 1시54분
주차장에서 보리암으로 향하는 제1등산로 중간 지점에 만들어 놓은
이른바 '추월산전망대'의 모습이다.
보리암까지 올라가기에 힘겨운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해둔 전망대이다.
좌측은 가마골생태공원과 용추사 방향이고 우측은 담양온천과 용면 방향이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로 인해 희미하게만 보인다.





참고로 이사진은 지난해 11월13일 오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호수 건너에는 산성산과 강천산능선이 이어지며
우측으로는 금성산성도 희미하게 보인다.





오후 2시4분
추월산보리암중창공덕비(秋月山菩提庵重創功德碑)가 있는 곳
이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의 동굴은 이곳 추월산의 많은 동굴 중 가장 규모가 큰듯하다.

이 공덕비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유난히 비구니의 이름이 많다.
한켠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고려 신종 때 지리산 화엄사 산내 암자인 상무주암에서
나무로 매를 만들어 날려 앉은 곳에 암자를 지었으니 그 이름이 보리암이더라"





오후 2시22분
산길이 끝나고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담양호변 추월산 국민관광지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여기에도 임진왜란 당시의 순절을 기리는 순절비가 서 있다.
청계 김응회 공의 부인 창녕 성씨를 기리는 순절비다.
그만큼 이곳이 임진왜란 당시 격렬하게 저항을 했던 곳이라는 의미일게다.
그 당시 의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 본다.







오후 2시31분
주차장과 맞닿은 29분 국도변의 담양호 변에서 멀리 하류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지난 1976년 9월에 완공한 담양댐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제공하기 위해 건설된 댐이므로 발전시설은 없다.
영산강 본류 최북단의 댐으로 저수량은 6,670만 톤이다.

담양호의 물이 항상 가득한 것은 지역의 지명과도 연유가 있는데,
담양이 한자로 못담(潭)자를 쓰듯이 옛부터 이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고려 성종때의 지명도 담주(潭州)였다.





오후 2시33분
짧은 가을 해는 벌써 보리암 정상, 일명 상봉 또는 추월봉이라 일컫는 바위 봉우리에 걸릴듯 다가 온다.
아마도 결실의 계절 가을 밤에 둥근 보름달이 저 바위봉우리에 걸린 모습을 보고
추월산(秋月山)이라는 이름을 시적 감각이 풍부한 이가 이름 지었음직하다.





오후 4시5분
산행이 끝난 후 일행들끼리 주차장에 둘러 앉아 간단한 간식과 막걸리 한 잔으로
산행의 피로와 갈증을 푼 후 귀가길에 나선 중 11km남짓 떨어진 담양읍 학동리의
메타세콰이어가로수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매년 한두차례씩 들리는 곳이지만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비교적 늦게 단풍이 드는 이 나무는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이곳 담양의 경우 1972년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시
내무부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때문에 3~4년생 묘목을 가져다 심게되었고,
좋은 토양과 알맞은 기후 아래 매년 1m씩 자라나서
불과 30 여년 후 오늘과 같은 즐거움을 우리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1940년대까지는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 1945년 중국 사천성 양자강 유역 마도계(磨刀溪)에서였다.





참고로 이사진은 1년 전인 지난해 11월13일 오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곳 가로수길의 총 길이는 약 8.5km로 옛 24번 국도 바로 옆으로 새롭게 국도가 뚫리면서
이 길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가 되었다.
산림청과 생명의숲가꾸기운동본부 등에서 주관한 ‘2002 아름다운 거리숲’ 대상을 수상했고,
2006년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길이다.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학동리 578-4 가 행정구역상 지번인
메타세콰이어가로수길을 떠나며 행복했던 휴일 하루를 마감한다.





위 지도에서 청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