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낮 12시 42분.
대전을 출발해서 4시간여만에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후 주위의 토속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아름다운 주왕산자락 아래에 마치 알을 품은 제비처럼 고요히 자리잡은 대전사 경내에 들어섰다.
대전사는 672년(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설도 있고,
919년(고려 태조 12년) 눌옹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대전사는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니 추측되는 창건연대에 비하여 남아있는 건물양식은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들이다.
또한 대전사라는 이름은 이곳 주왕산 전설 속의 주인공인 주왕(周王)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 대전사라 부르게되었다 한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주왕산은 1976년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왕산(周王山, 721m)은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며 그 주위에는 600m가 넘는 고봉이 12개나 솟아 있다.
암벽으로 둘러 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石屛山)이라고 불리웠던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산(周房山), 산경표에는 주방산(周方山)으로 표기되어 있었다는데 주왕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신라 말께라고 한다.
청송은 세종대왕의 아내였던 소헌왕후의 고향이라서 주왕산은 조선시대에 청송 심씨의 선산으로 지정되었었다.
청송(靑松)의 산림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빽빽한 원시림보다는 덜하지만 공기의 신선함은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지명 그대로 숲의 대부분을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어 그렇다는데, 청송은 곧 낙동정맥의 허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땅이었던 청송은 옛 이름이 청기현(靑己縣)이었다가 조선 세조에 들어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예부터 ‘푸를 청’자로 이어 내려오는 고장의 지명을 땅위에 펼쳐 보여주는 곳이 곧 주왕산이다.
주왕산에 폭포와 기암절벽이 발달한 것은 이 지역 암석의 대부분이 화산쇄설물인 회류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왕산을 이룬 회류응회암은 공중으로 날아와 쌓인 일반 응회암과는 달리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려 가다 멈춰 굳은 것이다.
용암 상태의 회류응회암이 냉각되면서 부피가 줄기 때문에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발달하게 되며,
이 주상절리를 따라 이뤄진 침식 작용으로 수직절벽과 계단 모양의 지형, 폭포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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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은 계곡 좌우로 펼쳐지는 기암과 폭포 등의 뛰어난 경치 외에도 울창한 침엽수림과 동식물의 자연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국립공원으로 꼽힌다.
깨끗이 보존된 계곡과 골골이 우거진 자연 상태의 원시림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1976년 국내에서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부터 지역민들이 쏟은 정성의 결과를 보는 것 같다
주왕산의 웅장하고 험준한 경치는 이 산의 격렬한 생성 역사의 산물이다.
주왕산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영덕 내연산과 함께 중생대 백악기, 지금으로부터 약 7천만 년 전에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반도가 이 시기엔 현재의 일본보다 화산활동이 더 활발했는데, 지금의 영남 동남부에서 전남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활모양의 지역이 그 중심 무대였다.
당시 화산 폭발의 흔적은 안산암이나 유문암 등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의 지질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주왕산의 이름을 중국의 주왕에서 찾는다.
주왕(周王)은 중국 진나라때 벼슬을 지낸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자
스스로를 후주천왕이라고 부르며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반역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쿠테타가 수포로 돌아가자 군사를 끌고 몸을 피해 이곳 청송땅까지 쫓겨 왔다는 것이다.
빨치산처럼 산으로 숨어든 주왕은 산문이 되는 주방천 협곡에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하여 재기를 꿈꿨지만
당나라의 청을 받은 신라의 토벌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주왕 일당이 모두 토벌된 후 한동안 계곡은 핏물이 시내가 되어 흘렀다 한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불렀다. 주왕산에는 수달래란 꽃이 피는데 마치 핏빛처럼 붉게 핀다.
이들이 죽어서 꽃으로 환생하였다고 믿는단다.
주왕산을 여느 산과 구별 짓는 꽃이 수달래다.
수달래는 '수단화(壽斷花)'라고도 하는 진달래과의 낙엽성 관목이다.
꽃 모양이 진달래와 비슷하나 진달래보다 더 진하고 꽃잎에 검붉은 반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달래는 주왕산 일대에만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 주왕산 인근에서야 수달래로 통하지만, 이 꽃의 정식 이름은 '산철쭉'이다.
주왕산 국립공원 초입에 자리잡은 대전사 바로 옆에 개울 건너에 자리 잡은 백련암의 모습이다.
대전사의 부속암자인 이 백련암 또한 주왕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
즉, 주왕에게는 대전도군이라는 아들 외에 백련공주라는 딸이 있었다. 그 딸을 기리기 위해 백련암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일곱 살부터 행자생활을 하셔서 열두 살에 정식 비구니가 되고 일흔 살에 임종하시기까지 대략 육십 년 넘는 시간을 불도를 닦으며 보내시고.
주변에 어려운 이가 보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가진 것 다 내어주는 버릇 때문에 안동, 청송, 영주 일대에서 ‘걸뱅이 왕초 스님’으로 통했던 백련암 주지로 계셨던 혜명 스님의 얘기는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주왕산 일원의 지질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백악기 유천층군의 중성 내지 산성 화산암류로 되어 있다 한다.
연꽃 모양을 한 연화봉과 만화봉,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하식동),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그리고 제1, 제2, 제3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는게 주왕산 국립공원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 이름을 기억한들 대수겠는가?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눈을 즐겁게 햇으면 그걸로 족하리라.
오후 3시가 훨씬 넘은 시각.
명절을 앞둔 재래시장보다 더 복잡한 사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닌지 3시간 가까이 지난 시간.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낙엽들이 발밑에서 작은 소리를 낸다.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바람이 몸에 스민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오후 3시 44분.
넓은 주차장에도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식물의 종류가 달라도 크리산테민 1종뿐인 안토시안이 생성되어 붉은 빛으로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요염한 붉은색깔.
주로 제아크산틴과 비올라크산틴으로 대표되는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가리고 있던
엽록소의 분해로 인해 노란 빛을 띄는 은은한 아름다움의 노란 잎들...
발길을 돌린다.
오후 5시 45분.
내가 타고 갔던 차량의 밧데리 방전으로 인해 1시간 이상을 허비한 후 달려간 주산지.
극심한 가뭄으로 수많은 왕버들의 뿌리가 드러난 것 외에도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버렸다는 아쉬움까지 달래야 한다.
조선조 숙종 46년(1720년) 8월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 경종원년에 준공하였다는
길이 100m, 너비 50m, 수심 7.8m의 너무나 작고 아담한 이 저수지를 찾는 인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위력을 실감한다.
오후5시 52분.
어느새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 졌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김기덕은 이곳 주산지 연못에 '부유하는 암자'를 만들어 놓고
암자와 주변 자연의 4계절을 담아 내었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노 스님과 함께 하는 어린 아이가 소년,청년,장년이 되는 과정을 상징 처리하였었다.
그는 순환되고 반복되는 여러 형태의 윤회를 보여주려 노력했었다.
삼각대를 지참하지 않아 난간에 걸친채 손으로 잡고 18초의 노출로 사진을 찍으려니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주말에는 꼭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내 의지만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귀가 길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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