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일 낮 1시 28분.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황금 주말의 교통 정체를 피해가며 강원도 인제군 북면
내설악광장 휴게소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마치고 나니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것까지는 2주 전 한계령을 넘어 주전골로 향했던 여정과 같다.
그러나 오늘은 좌측 도로인 46번 국도를 타고 진부령을 넘어 강원도 고성으로 향한다.
낮 1시 34분
내설악광장을 떠난 채 10분도 못되어 진부령 정상에 다다랐다.
해발 529m의 진부령은 일반인들의 느낌과는 다르게 태백산맥을 넘는 수많은 고개 중 그 높이가 가장 낮다.
백복령,마등령 등 1,200m가 넘는 험준한 고갯길은 제쳐 두더라도 미시령(彌矢嶺:826 m), 한계령(寒溪嶺:1,004 m)에 비해서도 낮은 고개이다. 다만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편균 기온이 낮아 이미 낙엽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더 많은 서쪽 능선에 비해 고성쪽으로
내려가는 동쪽 능선은 이제 단풍이 절정이다.
오후 2시 7분.
북위 38도선에서도 수십 km를 더 북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건봉사 [乾鳳寺]에 도착했다.
사찰 앞을 흐르는 개울을 가로지르는 능파교를 건너 버티고 선 봉서루의 현판 글씨는 ‘금강산 건봉사(金剛山乾鳳寺)’이다.
이곳의 위치가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금강산 감로봉의 동남쪽 자락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상의 금강산과 설악산의 경계는 미시령 왼쪽 신선봉 자락에 있는 사찰인 화암사가 금강산 화암사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 미시령을 기준으로 삼는다.
즉 미시령의 북쪽은 금강산 영역이요 남쪽은 설악산 영역이 된다.
그래서 건봉사는 금강산 영역에 든다.
건봉사 [乾鳳寺]는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冷川里)이다.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하였고,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회의 시초라 한다.
그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사찰을 중수(重修)하여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하였는데 1358년(공민왕 7)에는 나옹(懶翁)이 사찰을 중수하고 다시 건봉사라고 개칭하였다. 1464년(세조 10)에는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願堂)으로 삼았고 그 뒤,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사리와 치아를 봉안하였다.
한국 4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큰 절이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북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31본산의 하나로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 등을 관할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전소되면서 조계종에서는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포함된 위치 때문에 한국 전쟁 이후 오랫동안 민간인은 석가탄신일 하루만 특별히 드나들 수 있었다. 1989년 이후 출입이 허용되었다.
사진에서 보듯이 과거 큰 건물들이 자리했던 건물 터가 많이 눈에 띈다.
만해 한용운은 일제 때인 1906년에 이곳에 봉명학교를 세우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계몽교육의 꿈을 펼치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최근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오후 3시 19분.
건봉사를 떠나 해당화와 고운 모래로 유명한 화진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김일성 별장(유료관람)과 수복 후 건립된 이승만 대통령 별장(유료관람)이 있다. 김일성별장으로 불리는 곳은 일제시대 외국인들이 이용한 휴양소인데 이곳을 김일성이 그의 처 김정숙과다녀간 이후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한다.
사진에 보이는 작은 섬은 금구도(金龜島.일명 거북섬)이다.
최근 고성문화포럼에서 찾아 낸 모 연대기에서
서기 394년 광개토왕 3년에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의 수릉 축성을 시작했으며 409년(광개토왕 18년)에 광개토왕이 화진포호 거북섬(왕의 수릉) 공사현장을 둘러봤고 414년(장수왕 2년) 9월29일 광개토왕 시신을 화진포 앞 거북섬에 안장했다고 돼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나 아직 사실 여부가 입증되지는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오후 5시 14분
하룻밤 지친 몸을 누일 숙소가 있는 설악동에 도착했다. 짧은 가을 해는 벌써 기울어 간다.
예년과 달리 금년은 단풍이 열흘 정도 늦어졌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이번에는 맞는 것 같다.
2주 전 절정을 이루었던 내설악의 단풍과 달리 이곳 외설악은 지금이 단풍의 절정인 것 같다.
오후 7시 3분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카메라 가방 외에 삼각대까지 울러 메고 저녁 산책길에 나선지 20여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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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설악동 입구에서 설악산국립공원 매표소까지의 3km남짓한 도로에는 인적이 끊어졌다.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외에는 너무나 적막하다.
오후가 되면서 불기 시작한 세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칠 때마다 으시시한 괴성까지 겹쳐 들린다. 차라리 이런 호젓하면서 긴장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혼자 하는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7시 38분
설악산국립공원 매표소 앞도 적막감이 돈다.
간혹 추위와 어둠에 지쳐 잔뜩 움츠린 등산객들이 출구로 빠져 나올 뿐이다.
대부분 새벽 5,6시 경 내설악 오색약수터 부근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넘어 산행을 한 사람들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이른 아침부터 이곳은 사람의 홍수로 발 디딜 틈이 없으리라.
밤 8시 43분.
2시간 여의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가가는 길. 이제 숙소가 있는 설악동 입구까지 10여분만 더 걸으면 된다.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내일 아침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려면 날씨가 좋아야할텐데 하는 걱정으로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어두운 밤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11월 2일 아침 5시 59분.
4시반에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간밤에 피로는 다 풀렸다. 콜택시를 불러 타고 도착한 대포항 [大浦港]. 6시 53분인 일출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이다.
관광객을 상대로하는 해변가 점포에는 벌써 불리 밝혀져 있고, 작은 어선들은 출항 준비에 바쁘다.
오전 7시 3분.
일출 시각에서 10분이 지났건만 수평선에 드리운 짙은 구름 때문에 아직 태양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작년 12월31일 밤 경남 거제군 외도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떠났던 수많은 일출 여행 중 붉은 태양이 바다위로 솟아 오르는 모습을 본 것은 지난 8월 정동진에서 얻은 행운 한 번 뿐이었다.
다음에 또 찾아 오면 볼 수 있으리라.
오전 7시 8분.
구름 속을 비집고 붉은 태양이 떠 오른다. 오늘 하루 여정이 순탄하기를 빌어 본다.
이곳 대포항 [大浦港]은 강원도 속초시 대포동(大浦洞)에 있는 항구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어항(漁港)으로 알려져 왔으나, 1937년 청초호(靑草湖) 주변에 속초항이 새로 생기고, 1942년 10월 속초읍이 생긴 뒤에는 몇 척의 어선만 드나드는 한적한 포구로 바뀌었다.
그러다 설악산과 동해안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전문 어항으로서보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관광어항의 성격이 짙어 항구에 드나드는 어선들도 대형 어선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소형 어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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