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토요일 오전 9시 58분.
백양사 주차장에서 벗어나 백양사 단풍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범종루까지의 진입로로 들어섰다.
세상이 온통 붉게 타는듯하다. 이 곳 백양사의 단풍나무는 잎이 애기 손바닥처럼 작아서 애기단풍으로 불린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붉은 단풍으로 마음 속은 물론 얼굴까지 붉게 상기된 채 산사를 떠나는 부지런한 이들도 있다.
채 몇분 걷지 않았는데도 붉은 기운으로 가슴이 뛰다보니 마치 숨이 차는듯하다.
그런 내 마음을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을 가슴에 안은 자그마한 연못이 차분하게 가라 앉혀준다.
지난 해 이곳을 찾았다가 차량의 홍수에 밀려 발길을 돌렸던 그 아픔을 씻어 준다.
붉은 단풍 터널을 걷기 시작한지 10여분. 저 앞에 백양사 성보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이며, 고불총림인 백양사 경내에들어서게 된다.
대가람을 가리키는 ‘총림’은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다섯 총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백양사다.
◈5대총림(叢林)
① 조계총림 송광사,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로 불리는 유서 깊은 절이다.
② 해인총림 해인사, 해인사는 삼보사찰 중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③ 영축총림 통도사, 통도사는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찰이다.
④ 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와 대흥사, 선운사는 한 문중으로서 한국불교 법통을 이어왔다.
⑤ 덕숭총림 수덕사, 1984년에 종합수도장을 겸비한 덕숭총림으로 승격되었다.
처음 주차장에 발을 내 디딘 순간부터 눈에 들어 오던 해발 551m인 백학봉이 정면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보름달이 뜨면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편 듯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람이 거의 없는 오전 시간이어서인지 연못의 물이 거울처럼 잔잔하다.
그 덕분에 붉고 노란 나뭇잎이 연못에 그대로 반영으로 나타난다.
단풍은 기후조건이 중요한데 이 요건을 고루 갖춘 곳이 우리나라와 같은 곳, 바로 동북아시아와 미국 동북부지역이라 한다.
그중에서도 단풍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은 남쪽인데 내장산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거나 도입된 단풍나무 약 40종 중에서 13종이나 자라고 있다.
이곳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도 내장산국립공원에 포함된 지역이다.
바로 이곳이 백양사의 가을 풍경을 대표하는 쌍계루 앞 연못이다.
사진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백양사에 들러 이 연못에 반영되는
쌍계루와 뒷편에 버티고 선 백학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너무들 그러다보니 이제는 식상한 느낌이 든다.
이른 새벽부터 커다란 삼각대를 펼치고 진을 치고 있는 "진사" 무리들.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통로를 막고 장시간 진을 친다.
원래 "진사"란 '사진사'라는 말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진사"를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준말로 치부한다.
이런 몰상식한 인간들이 사라질 날을 학수고대한다.
가을이면 우리나라엔 지역적으로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 많은데....
단풍과 단풍나무를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식물은 가을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가지 끝으로 보내는 수분 공급을 차단한다.
화학변화에 의해 안토시안(빨강:단풍나무)이 생성되거나,
엽록소가 사라지며 카로티노이드(노랑: 참나무나 기타 나무)가 우리 눈에 보이게 된다.
백양사(白羊寺)는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고려말 1337년(우왕 3)에 지었다는 '백암산정토사교루기(白巖山淨土寺橋樓記)'의 일부 내용을 보면, 오직 이 산은 장성군 북쪽 30리에 있는데 그 이름을 백암(白巖)이라 하였으며 암석이 모두 흰 색깔이라서 그렇게 이름 하였다한다.
석벽은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중첩하여 맑고 기이하며 웅장한 모습이 실로 이 지역의 명승지가 될 만하므로
신라 때의 어떤 이승(異僧)이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살면서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연못 위의 작은 다리 위에서도 서로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야단법석이다.
그러고 보니 '야단법석'이라는 말은 불교와 연관이 있다.
"야단법석 [野壇法席]"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이라는 뜻이다.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다.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위의 '영취산'은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우리나라 여수 부근의 영취산이 아닌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王舍城: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 주위에 있는 영취산 [靈鷲山] 이다.
오전 11시 46분.
2시간여의 짧은 백양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아쉬움을 달래며 백양사를 떠나 전남 담양으로 향한다.
1999년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몇 안되는 슬로시티의 하나인
담양군 창평면, 그리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과 죽녹원을 향한 바쁜 여정을 남긴 오늘이다.
백양사를 떠나는 길 양쪽 도로변도 온통 애기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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