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3일 일요일 낮 11시 38분.
경남 통영시 강구안항을 내려다 보는 동피랑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중앙시장 뒤 언덕에 53가구가 살고 있는 달동네가 1년여라는 짧은 기간에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하다.
연세 드신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이 작은 구멍가게에도 지난주의 갑작스런 혹한으로 인해
끊어진 관광객의 기지개가 늦어서인지 아직은 한가하다.
동피랑이란 동쪽에 있는 언덕, 고개 라는 뜻이다.
과거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설치한 군영인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이다.
당초 통영시에서는 이 달동네를 낙후된 마을이라 철거후 공원을 만들 계획이었다 한다.
그러나 통영 시민단체(푸른통영21 추진위원회)에서 "달동네도 잘 가꾸면 아름다워진다"는 기치를 내 걸고
지난 해 10월 정부 지원을 받아 미술 공모전을 열게 되고, 그 결과 전국 각지의 팀들이
통영의 달동네 마을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는 이곳을 한국의 몽마르뜨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금년 11월 초에 2차 공모전을 통해 덧칠을 하거나 새로 그려진 벽화가 많은 자그마한 동네인 이곳.
찾는 이들 모두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수많은 방문객을 반기는 주민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주민도 있다는 것을..
그들의 일상적 사생활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제발 없기를.
동피랑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로 내려와 갯내음을 맡으며 한참 여유 있는 산책을 즐겼다.
작은 어선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가 너무 깨끗하다는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이곳의 체감경기도 가라 앉은듯하다.
조기를 잡기 위한 그물 정리를 마치고 한참 광어 잡이를 위한 그물 손질에 여념 없는 다전한 부부와 한참 담소를 나누었다.
통영군 욕지도가 고향인 남편을 만나 30년을 훨씬 넘게 동반자로 살아 온 거창군 가조면 출신의 부인.
두 분의 따뜻한 마음이 무척 닮았다.
내가 40여년 전 처음 통영을 방문했던 시절과, 23~4년 전 업무차 1주일에 두세번 씩 이곳을 방문하던 시절의 소박했던
통영의 모습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두 분과 같이 나눌 수 있었다.
마침 배달된 2인분 점심 식사를 저와 같이 하자고 권유하는 두 분에게 다음 번 방문시에는 같이 식사를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가지고 있던 mp-300으로 이 사진을 인화해 드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금년 6월,8월 두 차례 방문시 많이 보이던 갈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작은 어선 주위로 마치 벌떼 처럼 달려드는 갈매기 떼의 모습을 바라보니
오싹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제는 갈매기들마저 제 힘으로 사냥을 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탐내는 인간의 못된 짓을 배워가는듯 하여
일말의 공포심 마저 뇌리를 스친다.
언제 출항했던 어선인지는 모르겠으나, 방금 도착하여 갑판에 부려 놓은 어획물이 너무 빈약한듯하다.
실망한듯 허탈한 표정의 어부의 모습에서 그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마치 내 잘못인듯한 민망한 마음마저 든다.
오후 1시 24분.
강구안항을 떠나며 멀리 언덕위의 동피랑 마을을 쳐다 보았다.
날씨가 따뜻한 오후가 되면서 관광객들과 사진 애호가들이 점차 붐비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동피랑 주민들은 물론 저 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를 내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한려수도 관광케이블카가 있는 미륵도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오후 2시 3분.
미륵산으로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주차장에서 매표소로 향하다보니 케이블카 승강장 앞 공연장에서는
통기타 연주와 함께 작은 공연이 열리고 있다.
지난 4월18일 개통한 이후 탑승객 50만을 돌파하는 자그마한 행사의 일환이다.
이곳은 매표 후 탑승 순서를 기다리는 탑승객들을 위한 배려이다.
이곳 미륵산 관광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인 1975m의 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유일한 2선(bi-cable)자동순환식 곤돌라 방식이며 스위스 기술진에 의해 검사를 받았다 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중간 지주를 1개만 세우는 공법으로 건설한 것이다.
2002년 12월 착공하여 케이블카가 사찰 바로 위를 지난다는 등의 이유로 조계종단과 법정다툼으로 두차례 공사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5년3개월만인 2008년 4월18일 개통되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48대의 8인승 캐빈으로 탑승객을 해발380m 지점까지 실어 나른다.
해발 461m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통영은 아름답다.
바로 앞에 보이는 부분이 통영운하이다.
길이 1,420 m. 너비 55 m, 수심 3 m. 통영반도의 남단과 미륵도(彌勒島) 사이의 좁은 수도(水道)를 말한다.
여수 ·부산 간 남해 내항로(內航路)의 요지로서 선박의 내왕이 빈번하다.
본래 이 좁은 목은 가느다란 사취(砂嘴)로 반도와 섬이 연륙되어 바다가 막혀 있었다.
한산대첩 때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 좁은 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뚫어 도망쳤다 하여 이곳을 판데목[鑿梁]이라고 부르는데,
왜군들이 도망칠 때 아군의 공격으로 무수히 죽었으므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이 판데목에 운하가 만들어진 것은 1932년 12월로, 1927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5년 6개월이 걸렸다.
일본인들은 운하를 파고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관명을 따다가 ‘다이코호리[太閣堀]’라고 명명하였다.
이 운하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바다 목에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어 인마(人馬)가 건너다니고 다리 밑으로는 작은 배가 왕래하였다.
운하와 함께 같은 시기에 해저터널도 건설되었다.
통영이란 명칭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다.
선조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통영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충무시(忠武市)의 본 지명은 통영군이고,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 하였으며, 그 후 시.,군 통폐합 과정에서 다시 “통영시”라는 명칭으로 환원 된 것이다.
해발 380m의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다시 미륵산을 내려온다.
48대의 캐빈이 줄을 이어 탑승객을 실어나른다. 어느 몰상식한 사람이 8인승 캐빈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다.
"40번 캐빈에서 담배 피우시는 분은 즉시 담배를 끄세요!"하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이곳 미륵산(彌勒山)은 높이 461m. 산봉우리에 옛날 통제영(統制營)의 봉수대터가 있고,
산 아래 계곡에는 통영시 상수도의 제1수원지가 있다. 943년(고려 태조 26) 도솔선사(兜率禪師)가 창건한 도솔암, 1732년(조선 영조 8) 창건된 관음사(觀音寺), 42년(영조 18) 통제사 윤천빈(尹天賓)이 산 일대에 축성한 산성과 함께 창건한 용화사(龍華寺) 등이 있다.
귀가하는 차량에 오르기 전 잠시 주차장에 마련된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억새풀틈 사이로 보이는 케이블카의 움직임을 쳐다본다.
지난 11월 초 설악산에서 케이블카를 타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당시 설악동 입구에서 권금성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고자 했으나, 아침 8시에 매표하는 탑승권이 낮 12시 이후에 탑승 가능한 것이어서 포기했었다.
이곳처럼 8인승 캐빈 48대로 탑승객을 실어나르는 시설이었었다면 하는 아쉬움..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설악산의 그것이 자연 경관 보호에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암이 있는 남해 금산으로 떠난 여행 (2) | 2008.12.22 |
---|---|
마이산 [馬耳山] 산행기 (1) | 2008.12.16 |
백양사 애기단풍 (2) | 2008.11.18 |
설악산 나들이 1박2일(2) (0) | 2008.11.10 |
설악산 나들이 1박2일(1) (1) | 2008.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