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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이 있는 남해 금산으로 떠난 여행

2008년 12월 20일 토요일 오전 11시 17분.
아침 6시 반 집을 나설 때부터 조금씩 내리던 겨울비가 하동을 거쳐 남해대교를 지날 때는 구름만 잔뜩 낀 날씨로 변하더니
오전 11시 조금 지나 금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부터 다시 굵은 빗줄기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10여분을 비를 피하며 기다리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기에 주차장을 떠났다.
멀리 금산 정상부에는 짙은 구름과 함께 옅은 안개가 시야를 방해한다.





오전 11시 31분.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 제도가 없어지기 전까지 입장료를 받던 곳이지만
요즘은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며 시인마을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진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오전 11시 57분.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 2.2km. 정상의 높이 681m로 산이라기에는 낮은 이곳 금산이지만
보리암 바로 아래인 쌍홍문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것이 금산 등산로의 특징이다.
점점 굵어지는 빗즐기에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우의 차림이다.
나 또한 평소 여행시 휴대하는 5D를 준비해 온 비닐에 꼭 싸서 배낭에 잘 간수한 채,
예비로 가져온 값이 비교적 싼 400D카메라에 렌즈를 물리고 비닐로 덮은 채 산행을 하려니 무척 힘들다.
비야 빨리 그쳐 다오.





낮 12시 45분.
쌍홍문 옆에 자리한 사선대가 눈 앞에 들어 온다. 이제야 빗줄기가 완전히 멈춘다.
사선대란 옛날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이 싱그럽게 느껴질 정도로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평소 같으면 40~50분이면 도착할 곳을 1시간 반이 다 되어 도착했으니
이럴 때는 사진을 취미로 가진 나 자신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쌍홍문의 정면 모습은 마치 큰 동물의 얼굴 윗부분을 보는듯하다.
이제 왼쪽에 보이는 눈 속을 지나야 산행이 계속된다.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쌍홍문 굴 안은 녹색 이끼로 덮여 있다.
바로 아래 장군암 앞에서는 등산객들이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맑은 날이면 멀리 상주해수욕장과 푸른 바다가 보이겠지만,
오전 중 내린 겨울비가 만든 옅은 안개 때문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그 점을 아쉬워 한다.





쌍홍문 굴 속을 빠져 나오니 눈 앞에 보리암이 나타난다.
금산의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과 서해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의 하나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관음도량은 모두 바닷가에 세운다.
인도 남쪽 해안의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나 중국 주산열도의 보타도(補陀島)
또 바다가 없는 티베트에서는 키추(Kichu) 강 유역에 있는 라사(Lhasa)를 관음성지로 삼았다.
이처럼 보리암 역시 우리나라 남쪽 바다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염원을 하나로 모은 곳이다.
금산에는 불교와 관련한 전설이 산자락은 물론 섬 구석구석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리암 반대쪽을 바라 보니 화엄봉, 그리고 왼 쪽에 일월봉이 보인다.
일월봉은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화엄봉은 바위 모양이 "(華嚴)"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





보리암에서도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인 해수관음보살상 앞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그러나 궂은 날씨로 인해 아랫쪽 상주 해수욕장과 푸른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없음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후 1시 18분. 하늘을 온통 뒤 덮은 짙은 구름이 잠시 흩어지며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관음보살상의 영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곳 보리암에 도착한 직후부터 수차례 카메라의 셧터를 눌렀으나
찌푸린 날씨 때문에 칙칙한 모습만 뷰 파인더로 보이던 차에 잠깐 날씨가 밝아진 순간 이 장면을 담았다.
궂은 날씨로 등산객이 적어서인지? 아니면 모두들 디카를 휴대하기 때문에 영업이 잘 안되는 것인지?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켰음직한 주름살 깊게 패인 직업 사진사의 옆 모습마저 기운을 잃은듯하다.






남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상주해수욕장 부근 하늘은 이곳과 달리 여전히 잔뜩 찌푸리고 있다.
푸른 바다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할 시간이다.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상사바위가 찌푸린 날씨 때문인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상사바위는 이곳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바위이면서도 가장 로맨틱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 바위는 조선 19대 숙종대왕 시대에 전라남도 돌산에 사는 청년이 남해에 머슴을 살러 왔는데 주인은 자태가 빼어난 과수댁이었다.
이 머슴은 주인 마님의 자태에 반하여 애간장을 태우다 상사병에 걸려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직전에 이를 보다 못한 과수댁이 사람이 없는 금산으로 돌쇠를 불러 내었다.
이 바위에서 상사를 풀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낭만적인 야화가 깃들여 있어,
이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상사풀이 할때 썼던 샘이 벼랑에 남아있고 이 바위를 구정암 이라 부른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오후 1시 30분.
30여분간 머물렀던 보리암을 떠난다.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에 홀로 선 보리암이 외로워 보인다.
보리암 [菩提庵]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 확실치 않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화가 있는가 하면,
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산의 승경에 끌려 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방광(防光)하는 듯 빛났다고 한다. 초옥을 짓고 수행을 하던 원효는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에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으며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쓴 『보리암중수기』에 따르면 보조국사가 세운 뒤 정유재란으로 불탄 것을
선조 40년(1607)에 승려 신찬이 고쳐 지었고, 효종 1년(1650)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지었다고 한다.
보리암이라고도 하는 이 암자는 1983년 주지 성묵스님이 현 법당을 복원하였다.





오후 2시 3분.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한지 10여분. 섬에 있는 산들이 으례 그러하듯 이곳 금산도 이와 유사한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더구나 비가 내린 후 하산 길은 무척 조심스럽다. 비에 젖은 바위를 잘못 밟아 미끄러지는 이들이 몇몇 눈에 띈다.





날씨가 좋았다면 금산 38경 모두를 천천히 둘러 보며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 싶었으나
궂은 날씨로 인해 그러지 못했음이 아쉽다.
앙상한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저 낙엽이 떨어진 후 내년 봄 새 잎이 돋으면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오후 2시 45분.
상주해수욕장과 인접한 주차장으로 되돌아 왔다.
이곳은 아직 잔뜩 찌푸린 날씨이건만 금산 정상 부근은 옅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엿보인다.
KT기지국 주위를 맴도는 새가 무슨 새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오전 산행 중 까마귀 소리가 많이 들렸던 것으로 보아 까마귀 떼들인 것 같기도 하다.





오후 3시 33분.
오전에는 하동을 거쳐 남해 대교를 건넜으나 귀가길에는 창선 삼천포 대교를 건너 삼천포 항으로 향한다.
총 연장 3.4㎞, 너비 14.5m이며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된 이 다리의 공식 명칭은 "창선삼천포대교"이다.
이유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처음 가설된 주 목적이 남해군의 창선면(창선도)의 주민 편의를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오후 4시 1분.
삼천포 어시장 앞 바닷가의 날씨 역시 짙은 구름으로 흐린 날씨이다.
맞은편으로 짙은 안개 너머에 보이는 섬은 조금 전 지나온 남해군 창선면이다.
그래서인지 눈 앞에는 남해 지역의 대표적인 원시정치망인 죽방렴이 보인다.
부채꼴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에서 어획되는 멸치는 맛과 질이 우수하기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공식 명칭이 "창선삼천포대교"인 이 다리는
삼천포대교(길이 436m), 초양대교(길이 200m), 늑도교(길이 340m), 창선대교(길이 150m), 단항교(길이 340m) 등 4
개의 섬을 잇는 5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후 4시 29분.
이제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이다.
눈빛이 매서운 갈매기와 작별을 한다. 수많은 갈매기 종류 중 이 갈매기는
우리나라 텃새인 괭이갈매기 [black-tailed gull]인듯하다. 머리와 가슴·배는 흰색이고 날개와 등은 잿빛이다.
부리는 다른 종에 비해 긴 편이고 끝 부분에 빨간색과 검은색 띠가 있다.





밤 7시 54분.
오늘 하루를 같이 보낸 대전보람산악회 회원들과 헤어져
빛의 축제인 '루체비스타'로 휘황찬란한 으능정이 맞은편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루체비스타(Luce Vista) 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서 '루체(Luce·빛)'와 '비스타(Vista·풍경)’의 합성어로 '빛의 풍경'이란 뜻이다.
이곳의 중심부는 천년을 더 살아 온 은행나무가 의연히 버티고 서있어 속칭 으능정이라 부르던 자연부락인데
백제때 우술군에 속했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비풍군에 속한지역이었다가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에는 공주목에 속했던 곳이다.
영조때에는 공주군 산내면 목척리라 했다.
1885년에는 회덕군 산내면 목척리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개편정책에 따른 군ㆍ면이 통합되어
대전군 대전면 춘일정 리정목이 되었다가
1946년 해방후 왜식의 지명 일소책에 따라 옛지명을 되찾아 으능정이의 한자표기인 은행동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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