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7일(토) 오전 11시 19분.
대전을 떠난지 3시간 이상 지났다. 손목에 찬 고도계를 보니 해발 700m가 넘는다.
평균 고도가 해발 800m라는 태백시에 들어섰으니 아마도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이
삼척의 궁촌으로 유배를 가며 수라를 들어 수라리재로 불린다는 유래가 전해져오는 수라리재도 넘었을 것 같다.
멀리 백두대간을 이어 산등성이에 상고대가 겨울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을 발한다.
이제 30 여분이면 태백산 등산로 입구인 유일사 매표소에 도착하리라.
오전 11시 54분.
11시 40분경 유일사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고, 카메라를 챙겨들고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에 밀려드는 차량 홍수 못지않게 매표소 입구부터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낮 12시 11분.
해발 915m인 주차장을 떠나 눈으로 덮인 비교적 넓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를 20여분. 숨이 턱 밑에 차오른다.
등산용 파카를 벗어 내피를 떼어내 배낭에 넣었다.
잠시 땀을 식히는 동안 눈실 등반에 필수인 아이젠을 등산화에 단단히 착용했다.
한낮의 따뜻한 햇살이 눈 쌓인 나무 숲 사이로 눈 부시게 비친다.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 및 태백시의 경계에 위치해
한반도 이남에 있는 산들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에 해당한다.
최고봉인 장군봉(1,567m), 개천절 하늘에 제를 올리는 천제단(1,561m),
소백산맥의 산줄기가 시작되는 부쇠봉(1,547m),
검은 바위들이 무더기를 이룬 문수봉(1,517m)이 산줄기를 따라 높이 솟아 있다.
낮 12시 48분.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여가 흐른시간. 해발고도는 1200m를 넘어 1300m에 육박한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벌거벗은 나뭇가지의 상고대가 뚜렷하다.
눈비신 햇살을 받아 더욱 희게 보이는 상고대와 푸른 하늘색이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
오후 1시 6분.
해발 1400m를 넘기면서 온 세상을 은색으로 물들인 상고대는 절정을 이룬다.
이곳 태백산은 그 이름만으로는 웅장하고 거칠게 느껴지지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산이다.
새해에 첫날 천제단에서 행하는 신년 해맞이 행사를 비롯하여 봄에는 철쭉ㆍ
겨울에는 눈꽃과 설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오후 1시 14분.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과 천제단을 향하는 이들이 대부분 잠시 숨을 돌리는 유일사 쉼터 바로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유일사(惟一寺)의 중심 전각인 무량수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뒤편 상고대로 뒤덮인 나무 가지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대웅전’이 왜 없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어떤 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참고로 사찰의 중심전각 이름은 아래와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곳은 대웅전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곳은 대적광전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곳은 무량수전(또는 극락전 또는 극락보전)
이곳 유일사는 시장바닥보다 더 복잡한 등산로에서 가파른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내려야 올 수 있는 까닭에 인적이 거의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중에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고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인 유일사를 떠나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유일사 쉼터를 지나서 주목군락지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이제까지에 비해 비교적 가파르고 좁은 길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등산객들로 인해 눈 쌓인 등산로는 심각한 정체 현상을 빚는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상고대는 그 모습을 더 뚜렷이 나타낸다.
상고대(hoarfrost on the tree) 란 다른 말로 나무서리(수상;樹霜 ;air hoar)라고도 한다.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기온이 0도 이하 일 때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승화되어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을 말한다.
마치 나뭇가지에 흰 눈이 쌓인듯 보일 정도로 심한 상고대 덕에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나간 앙상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동화나라에 온듯한 착각을 느낀다.
비교적 평탄한 바닥에 주목이 군락을 이루는 주목 군락지는 그야말로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한다.
2시간 가까이 산행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그 혼란의 한 복판에서 큰 소리를 내며 시주를 요구하는 스님이 한 분 계시다.
한 마디로 불쾌한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부처님께서도 이런건 바라지 않으실 것 같다.
상고대로 뒤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태백산맥 능선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은 후
그 감동을 디카로 옮기는 이의 모습이 진지해 보인다.
이곳 태백산보다 6m 높은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인 해발 1,573m의 함백산이 뚜렷이 보인다.
국내 최대의 주목 군락지인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탄성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인적을 피해 주목만 카메라에 담고자하는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보며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속설이 있는 주목(朱木)은
고산지대에 높이 20m, 지름 2m로 자라고 꽃은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단성화로 4월에 피며 관상용, 재목은 가구재로 이용한다.
수령은 200∼500년으로 추정되고 상록침엽 교목으로
몸집이 장대하고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주목의 종의(種衣)는 식용하고, 잎은 약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산 주목씨눈에서 항암물질인 택솔을 대량 증식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며 씨눈과 잎, 줄기에 기생하는 곰팡이를 생물공학기법으로
증식, 택솔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상품화되었다고 한다.
기기묘묘한 형태를 가진 주목들과 앙상한 나뭇가지에 자연이 가져온
아름다운 상고대의 어울림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건 나만의 특권이 아니었나보다.
아름다움에 취해 넋을 잃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며 일행들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오후 2시 27분.
이곳 태백산을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한 천제단(天祭壇)을 향해 발길을 향한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족국가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시대까지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그 의식이 아직도 이어져
매년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국가의 태평과 안정, 번영을 기원하는 동제의 장소로 이어지고 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기록에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3산 5악(三山五岳)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후 2시 39분.
태백산 정상을 떠나 하산길에 오른다.
태백은 ‘크게 밝다’는 뜻으로 ‘한밝뫼’, ‘한배달’로도 불렸다.
당초 계획은 남동쪽 능선을 타고 하산하여 소백산맥 산줄기의 시작점이자 중국의 태산과 높이가 같다는 부쇠봉,
산봉우리의 자갈로 된 돌무더기가 눈이 쌓여 있는 것 같아 태백산이라 이름 짓게 했다는 문수봉을 거칠 예정이었으나
수많은 인파로 시간이 지체되어 망경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천제단에서 불과 5분 거리인 망경사 앞에는 더 많은 인파가 붐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인 이곳 망경사[望鏡寺]는
652년(신라 진덕여왕 6년)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앞에 보이는 용정(龍井)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70m)에 위치하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샘물로서
천제의 제사용 물로 쓰인다고 한다.
반재를 거쳐 석탄박물관이 있는 당골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 내리막길이다.
간혹 비료 푸대를 구해 와서 눈썰매타기를 시도하는 위험천만한 사람들도 눈에 띈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망나니는 있기 마련이니까.
하산 길을 따라 옆으로 이어지는 계곡 물은 강추위에 꽁꽁 얼어 붙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봐도 티끌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깨끗한 얼음이다.
이 계곡 이름은 “당골계곡”이다.
오후 3시 51분.
산행을 시작한지 꼬박 4시간만에 석탄박물관이 바라보이는 단군성전 앞에 도착했다.
이제 산행이 마무리되었다.
넓은 당골광장에는 오는 1월 30일부터 2월 8일까지 ‘雪왕雪래! 눈을 따라, 추억을 담아’
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16회 태백산눈축제 준비로 여념이 없다.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는 금년 겨울 날씨 때문인지 제설기와
건축 공사용 거푸집까지 동원되어 눈조각을 만들 준비가 한창이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당골광장의 한켠 연못 가운데 평소 분수로 활용했음직한 자리에
멋진 얼음 형상이 만들어져 있고, 그 앞에는 직업사진사가 호객행위를 한다.
해발 980m에 조성된 당골광장의 이름은 용정에서 발원하여 다른 골짜기 물과 합쳐진 뒤
소도동으로 약 3㎞에 걸쳐 흐르는 당골계곡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계곡 이름은 계곡을 따라 많은 신당(당집)이 들어서 있어서 붙여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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