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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대전 시민을 품에 안은 푸근한 산



2009년 1월 27일 오전 10시 31분.

서울에서 초,중,대학을 나와 일가를 이루고 살아 온 내가 불혹의 나이에 대전에 정착한지 19년 째 처음으로 보문산을 찾았다.


보문산 입구에서 차도를 따라 야트막한 경사 길을 오르기 시작한지 10여분 남짓. 덕수암이라는 사찰 이름에 비해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팔작지붕 양식의 대웅전 건물이 눈길을 끈다.


알고 보니 이곳 덕수암 대웅전의 단청은 ‘단청장’으로 꽤 알려진 인물인 ‘이정오“선생의 작품이란다. ‘이정오“선생은 우리나라 단청계 최대 계파의 수장인 고 일섭 스님에게서 전수 받은 인물로 그의 작품으로는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현충각, 대구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등이 있다고 한다.


덕수암과 그 바로 옆의 불광사를 지나 보문산 관광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 옆의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흰 눈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 준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을 여러 차례 다녀 온 나에게는 무척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무가 메타세콰이어이다.


오전 11시.

나무숲으로 이어진 주위 환경과 동떨어진듯한 구조물이 눈에 유난히 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친다.


가까이 가보니 500만 실향민 중 대전과 충남지역에 거주하는 60만 실향민의 한을 달래기 위한 망향탑이다. 순수한 이북도민의 성금 1억5천만원을 모아 지난 1990년에 만든 조형물이라 한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 현실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오전 11시 23분.

비교적 평탄한 관광도로를 벗어나 경사가 심한 산길로 접어들자 며칠새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상당히 미끄럽다. 배낭에 준비해 온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아무리 낮고 평탄한 산이라도 자만은 금물이다. 안전 제일.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함이 자연을 가까이하는 이들의 미덕이리라.


오전 11시 41분.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느라 숨이 조금 가빠질 즈음 보문산 정상인 시루봉 아래 약 300m

못미쳐 자리 잡은 고촉사(高燭寺) 에 당도했다. 맞배지붕 양식의 아담한 대웅전 단청이 대웅전 옆으로 10여개로 이루어진 층계를 올라가니 마치 천년 고찰을 연상케하는 아늑한 자리에 또 하나의 밥당이 자리 잡고 있다. 현판을 보니 ‘대적광전(大寂廣殿)’이다.


지난해 11월이던가 청양 장곡사에서 대웅전이 두 채(하대웅전,상대웅전)이던 장곡사에 가 본 적이 있으나 한 사찰에 釋迦如來佛(석가여래불)을 主佛(주불)로모시는 대웅전과 毘盧遮那佛(비로자나불)을 主佛(주불)로 모시는 대적광전이 공존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팔작지붕 양식의 대적광전. 창건당시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개축하면서 비로자나불을 모시게되었다는 얘기만 들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연유를 알고 싶어진다.


고촉사에서 보문산 정상인 시루봉까지 오르는 사선이 급경사이다보니 이렇게 게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계단의 폭이 지나치게 좁아 무척 불편하다. 또한 발이 큰 성인들에게는 발을 헛디딜 위험성이 많아 보인다.


건축법에는 계단의 높이 폭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보문산 관리자가 한 번쯤 고려해볼만한 사항이 아닐까 한다.


낮12시 4분.

이곳 보문산(寶文山)의 정상인 해발 457.6m 시루봉에 도착했다. 정상에 만들어 놓은 정자 이름은 보문정이다.

보문산은 대전시 중심부에서 남쪽에 솟은 산으로, 보물이 묻혀 있다 하여 보물산이라고 불리다가 보문산이 되었다거나, 나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줘서 얻은 '은혜를 갚는 보물주머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시루봉에서 바라보는 북서쪽의 전망이 시원하다.

300mm 망원으로 당겨보니 서쪽으로 10여 km떨어진 내집 아파트 베란다가 주먹만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다.


우리나라 산들 중 그 봉우리 모양이 떡을 찌는 시루와 닮았거나, 시루떡같은 모양으로 층층을 이루고 있다하여 시루봉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 여러 곳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상들은 종종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을 시루산으로 불러왔다.

일례로 옛 어르신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을 시루산이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멀리 북동쪽으로 1.2km떨어진 보문산성과 장대루가 흰눈과 어울려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에 안은 대전시민은 무척 행복한 시민인 것 같다.


낮 12시 48분.

금성산성 장대루 부근에서 설날 연휴 마지막날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대전광역시기념물 제10호인 이곳 보문산성은 해발 406m인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둘레는 300m이다. 이 성은 백제 말에 신라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인근에 있는 산성들과 쉽게 연락을 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것이라 한다.


보문산성에서 북동쪽으로 내려다본 대전 구도심권의 모습이다.

멀리 대전역 주변과 보문산 가까이의 종합운동장을 비롯한 대사동이 지척에 있다.


이 보문산을 뒤에 둔 동네가 대사동(大寺洞)이다. 동명의 유래는 큰 절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순 우리말인 ‘한절골’이 변하여 한적골·한잣골 또는 한자어로 대사동(大寺洞)·대이라고 하였다.


오후 1시 4분.

오래전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의 치열한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보문산성을 떠난다.

이곳 보문산성의 성벽은 자연지형에 따라 간단하게 다듬은 네모난 돌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성벽 바깥면은 조금씩 안쪽으로 둘러쌓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다 한다. 암반으로 형성된 동쪽과 북쪽의 급경사면에는 별도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발굴조사 결과 남문터가 확인되었고, 현재 통행로로 사용되는 북문을 통해 고려시대에는 성문폭을 좁혀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한다.. 동쪽 성벽 아래에서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주거지 유적과 민무늬토기, 덧띠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도 접한바 있다.


오후 1시 50분.

대전 시민의 휴식처 제공을 위해 지난 1995년에 마련한 전망대인 ‘보운대’에 당도했다.

이제 사실상의 산행은 끝났다. 이곳은 자동차도로가 잘 나 있어 대전시민들이 아무 때나 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책 코스이다.


보운대 2층 의 전망대에서 대전시내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사는 동네와 집을 가늠해보며 휴일 한낮의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을 느낀다.

이런 평온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 정도는 능히 우리 힘으로 극복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오후 2시 10분.

보문산 입구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둘러 본 보문사의 경내 모습이다.

값비싸고 웅장한 우리 전통 사찰 건물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재래식 가옥과 같은 보습의 대웅전 건물이다. 그러나, 유리창으로 만든 미닫이 문 안에서의 독경 소리는 우렁차고 엄숙하다.

아마 부처님께서도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거창한 사찰 건물보다는 이처럼 겉모습은 초러해 보여도 마음으로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불자들을 더욱 따뜻이 보듬어 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